선거기간은 특히 정치적 표현이 급증하는 시기이다. 그러나 인터넷 실명제와 선거관리위원회의 과도한 규제로 인해 국민들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선거기간 동안 오히려 제약을 받고 있다.
정보통신부는 2003년 초 홈페이지 게시판에 실명확인제를 도입한 뒤 모든 정부부처와 포털사이트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시민사회단체와 누리꾼들의 뜨거운 반발을 불러 일으켰으며, 결국 정보통신부는 7월, 법제화를 철회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2004년에는 4.15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인터넷 언론의 게시판에 실명제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선거법에 포함시켜 또 다시 논란이 되었다.2005년 초, 인터넷에서 소위 사이버폭력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사건들(연애인 X파일, 개똥녀, 천사소년, 7악마 사건 등)이 터지면서, 정보통신부는 인터넷 실명제 재추진 의지를 다졌다. 정보통신부는 사이버폭력의 주요 원인으로 인터넷에서의 익명성을 문제 삼으며,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보통신부는 ‘인터넷 익명성에 의한 역기능 연구반’을 운영하였으며, 2005년 10월 31일 포털 사이트에 한해서 제한적으로 실명제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 초안을 공개했다.
2002년 대선에서 인터넷 언론을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는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노무현 정부는 인터넷을 통한 민중들의 자율적인 목소리를 통제하기 위한 제반 정책을 입안해왔다. 2002년 헌법재판소가 전기통신사업법 53조 불온통신 조항에 위헌 판결을 내렸으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심의 및 정보통신부 장관의 삭제 명령권은 여전히 유지되었으며, 2003년부터 논란이 된 ‘인터넷 실명제’는 결국 2006년 국회를 통과하여 2007년부터 시행되었다. 인터넷 실명제는 2004년 선거법 개정을 통해 선거시기 인터넷 언론사를 대상으로 먼저 도입이 되었으며, 선거관리위원회는 UCC 등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자의적으로 규제해왔다. 또한 정부는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개정을 통해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한편, 인터넷서비스제공자 스스로 이용자들의 표현을 검열하도록 요구하였다.
2003년 12월에 제네바에서 개최된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World Summit on the Information Society, WSIS)는 국제연대 활동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WSIS는 리우환경회의, 베이징 여성회의 등 UN이 개최했던 일련의 정상회의의 하나로서, 2002년 1월 31일, UN은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이 회의는 UN 사무총장 코피아난의 지원하에 국제통신연합(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s Union, ITU)의 주관으로 준비되었다.WSIS는 각 국 정부뿐만이 아니라 기업 및 시민사회의 참가도 허용하였는데, 2002년부터 시작된 WSIS 준비과정을 통해 국내적으로는 정보사회에 대한 국내 시민사회 공동의 입장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국제적으로는 진보적 미디어‧ 정보운동 단체들과 일상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계기를 형성하게 되었다.
진보통신연합 APC(Association for Progressive Communications)는 전 세계 각국의 정보통신운동 단체 네트워크이다.(http://www.apc.org) 1990년대 초반 진보네트워크센터와 같은 각 국의 비영리 ISP의 연합체로 출발한 APC는 90년대 말 다양한 성격의 정보운동 단체들의 네트워크로 변화하였다. 비영리 ISP의 연합체일 당시에는 1국가 당 1개의 회원만을 두었으나, 이후 정보통신 정책에 관심이 있는 단체들은 누구나 가입할 수 있도록 개방하였다.
다른 하나는 ‘정보통신운동의 국제연대’이다. 특히 지적재산권 등 정보통신 이슈들 역시 국내적인 대응으로는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고, 이에 진보네트워크센터는 국제적인 차원의 연대 활동을 모색해 왔다.1999년 7월 19일~23일, 인도네시아 Anyer에서 개최된 <인터독-아시아링크 워크샵>(INTERDOC-ASIALINK WORKSHOP)에 참석했다. 인터독은 전 세계의 NGO가 컴퓨터를 통해 정보 교류와 공유를 할 수 있도록 도모하는 프로젝트로 1984년 시작되었으며, 아시아링크는 인터독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네트워크이다. 이 회의의 주제도 이메일, 웹, 리눅스 등 정보통신기술을 시민사회단체들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였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이 회의 참가를 통해 정보통신에 관심이 있는 아시아 지역 단체들과 교류를 시작할 수 있었다.
미국의 군사망, 학술망으로 시작된 인터넷은 80~90년대를 거치면서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로 성장했고, 90년대 이후 일반 대중 및 기업의 진입이 본격화되었다. 그런데 IP주소의 분배, 도메인 네임, 프로토콜 등 인터넷을 움직이는 규칙은 여타 영역과 다르게 정부, 혹은 정부간 국제기구가 아니라 민간자율적으로 이루어져왔다. 인터넷 거버넌스를 위한 국제기구인 ICANN이 설립된 것도 1998년에서였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전통에 따라 .kr 아래의 인터넷 규칙 제정은 민간에서 수행해왔는데, 여러 과정을 거쳐 1998년 당시에는 민간재단법인인 한국인터넷정보세터(KRNIC)에서 맡고 있었다.
인터넷 인프라의 급속한 성장은 기존의 저작권 체계와 심한 마찰을 빚고 있다. 인터넷은 정보의 생산‧유통‧향유라는 측면에서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왔으나, 이는 저작권자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에 따라 디지털 환경에서 저작권 보호의 범위와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논란을 처음 제기한 것이 ‘소리바다’이슈이다. 2001년 1월 국내 음반산업협회가 MP3 음악파일 공유 서비스인 소리바다(http://www.soribada.com)에 대해 저작권 침해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한 것이다.
특허는 ‘발명’에 대해 일정기간 독점권을 부여하여, 기술혁신을 촉진하고자 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특허 대상을 확대함으로써 오히려 혁신을 저해하거나, 혹은 건강권 등 다른 인권을 침해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인터넷 비즈니스모델(BM) 특허이다. 전 세계적으로 특허 대상이 확대되고 있는 경향인데, 과거에는 특허 대상이 아니었던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이나 사업 모델도 특허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00년을 전후하여 인터넷 BM 특허가 증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은 특허없이도 빠른 혁신을 이루어왔고, 오히려 특허로 독점을 부여함으로써 혁신이 저해될 우려가 있었다. 진보네트워크센터와 정보공유연대는 BM 특허의 문제를 이슈화하기 위해, 2000년 3월 4일, 삼성전자 ‘인터넷상에서의 원격교육방법 및 장치’ 특허에 대해 무효소송을 제기하였다. 같은 해 6월 18일에는 자유 소프트웨어의 창시자인 리차드스톨만을 초청하여 <소프트웨어 특허의 문제점> 강연회를 열었다. 결국, 2002년 12월 18일, 특허법원은 삼성전자 BM 특허에 대해 무효를 선고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