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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사찰의 메카니즘과 감시국가

By 2010/07/26 11월 3rd, 2016 No Comments
장여경

사찰과 블랙리스트. 요즘 한국 사회에서 많이 회자되는 말이다. 이 두 단어는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찰’은, 단순히 조사하여 살핀다는 의미가 아니다. 국가나 기업과 같은 권력기구가 자신에 대하여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개인들의 ‘사상적 동태’를 은밀히 조사하고 처리한다는 말이다. 실제 그런 일을 담당하였던 경찰의 한 직분을 의미하기도 하였다(사상경찰). ‘블랙리스트’는 그러한 사찰의 결과물이기도 하고 시작점이기도 하다. 감시와 통제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개인들의 명단을 만들어 이후 동태를 파악하는 데 사용한다. 

최근 이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진앙이 정치권으로부터 밀려오기 때문이다. 국무총리실과 국가정보원,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현 정부 주요 권력기관이 이전 정부의 집권 세력 뿐 아니라, 심지어 집권여당 내 경쟁 세력을 사찰했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방송인과 평론가들에 대한 블랙리스트 논란은 한 방송사의 돌출적인 행태가 아니라 현 정부의 암묵적인 권력 의지가 발현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 발표가 어떻게 끝나건 사태가 이쯤 이르면, 이명박 정부는 교체 이후에도 시민들의 뇌리 속에 ‘사찰 정부’로 기억되기에 충분할 듯 하다. 김영삼 정부가 미림팀의 ‘도청’과 함께 기억되듯.

그러나 지금의 사찰 문제는 정치인에 대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시대의 악법 국가보안법으로 많은 사회단체가 감시당하고 시련을 겪고 있지만 문제가 그것 뿐만은 아니다. 시민사회 명망가나 전문가들의 발언이 예의 주시당하고 때로는 명예훼손이라는 보복으로 돌아오고 있지만 진정 그것보다 심각한 문제가 따로 있다.

몇년째,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사찰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사찰 논란의 출발이었던 김종익씨 사건에 ‘민간인 사찰’이라는 부제가 붙었지만, 그가 민간인 사찰의 유일한 당사자는 아니었다는 데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지난 14일 「최근 (이명박 정부의) 공안탄압 양상과 대응방향 모색을 위한 토론회」라는 제하의 토론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의 주목을 끌었던 것은 ‘저강도 공포의 일상화’, ‘저강도·맞춤형 공안탄압’이라는 단어였다. 이명박 정부의 공안 통치를 지켜보며 많은 이들이 ‘과거 회귀’를 말했다. 토건국가식 경기부양책이나 경찰의 고문 수사에서, 박통이나 전통 등 과거 권위주의 정권과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스타일 간에 유사점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공안 탄압은, 매우 치밀하고 집요하게, 그리고 치사하게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촛불, 광우병 괴담, 광고지면 불매운동, 미네르바, 회피 연아, 천안함 괴담, 그리고 김종익씨의 쥐코 영상까지. 정부가 정색하고 덤벼들기에는 면이 서지 않는 일이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일들이지만, 모두가 정색하고 벌어졌다. 어떤 일들은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왔지만, 형사처벌 앞에서는 아무도 웃을 수 없다. 과거에도 ‘막걸리 보안법’이나 일반 시민이 간첩으로 조작된 사건이 횡행하기도 하였지만, 이렇게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일반 시민 다수를 아우른 적은 없었을 것이다.

일반 시민에 대한 공안 탄압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인터넷 사찰이다. 인터넷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일반 시민 누구에게나 주어진 표현 수단이고, 그만큼 일반 시민에게 주류 매체 못지 않은 권력이 부여되었지만, 일반 시민에 대한 권력의 감시와 탄압도 그만큼의 비중을 두고 이루어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인터넷 시대 초기에는 표현물의 양이 너무 많아서 이제 권력이 여론을 유린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기술낙관주의가 지배적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낙관할 수 없다.

경찰과 정부에는 감시 맞춤형 검색엔진과 전문업체가 있다. 경찰이 실시간 인터넷순찰시스템, 즉 ‘사이버 검색·수집 시스템’을 발주하여 인터넷을 감시한다는 사실이 경향신문에 보도된 것이 지난 해 9월이다. 최근에는 세계일보에 의해 정부와 대기업이 전문업체를 통해 4만2000개에 달하는 인터넷 게시판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감시의 결과는 무엇일까? 2008년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장세환 의원이 문화부에 대해서만 밝힌 사실만 해도, 하루 두 차례씩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인터넷 게시물을 모니터링해 청와대·대검찰청·경찰청·방통위 등 42개 정부부처가 공유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공유된 누리꾼의 아이디 규모가 7~800개에 이른다고 했다. 지금은 더 될 것이다. 김종익씨의 경우 그 피해가 극적이고 구체적이어서 특히 화제가 되었지만, 그 못지 않은 피해가 또 있을 것이다. 

좀더 자세한 인터넷 사찰의 메카니즘은 이러할 것이다. 검색엔진의 힘을 빌어 ‘쥐코’ 등 문제가 되는 검색어를 포함한 게시물을 발견한다. 게시물을 발견하면 당국이 그 작성자의 신상정보를 알아내기란 식은 죽 먹기이다. 현행 법률에서는 수사기관이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등 ‘통신자료’를 요구하는 데 영장을 요구하지 않는다. 수사기관은 통신자료를 손쉽게 요구할 수 있고 인터넷 업체가 제공하는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집계하여 발표하는 통계만으로도 인터넷 통신자료 제공의 규모가 2008년 119,280건, 2009년 143,179건이다. 이 때문에 얼마 전에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에서 ‘통신자료제공’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하였다.

추적이 시작되는 시점은, 글쓴이가 그들이 염두에 두는 검색어를 포함하는 글을 올리는 순간부터이다. 인터넷 사찰이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신의 인터넷 생활 그 자체가 사찰의 대상이다. 당신이 자발적으로 작성하여 공개적으로 올린 게시판, 카페, 블로그, 소셜네트워크에서의 모든 글이 사찰된다. 이것이 인터넷 시대 그들이 당신의 사상을 조사하는 방법이다. 그렇다고 인터넷 생활을 빼놓고 사회 생활을 할 수는 없는 시대가 되었으니, 바야흐로 상시 감시사회의 비극이 이렇게 도래하게 되었다.

이 비극은 분명 통신 수단의 발달이 가져온 것이다. 기록매체의 발달은 우리의 통신 내용을 모두 기록하게 하였고, 유비쿼터스 시대는 우리가 시도때도 없이 접속하여 통신하게 하였다. 즉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 모든 일상 생활이 통신상에 남는다. 국가권력은 이런 상황을 십분 활용하여 감시능력을 확장한다. 미국에서도 국토안보부, 국방부 등 정부기관이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사찰하는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한국의 상황이 더욱 비극적인 것은 뭐니뭐니 해도 소셜네트워킹의 시대에 일반 시민의 배후를 철저히 캐고 싶어하는 사찰 정부를 만났다는 것이겠지만, 주민등록번호가 이 사태의 주요 배후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가 누군가를 사찰하고 싶어도, 인터넷 업체가 작성자의 개인정보를 안 가지고 있으면 그 요구에 응할 수 없다. 이것이 세계 대다수의 국가에서 보통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국민이 출생할 때마다 고유번호를 부여하여 평생 관리하는데, 국내 인터넷 사이트에는 글을 쓸 때마다 이 번호가 함께 보관된다. 인터넷 업체는 게시자의 주민등록번호 등 실명정보를 수집해야 하고, 이 정보를 6개월간 보관하도록 법률로 의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민등록번호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앞서가는 인터넷 사찰 국가를 탄생시킨 셈이다. 

행정안전부가 밝힌대로 2012년부터 전자주민증이 도입되면, 이제 이런 상황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 전반으로 확장될 것이다. 병원, 은행, 학교, 그 어디건 내가 가는 곳마다 전자주민증 인식을 요구받을 것이고, 그렇게 인식된 나의 흔적은 나의 모든 것을 한 눈에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했는지까지. 이렇게 인식된 나의 정보는 지금의 주민등록번호처럼 손쉽게 수사기관에 제공될 것이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전자감시국가의 완성체가 될 모양이다. 그렇다면, 일상적인 사찰의 시대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 이 글은 미디어스 2010.7.26일자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593

2010-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