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특허 독점의 폐해와 강제실시

By 2010/05/18 10월 29th, 2016 No Comments

특허는 ‘발명’에 대해 일정기간 독점권을 부여하여, 기술혁신을 촉진하고자 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특허 대상을 확대함으로써 오히려 혁신을 저해하거나, 혹은 건강권 등 다른 인권을 침해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인터넷 비즈니스모델(BM) 특허이다. 전 세계적으로 특허 대상이 확대되고 있는 경향인데, 과거에는 특허 대상이 아니었던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이나 사업 모델도 특허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00년을 전후하여 인터넷 BM 특허가 증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은 특허없이도 빠른 혁신을 이루어왔고, 오히려 특허로 독점을 부여함으로써 혁신이 저해될 우려가 있었다. 진보네트워크센터와 정보공유연대는 BM 특허의 문제를 이슈화하기 위해, 2000년 3월 4일, 삼성전자 ‘인터넷상에서의 원격교육방법 및 장치’ 특허에 대해 무효소송을 제기하였다. 같은 해 6월 18일에는 자유 소프트웨어의 창시자인 리차드스톨만을 초청하여 <소프트웨어 특허의 문제점> 강연회를 열었다. 결국, 2002년 12월 18일, 특허법원은 삼성전자 BM 특허에 대해 무효를 선고하였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특허를 무효화시켰고, BM 특허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이슈화하기는 했으나, 소프트웨어 특허나 비즈니스모델 특허 자체를 무력화시키지는 못했다.

리차드스톨만

2000년 6월 18일 리차드스톨만 초청 강연회

특허를 둘러싼 전 세계적 이슈 중 하나가 ‘의약품(생명) 특허’ 문제이다. 특허로 인한 독점은 의약품 가격을 높이며, 이로 인해 약이 있어도 환자들이 의약품에 접근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국제적으로는 에이즈 의약품에 대한 접근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2001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에서 각 국의 각료들은 "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정(TRIPS)이 각 회원국의 공공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방해하지 않는다"라는 선언을 채택하기도 하였다. 지나친 특허 독점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공공정책의 하나가 ‘강제실시(compulsory licene)’이다. 강제실시란 국가위급상황이나 공중의 건강보호와 같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특허권자의 허락이 없이도 정부나 정부의 허락을 받은 제3자가 특허발명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의약품 공급의 독점이 무너지면 당연히 가격이 내려갈 것이고 의약품에 대한 접근을 확대할 수 있게 된다.

특허권과 건강권(생명권)의 충돌이 국내에서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글리벡 제조사인 노바티스는 한 알에 약 25,000원을 요구하였는데, 이를 복용하기 위해서는 보험적용을 받더라도 한달에 약 90만원~150만원이라는 엄청나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이 약의 실제 제조원가는 1000원도 되지 않는다.) 환자단체와 보건의료단체들은 <글리벡 문제해결과 의약품의 공공성 확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http://glivec.jinbo.net)를 구성하고 약값인하, 보험적용 확대, 글리벡 강제실시 등을 노바티스와 정부에 요구했다. 진보네트워크센터와 정보공유연대도 공대위에 참여하였으며, 특히 특허의 문제점과 강제실시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2002년 1월 30일, 공대위는 글리벡에 대한 강제실시를 청구하였다. 글리벡 강제실시는 당시 정보공유연대 운영위원이었던 남희섭 변리사가 주도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특허청을 방문했을 때, 강제실시 청구를 위한 제반 서류조차 구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특허법에 있는 강제실시가 실제로는 한번도 시행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특허 제도가 공공성을 상실한 채 얼마나 권리자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글리벡 강제실시를 요구하며 공대위는 국가인권위원회 점거농성, 노바티스에 대한 항의방문 등 격렬한 투쟁을 전개하였지만, 결국 2003년 2월 정부는 강제실시 불허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2002년 1월 30일, 글리벡 강제실시 청구 기자회견

2002년 1월 30일, 글리벡 강제실시 청구 기자회견

2002년 6월 27일 노바티스 항의방문

2002년 6월 27일 노바티스 항의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