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mundial – 참여적 인터넷 거버넌스를 위한 실험!
작성자 : 오병일
작성일 : 2014.5.9
지난 2014년 4월 23일-24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는 ‘인터넷 거버넌스의 미래에 대한 세계 멀티스테이크홀더 회의’, 일명 넷문디알(NETmundial – 넷세계라는 의미) 회의가 열렸습니다.
회의의 제목에 포함되어 있는 ‘멀티스테이크홀더(multi-stakeholder)’ 모델은 인터넷의 운영을 위한 규칙이나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정부, 시민사회, 기업, 기술 및 학술 커뮤니티, 그리고 개인 이용자들이 동등하고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제적인 정책을 논의하는 기존의 국제회의가 주로 정부간 회의였던 것과 다른 방식이죠. 이번 회의에는 97개국의, 정부, 시민사회, 기업 등 다양한 영역에서 1300명 정도가 참석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정부 관계자, 학계, 시민사회에서 10여명이 참석했는데, 시민사회에서는 진보넷의 오병일 활동가와 경실련 김보라미 변호사가 참여했습니다.
1. 배경
이번 넷문디알 회의의 배경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도메인 네임, IP 주소 등 인터넷 주소자원을 관리하고 있는 ‘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 및 루트서버 관리 기능인 IANA 기능에 대해 미국 정부만이 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오래된 불만이 있었고, 러시아, 중국, 인도 등의 국가들은 인터넷의 정책 및 감독 기능을 ‘정부간 기구’에서 맡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반면, 인터넷이 정부간 기구에 의해 통제될 것에 대한 우려와 인터넷 공공정책은 정부만이 아니라, 시민사회, 기업, 기술 커뮤니티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기반으로 민주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긴장과 갈등이 지난 2012년 12월, 전기통신연합 ITU가 주최한 국제전기통신세계회의(WCIT-12)를 계기로 표출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2013년 5월, 미국의 NSA 등 주요 국가의 정보기관들이 인터넷 상의 통신을 대량감시하고 있다는 것이 에드워드 스노든에 의해 폭로된 것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특히, 미국 NSA가 브라질 대통령의 이메일과 통화 기록 등을 열람하고 브라질 국영 에너지회사의 네트워크를 감시한 것이 드러나면서,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예정되었던 미국 방문을 전격 취소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9월 24일 UN 총회에서는 미국의 대량 감시행위를 직설적으로 비판하며, "인터넷에서의 데이터 보호를 보장할 수 있도록 인터넷 거버넌스를 위한 ‘시민의, 다자간 프레임워크(civilian multilateral framework)’을 수립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2013년 10월 7일에는 인터넷소사이어티(ISOC), IETF, W3C 및 각 지역의 IP 주소 배분을 맡고 있는 RIR 등 인터넷 기술 커뮤니티 대표들이 모여 몬테비데오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이 선언에서 이들은 미국의 감시행위를 비판하는 한편,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방향으로 ‘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 및 IANA 기능을 국제화(globalization)’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즉, 미국 정부만의 일방적인 ICANN 감독 기능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어 10월 9일, ICANN CEO 파디 세하디가 브라질 대통령을 만나 2014년 4월에 인터넷 거버넌스를 논의하는 국제회의를 제안하였고, 브라질 대통령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넷문디알 회의가 준비되기 시작했습니다.
2. 경과
조직체계
이후 넷문디알 회의 준비를 위한 공식적인 조직체계가 꾸려졌습니다.
행사의 조직체계는 행사의 실무적인 준비를 맡는 행사준비위원회(Logistics and Organization Committee, LOC), 회의 의제, 형식 등 주요 내용을 결정하는 멀티스테이크홀더 집행위원회(Executive Multi-stakeholder Committee, EMC), 전반적인 감독과 참여 촉진 역할을 맡는 고위급 위원회(High-Level Multi-stakeholder Committee, HLMC) 및 정부자문위원회(Council of Governmental Advisors)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EMC와 HLMC는 정부를 포함하여 다양한 이해당사자 그룹의 대표들로 구성되었는데, HLMC에 참여하는 12개 정부대표 중의 하나로 한국 정부가 참여하였고, KAIST 이동만 교수가 학계 대표로 선출되어 EMC에 참여하였습니다. 정부 외 이해당사자들의 대표는 1Net 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선출되었습니다.
1Net
인터넷 관련 문제에 대해 다양한 이해당사자간의 열린 대화와 협력을 촉진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2013년 10월 발리에서 개최된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IGF) 직후에, 1Net 이라는 틀이 기술 커뮤니티의 주도 하에 제안되었습니다. 발리 IGF 직후에 넷문디알 회의를 매개로 시민사회, 기업, 기술 커뮤니티 등 비 정부 이해당사자들이 협의틀을 구성했고, 곧이어 공개적인 1Net 메일링리스트가 만들어졌습니다. 1Net은 자체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조직체는 아니며, 향후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도 유동적인 상태입니다. 다만, 다양한 이해당사자 사이의 대화와 협력을 촉진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넷문디알 회의와 관련된 정보들이 공유되고 주요 의제들이 토론되는 공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공식적으로 넷문디알은 1Net과 브라질의 멀티스테이크홀더 기구인 CGI.BR의 공동주최 형식으로 개최되었습니다. 그리고, 1Net은 브라질 주최측이 전 세계의 비정부 이해당사자와 소통하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1Net을 통해 HLMC와 EMC에 참여할 비정부 이해당사자 그룹의 대표들을 선정했고, 넷문디알 진행 상황도 1Net을 통해 공유되었습니다. 1Net 내에서는 시민사회, 기업, 학계, 기술 커뮤니티 등 각 이해당사자 그룹별로 나름의 방식으로 1Net에서 각 이해당사자 그룹을 대표할 운영진들과 넷문디알의 HLMC, EMC에 참여할 대표자들을 선출하였는데, 선정 과정에서 대표성을 둘러싸고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유권자가 고정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각 이해당사자 대표 선출 과정의 민주성, 대표성, 정당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의견수렴 과정
넷문디알 회의의 목적은 다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인터넷 거버넌스의 원칙, 둘째는 미래 인터넷 거버넌스의 로드맵 마련.
이를 위해 넷문디알은 3월 7일까지 원칙과 로드맵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제출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총 188개의 의견서가 제출되었는데, 시민사회가 31%로 가장 많았고, 기업 23%, 정부기관 15%, 학계 11%, 기술 커뮤니티 8% 였습니다. (http://netmundial.br/blog/2014/03/25/received-content-contributions-will-sustain-discussions-on-internet-governance-at-netmundial/) 한국에서는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 의견서 2개를 제출했습니다. 넷문디알 집행위원회(EMC)는 이를 토대로 선언문 초안을 만들어 공개하고, 선언문 각 절에 대해 온라인 의견수렴을 했습니다. 공식 행사가 시작되기 전 1주일 정도 온라인을 통해 1370개 이상의 의견이 제시되고,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온라인 의견을 포함한 보고서)
미국, IANA 기능 이양 발표
한편, 지난 3월 14일, 미국 국가통신정보청(NTIA)은 전 세계가 깜짝놀랄 발표를 했습니다. IANA 기능에 대한 자신의 감독권한, 즉 루트존(Root Zone)에 대한 감독권한을 전 세계 공동체에 이양(IANA function transition)하겠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루트 서버 관리는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에서 맡고 있는데, ICANN은 미국 NTIA와의 계약을 통해 이를 수행합니다. 이 때문에 인터넷의 핵심 자원에 대한 감독 권한이 한 국가 정부에 주어져 있는 것에 대해서 다른 나라 정부나 시민사회의 비판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IANA 기능의 국제화 문제는 이번 넷문디알 회의에서도 핵심적인 이슈였으며, 이와 관련한 많은 의견이 제출된 상황이었습니다. 전 세계 인터넷 커뮤니티는 미국 NTIA의 발표를 환영했습니다. NTIA의 이번 발표는 넷문디알 회의에서 집중적인 비판을 받기 전에 선도적으로 발표를 하고, 이양의 원칙과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추후 IANA 기능 이양 과정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넷문디알 차원에서는 시작하기도 전에 변화의 계기가 마련됨으로써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이기도 하지만, 회의 자체는 약간 김이 빠지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3. 넷문디알 회의 개막
드디어 4월 23일, 넷문디알 회의가 개막하였습니다. 개막식에는 브라질 대통령 지우마 루세프를 비롯하여, ICANN CEO인 파디 세하디, 월드와이드웹 창시자인 팀버너스리, 구글 부사장인 빈트 서프 등이 참석했습니다. 시민사회 대표로는 월드와이드웹 재단의 넨나가 참석하여 대표 연설을 했는데, 다양한 시민사회의 의견을 재치있고 균형있게 담아내면서도 열정적으로 표현하여 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빈트서프는 연설문 뒷부분이 출력이 되지 않아 연설 중간에 중단하여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지우마 루세프 대통령은 연설 시작 전에 전날 의회를 통과한 인터넷권리법안(Marco Civil)에 서명하는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이 법안은 브라질의 멀티스테이크홀더 정책자문기구인 CGI.BR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의견수렴을 거쳐 마련한 법안으로 수년 동안의 논란 끝에 통과된 것인데, 넷문디알 회의에서 이를 서명함으로써 브라질의 멀티스테이크홀더 모델의 성과를 전 세계에 알린 것입니다. 지우마 루세프의 개막식 연설 동안, 대량 감시를 비판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각 정부 대표들의 지루한 연설 세션이 끝난 후, 23일 오후와 24일 오전에 걸쳐, 원칙과 로드맵에 대한 토론 세션이 두 차례씩 번갈아 열렸습니다. 행사장에 정부, 시민사회, 기업, 학계 및 기술커뮤니티 등 4개 이해당사자 그룹이 발언할 수 있는 마이크 4개가 설치되었습니다. 4개 이해당사자 그룹의 2분 발표에 이어, 인터넷 및 원격 허브의 의견을 청취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넷문디알은 23개국에 33개국의 원격 허브를 설치하였는데, 원격 허브는 각 지역에 공간을 마련하여 원격으로 참여하는 방식입니다. 동영상으로 실시간으로 연결된 원격 허브에서 의견을 얘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행사 기간 제출된 의견은 대부분 온라인에서 제출된 의견의 반복이었습니다. 각 이해당사자간에 서로의 의견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기 보다는 각 이해당사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제 및 입장을 발표하는데 머물렀습니다. 물론 제한된 시간 동안 여러 의제에 대해 심층적인 토론이 이루어지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지만, 오프라인 토론의 진행 방식에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원칙과 로드맵, 각 세션 후 넷문디알 집행위원회(EMC)는 최종 선언문 수정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 사이 공식 회의장에서는 IANA 기능 이양 및 넷문디알 이후 전망에 대한 공개 세션이 진행되었습니다.
선언문 문구 작성 회의는 다른 참석자에게도 (발언을 할 수는 없지만) 공개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체 세션이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된 반면, 문구 작성 회의는 참석자에게 참관은 허용되었지만, 인터넷으로 중계되지는 않은 것은 문제로 지적되었습니다. 집행위원회의 최종 선언문 작성 후 고위급위원회(HLMC)의 승인 과정에서 약간의 진통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 정부의 인터넷 공공정책에 대한 주권과 정부간 기구를 통한 논의를 주장해온 인도 정부가 최종 선언문에 합의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오랜 논의 끝에 이 선언문은 각 국에 의무를 부과하는 구속력이 없으며, 참여자 사이의 합의(rough consensus)일 뿐이라고 설득하여 결국 통과되었습니다. 최종 선언문 작성이 지연된 덕분에 원래 5시로 예정된 폐막식은 저녁 8시가 넘어서야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최종 선언문(상파울로 넷문디알 멀티스테이크홀더 선언문, NETmundial Multistakeholder Statement of Sao Paulo) 내용이 낭독되자 참석자들은 기립 박수를 하며 환호했습니다. 다만, 최종 선언문 발표 이후의 의견 진술에서, 러시아, 중국, 쿠바 정부대표는 이에 대한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특히, 러시아 대표가 자신들의 견해가 최종 선언문에 반영되지 않았음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습니다.
4. 최종선언문의 쟁점
공개적으로 수렴된 의견서에서부터, 선언문 초안에 대한 온라인 의견 수렴, 그리고 회의장에서의 의견 발표에 이르기까지 몇 가지 쟁점에서 각 이해당사자별 이견이 표출되었습니다.
정부중심 vs 멀티스테이크홀더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정부를 비롯한 이해당사자의 역할 규정’ 문제였습니다. 이와 관련된 기존의 문서는 2005년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WSIS)의 결과 문서인 튀니스 어젠더(Tunis Agenda) 입니다. 튀니스 어젠더는 인터넷 거버넌스에 모든 이해당사자가 참여해야 함을 언급하면서도, 35항에서 각 이해당사자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시민사회(Civil Society)’는 인터넷 문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특히 ‘커뮤니티 차원’에서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 관련 공공정책의 정책 권한은 국가의 주권’이라고 규정하며, 국제적인 공공정책에 있어서도 권리와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튀니스 어젠더의 규정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은 처음부터 비판해왔습니다. 이해당사자를 튀니스 어젠더의 규정대로, 정부, 기업, 시민사회, 국제기구, 국가간기구 등으로 고정적으로 규정할 수도 없고, 시민사회의 역할이 ‘커뮤니티 차원’에 한정된 것도 아니며, 공공정책에 대한 권한을 국가의 주권으로 규정한 것은 공공정책에 대한 결정 단위를 ‘정부간 기구’로 한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 역시 이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넷문디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표명한 바 있습니다.) 반면, 중국, 러시아, 인도 등 주로 개발도상국 정부들은 튀니스 어젠더를 근거로 (다양한 이해당사자와의 협의를 인정하면서도) 정부간 기구가 중심이 된 인터넷 거버넌스 기구의 필요성을 주장해왔습니다. 또한, 정부간에는 ‘동등하게(eqaul footing)’ 참여해야 함을 주장해왔는데, 이는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 및 IANA 기능에 대한 미국만의 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는 현행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물론 시민사회나 학계, 기술 커뮤니티 역시 현행 체제의 문제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ICANN이나 IANA 기능에 대한 감독을 정부간 기구에 두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최종 선언문 초안은 인터넷 거버넌스가 ‘멀티스테이크홀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인도 정부 등은 ‘멀티스테이크홀더’라는 문구와 함께, ‘대의적인(representative), 민주적인(democratic), 다자간(multilateral)’이라는 문구가 포함되어야 함을, 그리고 튀니스 어젠더가 중요한 참조문서로 포함되어야 함을 주장했습니다. 반면, 시민사회는 기존 튀니스 어젠더의 규정을 잘못된 것이며, 현실에 맞게 수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결국 최종 선언문은 ‘민주적인, 멀티스테이크홀더 절차(democratic, multistakeholder processes)’, ‘이해당사자 각각의 역할과 책임은 논의되고 있는 이슈에 따라 유연하게 해석되어야 한다.(The respective roles and responsibilities of stakeholders should be interpreted in a flexible manner with reference to the issue under discussion.)’,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동등한 참여(Processes, including decision making, should be bottom-up, enabling the full involvement of all stakeholders, in a way that does not disadvantage any category of stakeholder.), ‘서로 다른 이슈에서 서로 다른 이해당사자의 서로 다른 역할(recognizing the different roles played by different stakeholders in different issues.)’이라는 문구로 표현되었습니다. 이는 시민사회의 입장이 상당부분 반영된 것으로 평가합니다. 다만, 튀니스 어젠더에 대한 언급이 포함된 것은 러시아, 인도 등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지만, 이 역시 ‘합의’에 기반해야 함이 명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근본적인 입장의 차이는 당분간 좁혀지기 힘들 것 같습니다. 넷문디알 회의와 별개로 UN 산하의 개발을위한과학기술위원회(CSTD)는 워킹그룹(WGEC)을 구성하여 튀니스 어젠더 ‘강화된 협력(enhanced cooperation)’의 구현방안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는데, 이 워킹그룹의 논의에서도 이러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권과 감시
넷문디알 최종 선언문에 인터넷 거버넌스의 원칙으로 ‘인권’이 핵심적인 원칙으로 선언된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세부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기존 인권 선언에서 별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특히, 정부 대표들은 정부가 서명한 기존의 선언에서 더 나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넷문디알 회의 개최의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감시’ 문제는 이번 회의의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였습니다. 시민사회는 각 국 정부기관에 의해 행해지는 대량감시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정부의 기존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원칙이 포함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 등의 반대 속에 감시에 대한 비판 문구는 상당히 완화되어 포함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arbitrary surveillance’라는 문구는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정부는 자신들의 감시 행위가 자의적(arbitrary)’인 것이 아니라 법에 근거해서 집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정보의 수집과 처리가 국제 인권법에 근거해야 한다는 문구는 포함되었지만, 감시 행위가 ‘필요하고 비례적인(necessary and proportionate)’ 정도에 한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요구는 포함되지 못했고, 이와 관련된 추가적인 대화가 필요하다는 정도로 타협되었습니다.
망중립성
망중립성 이슈도 가장 뜨거운 이슈 중의 하나였습니다. 표현의 자유 등 다른 인권 원칙들은 세계인권선언에 포함되어 있지만, 망중립성 이슈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슈이기 때문입니다. 시민사회는 인터넷 개방성, 혁신, 표현의 자유 등을 보장하기 위해 망중립성 원칙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들은 이를 포함하는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역시 현재 각 국가 차원에서 논쟁이 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성명에 포함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물론 선언문 내에 망중립성 의미를 내포하는 문구-합법적 콘텐츠 여부와 무관하게 데이터 패킷과 정보들이 단대단에서 자유롭게 흐르는 것을 허용(allows data packets/information to flow freely end-to-end regardless of the lawful content)-가 포함되기는 했지만, 망중립성 문구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넷문디알 이후의 과제로 돌린다는 언급이 명시되었습니다.
그 외 쟁점들
그 외에 아쉬운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익명표현의 자유 등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문구가 포함되지 않은 점
– 지적재산권/저작권 보호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헐리우드 저작권자들의 요구에 따라, (명시적으로 ‘저작권 보호’ 문구가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타협적인 문구로 ‘정보의 자유 및 정보접근권’ 항목에 ‘법에 따른 저자와 창작자의 권리를 준수하는(consistent with the rights of authors and creators as established in law)’이라는 문구가 포함된 점
– 중간매개자의 보호(PROTECTION OF INTERMEDIARIES-중간 매개자란 포털 등 이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사업자를 의미함) 항목이 포함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 조항이 이용자 표현의 자유 보호의 맥락 속에서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음 점.
– 인터넷의 군사목적의 사용(militarisation)에 반대하고 평화적인 이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포함되지 않음 점.
이와 같은 아쉬운 점이 있는 반면에, ‘인권’이 인터넷 거버넌스의 핵심적 원칙으로 선언된 점, 인터넷을 ‘공익에 근거해서 관리되어야 할 지구적 자원(global resource which should be managed in the public interest)’이라고 규정한 점(물론 시민사회는 ‘global commons’와 같은 좀 더 강한 표현을 주장) 등은 나름의 진전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로드맵과 IGF
인터넷 거버넌스 원칙과 관련해서는 많은 쟁점과 토론이 있었으나, 미래 인터넷 거버넌스를 위한 로드맵에 대해서는 별로 구체화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넷문디알 회의 전에 미국 정부의 IANA 기능 이양과 관련된 입장과 로드맵이 발표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소자원 외의 공공정책과 관련해서는 인터넷 거버넌스의 대상과 방식 등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의 간극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넷문디알 회의에서도, 그리고 ‘강화된 협력’에 대한 UN CSTD의 워킹그룹에서도 이와 관련된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다만,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IGF)의 강화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즉, 현재까지는 IGF가 인터넷 관련 다양한 이슈에 대한 ‘토크쇼’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특정한 인터넷 공공 정책에 대해 뭔가 구체적인 결과물을 낼 수 있도록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실제 이를 구현할 과제는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이 져야할 몫이고, UN이나 IGF 사무국,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의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멀티스테이크홀더 자문 그룹(MAG)’ 등이 이러한 과제를 실질적으로 수행하도록 시민사회는 다각도로 촉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5. 넷문디알 평가와 향후 과제
넷문디알 최종 선언문은 분명 시민사회 입장에서는 내용적으로 만족스럽지 않은 ‘타협’의 결과물입니다. 또한, 넷문디알이 특정 이슈(예를 들면, 감시)에 대한 심도깊은 토론을 통해 어떠한 결론을 이끌어내기에 적절한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넷문디알의 가장 큰 의미는 준비 과정에서부터 최종 선언문에 이르기까지, 정부 뿐만이 아니라 시민사회, 기업, 학계 및 기술 커뮤니티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동등하게 참여하였으며, 논의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었고,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공동의 합의(consensus) 입장을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 인터넷 관련 공공정책에 대한 선언문은 정부간 회의의 결과물이거나 시민사회의 독자적인 선언문이었습니다.
물론 멀티스테이크홀더 방식의 논의 구조가 그동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선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 자체가 대표적인 멀티스테이크홀더의 성공모델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고,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WSIS) 당시의 인터넷 거버넌스 워킹그룹(WGIG)이나 UN CSTD의 ‘강화된 협력 워킹그룹(WGEC)’ 역시 멀티스테이크홀더 모델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IGF의 ‘멀티스테이크홀더 자문그룹(MAG, Multi-stakeholder Advisory Group)’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MAG 멤버 선정의 불투명성은 비판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멀티스테이크홀더 방식으로 인터넷 관련 공공정책 원칙에 대한 선언을 합의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향후 로드맵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서로 다른 입장의 간극이 큰 상황이며, 당분간 이러한 간극이 해소될 전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멀티스테이크홀더 모델이 과연 무엇인지, 글로벌 인터넷 거버넌스에서 정부를 포함한 각 이해당사자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지, 인터넷 거버넌스의 주된 과제는 무엇인지 등 어쩌면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서도 참여자들마다 이해하는 방식이나 견해가 다릅니다. 이와 관련된 논의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강화된 협력 워킹그룹’에서의 논의와, 2014년 말 부산에서 개최되는 ITU 전권회의, 2015년 개최될 예정인 WSIS+10 회의 등을 통해 지속될 것입니다. 또한, 2015년 9월 30일까지 마무리되어야할 IANA 기능 이양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인지가 향후 논의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ICANN과 IANA에 대한 미국만의 감독권한이 그동안 인터넷 거버넌스를 둘러싼 논의에 질곡이 되었음을 고려할 때,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따라 논의의 지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글로벌 환경에서 국내적인 인터넷 거버넌스는 어떻게 할 것인지도 우리의 과제입니다. 이번 넷문디알 최종 선언문에서도 국내적, 지역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할 과제 역시 많다는 점을 명시했습니다. 한국 정부 역시 넷문디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멀티스테이크홀더 모델에 대한 지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선정한 민간 전문가들과 협의를 한다고 해서 이를 멀티스테이크홀더 모델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논의 과정의 투명성, 정책에 대한 시민사회의 참여 등 모든 측면에서 개선해야할 부분이 많습니다. 국내에서도 브라질의 CGI.BR과 같은 인터넷 공공정책을 위한 멀티스테이크홀더 기구를 만드는 것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시민사회 입장에서는 세계적인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에 본격적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은 걸음마 단계입니다.
<관련 자료>
– 넷문디알 홈페이지 : http://netmundial.br/
– 상파울로 넷문디알 멀티스테이크홀더 선언문(NETmundial Multistakeholder Statement of Sao Paulo) :
http://netmundial.br/wp-content/uploads/2014/04/NETmundial-Multistakeholder-Document.pdf
– 넷문디알에 제출한 한국정부의 의견서 :
http://content.netmundial.br/contribution/the-korean-government-s-submission-for-netmundial/255
– 넷문디알에 제출한 한국 시민사회의 의견서 :
http://content.netmundial.br/contribution/korean-civil-society-submission-for-netmundial/146
(국문) http://act.jinbo.net/drupal/node/7900
– 넷문디알 선언문 초안에 대한 온라인 의견수렴 :
http://document.netmundial.br/
– 넷문디알 선언문 초안에 대한 온라인 의견수렴 요약보고서:
– IANA와 관련되어 넷문디알에 제출된 의견 분석 :
http://www.linguasynaptica.com/wp-content/uploads/2014/03/IANA-related-NETmundial-submissions.pdf
– 넷문디알 개막식에서 시민사회 대표인 NNENNA의 연설
http://bestbits.net/nnenna-netmundial/
– 넷문디알에서 시민사회의 폐막 성명 (Civil society closing statement at NETmundial 2014)
http://bestbits.net/netmundial-response/
– 넷문디알에 대한 한국 시민사회 성명(The South Korean Civil Society Statement on NETmunidal)
http://act.jinbo.net/drupal/node/7979
– 넷문디알에 대한 APC 성명(APC statement at NETmundial)
http://www.apc.org/en/node/19224/
– 넷문디알에 대한 Just Net 성명(The JNC Response to the NetMundial Outcome Document)
http://justnetcoalition.org/jnc-response-netmundial-outcome-document
– 68차 UN 총회에서의 브라질 지우마 루세프 대통령의 연설
http://gadebate.un.org/sites/default/files/gastatements/68/BR_en.pdf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lhcKqJKtaPg
– 몬테비데오 선언
– 1Net 홈페이지 : http://1net.org
– NTIA, IANA 기능 이양 발표 : http://www.ntia.doc.gov/press-release/2014/ntia-announces-intent-transition-key-internet-domain-name-functions
2014-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