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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사회단체, 유전자 정보 보호를 위한 법안 제정 촉구{/}경찰청, 미아찾기 유전자 DB 구축

By 2004/05/21 10월 29th, 2016 No Comments

표지이야기

오병일

지난 4월 21일, 인권침해 논란에도 경찰청은 전국의 보호시설에 수용중인 아동들과 미아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DNA 시료 채취를 시작했다. ‘미아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실시되고 있는 이 사업은 보건복지부 산하 어린이찾아주기종합센터에서 아동카드로 관리중인 무연고 아동 9300여 명과 미아부모 730여 명 등 총 1만여명을 대상으로 DNA 시료를 채취하고, 이 시료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분석한 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할 예정이다.

인권침해 우려 속에 DNA 채취 돌입

경찰청은 잃어버린지 몇 년씩 되는 장기 미아의 경우, 얼굴이나 체형이 변하여 사진이나 실종 당시 상황 등으로는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DNA의 활용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잃어버린 아이를 찾기 위해 몇 년 씩 전국의 보호시설을 찾아 헤매는 미아 부모들은 이 사업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유전자 정보는 개인 및 그 가족으로부터 얻어진 유전자, 혹은 유전되는 특징들로부터 얻어지는 정보를 의미하는데, 개인마다 고유할 뿐만 아니라 평생 변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개인 식별이나 질병의 진단, 예측 등에 이용되고 있다. 또한 피부, 타액, 혈흔, 머리카락, 정액 등 소량의 물질에서도 DNA를 추출할 수 있다. 그래서 ‘CSI 과학수사대’와 같은 TV 프로에서도 볼 수 있듯이 범죄 현장의 흔적으로부터 DNA를 채취하여 범인의 신원을 알아내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또한 돈을 받고 친자확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바이오 벤처기업들도 나타나고 있다.

유전자 정보는 개인의 고유한 신체 정보이기 때문에 매우 민감한 개인 정보이며, 특별한 보호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인권침해 논란에 대해 경찰청은 이미 대책을 세웠다고 반박하고 있다. 즉 시료채취 시에 경찰 및 시민단체의 대표를 동행하도록 하고, 아동의 신상자료는 유전자 정보와 분리하여 어린이찾아주기종합센터에서 관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유전자 정보 분석 후의 잔류 시료는 즉시 폐기하고, 부모가 발견되었을 경우나 본인이 원할 경우 관련자료를 폐기하겠다는 것이다.

근거 법률도 없이 일단 시행

미아찾기라는 공익적 목적을 위해 불가피하게 유전자 정보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권사회단체들도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가장 큰 문제점의 하나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아무런 근거 법률도 없이 ‘임의적으로’ 이 사업이 시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일 현재 수집된 유전자 정보가 유출될 경우 누가 어떠한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찰은 시민단체의 입회 하에 DNA를 채취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이미 시민단체 참여 없이 채취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청은 보건복지부가 관련 법안을 추진할 예정이며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도 17대 국회 최초 법률로 만들 것을 약속했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2003년에는 김희선 위원과 오세훈 의원이 각각 미아관련법안을 상정했던 사례가 있었지만 16대 국회에서는 통과되지 못했다. 문제는 두 법률안 모두 유전자 DB의 설치 근거는 있지만 유전자 정보의 보호와 관련된 규정은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유전자 DB 구축을 위한 경찰과 검찰의 경쟁

경찰청은 미아 찾기의 시급성을 내세우며 경찰을 신뢰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청에 대한 인권사회단체의 불신은 상당히 높은 상황이다. 경찰청은 지난 3월 3일 인권사회단체들과 이 사업과 관련한 간담회를 진행하였는데, 이를 두고 마치 인권단체들과 공감대가 형성된 것처럼 언론에 흘려 경찰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키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인권사회단체들은 미아 유전자 DB 구축을 계기로 유전자 DB가 확대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사실 경찰과 검찰은 지난 90년대부터 유전자 DB를 서로 구축하기 위해 경쟁해 왔다. 이미 지난 2001년 검찰은 보건복지부, 한국복지재단, (주)바이오그랜드와 함께 유전자를 이용한 가족 찾기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비록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검찰은 범죄자의 유전자 DB 구축을 위해 지난 90년대에 ‘유전자정보은행설립에관한법률(안)’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또한 2002년 11월에는 성폭력 예방을 위한 ‘범죄자 DB 설립’을 제안하였다. 경찰청 역시 1991년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내에 유전자분석실을 설치하고 2003년까지 약 6만 9천 건의 유전자 감식을 수행해 왔다. 이번에 경찰청이 미아 유전자 DB 사업을 추진하게 된 것을 두고, 경찰과 검찰의 경쟁에서 경찰이 승리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유전자 감시망의 사회적 확장 우려

신원확인 유전자 DB는 한번 구축되면 입력 대상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데이터베이스의 속성상 입력 데이터가 클수록 효율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뉴욕주에서도 범죄자의 유전자 DB를 운영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입력 대상 범죄가 흉악범죄를 중심으로 한 21개였지만, 1999년에는 비폭력 범죄를 포함해 107개로 확대됐다. 지난 2003년 영국에서는 경찰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DNA 등록을 추진해 인권 침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인권사회단체들은 지난 4월 20일 성명을 발표하여 “법적 구속력 있는 대안을 제시”할 것과 “입력 대상을 확대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였다. 첨부된 의견서에서는 법률안에 △DNA 수집 대상과 목적 △DNA 수집에 대한 명시적인 동의 △자기정보 열람 및 수정 권한 △잔여 DNA의 폐기 △오남용을 막기위한 대책과 처벌 조항 △감시감독기구의 설립 등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야 함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유전자 DB 관련 법률의 입법화와 함께, 국내에서 유전자 DB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은 것으로 보고 여론 형성을 위한 공론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2004-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