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정보월간네트워커

지문, 망막, 홍채, 음성, 화상 등... 인권침해 논란{/}생체정보로 신분을 확인하는 시대

By 2004/05/21 10월 29th, 2016 No Comments

표지이야기

장여경
미국 국토안보부가 설명한 유에스-비짓 절차

생체인식기술은 신체와 행동상의 특성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는 기술이다. 기존에 저장해 둔 개인의 생체정보와 제시된 생체정보를 대조하는 방식이다. 이 기술이 정부와 기업의 흥미를 끄는 것은 카드나 종이로 된 기존 신원 인식 방식에 비해 위조가 어렵다는 점이다. 개인의 고유한 신체적 특성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가장 확실하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기술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체될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생체정보가 개인정보 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문이나 홍채와 같은 생체정보는 각 개인의 신체에 각인되어 특별한 신체적 변화가 없는 한 평생토록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생체인식기술이 사용되고 있는 현장에서는 이에 합당한 자기 정보에 대한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않다.

일단 생체정보는 지문이나 얼굴, 혹은 머리카락과 같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도 몰래 수집할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어 개인정보 수집시 당사자 동의를 받도록 한 프라이버시 원칙이 침해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미국이 테러용의자 파악을 위해 공항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생체정보 데이터베이스의 경우 법적 근거나 당사자의 동의 없이 구축되었다는 비판이 높다. 또한 생체정보가 기존에 구축된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와 결합할 경우 자신에 관한 모든 개인정보가 생체정보를 중심으로 통합될 가능성이 높다. 생체정보가 가장 확실한 고유정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 생체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때 당사자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지 않는 것은 계속되는 프라이버시 침해를 방기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생체인식기술은 다른 어떤 인증 기술보다 굴욕적이다. 자신의 신체에 각인된 내밀한 특성을 ‘까발려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의 공항 등지에서 지문과 같은 생체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테러범이나 범죄자로 간주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생체정보의 제공을 거절하는 것이 가능할까? 테러범이라는 근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테러범이 아니라는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혐의자로 몰릴 것이다. 지금까지 국제인권규범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옹호해 왔는데, 이제는 무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유죄로 추정당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유전자 정보는 한 사람의 현재 뿐 아니라 미래까지 유추하려는 경향으로 논란을 빚고 있다. 유전자 검사결과를 토대로 개인의 잠재적 병력을 추측하거나 ‘범죄 가능성 높음’과 같은 추상적인 규정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이미 미국의 일부 기업들은 유전자 정보를 토대로 고용을 결정하려고 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은우 변호사는 “이것은 감시가 새로운 차별의 수단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경고한다.

프라이버시권이 엄격하게 보장받아야

프라이버시단체 전자프라이버시정보센터(EPIC)는 생체인식기술보다는 다른 기술을 사용할 것을 권고한다. 만약 생체정보를 불가피하게 사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생체정보 원본과 대조본이 어떤 방식으로 저장되는가 △도용되거나 남용될 가능성은 없는가 △인식 과정에 오류는 없는가 △어떻게 ‘확실한 사람’임을 판단하는가 △다른 정보와 연동되는가 △생체정보의 이용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를 사전에 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이은우 변호사는 생체정보의 처리에 대해서는 법률적으로 특별한 보호 규정을 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생체정보의 수집과 이용은 제한적인 경우에만 허용하고 원칙적으로 정보주체의 거절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저 클라크는 이런 요건들이 갖추어지기 전에는 생체정보의 이용을 일시적으로 중지시키는 ‘모라토리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생체정보의 이용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이다.


생체인식기술에 사람을 맞추라고?

로저 클라크는 생체인식기술이 “복종시키기 때문에” 나쁜 기술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계속 신체 검사에 복종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개인의 존엄성이 무시되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비인간화이다. 사람이 공산품처럼 동일한 방식으로 행동할 것을 전제하고 동일한 방식으로 평가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이 확대되면 앞으로는 인식 과정에서 오류를 일으킬 수 있는 다양성 자체를 꺼리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의 경고이다.

많은 프라이버시 학자들이 생체인식기술과 더불어 인증 기술이 확산되면서 모든 곳에서 신원 증명을 요구하는 데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지문날인반대연대 윤현식씨는 “과거에는 신원 확인이 필요 없었던 도서관 같은 곳들도 본인이 확인되지 않으면 공공 서비스를 거절받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또 자동으로 인증하는 곳이 늘면 배제와 차별도 ‘자동화’되어 그 비인간성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출입 허가는 가장 확실한 경우에만 떨어질 것이고, 회사는 이를 이용해 전직 노동자의 출입을 ‘자동적으로’ 거부할 것이다.

 

 

2004-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