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정치적 목적으로 ‘사이버 모욕죄’ 도입 안된다

By 2008/11/01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장여경

 

정치적 목적으로 ‘사이버 모욕죄’ 도입 안된다

 

– 한나라당의 ‘사이버 모욕죄’ 발의에 부쳐

 

 

 

사이버 모욕죄의 골격이 드디어 드러났다. 31일 한나라당은 사이버 모욕죄를 담은 법률 개정안 두개를 한꺼번에 발의하였다. 지난 7월 22일 김경한 법무부장관이 국무회의에서 사이버 모욕죄 신설을 거론한 지 석달 남짓 만이다.

 

 

 

우선 장윤석 한나라당 제1정조위원장이 사이버 공간에서의 명예훼손 및 모욕 행위에 대해 가중 처벌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이버 상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기존보다 무거운 형량인 9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다른 사람을 모욕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토록 하였다. 사이버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는 피해자의 고소 없이 수사와 처벌이 가능한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되었다. 그뿐 아니다. 같은 날 나경원 한나라당 제6정조위원장은 사이버 모욕죄 신설을 골자로 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인터넷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람을 모욕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였다. 반의사불벌죄로 도입하는 것은 같다.

 

 

 

한 정당에서 같은 죄를 신설하는 서로 다른 법률을 같은 날 발의했다는 것은 사이버 모욕죄를 반드시 도입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충분한 의견 수렴과 조율 없이 서둘러 도입한 흔적이 보인다.

 

 

 

정부여당에서 이토록 사이버 모욕죄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나라당은 사이버 모욕죄의 신설 이유로 인터넷 악플을 들고 있다. 그러나 악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형사처벌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통상 악플은 명예훼손을 말하는데 미국이나 유럽,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등 국제적으로는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이 줄고 있는 추세이다. 명예훼손이 자유로운 비판을 가로막고 국가기관에 의한 언론 탄압에 이용되는 상황에 주목하여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보다 민사적 해결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적 추세는 특히 인터넷의 등장 이후로 일반 시민들의 표현물 확산을 고려한 것임에 분명하다. 형사처벌로 겁을 주는 것으로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인터넷 문화를 성장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해온 데서 더 나아가 이를 확대하고 사이버 모욕죄라는 새로운 죄목을 도입하려는 것은 악플보다 더한 세계적 망신거리이다.

 

 

 

명예훼손이 객관적인 평판을 보호하는 데 비해 모욕죄는 주관적 체면을 보호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는 존재하지 않거나 사문화된 죄목이다. 하물며 사이버 모욕죄라니, 명백한 과잉입법이다. 이번 사이버 모욕죄 발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반의사불벌죄’라는 데 있다. 광우병 괴담 수사나 광고지면 불매운동이 그러했듯 수사당국이 인지하면 일단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신고 없이 수사기관이 인지하여 수사에 착수할 수 있는 ‘모욕’이란 일반인에 대한 모욕일 리가 없다. 그래서 수사권력의 정치적 남용과 경찰국가의 도래가 우려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광우병 괴담은 법원에 의해 무죄로 판결났지만 정치적 목적에 의한 수사는 게시당사자에게 심대한 고통을 끼쳤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에게는 글을 쓰지 말라는 엄포나 다름 없이 들리지 않았던가. 말 그대로 국민들을 ‘위축’시키고 자기검열하도록 하는 신종 검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이 부끄러워해야 할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는 진짜 이유를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안다는 데 있다. 사이버 모욕죄는 촛불시위로 놀란 정부가 인터넷 여론을 장악하기 위하여 다급하게 도입한 일련의 인터넷 통제책 가운데 하나이다. 일찌기 법무부 장관이 앞장서 사이버 모욕죄의 도입 의사를 밝혔으나 그 법률적 문제점에 대하여 여러 비판에 부딪쳐 왔고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련 부처에서마저 순조롭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여당 의원들이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다. 마침 최진실씨가 사망하는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자 이들은 파렴치하게도 이 사건을 계속 거론하며 사이버 모욕죄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다.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한다고 악플이 줄 것이라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국가적인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되었지만 ‘대 악플 효과’는 거의 없었는데도 그 확대를 계속 주장하는 것처럼 해괴한 논리이다. 합리적 토론이 실종되었으며 인터넷에 대한 마녀사냥과 여론몰이만이 남았다.

 

 

 

지금 우리의 인터넷 환경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죄목의 신설이 아니다.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공정하면서도 신속한 분쟁해결과 공정하면서도 신속한 재판이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데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매체와 문화에 걸맞는 혁신적 사법제도 개발이 필요하다. 그 틈새를 비집고 정부와 정치 검찰이 무엇이 인터넷에서 죄인지 자신들이 판단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곤란하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사이버 모욕죄 도입 시도, 즉각 중단하라!

 

2008년 11월 1일

 

진보네트워크센터

2008-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