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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천지 세상… 정말 안전할까

By 2010/06/10 10월 25th, 2016 No Comments
바리

정부가 잇따라 CCTV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지난 3월 26일 경찰청이 「아동·부녀자 실종사건 총력대응 체제」의 일환으로 놀이터·공원에까지 CCTV를 확대 설치하겠다고 밝힌데 이어, 5월 14일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 폭력 대책으로 2010년까지 전국 초중고교의 70%에 CCTV를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5월 19일에는 국토해양부가 아파트 등 공동주택 승강기, 어린이놀이터 등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고, 서울시는 서울 지하상가·지하철역 모든 화장실에 CCTV를 설치하겠단다. 이제 CCTV는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이다. 공공기관 CCTV가 전국적으로 이미 13만 대가 깔려 있지만, CCTV는 여전히 민생 치안 문제의 가장 유력한, 때로는 유일한 해법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CCTV는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CCTV가 촘촘히 깔려 있는 세상은 정말 안전한 것일까. 일단 공공기관 CCTV를 시비의 대상으로 삼아 보자.

이번에 서울시가 지하상가·지하철역 화장실에 CCTV를 달기로 한 것은 여성 3명 중 1명이 심야시간 화장실 이용시 안전에 위협을 느낀다는 조사결과를 토대로 한 것이라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남자가 들어갈 수 없는 여자화장실 13.9%이 ‘치안 사각지대’라고 한다. 그렇다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을 CCTV로는 들여다 볼수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치안’의 개념이 사회 안전이라는 명분으로 국가가 국민의 모든 생활을 늘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인가?

모든 곳을 감시하는 ‘치안’

2002년 강남구청과 강남경찰서가 CCTV 5대를 시범 설치한 이래로 공공기관들은 앞다투어 CCTV를 도입하였고, 오늘날 대한민국 공공기관에 설치된 CCTV는 모두 13여만 대에 이른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모든 CCTV는 최근까지 아무런 법률적 근거가 없이 설치 운영되어 왔었다. 그야말로 무법적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 CCTV에 대하여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수많은 인권단체들의 요구와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거쳐, 2007년 드디어 「공공기관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에 CCTV 관련 조항이 신설되었다.

그러나 관련법률 시행 6개월째를 맞아 우리가 파악한 공공기관 CCTV 운영실태는 충격적이다.지난 2008년 2월 국무총리 산하 ‘공공기관 개인정보보호 심의위원회’에서 검토된 <공공기관 CCTV 관리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다수 공공기관 CCTV가 몰래 감시를 자행하고 있었다. 대개 줌, 회전 기능이 설치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일부 CCTV의 경우 심지어 당사자 모르게 음성 녹음을 하고 있었다. 음성녹음은 명백한 불법으로서 형사처벌 대상이다. 안내판 설치율도 64%에 그쳤다. 14개 기관 CCTV 12,778대만을 조사한 결과가 이 정도이니, 전체적인 실태는 더욱 심각할 것이다.

몇 개 항목 되지도 않는 법률 지키기가 그처럼 어렵다니, 일선 공공기관이나 경찰의 정보인권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만 하다. 이번에 밝혀진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관련 책임자에 대한 징계와 처벌이 즉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전체 공공기관 CCTV의 실태가 국민 앞에 투명하게 다 밝혀져야 한다.

조사를 시행한 공공기관 개인정보 보호위원회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공공기관 CCTV의 불법적인 실태에 대해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번에 정보공개가 될 때까지 쉬쉬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충격적인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한 조치란 것도 대개 ‘권고’에 그치고 있다. 4개월이 지난 지금 시점까지도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불분명한 상황이다. 게다가 보고서의 말미에는 그나마 현행 법률의 규제조차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비추고 있다. 이 기관이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알리바이가 되어줄 바에야, 활동을 안 하느니만 못하다. 인권시민단체들이 오랫동안 주장해왔듯이 특정 정부 부처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필요한 이유를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공공기관들은 CCTV 촬영본을 다른 기관이 요청할 때마다 마구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촬영본이야말로 개인들의 사생활과 화상 정보가 담긴 소중한 기록일 텐데 대장조차 작성하지 않았다니 아연할 따름이다. 주차단속용으로 설치된 CCTV가 집회 채증 용으로 제공된다던지 법률 허용 범위를 넘어서는 촬영본 제공은 즉각 중지되어야 하고, 엄격히 관리되어야 한다.

이번 사태로 우리는 공공기관 CCTV 규제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잘 알게 되었다. 이는 일차적으로 현행 법률상 공공기관 CCTV 규제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CCTV가 오남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최초 설치될 때부터 목적 외 용도로 설치되거나 사용할 수 없도록 엄격히 규제해야 하는데, 이 법률은 겨우 “범죄예방 및 교통단속 등 공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라는 모호한 이유로 사실상 대부분의 공공기관 CCTV를 용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공공기관이 제멋대로 촬영하고 사용하고 제공해도 아무도 제지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최소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수준으로는 법적인 보호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

제멋대로 사용되는 공공기관 CCTV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공공 영역에서 사회적 약자의 안전이 위협받는 것은 사실이다. 꾸준히 계속되고 있는 경찰력의 강화와 첨단감시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우리 사회는 점점 위험해지고만 있는 것인가? 진정 위험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위험의 발생 요인, 그 구조적인 원인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2001년 11월 24일 <신자유주의와 민주법학>을 주제로 개최된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심포지움에서 이계수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와 경찰국가의 강화”라는 글에서 이렇게 지적하였다.

… 타인의 자유를 제약하고 유린하는 것을 능력의 발휘로 정당화하는 신자유주의의 냉혹한 시장논리 때문에 도시에서 ‘일상적’인 범죄와 일탈이 증가한다는 사실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빈곤의 세계화, 경제적 격차의 증대가 가져오는 계층간의 소통단절, 한 사회를 묶어주는 공통규범의 소멸이 위험과 범죄의 원천이라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범죄로부터 안전한 도시와 사회를 만드는 것이며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얻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일상적인 사회규범을 대신할 법적 규범을 정비하고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각국 경찰법제와 사회법제의 변화를 추적해보면 예외 없이 법치국가의 위기 (=경찰권한, 경찰의 집행력을 확대·강화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새로운 형태의 경찰국가의 득세)를 확인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냉혹한 시장논리와 빈곤의 증대, 공동체의 파괴 때문에 우리 사회는 점점 위험해지고 있다. 즉, 치안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CCTV와 같은 감시 권력의 확대를 꾀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치안 위기의 사회 구조적 원인과 해법을 외면한 결과이다. 아니, 때로는 그 구조적 문제를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목숨을 앗아가는 범죄가 횡행하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개인은 불시에 나타날지 모르는 낯선 사람을 매일매일 경계해야 하는 처지이다.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낯선 사람을 경계하도록 하는 풍토는 ‘외국인 근로자’와 같은 ‘타자’의 범죄에 특별히 주목한다.

이때 CCTV는 공포스럽고 혐오스런 타인을 주시하여 나의 안전을 지켜주는 고마운 국가권력의 화신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으로 하나둘씩 늘어간 CCTV는, 결국 경찰력의 강화로 귀결될 것이다. 신자유주의적인 경찰국가가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경찰은 이렇게 강화된 권력을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민중을 감시하고 탄압하는 데 마음껏 휘두른다. 이번 광우병 괴담 수사에서 볼 수 있었듯이.

필요한 것은 경찰력의 강화가 아니라 경찰이 불필요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 아니겠는가. 사회적 약자가 혼자 다녀도 안전한 사회, 모두가 케어하는 사회. 경찰이 아닌 공동체가 힘을 발휘하는 사회. 그러려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몹쓸 체제에 대해서 반드시 성찰해 보아야 한다.

현실 정책적인 관점에서도 CCTV 선호는 큰 문제가 있다. 전자 장비의 객관성, 무결성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그 이외의 대안을 모두 배제해 버린다는 데 있다. 지하철 객차마다 2대씩 CCTV를 도배하는 것보다는, 지하철 1인 탑승이나 무인화를 재고하는 것이 안전하며, CCTV만 남겨놓고 보안인력이 철수하는 것보다는 사람이 순찰을 하는 것이 문화유산을 더욱 안전하게 지키는 길이다. 특히 CCTV와 같은 대량의 개인정보 수집장치는 그 정보를 다른 목적으로 전용하고 유출하고 조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감시는 복종을 원한다

무엇보다, ‘감시’가 ‘권력’이 되는 사회는 끔찍하다. 감시는 단지 쳐다보는 것이 아니다. 감시는 조금 기분이 나쁘지만 참아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감시는, 궁극적으로 감시당하는 사람의 행동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행위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텔레스크린도, 벤담이 설계한 <원형 감옥>도 감시 대상을 통제하기 위한 장치들이었다. 빅브라더가 원하는 충청심을 가지도록, 간수가 원하는 태도를 보이도록.

CCTV를 설치한 사람들의 마음에 흡족하도록, 모두 복종을 하는 사회. 과연 인권이 있고 민주주의가 있을까?

 

2008-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