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활동의 연대기 201310

2013년, 박근혜 정부의 첫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대한문에서, 밀양에서, 공항공사 앞에서, 거리에서는 참 고단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정원발 공작과 공포에 지지 않아야 할 과제도 있습니다.
1998년 11월 14일 창립총회를 가진 진보넷이 올해 그날에 딱 열 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기성의 질서와 세상에 저항하는 나이라고 하지요. 정보인권으로 저항하는 이들과 더 연대하는 진보넷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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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스노든에 의해 폭로된, 미국 NSA의 인터넷 대량 감시 프로그램 실태는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이 우리의 인권이 보호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공간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다. 인터넷의 종주국으로서, 그동안 인터넷의 개방성과 자유, 인권의 보호를 앞장서 주장해왔던 미국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인터넷을 신뢰할 수 없는 공간으로 놔두는 것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인터넷이 여전히 우리 삶의 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하고, 안전하며 인권이 보장되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인터넷이 어떠한 원칙과 규칙에 의해서 운영되어야 하고, 그러한 원칙과 규칙을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 ‘인터넷 거버넌스’의 문제다.

2013 서울 사이버스페이스 총회, 알맹이없는 보여주기식 행사

지난 10월 17, 18일, 서울 코엑스에서는 2013 서울 사이버스페이스 총회가 개최되었다. 사이버스페이스 총회는 2011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개최되었으며, 2012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이어, 3회 총회가 서울에서 개최된 것이다. 이 행사는 ‘경제, 사회, 보안, 범죄, 국제안보 등 사이버 관련 사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국제회의’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사실 이 회의의 초점은 ‘사이버 보안(security)’ 문제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막식에서 연설할 정도로 이 행사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최대의 국제행사라고 한다. 87개 국의 정부고위대표단을 포함하여 전 세계 약 1600여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이전 행사에 비해서 최대 규모의 정부 대표들이 참여했고, 특히 제3세계 국가의 참가가 많았으며, 행사 최초로 ‘서울 프레임워크(Seoul Framework)’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을 성과로 뽑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측면에서 이 행사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기는 힘들 것 같다.

첫째, 행사의 준비과정에서부터 결과물에 이르기까지 비민주적으로 진행되었다. 최종 결과물 중 하나인 ‘의장 성명(Statement by the Conference Chair)’에서는 ‘정책결정 과정에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하고 있으며, ‘서울 프레임워크’에서도 ‘인터넷의 국제적인 관리는 다자간의, 투명한, 민주적이어야 하며, 그리고 정부, 사적영역, 시민사회, 학계, 기술공동체, 국제 조직의 완전한 참여에 기반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 행사의 준비과정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최종 결과물이 무엇인지, 시민사회에 이에 어떻게 의견을 제출해야 하는지도 모호했으며, 실제로 의견 수렴과정도 없었다. 각 국 정부들 사이에서만 최종 결과물 초안에 대해 비밀리에 논의하고 승인했을 뿐이다. 국내외 많은 사람들이 이 행사에 참가 신청을 했지만 허락(!)을 받지 못했다. (사무국은 회의에 관련있는 사람들만 참가를 허용하고 있다고 했다. 도대체 누가 관련도 없는데 참가 신청을 한다는 말인가? 필자도 처음에는 참가가 보류되었지만, 여러 번 항의를 한 끝에 행사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발언과 실제 행태가 모순되는데 어떻게 신뢰할 수 있고, 그 최종 결과물이 인터넷 이용자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겠는가.

둘째, ‘서울 프레임워크’에 사실상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그 내용은 기존 문서의 ‘복사&붙여넣기(Copy&Paste)’였을 뿐이다. 서울 프레임워크 문서를 보면 각 문장마다 어디서 인용을 했는지가 표시되어 있다. 이는 사이버 보안 혹은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한 각 국 정부(어차피 시민사회를 비롯한 다른 이해당사자는 협의의 대상도 되지 못했으므로)의 입장 차이가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전체 세션에서의 각 국 대표단의 발언에서는 각 정부의 입장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제 인터넷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일부분이 되었고, 인터넷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으며, 부정적 측면의 해소를 위해 각 국가와 여러 참여자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사실 뻔한 내용들 사이를 잘 들여다보면,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알 수 있다.

핀란드, 호주, 스웨덴 등의 정부와 OECD, 인터넷 소사이어티(ISOC), EU, UNDESA 등의 국제기구들은 인터넷 정책결정 과정에 정부만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멀티스테이크홀더’ 정책결정 과정을 강조하였다. 또한 지나친 정부의 규제에 대해 경계하며, 인터넷의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 등 인권이 보장되어야 함을 언급하였다. 반면, 중국은 “개인의 자유 등 지나치게 사이버 공간의 한 측면만 강조되고 있다”며, “인터넷에서도 국가의 주권과 정부의 의무가 간과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 중심의 인터넷 거버넌스를 의식한 듯, “각 국가의 가치관이 존중되어야 하며, 문화 헤게모니, 문화 식민주의의 장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직접적으로 미국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미국 NSA의 대량 감시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인터넷 소사이어티는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한 정부의 감시 행위는 많은 위협이 되고 있”음을 지적했으며, 특히 스웨덴 대표는 “많은 나라들이 감시 수준을 높여가고 있으며 법적 근거를 갖추고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며, ▷ 합법성 원칙과 민주적인 법 제정 ▷ 감시의 목표가 차별적, 임의적이 아니라 합법적이어야 함 ▷ 적절성 ▷ 비례성 ▷ 독립적 법원 등 역량있는 기구가 맡아야 함 ▷ 투명성 ▷ 대중에 의한 감시 등 7가지 원칙을 제안하였다.

사이버스페이스 총회의 또 하나의 문제는 이 총회의 위상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 회의는 UN 등 공식적인 기구에서 주최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회의는 주최국인 한국 정부와 영국, 미국, 헝가리 등 일부 국가의 협의를 통해 준비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저 사이버 공간과 관련한 제반 문제에 대한 논의를 위한 회의인 것인지, 각 국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약이나 가이드라인을 만들고자 하는 것인지, 다른 국제회의와의 관계는 어떠한지 등이 명확하지 않다. 이번 총회에서 미국, 이스라엘, 일본 등은 보안과 관련한 국제협력을 위한 플랫폼으로 ‘부다페스트 사이버범죄 조약’을 강조했는데, 이 회의의 개최 의도가 사이버범죄 조약의 확산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된다. 사이버범죄 조약은 유렵평의회가 주도한 것으로 2001년 채택되어 2013년 현재 40개 국이 비준한 상황인데, 모호한 규정으로 인해 인터넷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다는 시민사회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제8차 UN 인터넷거버넌스포럼

사이버스페이스 총회 다음 주인 10월 22일-25일에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제8차 UN 인터넷거버넌스포럼(Internet Governance Forum, IGF)이 열렸다. IGF는 2005년 2차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의 결의에 의해 만들어져 2006년부터 매회 개최되고 있는데, 정부, 기업, 시민사회, 학계, 국제기구 등 다양한 참여자들이 모여, 인터넷의 확산과 개발, 인터넷주소자원의 관리, 표현의 자유나 프라이버시와 같은 인터넷 권리, 사이버 범죄와 보안 등 인터넷 관련 공공정책 이슈를 논의하는 공간이다. 어떤 정책을 구체적으로 합의하고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소리만 요란한 실효성없는 포럼이라는 비판적 시각도 있지만, 다양한 인터넷 공공정책 이슈가 제기되고 논의됨으로써 ‘소프트 파워(Soft Power)’를 행사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IGF의 프로그램은 다중이해당사자 자문그룹(Multi-stakeholder Advisory Group)에서 결정하는데, 누구나 자유롭게 특정 주제의 워크샵을 제안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각 국 정부가 주최가 되고 기업이나 시민사회 등은 참관 정도의 자격만을 갖고 있는 통상의 UN 회의와는 달리, IGF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보니 시민사회가 IGF의 기획과 운영에 많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오히려 정부의 참여를 어떻게 독려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실정이다.

지금까지의 IGF에 한국의 참여자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IGF에는 진보넷, 오픈넷 등 시민사회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참여했으며, ‘익명성’, ‘망중립성’을 주제로 워크샵을 제안하고 패널로 참여하기도 했다. IGF는 세계사회포럼 등의 회의와 같이 다양한 주제의 워크샵들이 병렬적으로 진행이 된다. 또한 인터넷 권리 등 특정한 주제로 ‘동적연합(Dynamic Coalition)’이라는 이름의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데, 올해에는 망중립성을 주제로 한 네트워크가 IGF 회의 이전부터 형성되어, 각 국의 망중립성 법안이나 정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망중립성 모델 프레임워크(Model Framework)’를 논의하여 IGF에서 발표하는 자리를 갖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사 자체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다양한 참여자들이 만나서 대화하고 서로 네트워킹함으로써 인터넷 거버넌스 지형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번 한국의 시민사회 참가자들에게도 그 동안 메일링리스트를 통해서만 소통하던 국제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로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더 큰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 실제 만나서 인사하고 잠시나마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이후 활동의 연대를 위한 신뢰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국제 시민사회 네트워크 중에서 최근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던 베스트 비트(Best Bits)는 IGF 회의 전인 10월 19,20일 이틀동안 시민사회 회의를 갖고 주요 현안에 대한 논의를 하기도 했다.

2014년 브라질, 인터넷거버넌스 회의

이번 IGF 회의 기간 내내 시민사회의 관심을 모았던 것은 2014년 개최될 ‘브라질 서밋(Brazil Summit)’이었다. 모두들 이 회의가 글로벌 인터넷거버넌스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 혹은 기대하고 있다.

미국 NSA가 브라질 대통령의 이메일과 통화 기록 등을 열람하고 브라질 국영 에너지회사의 네트워크를 감시한 것이 드러나면서,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예정되었던 미국 방문을 전격 취소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다. 9월 24일 UN 총회에서는 미국의 대량 감시행위를 직설적으로 비판하며, “인터넷에서의 데이터 보호를 보장할 수 있도록 인터넷 거버넌스를 위한 ‘시민의, 다자간 프레임워크(civilian multilateral framework)’을 수립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10월 7일에는 인터넷소사이어티(ISOC), IETF, W3C 및 각 지역의 주소자원을 관할하는 NIC 등 인터넷 기술 커뮤니티 대표들이 모여 몬테비데오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에서 이들은 미국의 감시행위를 비판하는 한편,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방향으로 ‘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 및 IANA 기능을 국제화(globalization)’할 것을 요구했다. ICANN과 IANA는 인터넷의 IP 주소와 도메인 네임 등 주소자원을 관할하는 기구인데, 국제기구이지만 미국 정부와의 계약 관계 하에서 작동하고 있는데, 이를 국제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미국 정부만의 일방적인 ICANN 감독 기능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10월 9일, ICANN CEO 파디 세하디가 브라질 대통령을 만나 내년 4월에 인터넷 거버넌스를 논의하는 국제회의를 제안하였고, 브라질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였다. 그런데, 이 국제회의의 의제는 무엇이고, 누가, 무엇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때문에, 이번 IGF 회의에서 이 국제회의에 대한 브라질 정부와 ICANN의 의도를 파악하고 시민사회가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IGF 회의 기간 중 베스트 비트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 참가자들은 브라질 대표단 및 ICANN CEO 파디와 일련의 간담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회의 개최를 결정한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2014년 4월 말 혹은 5월 초에 개최한다는 것, 다양한 이해당자의 참여(Multi-stakeholder)를 원칙으로 한다는 것(그러나, 그 구체적인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다. 정부, 기업, 시민사회를 동등하게 참여시키겠다고 하나, 구체적인 시행 과정에서 형식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의제는 ‘ICANN의 국제화’ 이슈만이 아니라 국제적인 논의의 장이 없는 인터넷 공공정책 이슈들(브라질 대통령의 UN 총회에서의 발언을 볼 때, 정부에 의한 인터넷 감시, 프라이버시 보호, 보안 이슈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이 될 것이라는 것 외에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시민사회는 논의의 초기 단계부터 행사 자체까지 시민사회의 참여를 보장할 것, 일회성의 행사가 아니라 회의 이후의 계획까지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브라질에서 주최한다고 하더라도 브라질 정부가 독자적으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만큼, 이 국제회의가 일회성 행사로 끝날지, 향후 인터넷 거버넌스와 관련된 원칙이나 제안 등 구체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미지수이나 2014년 이 행사를 주목하고 적극 개입할 필요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