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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망법, 사적 검열 부추기나

By 2010/06/11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오병일

지난 8월 20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 전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86년 ‘전산망 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으로 출발하여 99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으로 이름을 바꾼 이 법률은 2001년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한 조항을 추가하여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되었고, 이번에는 ‘위치정보보호법’과 ‘정보화촉진기본법’ 일부를 흡수하여 방대한 내용을 가진 법안이 되었다. 그러나 법제의 구분이나 규제 내용의 밑바탕이 되는 기준과 철학이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다. 그저 이해관계자의 요구나 정권의 필요에 의해 짜집기 되어 누더기같은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포털 사업자는 사적 검열기관?

이번 개정안의 핵심적인 독소조항 중 하나는 포털과 같은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자신의 정보통신망을 통해 유통되는 정보에 대해 ‘모니터링’을 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대부분의 포털과 P2P 등 서비스제공자들이 이미 자체적인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데, 이 조항이 왜 문제인가? 미국같은 경우 통신품위법(Communication Decency Act) 230조에서 서비스제공자가 선의로 내용 규제 조치를 취하더라도, 서비스제공자를 출판자(publisher) 혹은 발언자(speaker)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중립적 전달자로서의 서비스제공자의 지위를 명확히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비스제공자의 지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권리 침해를 받은 사람이 서비스제공자에게 요구를 하면 임시조치나 접근차단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경우 서비스제공자의 법적 책임을 면하게 해주는 규정을 갖고 있다. 즉, 지금까지는 모니터링을 하더라도 그것은 선의의 관리행위였을 뿐이지만, 서비스제공자에게 모니터링을 의무화할 경우 전혀 얘기가 달라지게 된다. 즉, 서비스제공자는 모니터링을 통해 자신의 망을 통해 유통되는 모든 정보들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야 하며, 따라서 불법정보에 대한 서비스제공자의 책임도 강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사업자들이 법적인 책임을 부담하고자 하겠는가? 당연히 서비스제공자들은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표현들을 알아서 차단하려 할 것이다. 이 조항은 포털 등의 서비스제공자들이 ‘사적 검열기관’이 될 것을 강요한다!

또 하나의 어이없는 조항이 있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에서는 정보의 삭제등을 요청받으면 서비스제공자가 지체없이 삭제나 임시조치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는데, 개정안에서는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한다. 권리침해를 주장하는 사람의 주장이 합당하든 아니든 서비스제공자는 무조건 삭제나 임시조치를 하라는 것이니 얼마나 황당한가! 또한, 지금까지의 법의 태도가 ‘이러이러한 조치를 취하면 서비스제공자는 책임을 지지않는다'(면책)였다면, 이 조항은 ‘서비스제공자는 이러이러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책임)는, 규제의 철학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현 정부의 인터넷 규제 정책의 철학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굳이 지금까지 보이는 일관된 규제 철학을 찾자면, ‘정부에 비판적인 모든 미디어는 통제한다’는 정도가 아닐까…

‘공적 검열기관’으로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역할도 강화된다. 개정안은 임시조치를 취할 때 글을 게시한 사람에게 이의신청의 기회를 제공하도록 했는데, 이는 지금까지 당연히 있어야했던 내용이다. 문제는 이의신청이 있을 경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 하여금 7일 이내에 심의하도록 한 점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사법적 판단을 할 능력이 없다는 점, 그리고 사법적 권한도 없다는 점 모두 문제다. 이용자의 표현을 제약하는 최종 판단은 사법부에서 내려져야 하며, 이의신청에 대한 심의는 전문기관에 의해 ‘분쟁조정’ 정도의 역할로 주어져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보통신망법의 내용규제 관련 조항은 전면적으로 개편될 필요가 있다. 서비스제공자는 중립적 전달자로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합리적인 조치를 취하는 한 면책되도록 해야하며, 적극적인 검열자로 기능하게 해서는 안된다. 또한 효율적인 분쟁해결을 위해 대체적 분쟁해결 제도를 도입하고, 표현에 대한 궁극적 구제는 사법적 판단에 근거하도록 하되, 신속한 판결이 가능한 제도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

 

주민등록번호 수집 금지 조항 포함되어야

이번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의 긍정적 측면이라면,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 개인정보를 수집할 때 수집에 대한 동의와 제3자 제공에 대한 동의, 개인정보 취급위탁에 대한 동의를 각각 별도로 하도록 한 점, ▶ 개인정보가 유출되었을 경우 피해를 당한 이용자에게 의무적으로 통지하도록 한 점, ▶ 방송사업자에게도 개인정보보호 규정을 동일하게 적용한 점, ▶ 전화나 팩스를 이용하여 광고할 때 수신자의 사전 동의를 강화한 점 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에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핵심적인 대책이 누락되어 있는데, 바로 주민등록번호에 대한 대책이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에는 일정규모 이상의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지 않고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회원으로 가입할 때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소규모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는 대체수단 제공조차 의무화하고 있지 않고 있다. 그런데 주민등록번호가 정보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도대체 왜 필요한가? 해외 사이트들은 주민등록번호 수집 없이도 문제없이 서비스하고 있지 않은가? 주민등록번호의 중요성이나 유출로 인한 피해 등은 재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조항을 복잡하게 만들 것 없다. 특별한 법적 근거가 없는 한 주민등록번호의 수집을 금지하고, 기존에 수집된 주민등록번호는 삭제하도록 하면 된다.

 

규제완화를 외치면서 불필요한 규제는 왜 만드나?

그밖에 정보통신망의 안전성을 확보한다는 목적의 조항과 이용자를 보호한다는 목적의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다. 내세우는 명분은 좋다만, 그 안에 발톱이 숨겨진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 많다. 또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더라도, 어떤 문제를 사업자 자율적으로, 혹은 이용자 운동을 통해 해결할 수 없는지, 법적 규제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부작용은 없는지 좀 더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정보통신망의 안전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해킹 등 침해사고가 발생할 경우 방송통신위원회가 정보통신망에 접속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과 악성 프로그램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물론 해킹이나 악성 프로그램이 다른 네트워크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공공기관이 일정한 역할을 할 필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역할은 요청이 있을 경우 도움을 주거나 서버 운영자의 동의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이러한 역할을 지금도 수행할 수 있다. 굳이 접속요청권이나 삭제요청권을 법안에 규정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방송통신위원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서비스제공자들은 더욱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또한 무엇이 악성 프로그램이고 비악성 프로그램인지 그 경계를 설정하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한 방안으로 IP 주소를 감추는 프로그램이 이용되기도 하는데, 정부는 자신의 통제력을 무력화시키는 악성 프로그램으로 규정할 수도 있다. 접속요청권이나 삭제요청권은 정부가 민간의 정보통신망에 과도하게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위험이 크다.

검색결과조작을 금지한다든가, 온라인 광고에 대한 부정클릭 금지 규정 등도 굳이 입법화가 필요한지 의문이다. 우선 검색결과의 조작을 금지하는 조항은 규정 자체가 모호하다. 예를 들어, 정보통신망법에 대한 문제점을 이슈화시키기 위해 ‘정보통신망법 검색하기’ 캠페인을 펼칠 수 있다. 개정안대로라면 이 역시 처벌대상이 된다. 또한 특정한 목적을 위해 알고리즘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검색 결과는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이러한 알고리즘의 변경도 조작에 해당되는지 역시 모호하다. 온라인 광고의 경우 부정클릭은 광고 시장 자체를 왜곡시키기 때문에 굳이 법적 규제가 없더라도 사업자가 스스로 나서서 관리적, 기술적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인터넷 상의 부가서비스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일일이 법적인 방식으로 규제하려고 한다면, 그 항목은 한없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필요한 규제는 당연히 해야겠지만, 규제완화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MB 정부에서 충분한 논거도 없이, 유독 정부의 통제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을 촛불과 인터넷에 뜨겁데 덴 이명박 정부의 인터넷에 대한 반격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08-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