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초 사회 심리학자인 어빙 고프만은 ‘극작(dramaturgical)법’이란 방법을 통해 현대인들이 어떻게 자아를 드러내고 상대와 사회적 관계망에 들어가는지를 잘 살핀 인물이다. 그는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무대행위가 이루어지는 ‘극장’의 비유를 든다. 무대 위의 행위자는 우리의 가시적 행위를, 시나리오는 우리의 감춰진 내면의 동기와 욕구를, 감독은 우리의 의식을 대신한다. 여기에서 자아의 재현은 극(劇) 작업과 동일시된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우리는 역할을 결정하고 그 역할에 따라 행동하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타자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자신의 정보를 드러낸다. 물론 자아와 타자들간에 형성된 관계와 상황은 사회적으로 통합된다.
해커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이런 이미지를 떠올릴 것 같습니다. 컴퓨터만 켜져 있는 어두컴컴한 방, 컴퓨터 주위에 널려있는 쓰레기들, 하얗게 뜬 얼굴에 뚱뚱하거나 완전 마른 몸. 물론 실제로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겠죠. 해킹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해킹이라고 하면 다른 서버나 사용자의 컴퓨터에 침입하여 온갖 정보들을 빼내고 추적되기 전에 무사히 빠져나가는 이미지일텐데요. 남의 집에 문을 따고 들어가 윈도 암호를 찍어서 맞추고 디스켓으로 정보를 빼 온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해킹입니다. 어쩌면 가장 확실한 방법일지도 모르겠군요. 🙂
‘전쟁없는 세상’은 2003년 5월 15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에 결성됐다. 2000년대 들어 활성화된 반전운동과 병역거부 운동의 영향으로 한국에서도 이전 기독교 평화주의와는 다르게 다양한 평화의 신념을 이유로 집총과 군사훈련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와와 지지자들이 양심을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비공개 모임을 통해 서로 고민을 주고받다가 결국 ‘전쟁없는 세상’이라는 공식적인 모임을 결성하게 되었다. 현재 전쟁없는 세상의 활동가들은 수감되었거나 재판 또는 수사 진행 중인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하는 활동과 함께 평화의 신념을 알리기 위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네명의 책임활동가가 사무실 운영의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많은 자원활동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전쟁없는 세상은 ‘길게 보고 천천히 한걸음씩 나아가며 가랑비처럼 사람들 가슴속에 평화가 스며드는 그런 운동’을 지향한다.
난 가끔 오빠가 한 명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버지의 타계로 이른 나이에 가장이 된 우리 오빠는 그래서인지 오빠보다는 아버지같은 존재이다. 친구같은 오빠, 허물없이 생각을 주고 받으면서도 한발 앞선 자취로 내 갈 길을 조금은 가늠하게 해주는 길동무같은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간장오타맨의 블로그는 내게는 그런 오빠같은 공간이다.
이은희(이하 이) : 지난 4월 법인 설립 총회를 열었다. 기존에 한국음원제작자협회가 있는데 따로 젊은 제작자 모임을 결성한 배경은 무엇인가? 장석우(이하 장) : 한국음원제작자협회와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 음제협은 정부에서 방송보상금에 대한 징수단체로 허가를 내준 단체이다. 우리는 음제협과 같은 시스템이 아니고 오히려 한국연예제작자협회(아래 연제협)와 비슷하다. 제작자 모임이며 친목단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결성동기도 연제협에 대응되는 모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어서이다. 연제협은 매니저나 제작자 출신이 모여있는 곳인데 이 단체에서 현재 제작자에게 이득이 되는 정책을 못하고 있다. 제작자들 사이에서는 몇 년간 연제협이 뜨거운 감자였는데, 작년 2월에 개혁을 약속하고 새 운영진으로 출범했다. 하지만 새 운영진이 현회장을 비롯해서 40대 이사진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미 2년 정도 끌고 왔는데 실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
학교폭력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올해 초, 경찰을 중심으로 학교 폭력을 근절하겠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학교 폭력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말은 어느 곳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좁은 의미의 물리적 폭력에서부터, 넓은 의미의 정신적 폭력까지, 학교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폭력적 구조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며, 그 폭력성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괴물’에게는 커다란 날개가 있어 세계 어느 곳이라도 갈 수 있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물건을 만들기 위해 일당을 적게 줘도 되는 사람들을 찾아 국경을 넘나든다. 싸게 만든 물건을 팔아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또 국경을 넘나든다. 지구에 있는 모든 것을 이윤축적의 수단으로 보는 이 괴물의 이름은 ‘신자유주의’. 이윤을 찾아 국경을 넘어 날아 디니기,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가로막는 것들은 날카로운 발톱과 예리한 이빨로 협박하고 화염을 토해 태워버리기도 하는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증식운동과 자본의 경쟁논리에 사회전체를 종속시키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은 괴물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대학공부를 하고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시각장애인들이 대학공부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학공부는 교과서 이외에도 다양한 자료를 수시로 찾아보아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시각장애인 대학생들은 현재 교과서조차도 제대로 접근할 수 없는 처지이다. 지난 8월 12일 방송통신대학 시각장애인동호회 소속 20여명이 서울 동숭동 방송통신대학 정문 앞에서 교과서 접근성과 관련한 시위를 벌였다. ‘학습보장’이라는 머리띠를 두르고 시각장애인들이 직접 시위에 나선 이유는 교과서를 쉽게 읽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춰 달라는 요구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얼마 전에 한 여성단체에서 주최하는 활동가 대상 강좌에 강의를 하러 간 적이 있었다.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라는 크고 무거운 제목으로 해야 했던 강의라 등골이 휘었던 데다가, 수강생들 대다수가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는 분들이었기에 부담감은 더욱 컸다. 어찌저찌 강의를 마치고 조별토론결과를 발표하고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 그런데 한 조에서 발표된 이야기 중에 몹시 불편한 이야기가 나왔다.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는 건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여성학 하시는 분들 중에 독신이 많은데, 사실 여성들의 경험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분의 발표였다. 익숙한 이야기, 그러나 들을 때마다 열 받는 이야기다.
인간의 존엄으로부터 나오는 기본적 인권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간섭하지마”로 요약되는 자유권적 기본권과 “이것 좀 해줘”로 요약되는 사회권. 근대의 기본권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자유권적 기본권은 원래는 부르주아가 주장하던 권리이다. 국가는 시민영역을 침범하지 말아야 하고 만약 시민사회를 간섭하려면 시민사회가 선거로 선출한 대표들이 만든 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부르주아가 만든 근대 헌법의 요체이다.
다수결은 종종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편리하고 효율적인 의사 결정 방법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차선에 불과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수의 의견은 자칫 폭력이 되기 쉽다. 그 극단이 마녀사냥이다. 이른바 인터넷 여론 재판도 별로 다르지 않다. 지식 검색의 맹점도 이와 닮았다. 진실과 상관없이 다수의 의견이 정답이 되는 경우가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가운데는 잘못 알고 있는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안녕하십니까? 휴대폰 번호안내서비스입니다”, “여의도동 아무개씨 휴대폰 번호 부탁 합니다”, “문의하신 번호는 010-XXX-XXXX입니다” 이런 통화가 내년 4월1일부터 실제로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2003년 12월에 통과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개정안은 “전기통신사업자는 이용자의 전기통신번호를 이용자의 동의를 얻어 일반에게 음성ㆍ책자ㆍ인터넷 등으로 안내하는 서비스(이하 ‘번호안내서비스’라 한다)를 제공하여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당초 번호안내서비스를 의무화한 이 조항이 신설된 이유는 “이동전화의 경우에는 그 전화번호에 대한 안내가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있고 유선전화의 경우에도 인터넷 등을 이용하여 전화번호를 안내받고자 하는 새로운 서비스 수요를 부응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전화번호 안내서비스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번호제공 이용자를 보호하고 서비스의 질 향상을 통해 국민의 편의를 증진하려는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삼성의 불법 정치자금 모의에 대한 안기부의 불법도청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이른바 ‘X-파일’을 둘러싼 논란으로 한국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과거 권력기관의 불법도청이 사실로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거대 경제권력과 정치권력, 그리고 언론의 유착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구조화된 부패 고리의 뇌관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도청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후, ‘언론의 자유 및 알권리’ 대 ‘프라이버시권’의 구도로 논쟁이 전개되었다.
지난달 17일,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변희재 포털피해자를 위한 모임(포피모) 대표 등 10여명은 기자회견을 갖고, 언론사와 포털사이트에서 제공 중인 인물정보 서비스에 대해 집단 소송을 제기하기로 발표했다. 자신의 동의없이 자신의 개인정보를 유료로 판매했다는 것이다.
통신 공룡의 방송 진출의 대표적인 사례는 아이피디브이(IPTV)가 될 것이다. 아이피디브이는 쉽게 말해서 초고속 인터넷을 통해 방송 콘텐츠를 제공받는 서비스이다. 아직 아이피디브이는 상용화되지 않고 있다. 다만, 케이티(KT)는 그 전단계로 피시(PC)기반의 주문형비디오서비스(VOD)인 ‘케이티캐스트’(KTCAST)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이피디브이의 상용화가 지연되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는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의 규제 관할 다툼 때문이다. 정보통신부는 콘텐츠가 통신망을 통해 전송되기 때문에 ’부가통신서비스‘로 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반면 방송위원회는 수용자 입장에서는 아이피디브이 역시 케이블TV와 같은 방송의 하나일 뿐이라는 견해다.
정부는 문화콘텐츠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인식하고 다양한 지원 정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를 포함해서 사회 전반적으로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산업적’ 측면에 치우쳐있다는 것이다. 델 컴퓨터의 마이클 델 회장이 “(컨버젼스의) 진짜 중심은 소비자이며, 이들에게 진정한 가치를 제공하는 기업만이 살아 남을 것이다”라고 했다지만, 이 같은 산업적 관점에서는 수용자가 단지 구매자, 혹은 소비자로 위치지워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콘텐츠의 부족 문제와 함께, 뉴미디어에서 콘텐츠의 공공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변화를 요구한다. 그것이 비록 우리가 개입할 수 없었던, 철저히 주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방송·통신융합(아래 방통융합) 환경은 어쨌거나 우리에게 현재진행형이다. 과거 일방향적이던 방송이 그 닫힌 소통을 넘어 쌍방적 환경으로 변화되는 것을 우리는 이미 통신을 통해 경험한 바 있다. 최근에는 개별영역에서 존재하던 방송과 통신이 점차 그 경계를 흐리면서 하나의 매체로 통합되는 모습을 목격했다.
임정애(이하 임): 우선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어디에 살고 계신가요? 진보네(이하 진): 진보불로거들의 마음 한구석에 -_-;; 살고 있어요. 요즘 진보불로거들이 마음 한 귀퉁이를 내주지 않아서 방황하고 있어요. ㅋㅋ. 임: 살만한가요, 그곳은? 진: 음 뭐 그럭저럭 살만해요. 네트는 광대하니까요…-_-.. 블로그를 통한 치유 임: 그러니까 처음 블로그를 만들어 야겠다는 계획은 언제 시작되었나요? 진: 음… 진보넷은 여태까지 호스팅이나 커뮤니티 등 사회단체 네트워크 중심의 사업을 해왔잖아요. 근데 점점 사회운동진영의 네트워크가 전체 사회에서 고립되어 가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떤 계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시작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보불로그를 만들게 되었어요.
열린우리당 주관으로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민·당·정 간담회가 8월 2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패널로는 서강대 왕상한 교수, 숭실대 강경근 교수, 진보네트워크센터 오병일 사무국장, 포털피해자모임 변희재 대표, 미디어다음의 최소영 본부장이 참여했으며, 인터넷 실명제를 둘러싼 첨예한 쟁점 사안을 두고 토론을 하였다. 서혜석의원과 주무부서인 정보통신부 강중협 정보기반보호심의관도 배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