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다. 세계 에이즈의 날은 1988년 1월 런던에서 열린 세계보건장관회의에 참가한 148개국이 에이즈 예방을 위한 정보교류, 교육, 인권존중을 강조한 ‘런던선언’을 채택하면서 제정되었다. 매년 12월 1일이 되면 전세계에서는 에이즈 예방과 에이즈 감염인들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HIV/AIDS 감염인이 처해있는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1회성 기념행사만 진행해왔다. 에이즈에 대한 왜곡된 정보와 공포를 조성하며 감염인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차별을 조장해왔던 정부가 에이즈의 날을 기념할 자격이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2006년 12월 1일 HIV/AIDS 감염인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여 12월 1일을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로 선포하였다. 단 하루 형식적인 기념에만 그치는 에이즈의 날이 아닌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낙인과 차별로 고통받는 감염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2008년 3회를 맞이하는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 여전히 감염인들을 둘러싼 현실은 녹녹치 않다. 세계적으로 에이즈가 발견된 지 27년 한국은 23년이 되었지만 감염인의 처지는 별반 차이가 없다.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가족들에게조차 외면당하고 직장과 사회로부터 차별받고 있다. 단지 에이즈라는 질병에 걸렸을 뿐인데 우리사회에서 감염인들은 죄인같은 취급을 받고, 숨어서 지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은 질병으로 인한 고통과 사회적 낙인과 차별 때문에 이중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 건강권마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한때 죽음과 공포의 상징이었던 에이즈는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제때 꾸준히 치료받으면 일상생활을 충분히 영위할 수 있는 만성질환처럼 되었다. 그러나 감염인들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가야할 길이 여전히 멀다. 감염인들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치료제가 제때 충분히 공급되고 있지 못하다. 현재 한국에서 시판허가 된 에이즈 치료제 21가지 중 실제로 보험적용되고 있는 품목은 13가지 뿐이다. 더군다나 2000년 이후에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에이즈 치료제 중 한국에 보험적용되어 공급되고 있는 것은 2가지 치료제 뿐이다. 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에게 그 약을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오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푸제온의 사례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은 2004년 11월 연간 1800만원의 비용으로 건강보험에 등재되었다. 그러나 푸제온을 판매하는 다국적 제약회사 로슈는 푸제온 약값이 싸다는 이유로 건강보험이 등재된지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약을 판매하고 있지 않다. 푸제온이 필요한 환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약회사는 자신들이 원하는 약값이 아니면 약을 판매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고, 정부는 약의 공급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고 있지 못하다. 특허라는 독점을 무기로 제약회사는 근거없이 비싼 약값을 주장하고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권을 막아버려도 한국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환자, 시민단체들이 TRIPS협정과 도하선언에서 허용하고 있는 강제실시를 복지부에 요구하였다. 그러나 복지부는 한국은 특허권을 최대한 존중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다며 정작 환자의 건강권은 내팽개치고 있다.
정부의 책임회피는 이뿐만이 아니다. HIV/AIDS 감염인들의 진료비 지원은 어떠한가? 에이즈관련 치료비용이 급격이 증가하고 있고, 2000년부터 2008년 사이 10배 이상 증가했다. 감염인수의 증가와 신약을 더욱 확보해야 하는 상황은 앞으로 진료비 증가는 더욱 확대될 것을 예고한다. 정부는 에이즈 예방과 관리를 위해 에이즈 환자의 건강보험 본인부담 진료비를 지원해오고 있다. 그러나 이 진료비 지원이 매년 예산부족으로 인하여 제대로 지원되고 있지 못하다. 환급방식으로 지원되는 제도로 인해 환자들은 많게는 몇 백만원씩 진료비환급을 받지 못해 생활고를 겪고 있으며 진료비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을 것인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진료비증가로 인해 생계가 어려워 빈곤층으로 전락하여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는 처지에 놓여있는 환자들도 있다.
지속가능한 에이즈 치료를 위해서는 충분한 치료제 공급과 지원이 절실하다. 총진료비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에이즈 약값에 대해 정부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공급거부를 무기로 자신들의 원하는 약값을 챙기는 제약회사를 통제할 수 있도록 강제실시를 통해 치료제의 안정적 공급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환자들에 대한 진료비지원확대를 통해 감염인들이 제때 충분히 진료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올해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이하여 HIV/AIDS 감염인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우리는 감염인들의 치료접근권 확보, 건강권 확보를 위해 1201명의 레드리본 인권선언을 조직하였다. 1201명의 인권선언 참가자들은 단 하루 기념하기 위한 세계 에이즈의 날이 아닌 감염인들이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건강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감염인 인권의 날이 되기를 바란다.
2008년 12월 1일
제3회 HIV/AIDS감염인 인권주간 준비위원회
2008-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