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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망중립성 논의와 인터넷의 미래(3)

By 2010/06/11 8월 22nd, 2017 No Comments
황규만

6. KT 품에 안긴 네이버

2006년부터 국내 포털 시장의 선두업체이자, 지배적사업자인 NHN은 구글이나 MS처럼 자체 발전시설을 갖춘 IDC를 만드는 것을 검토해왔다. 이는 장기적으로 IPTV시장을 염두해둔 기획이기도 했다. 여기서 IDC는 물리적인 시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으로 물리적 장비를 뛰어넘는 프로토콜 기반에서 논리적인 네트워크망을 구축할 수 있는 기술을 포함한 것이다. 늘어나는 트래픽과 네트워크 안정성을 목적으로 발전한 BGP(Border Gateway Protocol)가 그것이다.

BGP 연동을 통한 장애 극복

BGP 연동을 통한 장애 극복

NHN이 독자적인 IDC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런 BGP 기술을 국내 네트워크망에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더불어 IX의 독립적인 운영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국내 IDC는 단순히 서버호텔이 아니다. 이미 국내 IDC 시장도 대형 ISP 사업자 중심으로 인수 합병된 시장이다. ISP 사업자들이 회선 끼워 팔기와 BGP 연동을 불허하고 있기 때문에 플랫폼 사업자는 기존의 IDC를 이용하여 분산된 형태이나 그러나 논리적으로는 하나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기 어렵다. 그러나 독자적인 IDC를 구축하기에도 쉽지 않다. 왜냐하면 대형ISP가 IX사업을 동시에 하고 있는 현실에서 독자적인 IDC 구축은 공정하지 않은 게임에 참여할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공정한 게임의 룰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NHN이 독자적인 IDC를 구축하는 것은 난망한 일이었다. 결국 2007년 NHN은 KT와 제휴하기로 했다. 국내 인터넷 검색시장의 70%를 차지한 NHN이 KT의 IPTV 콘텐츠제공사업자(CP)로 들어가고 KT가 2008년 준공한 IDC의 3층을 빌려 쓰기로 정리한 것이다.

BGP등 인터넷 기술의 발전으로 향후 네트워크의 망연동 및 접속정책은 물리적 설비기반이 아니라 논리망 중심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설비기반이 아닌 프로토콜 기반의 새로운 경쟁상황이 가능해진 것이다. 따라서 네트워크망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되기 위해서는 IDC에서 BGP 문제를 해결하고 KT국사에 다른 통신사업자 광케이블이 들어와 경쟁할 수 있도록 하고, IX를 철저하게 분리독립 운영하여 다양한 사업자에게 공정한 망연동이 가능하도록 보장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국내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NHN과 KT의 제휴문제는 플랫폼 시장과 ISP시장의 지배적 사업자간 제휴의 문제가 아니라, 개방형 프로토콜 기반의 망중립성이 아닌, 망사업자 중심의 설비기반 경쟁체제로 진행되는 국내 네트워크시장의 현실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7. 케이블이 된 프리미엄망

망중립성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주요 ISP 사업자들은 증가하는 트래픽을 이야기해왔다. 트래픽이 증가함에 따라 망증설을 위한 투자는 계속해야 하지만, 그에 따른 망매출 증가와 같은 적절한 보상 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한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인터넷 종량제는 이런 문제에 기인한 것이었다. 즉 지금의 단순한 요금제를 보다 다양한 요금제를 적용한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매출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종량제 논의가 중요했던 것은 결국 이런 가격제도가 인터넷 이용패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사용량 제한은 UCC와 웹TV와 같은 대용량컨텐츠 이용에 제약을 가할 것이며, 저렴한 비용에 기반을 둔 이용자 컨텐츠 중심의 포털 사업 모델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또한 P2P 기술을 시장에서 바로 퇴출시켜버릴 것이다. 다행히도 인터넷 종량제는 네티즌의 격렬한 저항 속에서 실현되지 못했다. 물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주머니에 넣어두고 만지작거리고 있지만 말이다. 가격차별화 정책에 따른 다양한 상품화와 차별화 전략은 현재 정체상태에 빠져있는 ISP 시장의 최대 현안이기도 하다. 그러한 측면에서 현재 구축되고 있는 BCN등의 차세대초고속망. 즉 프리미엄망은 매우 전략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IPTV등 컨텐츠/플랫폼/망 그리고 방송시장이 융합된 서비스는 이런 프리미엄망이라는 차별화된 서비스의 핵심사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망사업자의 입장에서는 프리미엄망의 개방의무는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운 것이다.

올 초 IPTV 시행령 제정을 둘러싸고 필수설비 논란의 핵심은 바로 이 프리미엄망의 망개방의무 문제였다. 하지만 국내에서 프리미엄망 개방 문제는 철저한 시장자유주의자라 자처하는 이들조차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해왔다. 이유는 프리미엄망 구축을 위한 투자유인을 위해서이다. 이는 현재 방송통신위원회의 입장과 거의 동일하다. 현재 증가하는 트래픽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전체 미디어시장의 성장을 위해서는 BCN망의 구축과 초고속망의 전국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는 것이다. 과거에는 국영기업이었던 KT를 통해 국세를 동원해 개발해왔었지만 이미 완전히 민간자본 시장에 맡겨진 상황에서,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대형 ISP의 거대한 투자가 필요하고, 또 이를 위해서는 투자한 만큼의 프리미엄을 주어야 한다는 전형적인 시장 개발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과거 KT등의 대형 ISP가 시장을 주도하게 한 논리와 동일하다. 그동안 대형 ISP 문제에 그토록 거품을 물었던 자유주의자들이 동일한 논리로 다시 대형ISP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글쎄 과연 대형 ISP가 주도하는 인터넷 프리미엄망이 그들이 생각하는대로 온전히 대형 ISP의 투자만으로 구축될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미 앞에서 사용량에 따른 추가요금 부담 이슈에서 보았듯이, ISP들은 프리미엄망에 대한 투자와 이윤율 보장은 이용자에 대한 차등요금제가 아니라 인터넷이나 방송의 컨텐츠 기업에 대한 과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다. 즉 프리미엄망을 이용 댓가 명목으로 추가적인 비용을 CP들이 부담해야 할텐데, 망 개방 의무가 없는 상태에서는 분명 협상의 주도권이 지금의 대형 ISP들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결국 CP 시장에 대한 대형 ISP의 주도권을 부여해줌으로써 국내의 인터넷 시장은 더욱더 설비 중심의 경쟁체제로 고착화될 것이고, 컨텐츠와 플랫폼은 점점 더 망사업자에게 의존적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컨텐츠시장과 플랫폼시장의 진입장벽은 더욱더 높아지게 될 것이다.

얼마 전 있었던 IPTV 사업자 승인심사에서 대형 ISP이자 유.무선 시장에서 지배적 사업자인 KT,LG,하나로를 제외한 유일한 도전자였던 다음의 오픈IPTV는 승인심사에서 탈락했다. 이유는 자본금 부족이었다. 이는 IPTV 플랫폼 사업자의 진입장벽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그리고 프리미엄망을 다른 대형ISP 사업자들과 공정한 경쟁상태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은 다음의 오픈 IPTV를 더더욱 어려운 조건으로 내몰고 있다. IPTV 시장은 과거 ISP 시장처럼 대표적인 규제산업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이 역시 과도한 진입장벽으로 작동하게 한 요인 중 하나이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모든 조건은 대형 ISP들에게만 방송시장으로의 진출을 허용하게 하였다. 이는 대형ISP들의 유무선 시장의 지배자적 지위를 방통융합시장으로 고스란히 전이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리고 이것은 컨텐츠 시장을 망시장의 하부구조로 전락시키고 말 것이다.

8. 인터넷의 미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국내의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규모 속에서 망사업자들의 낮은 수익성과 높은 투자비용의 시장 구조는 사업자들에게 사업자 간의 결합을 통한 설비규모의 경제를 시현하도록 요구하는 상태일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는 몇 개의 대형 기간 통신망 사업자들의 분탕질 속에서 그들만 살아남는 구조로 시장이 재편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구축된 망개선 사업은 이용자에게 수혜가 돌아가기 보다는 대형 ISP의 시장지배력 전이를 통하여 CP와 이용자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최근 포탈과 통신망 사업자 간의 제휴 관계 역시 이러한 투자비용의 전가 이슈와 맥이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망중립성 문제를 단순히 경쟁의 문제나 소비자의 다양한 선택권 문제로만 본다면 현재의 시장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비교적 작은 시장에 비하여 막대하게 들어가는 망구축 비용이라는 현실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요 망중립반대론자들이 주장하듯이 통신망의 자연독점적 성격이 상당부분 완화되었다는 주장이나, 또는 망중립찬성론자들이 주장하는 다양한 경쟁을 위한 공정한 룰이라는 주장 역시 한국이라는 작은 규모의 시장에는 적용되지 않는 듯하기도 하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국내에서 플랫폼컨텐츠 시장이 급속하게 성장해왔지만, 망중립성이란 가치는 한국에서 한번도 구현되지 않았던 것이 증거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네트워크의 차별을 전제로 한 시장모델이 경쟁을 불러올 것 같지도 않다. 한국적 상황에서, 자연독점적인 통신시장의 속성과 정부의 전략적이고도 주도적인 역할이 지속되는 한, 그 어떤 조건 속에서도 독점적 방식으로 시장이 형성될 것임은 자명해 보인다. 한국정부의 정책은 망중립성이라는 철학적/이념적 가치보다는 한국 시장이라는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 자의적인 규제와 지원정책을 남발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기대하듯이 무선시장의 성공적 유효경쟁모델이 유무선 통합시장으로 성공적으로 전이되고, 각 통신사업자가 적정한 이윤율을 보장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할 수 있을지 정확히 예측하기기는 어렵다. 설사 그것이 성공적이라 할지라도 핵심적인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이런 이윤율 보장이 일반 민중들이 감당할 만큼의 적절한 통신비를 유지하면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실상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휴대폰 요금을 예로 들어보자. 사실 통신사업자들은 그간 중계기 등 망구축에 소요된 비용을 충분히 회수하였다. 즉 요금 인하요인이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통신비 인하를 주저하고 있다. – 무선시장도 강력한 규제산업이기 때문에 요금인하는 정부의 요금산정 기준이 변경되어야 가능하다. – 명분은 통신사의 신규산업에 대한 투자 유인을 위해서라지만, 문제는 이러한 투자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포화된 시장을 고스란히 대체하는데 머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아주 이상적인 시장의 상황이란 이런 것이다.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기 위해 통신 산업의 특성상 대규모 투자가 선행되고, 몇 년에 걸쳐 투자금과 더불어 이윤을 회수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다시 하고 그리고 해당 시장으로부터 이윤을 보상받게 되면 결국 이전 시장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요금 인하 요인이 생기므로 이용자, 즉 소비자에게 다양한 상품과 편익이 증대한다는 것인 전통적인 경제학의 가정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 통신사업자가 신규 투자하는 시장(CDMA등의 3G 시장 또는 차세대 4G시장)은 기존 시장을 완전 대체해야만 이윤율이 보장되는 시장규모가 형성되는, 아주 작은 시장인 것이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 사회에서 그나마 국내시장의 지배자적 지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미래 투자비용을 추가적인 이용 요금을 통해 보장받아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결국 통신업체나 과거 정통부의 투자유인 어쩌구 하는 변명들은 “통신 이용요금에는 항상 미래가치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라는 주장인 것이다.

똑같진 않겠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차세대 초고속망 구축사업에 대해 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은 더 뻔뻔하게 주장을 하고 있다. 즉 앞에서 살펴 본대로 망개선 사업에 플랫폼사업자와 컨텐츠 제공 사업자, 그리고 이용자에게 추가적인 비용 지출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망중립성 논쟁이 어디 발붙일 틈이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보자면 향후 망이용 댓가나 개인 통신비는 별로 인하할 것 같지 않다.

시장주의자들은 인터넷의 다양성과 민주주의적 가치를 보장하고, 전체적인 통신비를 인하하기 위한 대안으로 결국 한국의 동북아 금융허브전략의 성공과 각 통신사의 글로벌화를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최근 미국 모기지론과 금융위기 상황에서 보듯이 한국의 동북아금융허브 전략 역시 매우 허망하고 맹목적인 전망에 기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국 통신자본의 글로벌화 역시 몇몇 해외진출 실패의 사례에서 보듯이 전혀 낙관적이지 못하다. 우울하기는 하지만 이런 전략이 실패한다고 했을 때 결국 현재의 3사중심의 독점체계와 통신요금허가제 중심의 정부규제정책은 독점통신자본의 이윤율 보장을 위해 이용자들과 민중들의 과도한 통신비 부담을 요구하고, 컨텐츠와 플랫폼 그리고 망시장의 수직적 결합을 더욱 더 강제할 것이다. 결국 전체시장-플랫폼컨텐츠망(통신+방송) 전체를 아우르는 시장-에서 독점이 강화되면서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그리하여 결국 과거 인터넷의 혁신과 다양성, 그리고 참여적인 가치를 지속적으로 훼손시키고 결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형태로 귀결될 것이다.

9. 결론

인터넷이 그토록 주목받았고 또 지금도 받는 이유는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자들이 다양한 컨텐츠의 선택권을 가지는 것뿐만 아니라, 계급계층신체의 차별 없이 누구나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점이 인터넷의 혁신과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불러일으켜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과 다양한 대안사회를 꿈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올 한해 한국을 끝없이 달구었던 청계광장 촛불시위는 누구나 자유롭게 포탈 등의 인터넷에 손쉽게 자신의 의견을 올리고 토론할 수 있었던 자유로운 문화에 기반한 것이었다. 더 나아가 글만 올리는 시대도 이미 한물갔다. 한때는 전문가의 전유물이었던 방송도 이제 민중의 손에 넘어온 것이다. 인터넷에 연결만 되어 있으면 아프리카를 통해 누구나 촛불시위를 생중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유투부(YouTube)을 이용하여 정부의 잘못된 협상과 경찰의 폭력을 전 세계에 알려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대형 ISP 중심의 설비기반 중심의 경쟁체제에서는, 향후 컨텐츠플랫폼 시장이 망사업의 하부구조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다양한 주체가 인터넷에 참여하는데 커다란 진입장벽이 생기게 되고, 이용자 참여에 기초를 둔 CP들의 사업모델에 변화가 오게 될 것이다. 지금도 한때 활발했던 독립적 플랫폼컨텐츠 참여자들 – 과거 인터넷 혁명을 주도했던 시민단체 사이트나 인터넷 언론사 등 – 이 이제는 네이버등의 주요 포탈과 UCC 사이트의 단순한 CP로 전락한 상황이다. 대형 포탈과 UCC 사이트에 컨텐츠를 유통시키지 못하면 존재감이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다. 요새 누가 독자 홈페이지를 구축하려 하겠는가? 차라리 포탈에 카페나 블로그를 개설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운동수단으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주류 상업 미디어만을 재생산하는데 골몰하고, 정부와 자본의 간섭에 알아서 검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오늘날 포탈과 UCC시장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이미 인터넷은 다양성과 대안적 지향을 상실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아고라와 같이 시장의 공휴지에서 촛불과 같은 불꽃같은 혁명의 기운을 만들어낸 여지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인터넷 컨텐츠플랫폼 시장은 이미 대규모 진입장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 상황에서 대표적인 규제산업인 망 시장으로의 편입은 더더욱 인터넷의 자유와 민주주의적 가치가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IPTV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저항의 유일한 수단이라면 이 얼마나 처참한 현실이 될 것인가? IPTV는 현재의 포탈보다 더욱 정부규제를 받는 공간이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엇바꿔 먹으라.”할 것이다. 더욱더 자극적이고 소비적인 컨텐츠의 소비만을 부축이게 될 인터넷의 미래. 과연 우리가 바라는 세상일 것인가?

방송통신위원회는 향후 융합 환경에서의 기본 가치를 경쟁과 성장에 두었지만, 실제 정책집행에서는 매우 모순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융합미디어의 등장으로 그동안 별도의 시장으로 인식되었던 방송시장과 통신시장이 통합되어 겉으로 보기에는 다양한 경쟁이 도입된 것처럼 보인다. 주요 거대 ISP들의 독점적 지위를 전이확장을 보장해주면서 방송시장에 진입시킨 것은 자본주도적이고 소비적인 컨텐츠 시장인 방송시장에서의 경쟁 상황을 가능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망중립성이라는 가치 위해 다양하고 대안적인 플랫폼과 컨텐츠가 활성화되는 공간을 지속적으로 축소왜곡 시키는 과정에 불과하다.

인터넷의 다양성과 아래로부터 혁명 그리고 인터넷의 민주주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파멸에 예견되어 있는 현재의 설비기반의 개발중심적 정책에 집착하지 말고, 향후 인터넷 시장에서 망중립성을 어떤 형태로 보장할 것인가 하는 논의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망의 공공적 가치를 인정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시장의 공정한 경쟁 룰이 무엇인지 다시 이야기해보자는 것이고, 공정한 시장이 계속 민주주의 증진에 기여하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예전의 IT산업은 물리망이 주도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기술의 발전으로 논리망 영역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또한 인터넷의 플랫폼 시장의 활성화는 장기적으로 망의 지배력과 컨텐츠의 지배력을 막아 인터넷의 다양성을 보장해줄 것이다. 구글이나 다음의 아고라가 그토록 성공적인 이유는 단순히 시장에서의 성공 때문이 아니었다. 개방형 플랫폼에 기반한 개개인의 참여 보장이 집단지성으로 발현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집단 지성이 중동 등의 주류신문과 지상파3사가 만들어내는 상업적인 컨텐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촛불’이라는 거대한 저항의 흐름을 만들어낸 힘이기도 하다. 단순히 설비와 속도의 증설이 아니라 이러한 네트워크의 세밀한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망중립성 논의가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인터넷의 가치와 미래를 둘러싼 모든 것 – 시장과 민주주의 그리고 대안사회를 지향하는 혁신의 가치 – 가운데 서있기 때문이다. 국내 망중립성 논쟁 역사에서 이 글에서 가장 첫 번째 다룬 것은 KT 민영화 과정에서 잘못된 네트워크망 구획이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국내 망중립성 논의를 다시 시작하면 된다. 오늘날 다른 망사업자는 시장점유율 90%는 넘는 KT의 가입자망을 따라잡을 수 없다. 전봇대는 둘째 치고, 땅을 파고 묻는 관로와 전국 면단위까지 파고든 전화국은 KT 경쟁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냥 방송과 유무선 통신 시장을 섞어놓기만 하면 될 것인가? 아마도 매출 면에서는 경쟁상황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숫자의 더하기 빼기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변하지 않는다. 이런 망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차적으로 IX(인터넷 접속 서비스)와 가입자 선로와 같은 필수설비에 어떻게 공공적 성격을 부여할 것인가를 다시 해명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영국의 BT 사례는 매우 주목할 만한 것이다. 필수설비를 분리하면 당장 망할 엄살떨던 BT는 2007년 자발적으로 필수설비 조직을 ‘오픈리치’(Open Reach)로 분리하면서 매출이 오히려 늘었다. 그러한 조직분리가 민영화20년을 맞은 BT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물론 영국의 상황을 고스란히 국내로 들여올 수는 없겠지만, 망중립성 논쟁과 관련하여 국내에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물리적 망에 안정성에 저해되지 않는다면 논리적 망을 구성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을 허용해야 한다. 분리된 필수설비와 논리적 망을 기반으로 다시 네트워크를 계층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변화된 환경에 맞게 공정경쟁의 기본조건을 기초부터 다시 세워보자는 것이다. 또한 프리미엄망의 경우에도 사적 성격에 집착하지 말고 그것의 공공적 성격을 인정하고 사회의 공공재인 필수설비로서 어떻게 공정하게 이용할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한다. 통신망은 그것이 어떤 소유형태이든 기간산업으로써 민중의 이익에 기여해야한다. 대형ISP들 공동비용분담 주장을 일정정도 수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향후 방송통신융합 시장에서 다양하고 참여에 기반한 플랫폼이 등장에 저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IPTV의 비선형편성 기능이 이용자의 다양한 컨텐츠 소비 욕구를 일정부분 채워주기는 하지만, 참여욕구를 채워주지는 못할 것이다. IPTV등의 차세대 융합서비스가 지금의 인터넷과 같이 참여에 기초한 집단지성으로 발현하지 못하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정도 프리미엄망이 개방되어야 하고, 다양한 네트워크 참여자가 공정한 룰에 의해 경쟁 또는 이용할 수 도록 보장해주어야 한다.

ps. 이 글에서 가장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지면상의 문제로 와이브로 등의 무선 인터넷 시장의 문제를 전혀 다루지 못한 점이다. 최근 KT가 새로 선보이고 있는 와이브로는 도입 단계부터 종량제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무선시장에서의 망개방 이슈는 새로 떠오르고 있는 핫이슈이다. 다음 기회에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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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