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립성웹진 액트온정보공유

국내 망중립성 논의와 인터넷의 미래(2)

By 2010/06/11 8월 22nd, 2017 No Comments
황규만

3. 대형 ISP 사업자들에 의한 설비기반 중심의 인터넷 시장 고착화

우리는 지금까지 국내 네트워크망 시장의 발전과정과 규제산업으로의 진입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결과적으로 망중립성이나 네트워크의 공공적 운영이라는 원칙보다는 대형 ISP 중심의 정책을 통해 규제산업으로 시장을 형성시켜 온 것이었다. 그 결과 초창기 경쟁시장이었던 ISP 시장을 3개의 대형 ISP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점차 대형 ISP의 인터넷 산업 전체에 대한 권력을 강화시켜주었다.

이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단지 망중립성이라는 인터넷의 암묵적인 가치를 훼손하였으니 무조건 잘못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망중립성이라는 가치가 네트워크망의 안정성과 혁신 그리고 인터넷의 혁신에 매우 중요한 필수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자유경쟁이 아닌 유효경쟁 모델을 정책적으로 추구하였다고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만도 없다. 하나의 시장을 사민주의적인 공기업형태로 관리할지, 전통적인 통신시장처럼 유효경쟁모델로 관리할 것인지, 아니면 역동적이고 다양성이 보장되는 자유시장형태로 유지할 것인가는 시장상황과 국가성장모델 등에 따라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국이라는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과 그에 비하여 (초고속)망구축비용은 매우 높은 현실 같은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어떠한 정책의 평가는 그것이 영향력을 행사한 시장의 경쟁상황이나 이용자의 편익이 얼마나 증대되었는가와 같은 결과론이 가장 중요하기도 하다. 사실 종량제처럼 통신비를 둘러싼 논쟁도 있었지만 그동안 나름대로 3사 경쟁체계에서 비싸지 않은 네트워크 비용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차세대 초고속망시대로 진입한 것은 나름대로 성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인터넷 컨텐츠플랫폼 시장의 경우에도 그동안 포털과 UCC를 중심으로 급격하게 진화해왔다. 망중립성보다는 대형ISP 중심의 네트워크망 규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컨텐츠플랫폼 시장의 경쟁과 혁신이라는 측면에서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동안 컨텐츠플랫폼 시장의 발전과 인터넷 문화의 확산은 망중립성 같은 물리적인 레이어 수준에서의 원칙보다는 End to End 원칙 같은 인터넷 프로토콜의 개방성과 자유로운 초창기 인터넷 문화, 그리고 민주주의의 정상화라는 정치사회적인 영향이 지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과연 인터넷 프로토콜의 개방성과 자유로운 문화가 여타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의 혁신을 이루는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매우 의문이다. 왜냐하면 거대해진 ISP 권력은 이제 인터넷 컨텐츠 및 플랫폼, 그리고 이용자의 인터넷 이용 패턴 등 모든 영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4. 공유기 금지 조치와 망중립성

2001년 1월, 인터넷 공유기 제조업체들은 약정한 수 이상의 단말기기 연결을 금지하는 초고속인터넷서비스 사업자(KT,하나로,두루넷) 이용약관에 대하여 불공정약관임을 주장하며 통신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하였다. 당시 정통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에 불공정약관이 아니라는 입장을 정한바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초고속인터넷서비스 시장이 주요 ISP간 가입자 유치 경쟁이 치열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사업자들은 인터넷 공유기에 대하여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2004년 8월 이후 KT는 본격적으로 인터넷 공유기에 대한 제재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KT는 공유기가 트래픽 증가를 유발하여 전체적으로 서비스의 품질이 저하되고 망사업자로 하여금 추가 투자를 해야 하는 부담을 준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2004년 즈음부터 전체 ISP 시장에서 신규가입자 증가율이 둔화되고 본격적으로 귀찮은 규제정책에 발목 잡히면서 망사업자의 이윤율이 하락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즉 이윤율 하락을 보전하기 위해 이용자로부터 추가 통신료를 추징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는 당시 종량제 논쟁과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대표적인 망중립성 훼손 사례이다. 그리고 망중립성 훼손으로 인한 이용자의 권리와 편익을 침해한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그동안 인터넷은 End-to-End 원칙에 의해 발전해왔다. 즉 네트워크는 차별 없이 최선의 방식으로 패킷을 전달하는 역할만 하고, 다른 모든 것은 플랫폼과 이용자 단말기를 통해 구현하도록 한 기본 정신. 그리고 네트워크 말단에서 어떤 단말기를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차별을 가하지 않고, 어떤 컨텐츠인가에 따라 패킷을 차별하지 않았던 초기 인터넷의 망중립성 정신과 프로토콜을 근간으로 하는 있었다. 이는 네트워크망 시장이 자유경쟁 상황이건, 유효경쟁 체제이건, 국영기업 모델이든 그 어떤 조건과도 상관없이 전세계적으로 일관되게 유지되어온 정책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네트워크 말단에서 어떤 장비가 연결되느냐, 또는 어떤 사설망을 구축하느냐는 이용자의 권리이자 자유였다. 이는 유무선 공유기, VPN 등 다양한 단말기 시장의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런 단말기 시장에 대형 ISP가 개입하고 나선 것이다. 사실 과거 소형 ISP 사업자들 중에는 경쟁에서 뒤쳐지면서 VPN 시장으로 주력사업을 전환한 사업자가 많았다. ISP 시장에서 차별당한 것도 억울한데 이렇게 하부시장까지 간섭하니 해당 업체들의 불만이야 오죽했겠느냐만, 이런 업체들은 여전히 KT등 대형 ISP에 대항할 법적인 수단도 힘도 없다. 정통부와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이 번복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VPN 사업자 뿐만 아니라 기업용 전용선을 사용할 수 없는 대다수 이용자나 소규모 영세 사업자들은 이런 공유기 금지 약관은 곧바로 고정비용 증대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결국 망중립성에 대한 모호한 입장과 정책 탓에 대형 ISP 들이 이런 단말기 시장에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5. 트래픽 사용량에 따른 차등 요금

2006년 11월 IPTV 전단계인 하나로 텔레콤의 하나TV가 LG파워콤과 SO(케이블TV사업자)에 의해 망 접속을 차단당했다. 당시 LG 파워콤은 ‘하나TV의 트래픽 때문에 다른 서비스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일방적으로 접속을 차단하였다. 당시 문제는 LG 파워콤과 하나로 사이의 상호 정산을 통해 해결되었지만, 하나TV측은 이 문제를 포털 및 UCC 업체 등 인터넷 전체 문제로 확산시켰다. 곰TV, 판도라TV등의 UCC,웹TV 서비스도 트래픽을 유발한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로써 본격적인 망중립성 이슈가 다시 대두었다. 당시 논란의 핵심은 트래픽 증가를 이유로 네트워크 사용료를 추가로 물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하나TV의 사례와 곰TV, 판도라TV는 내용적으로는 매우 다른 경우이다. 일단 트래픽 측면에서 HD 고화질을 전송하는 하나TV와 다른 웹TV, UCC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런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웹TV와 UCC는 IDC를 통해 망이용 댓가를 지불하지만 하나TV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하나TV가 해당 문제를 인터넷 전반으로 확장시킨 것은 LG파워콤과의 이용댓가 산정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로나 LG파워콤이나 망중립성 자체에는 일체 관심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논쟁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불쾌한 사업자들이다. 어차파 하나로는 돈을 내야하는 입장이었다. 그런 면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왜 하나TV가 추가요금 문제를 인터넷 전반으로 확장시켰느냐 하는 것이다.

대형 ISP들은 그동안 지속적인 이윤율 하락에 시달려왔다. 그것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망사업자들이 직면한 문제였다. 이들은 야후,구글,유투부,네이버등 대형 포털(플랫폼)사업자들이 거대한 비용이 드는 망 구축에 일체 기여하지 않고도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것에 불만을 가져왔다. 이는 근본적으로 망중립성에 관한 문제였다. 네트워크 중립성 지지자인 미국 스탠퍼드대 로스쿨 로렌스 레식 교수는 2006년 파이넨셜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투부가 1년여 만에 TV네트워크에 견줄 만한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망의 중립성 덕분이었다”고 분석했다. 그것은 국내의 판도라TV, 곰TV등이 급속도로 성장한 이유와 동일하다. 이용자들은 KT,하나로,LT등 ISP와 정당한 계약관계에 의해 정상적으로 웹TV및 UCC를 시청하고 있으며, 웹TV/UCC 플랫폼 사업자는 IDC(Internet Data Center)에 사용 트래픽만큼 정당한 이용대가를 지불하며 서비스하고 있다. 플랫폼 사업자가 ISP에 돈을 지불할 이유는 없다. 그들은 ISP와 계약관계에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양 끝에서 정당하게 (비용을 지불하고) 연결되어 있다면 일체의 차별 없이 패킷이 교환되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점은 플랫폼 사업자의 수익모델의 근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ISP들은 망 개선 투자를 명목으로 대형 트래픽을 유발하는 플랫폼 사업자에게 공동의 비용을 부담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으로, ISP 사업자들이 직접적으로 플랫폼 시장에 뛰어들기를 원했다. 즉 망과 플랫폼이 결합된 시장을 원했던 것이다. 과거 다양한 계층의 네트워크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어 경쟁 ISP들을 몰아내었던 것처럼, 망과 플랫폼이 수직적으로 결합된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막강한 자본력과 물리적 자원을 바탕으로 플랫폼 시장에서도 강력한 경쟁자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전망한 것이다. 그것의 첫 번째 모델이 IPTV였다. 그런 면에서 망 개선 투자를 목적으로 비용분담을 요구한 것은 정확하게는 플랫폼 사업자들의 이윤율을 하락시키고자 하는 의도라고 보아야 한다. 이미 그들은 과거 소규모 ISP들이 대형 ISP에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로 쏠쏠한 재미를 본 경험이 있다.

이러한 망차단 문제는 유감스럽게도 현재 진행형이다. 케이블 방송사업자(MSO)들은 자사의 망을 이용하는 소비자 – 케이블사업자들은 결합상품으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들에게 IPTV 사용을 여전히 불허하고 있다. 지역SO들은 “IPTV에 대하여 망을 개방할 경우 트래픽이 갑자기 커져 인터넷 등 다른 서비스 이용에 문제가 생긴다”라며 변명하고 있다. 하지만 더욱 본질적인 것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융합서비스 시장에서 기존의 방송시장의 지배력을 고스란히 지키기 위한 근시안적인 행태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과거 케이블이야 방송용으로만 사용되었지만 초고속인터넷망이 방송용으로 사용되듯이 이제 케이블도 초고속인터넷서비스를 하고 있다. 즉 케이블도 엄밀히 말해 이제 공중 인터넷망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케이블사업자에게 망개방을 요구할 법적 근거는 아직 없는 형편이다.

전체글 목록

2008-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