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고전적인 SF소설에 대해 갖고 있는 클리쉐(cliche)들은 광대한 은하계를 탐험하는 우주선들과 고도로 훈련된, 매끈하고 화려한 복장의 승무원 그리고 미지의 외계인일 것이다.
영감이 떠올라준다면 좋은 만화를 쉽게 그릴 수는 있을 터. 그러나 작업량으로 승부하는 만화라는 장르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영감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어버릴 수는 없는 일. 재미있는 만화를 그리는 것은 대체로 기술의 덕이다. 웃기는 데에도 기술이 있다.
<영화 은 퍼즐같다. 흩어진 조각 하나하나는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지만, 그것들이 모여면 전체 그림이 드러난다. 이냐리투 감독은 흩어진 그림들이 순서 없이 나열되어 있듯 신들을 배치했다. 이 영화는 전작 (2000)로 주목 받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1월 17일부로 개정 저작권법이 시행됐다. 작년 10월 관련 법안이 통과되어 3개월이 지나 법적인 효력을 얻은 것이다. 이번 개정 저작권법의 주요 내용은 실연자와 음반제작자에게 실연 및 음반에 대한 전송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온라인 음악의 무료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한 마디로 음반제작사들의 이권이 확대됐다고 – 보다 확실해졌다고 – 보면 된다.
미디어 아트가 보존이 가능할까요? 미디어 아트는 어떻게 보존 할까요? CD, DVD 그리고 고사양 컴퓨터에 보존하면 될까요? 아니면 비디오테이프? 아니면 문서? 아니면 어떻게??
“나는 리눅스 사용자다. 나는 내 컴퓨터에서 인터넷뱅킹을 이용할 수 없다.” 이 말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대한민국의 2등 시민”이라는 얘기와 같다. 풀어서 쉽게 말하자면, 나는 내가 리눅스와 불여우(http://www.mozilla.or.kr/firefox)를 선택해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인터넷상에서 제공되는 대부분의 공적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인터넷뱅킹에 사용되는 소위 공인인증시스템은 오로지 MS-windows라는 운영체제와 ActiveX가 작동하는 인터넷익스플로어(IE)라는 웹브라우저 위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18일 여성주의 저널 ‘일다’의 톱기사는 ‘명문대 타령하는 언론’을 제목으로 한, 매체비평 기사였다. 기사는 시종 학벌계급을 지향하는 이 나라의 사회 풍토를 비판하며 언론이 그러한 현상을 주동하고 바람 잡았음을 성토하고 있다. 발 빠른 사교육 현장에서의 명문대 부채질 홍보와 상업화된 방송의 명문대 지상주의를 표방한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메스를 들이댔다.
무엇보다 블로그반년정도 블로그 형식을 이용한 홈페이지를 운영하게 되면서, 블로그의 장점을 차차 깨닫게 되었다. 키워드, 트랙백, 카테고리 등을 통해 포스트들을 끝말잇기처럼 엮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상의 정보를 쉽게 모아 놓을 수 있었다.
나는 자율 미디어가 세 가지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본다. 우선 자율 미디어는 자신의 미디어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더 좋은 질의 작품을 생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하며,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갖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