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자유행정심의

[기고] 명예훼손성 인터넷 게시물 ‘반의사불벌죄’로?

By 2015/08/02 4월 23rd, 2018 No Comments

국민들은 또다시 사이버 망명길에 나설 수밖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명예훼손성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반의사불벌죄’를 추진하고 있다. 참으로 묘하다. 행정심의기관인 방통심의위는 그간 명예훼손을 ‘친고죄’로 다루어왔다. 친고죄는 피해자의 고소 없이 국가기관이 먼저 처분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인터넷 행정심의가 위헌이라고 여전히 믿지만,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행정심의기관이 개입해야 한다면 그나마 피해자의 명확한 고소에 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행정기관의 자의적 판단으로 일반 시민의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것은 명예훼손에 대해 국가기관이 일방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게시자와 피해자 당사자 간에 분쟁조정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그런 취지로 방통심의위 산하에 명예훼손 분쟁조정부가 설치되어 있기도 하다.

물론 형법에서 명예훼손은 본래 반의사불벌죄이다. 수사기관이 명예훼손을 인지하면 강제적 수사력을 동원하여 혐의를 밝힐 수 있지만, 피해자가 처벌을 바라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가 형벌권의 남용으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자 한 장치다. 정보통신망법은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심의위가 아니다!)가 그 취급을 거부·정지 또는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내릴 때에도 “해당 정보로 인하여 피해를 받은 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하여” 명령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기 때문에 역시 명예훼손에 대한 국가 형벌권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방통위의 행정명령은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만 발동되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방통심의위가 수사기관이나 중앙행정기관의 예를 들어 자기들도 명예훼손을 반의사불벌죄로 다루겠다고 나섰다. 피해자의 고소 없이 인터넷 게시물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최소심의를 버리고 인터넷의 적극적인 검열자로 거듭나겠다는 방통심의위의 의지가 읽힌다. 그런데 수사기관도 아닌 심의기관이 대체 무슨 수단을 통해 무수한 인터넷 게시물에서 지목된 피해자를 찾아내고 그 의사를 확인할 수 있을까? 결국 방통심의위가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피해자들이란 연락처가 공개된 공인들 밖에 없다.

그러니 알겠다.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은 검찰이 먼저 밝혔다. 지난해 9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인터넷에서 “본인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고 있다고 지적한 데 따라, 대통령 심기 경호 차원에서 나온 정책이었다. 이때 검찰의 ‘유관기관 대책회의’에 카카오톡을 비롯한 인터넷 사업자들이 참여하였고 ‘실시간 모니터링’하겠다는 계획이 밝혀지자 사이버 망명 소동이 일었던 것은 다들 아는 대로이다. 이제 인터넷 행정심의기관조차 대통령의 심기경호에 나서겠다는 것인가?

이래가지고서는 방통심의위의 또 다른 기능인 명예훼손 분쟁조정도 엉망진창이 될 수밖에 없다. 한쪽에서는 피해자나 게시자의 의사 확인 없이 자의적으로 사실관계를 판단하여 인터넷 명예훼손을 검열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피해자와 게시자의 명확한 의사에 기반을 둔 명예훼손 분쟁조정을 수행하겠다는 것은 분열적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방통심의위가 명예훼손에 대한 반의사불벌죄를 고수하겠다면 분쟁조정 기능은 분리시켜야 마땅하다. 이참에 유엔의 권고대로 “정치적, 상업적 및 기타 부당한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 기구로 이관하는 것이 좋겠다.

그간 우리 정부는 공인이나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명예훼손죄로 다스리려 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왔다. 수사기관은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해 무리한 수사를 하였고 그 과정에서 방송작가가 대통령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밝힌 메일을 압수하고 공개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하여 시민사회는 명예훼손죄에 대해 공권력이 형벌권을 가지고 개입하는 제도에 대해 본질적인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민주사회에서 공인에 대한 비판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지만 이 나라에서 검찰과 경찰이 앞장서서 공인의 심기까지 경호하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방통심의위의 경우 행정심의 기능 그 자체가 논란거리가 되어 왔다. 2012년 비록 헌법재판소가 5:3으로 합헌결정을 내렸지만 유엔은 방통심의위가 “정부나 유력한 기업들을 비판하는 내용의 정보를 삭제하는 사실상의 사후 검열기구”로 보인다며 행정심의 기능을 독립기구로 이양할 것을 권고하였다. 유엔은 올 연말 한국 정부에 대해 자유권 심사를 할 예정인데 비슷한 권고가 또다시 나올 것으로 보인다. 방통심의위의 인터넷 게시물에 대한 행정 심의가 현재보다 ‘강화’되는 결과를 낳는다면 헌법적 도전 또한 다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 국민은 세월호 참사 이후 메르스까지 이 시대 대한민국 관료제의 민낯을 목격해 왔다. 국민들의 안전보다 권력자들만의 ‘의전’과 ‘심기 경호’를 신경 쓰는 관료들을 보며 이 나라에 대한 자부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언론의 독립성이 침해되어 온 이때 인터넷까지 심기 경호가 만연해 진다면? 국민들은 또다시 사이버 망명길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제까지 이 정처 없는 노릇을 계속해야 할 것인가.

* 장여경 / 미디어스 2015년 7월 9일자로 기고한 글입니다.
 ☞ 원문 보기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