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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주민등록번호 제도 개편 논의 검토 및 비판” 토론문

By 2015/03/02 4월 30th, 2018 No Comments
“주민등록번호 제도 개편 논의 검토 및 비판” 토론문

변호사 김기중, 2015년 2월 27일

시민단체는 1990년대 말부터 오랜 기간 동안 주민등록번호의 위험성과 위헌성을 지적해 왔으나, 정부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2014년 1월경 주민번호를 포함한 금융정보가 잇달아 대규모로 유출되고 주민번호 대안 마련에 관한 대통령의 발언이 있은 이후에야 정부 담당자들은 주민번호 제도를 변경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으나, 늦더라도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안전행정부는 2014년 3월경부터 기술, 행정, 법률 등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주민번호 개선 자문단을 운영하였고, 저도 이 자리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담당 실장은 새로운 주민번호 발급, 주민번호의 전면 변경, 목적별 번호 등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안전행정부는 2014년 9월 주민등록번호개선방안 공청회를 개최하여 신규번호 부여안, 현행번호 + 증발행번호 부여안, 신규번호 + 증발행번호 부여안 등 주민번호 제도를 전면 개편하는 다양한 방안을 모두 제시하는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 이전인 2014년 8월 1일 안전행정부는 개인정보보호 정상화 대책 중 하나로 주민번호의 변경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겠다고 발표하였고, 이 발표 이후인 2014년 8월 21일 주민번호의 변경을 제한적으로만 허용하는 내용의 주민등록법 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하였습니다. 안정행정부는 위와 같이 발표하면서 추가적인 주민번호의 개편 방안은 여론을 수렴한 후에 제시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주민번호 개선 자문단은 2014년 3월경부터 2014년 12월경까지 몇 차례에 걸쳐 회의를 개최하였고, 이와 별도로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주관하는 프로젝트 관련 회의도 몇 차례에 걸쳐 개최되었으며, 저를 포함한 자문위원들은 주민번호 개편이라는 중요한 사안에 일부라도 기여하기 위해 회의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적극적으로 발언을 하였으며, 정책담당자들은 경청하였습니다.

2014년 3월에 열린 첫 회의 때, 자문위원들은 주로 그동안 마스터 키로 이용되어 온 주민번호가 유출된 것은 무척 위험하며 이제는 전면 개편이나 대체 수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였고, 그러한 필요성이 있다면 비용이나 국민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실행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2014년 7월에 열린 두 번째 회의 때, 신규번호 발행, 증발행번호 발행 및 이들 방법을 조합하는 방법 등에 관한 구체적인 대안이 제시되었고, 자문위원들은 대부분 구체적인 대안이 제시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으며 일부 위원들은 비용 효율적인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일부 위원들은 비용 보다 근본적인 해결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는데, 기존 주민번호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의견은 없었을 정도로 주민번호 제도는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는 점에 거의 일치된 의견을 보였습니다.

안전행정부가 주관하고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형식으로 개최된 2014년 9월 공청회에서, 신규번호, 현행번호+증발행번호, 신규번호+증발행번호 등의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었고, 그에 따른 장단점과 비용 추계 및 구체적인 실행전략이 발표되었으며, 언론의 보도도 개편하는 방향에 대한 비판적 의견은 거의 없었습니다.

2014년 12월 16일 자문단 마지막 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정책담당자는 주민번호 전면개편안은 막대한 비용 및 사회적 불편을 야기할 것으로 보이므로, 주민번호 변경허용, 사용범위 축소 등의 방향이 현실적인 안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자문위원들은 땜질처방에 불과하다,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도, 전면 개편을 하지 아니하고 주민번호 변경허용, 사용범위 축소의 방향으로 가야만 한다면 변경허용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런데, 안전행정부는 2014년 12월 말경 주민번호 변경을 허용하는 내용의 주민등록법 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어떻게 된 일인지 2014년 8월의 입법예고안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는 내용, 즉 무척 제한된 범위에서만 주민번호의 변경을 허용하는 내용의 법률안을 그대로 제출하였습니다.

주민번호를 전면적으로 재부여하거나 주민증 발행번호로 대체하는 안까지 마련한 정부가 이렇게 주민번호 제도에 대하여 사실상 아무런 변경도 하지 않겠다는 법률안을 제시하였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비록 ‘자문’ 기구이기는 하나 주민번호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 다수였던 자문위원들의 의견은 전적으로 무시되어도 되는 것인지, 전면 개편이 어렵다면 넓은 범위에서 변경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 또한 그렇게 무시되어도 되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지방행정연구원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주민번호 전면 개편에 따른 행정, 공공 시스템 변경비용은 3,000억 내지 4,000억원 정도라고 하므로, 주민번호 변경 허용으로 인한 비용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주민번호 변경을 넓게 허용하는 것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막대한 비용과 사회적 불편을 우려하여 주민번호 전면 개편을 하기 어렵다면, 별다른 비용이 들지 않고 원하는 사람에 한하여 번호를 변경하도록 하는 번호변경제도를 도입하지 않을 어떤 이유가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주민번호 변경의 허용폭을 넓히는 것은 주민번호 전면 개편에 비하면 그 비용과 불편함에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할 것인데, 주민번호 전면 개편까지 고려하고 그 비용이 어느 정도이고, 시스템 개편을 어떻게 하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검토까지 마친 마당에, 굳이 주민번호 변경의 허용폭을 그렇게 좁게 설정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안전행정부 담당자에게 질문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민번호 변경 허용 문제는 비용이나 불편함의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므로, 남은 문제는 그 허용으로 인한 신분확인시스템의 혼란 정도일 것입니다. 실제로 자문회의에서 정책담당자는 주민번호 변경 허용에 검경측에서 우려를 공식적으로 표명해 왔다고 언급하였는데, 그렇다면 검경측에서 제시한 우려가 무엇인지, 그러한 우려 때문에 주민번호 변경의 허용 범위를 대폭 축소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안전행정부 담당자에게 질문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민번호 변경 허용으로 범죄자의 신분세탁과 같은 우려가 있다면, 그러한 우려를 정면으로 제시하면서, 실제로 주민번호 변경을 허용할 경우 신분세탁과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그러한 문제를 없애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논의하여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 김기중 변호사는 진보네트워크센터 운영위원입니다. 이 글은 국회 “주민등록번호 제도 개편 논의 검토 및 비판” 토론회 토론문으로, 2015년 2월 27일자 ‘ 미디어스’에도 기고하였습니다.
‘미디어스’ 원문 보기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