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망명 소동과 함께 10월이 지나갔습니다. 11월은 겉으로 조용했지만 공안당국은 은밀하게 분주했습니다. 어쩌면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1월 중순 다음카카오가 메신저에 이어 이메일 감청도 거부하고 있다며, 간첩을 잡을 수 없어 큰일이라는 보도가 일제히 이루어졌습니다. 출처는 공안당국이었지요. 다음카카오가 이메일 감청 거부는 사실이 아니라며 해명하였지만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미래위에 상정되었습니다. 국정원 숙원사업이었던 새누리당 서상기의원 발의안입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은, 세월호 집회시위 참여자에 대한 카카오톡 압수수색으로 시작된 논란이 엉뚱하게도 간첩 감청 논란으로 번졌다는 사실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여전히 표현의 자유 침해이고 메신저를 메신저 답게 쓸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이버 망명은 지난 9월 본인에 대한 모독을 참을 수 없다는 대통령의 지시로 검찰이 허위사실 수사 방침을 밝히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겠다는 검찰은 전담수사팀(이름이 첨단수사부입니다)도 만들었는데 요즘 바쁘게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세월호 침몰 원인을 허위로 주장했다는 이유로 한 인터넷 이용자의 가택을 압수수색하고 체포구속하였다는군요.
하지만 감시를 거부하겠다는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1만인 선언에 시민과 노동자 5,120명이 참여하고 십시일반 모금하여 일간지에 광고도 게재하였습니다. 이러한 지지에 힘을 받아 사이버사찰긴급행동은 사이버사찰금지법 제정에 이르는 길을 열심히 달려가겠습니다. 메신저를 메신저답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함께해 주세요!

지난 10월 20일부터 11월 7일까지 3주동안,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ITU 회의는 각국 대표단과 ITU 소속 멤버에게만 참여가 허용되는데, 해외의 학계 전문가나 시민사회 활동가들 역시 자국의 대표단 일원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진보넷도 전권회의에 참여하고자 했으나, 한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안내도 없고, 비공식적으로 참여 요청을 했지만 승인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ITU의 성공적인 개최를 자랑하는 한국의 현실입니다.
이번 ITU 전권회의의 최고의 관심사는 인터넷 거버넌스와 관련된 의제였습니다. ITU 전권회의에서 기존 결의안의 수정이나 새로운 결의안이 제안되는데, 이번 회의에서는 인터넷 거버넌스 혹은 인터넷 공공정책과 관련한 많은 제안들이 있었습니다. 이번 ITU 전권회의에 국제 시민사회가 관심을 가진 이유는, 이번 회의에 인터넷 관련 새로운 결의가 채택됨으로써, 인터넷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통제가 강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등은 ITU의 권한을 인터넷 관련 공공정책(예를 들어, IP 주소와 같은 주소자원, 사이버 범죄, 보안과 프라이버시 등)으로 확대할 것을 주장했으며, 반면 미국, 유럽, 일본 등은 기존의 분산적인 인터넷 거버넌스 모델을 지지하며 ITU의 권한을 통신 인프라와 관련된 것으로 유지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결국 이번 ITU 회의에서는 기존 결의안에 대한 커다란 수정은 없었고, 인터넷 관련 새로운 결의안 제안도 철회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큰 쟁점은 ITU의 투명성과 개방성에 대한 것입니다. 국제 시민사회는 ITU의 문서와 회의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부 대표뿐만 아니라 관심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할 것을 요구해 왔습니다. 이번 회의에서는 2015년부터 ITU의 모든 문건을 공개하는 것을 결의함으로써 일정한 진전이 이루어졌습니다. ITU의 ‘인터넷 관련 이사회 워킹그룹(CWGInternet)’에 대한 참여를 개방하자는 제안이 브라질의 중재안으로 타협이 되었는데, 워킹그룹 자체는 개방하지 않았지만 사전에 시민사회 등 관련 이해당사자들과 충분한 협의를 갖도록 하였습니다.
한편, 지난 11월 13일에는 다자간인터넷거버넌스협의회(KIGA)의 주최로 ‘인터넷거버넌스 오픈포럼’이 개최되었습니다. 오픈포럼에서는 9월에 개최되었던 인터넷거버넌스포럼(IGF), 10월에 있었던 아이캔(ICANN) 회의와 루트 서버 감독권한의 이양과 관련된 동향, 그리고 ITU 전권회의 결과 등이 논의되었습니다. 위 링크로 가시면 각 발표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1월 18일, 진보넷은 몇 달 동안 연구한 결과물인 [국민식별번호와 목적별 식별번호에 대한 해외사례 보고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이번 연구는 인터넷 관련 해외 단체 활동가와 전문가, 개인정보감독기구 담당자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수행된 것입니다.
기존의 해외 사례에 대한 연구는 주로 각국의 국민식별번호의 역사나 현황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이것만 가지고는 각국의 여러 사회 영역(예를 들어, 보건의료, 복지, 금융, 조세 등)에서 어떠한 식별번호가 이용되는지, 얼마나 많은 식별번호가 이용이 되고 서로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알기 힘들었습니다.
이번 연구의 목적은 세계 주요 국가에서 국민식별번호 외에 각 사회영역에서 어떠한 식별번호를 사용하고 있는지 실태를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연구가 국내 주민등록번호 체제를 어떻게 개편해야 하는지에 대해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14. 5. 7. 서울행정법원에 주민번호 변경을 위한 소송(2014구합57867)을 제기했습니다. 6개월 후(2014. 11. 6.) 1심 결과가 나왔습니다. 각하당했습니다.
원고들은 ‘현행법 하에서 유출된 주민번호의 변경을 허용할만하다. 그리고 전국민 주민번호 다 털려서 언제 악용될지 모르는데 이런 상황에서조차 허용을 안 하면 어쩌자는거냐?’ 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한 1심 재판부의 답변은 ‘현행법 하에서는 주민번호가 유출되었다는 이유로 주민번호 변경을 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현행법이 이 모양인 것은 입법재량의 문제니 국회에서 해결하시라’는 것입니다. 2011년 네이트와 싸이월드에서 주민번호를 포함한 개인정보가 유출되었을 때와 거의 같은 판결입니다. ‘법원은 관여하고 싶지 않다. 국회로 가시라.’
올해 초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터졌음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 법원의 태도가 실망스러웠습니다. 예상 못한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설마’ 했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2심을 진행할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원고들에게 의견을 묻기로 했습니다. 판결의 의미와 제한 사항을 설명 드렸습니다. 정부가 사선 변호사를 선임하여 변호사보수가 발생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한 분이 진중한 어조로 “변호사들 수고하셨다. 법원을 통해서는 힘들 것 같다. 추후에 유출 문제가 불거지면 다시 검토하자. 지금은 국회 대응과 헌법소원에 집중했으면 한다. 힘내서 계속 싸우자.” 라고 했습니다. 다른 원고분들도 이와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행정소송은 여기서 멈추기로 했습니다.
2014. 6. 9. 제기한 헌법소원은 계속 다투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회에는 유출된 주민번호 변경을 허용하는 주민등록법 일부개정안이 5개 발의되어 있습니다. 정부도 주민번호 변경을 담은 개정안을 준비했습니다.
다만, 정부 개정안은 주민번호 변경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때문에 위헌 논란은 피하고 변경은 허용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신규 주민번호 발급보다 주민번호 변경을 더 싫어합니다. 유출되었을 때 주민번호 변경이 가능해지면 주민번호의 절대성이 훼손되고 국민 통제가 약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불안정한 번호에 기해서 행정망을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이니까요.
조금 더 긴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 계속 지지하고 응원해주실 거죠? (행정소송과 헌법소원 비용은 시민 여러분들의 후원으로 충당하였는데, 정부의 사선변호사 선임으로 인해 상당한 적자가 예상됩니다. 소송비용 확정되면 결과 보고하겠습니다.)

♣ ‘따오기’ 프로젝트가 재가동되었습니다.

따오기는 다양한 종류의 멀티미디어가 포함된 타임라인을 쉽게 제작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는 플랫폼의 이름입니다. 2012년에 제작을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올해 4월에 완성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세월호’라는 충격적인 사건에 직면하였습니다. 기술팀이 우리 동네 촛불, 특별법 서명 페이지, 국민대책위 홈페이지 제작 등 세월호 관련 활동을 하면서 따오기는 잠정적으로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최근 정식으로 출시하기 직전의 테스트 단계인 알파버전이 완성되었습니다. 아직 백업기능과 공동 작업을 위한 편집그룹관리, 다른 사람의 타임라인을 가져오는 복사기능 등 몇 가지 기능이 구현되지 않습니다만, 따오기의 필요성과 활용도와 편리성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할 것입니다.
따오기에서 회원가입을 하신 후 따오기를 사용해 보시고, 어떤 점이 좋았는지,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지 평가해 주세요.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진보넷 홈페이지가 곧 개편됩니다.

그동안 진보넷의 대문 홈페이지는 사회운동의 대안적인 포털사이트가 되기 위한 노력에 할애되었습니다. 그 내용도 진보넷 활동소식보다 전체 사회운동의 소식을 전하고 각 부문 간의 교류를 더 활발히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구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포털사이트로서의 진보넷 홈페이지의 필요와 한계에 대해 고민할 때가 되었습니다. 오랜 논의 끝에 진보넷 홈페이지를 바꾸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제 진보넷의 모호하게만 보였던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내고자 합니다. 진보넷의 지향점이 무엇이고 어떤 활동을 하며 그 성과는 무엇이었는지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홈페이지를 구성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관심과 기대를 부탁드립니다.

요즘 SNS들 보면 사진과 간단한 글을 하나의 이미지 파일로 만들어서 슬라이드 쇼처럼 노출시키는 형태의 게시물들이 많죠? 그냥 글만 있었을 때 보다는 이 디자인이 SNS에서 사람들의 집중도를 높이는 것 같더라구요.
진보넷은 이걸 ‘소셜카드’라고 부르면서 올해 사업 계획 중 하나로 정했었는데요, 이번 달 첫 소셜카드가 나왔습니다!
첫 소식은 최근 진보넷 기술팀이 어떤 일을 해왔는지 알리는 내용을 만들었습니다. 진보넷 기술팀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
역시나 소셜카드의 위력은 위대했습니다. 페이스북만 해도 800 건이 넘는 노출을 기록했습니다. 앞으로 캠페인도 알리고 궁극적으로는 정보인권 활동을 알리는 데에 사용해 보려고 합니다. 재미있는 반응들이 생겼으면 좋겠네요^^ 회원 가입도 많았으면 좋겠고요!!^^ 주변에 공유 많이 해주세
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결정례(의안번호 제2014-19-21호, 제2014-19-20호)를 소개합니다.
구청 등에서 CCTV로 수집한 차량의 영상을 평상시에 실시간으로 경찰서에 제공할 수 있냐가 쟁점이었습니다.
1) 구로구청은 안전한 주민생활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구청과 경찰관서 간에 시스템을 연계하여 ① 평상시 범죄예방용 영상정보처리기기 영상을 경찰서 상황실에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와 ② 재난재해 또는 범죄 발생 등 긴급 상황 발생 시 영상 제공, 경찰서 상황실에서 영상정보처리기기 조작(범죄자 추적을 위한 방향전환), 관제센터에 저장된 영상의 검색 등이 가능한지 여부를 질의하였습니다.
2) 홍천경찰서는 국토교통부 지방국토관리청이 설치하여 운영하는 교통정보수집용 영상정보처리기기에 범죄예방 및 수사목적을 추가한 후 동 영상정보처리기기를 경찰청의 수배차량자동검색시스템에 연계하여 운영하는 것이 「개인정보 보호법」 (이하 ‘보호법’) 제3조 및 제18조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질의하였습니다.
이에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개인정보보호법 제17조에서는 수집한 목적 범위에서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목적을 추가하여 영상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생활의 비밀보호와 개인정보 최소처리 원칙에 관한 헌법 제17조, 제37조와 개인정보보호법 제3조, 제16조에 의하여 일정한 제한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모든 차량 영상을 경찰청에 상시 실시간 제공하는 것은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제공하게 되어 사생활 비밀보호와 개인정보 최소처리 원칙을 위반할 우려가 있으므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다만, 긴급한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만 실시간으로 제공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경우에도 경찰서 상황실에서 CCTV를 조작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위 결정으로 운행 중인 모든 차량의 차량정보(차량영상, 차량번호 등)를 24시간 수집하려 했던 경찰의 계획에 일단 제동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지난 국정감사에서 알려졌듯이 경찰은 차량정보를 여전히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있습니다. 비단 경찰만이 아니라, 지자체에서 차량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여 DB화 할 수 있는지 의문을 품어야 합니다.
개인정보 처리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개인의 자유는 점점 위협 받고 있습니다. 안전한 사회를 약속하지도 않습니다. 안전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CCTV를 더 많이 설치할 것이 아니라 빈부격차 축소 등과 같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자유와 안전이 서로 상반된다는 논리를 경계해야 합니다.

황재민씨가 동희오토 사내하청업체에서 야간근무 중에 뇌경색으로 쓰러졌지만, 회사 측의 사실은폐와 왜곡으로 산재를 불승인 받았습니다. 황씨의 안타까운 산재사고는 동희오토의 구조적인 문제가 낳은 비극입니다.
동희오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2시간 주/야 맞교대를 하면서 살인적인 노동 강도로 하루하루 골병과 만성피로, 위장병, 불면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으로는 그것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입니다. 장시간, 심야노동, 그리고 살인적인 노동강도로 제2, 제3의 황재민 씨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금속노조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는 산재 피해자와 그 가족의 삶을 지켜내고, 동희오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그 한 축으로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행정소송 비용 마련 모금에 함께 해 주세요.

http://socialfunch.org/dauto

안녕하세요. 진보넷 회원 이은희입니다. 진보넷과 인연을 맺은 건 몇년도인지 기억이 안 나는 먼 옛날 진보넷 메인 화면에서 활동가 모집 공고를 봤을 때 였습니다. 그 때는 대학교 졸업반이었고, 은행나무가 기둥처럼 늘어서 있는 갈월동 길을 따라 진보넷 사무실에 처음 가면서 가면 무얼 할까 두근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정보운동도 모르고 심지어 참세상 아이디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무작정 사회단체에서 일해보겠다고 가서, 진보넷에서 많이 배우고 일도 약간 하고 사고도 많이 치고 그랬지요ㅎㅎ
지금은 회사에 다니면서 IPLeft 모임에 나가고 있습니다. 지적재산권이 강해지는 게 맞는걸까, 창작자를 위한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모임에 나가는 활동만 하고 있는데 쉽지는 않습니다. 제 고민은 초보적인데 세상은 참 빨라요.
세상이 이렇게 빨리 변해가는 동안 같은 자리 지키면서도 새로운 이슈들에 대해 대응하고, 더 효과적으로 말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새로 만들어가는 진보넷에 감사와 지지의 인사를 드립니다.^^

표현의 자유가 급격히 위축되는 사회입니다. 때문에 더 예민한 촉으로 현재의, 그리고 앞으로 다가 올 미래사회의 정보인권문제에 대해서 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 메신저 대란이나,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건들로 이제서야 “정보인권”의 중요성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우리가 미래 사회의 정보인권을 상상하기란 역시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그럴 때 머리도 식힐 겸 볼 수 있는 영화가 테리 길리엄 말고 또 있을까요?^^
에서는 그의 영화 에서 보여줬던 것만큼 직접적으로 감시사회를 표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더 세련되고 은유적인 표현들이 역설적이게도 현대 사회에 교묘하게 잠식해 있는 감시사회의 일면을 잘 꼬집고 있습니다.
주인공 코언레쓰의 이름은 회사에서 제대로 불려지지 않습니다. ‘쿠힌’이나 ‘큐’ 등 아무개 정도로 불리지요. 마치 “네가 무슨 이름이든 내가 무슨 상관이야. 넌 회사에서 정해놓은 대로 부품처럼 할 일만 하면 돼” 라는 태도입니다.
이런 주인공의 일상은 CCTV로 24시간 녹화되어 회사로 보내집니다. 업무 공간 뿐만 아니라 파티장, 집 등 사적인 공간까지 경계가 없이 감시됩니다. 여기엔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아무런 위화감도 느끼지 못하죠. 단지 등장인물 밥만이 “누군가 날 보는 건 정말 못참아” 라던가, “난 누군가의 툴이 아니니까”라는 말을 똑부러지게 할 뿐입니다.
이 영화 속에서 모든 개인은 거대 회사들의 부품으로서만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습니다. 그리고 내가 살기 위해서 이 회사는 영원해야 하며, 다른 이도 영원히 부품으로써 존재하기를 간절히 바라지요. 영화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혼은 사회에서 아직 본격적으로 부품화하지 않은, 제일 어리고 연약한 밥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코헨과 밥이 동네로 산책을 나가는 장면은 이 영화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미래사회에선 산책 한번에도 수많은 광고와 세뇌에 노출되어야 하며, 해서는 안되는 것들을 보여주는 많은 표지판들을 그림자처럼 가깝게 마주쳐야만 합니다. 현시대의 과장된 욕망과 통제를, “미래”라는 시제 속에서 어떻게 테리 길리엄 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풀어냈는지를 살펴 보면 아주 흥미롭습니다.
법기술자가 날로 늘어갑니다. 개인 메신저를 당사자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싹슬이하는 수사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자 검찰은 뻔뻔하게 논점을 흐리고 메신저가 없으면 간첩을 잡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노조가 파업했더니 법대로 손해배상 액을 158억이나 물리겠답니다.
법 논리대로 하자는데 그 법 안에 인권의식은 쑥 빠져있는 헛 법만 남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보인권은 법 논리 앞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의식적으로 헛법에 갇히지 않도록 민감해야 할 때입니다. 내가 동의한 법 논리인지 생활 속에서부터 따져보고 문제가 있으면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테리 길리엄이 그리는 미래처럼 감시사회에 영혼을 내어준 인류의 세계에선 우리가 어떤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는지 판단하기 조차 불가능한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편집자주:
이번에 소개하는 글은 유럽의 정보인권 단체 네트워크인 EDRI의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지난 6월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대량 감청이 폭로된 이후, 디지털 시대의 대량 감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유엔 차원에서 어떠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잘 정리하였습니다.


*번역 오류는 antiropy 골뱅이 jinbo.net 으로 알려주세요.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원회 특별 토론에서, 플라비아 판시에리 유엔인권 부대표는 국가와 민간기업에 의해 수행되는 대량 감시 점증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녀는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보안 위협의 해결에 필수성과 비례성(necessary and proportionate)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전화 회사나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가 향후 법 집행기관이나 정보기관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소비자들의 통신에 대한 메타 정보를 보관하도록 요구하는 ‘의무적 제3자 데이터 보관(mandatory third-party data retention)’ 제도는 필요하지도 적절하지도 않아 보인다”고 그녀는 말했다(*편집자주 : 통신 메타 정보란 통신 일시, 통신 회수, 통신 상대방 등에 대한 정보로서 한국의 통신비밀보호법 상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의미하며, 한국 역시 전기통신사업자들에게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일정기간 보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판시에리의 요구는 이 이슈에 대한 유엔의 몇 가지 개입 시도 중 하나이다. 일부 감시 관행과 이것이 인권에 미치는 위협에 대한 세계적 우려에 응답하기 위해, 2014년 6월,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디지털 시대의 프라이버시권”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정치적 반대자 혹은 반체제 인사를 목표로 한 디지털 감시의 사례들과, 정부가 통신 사업자 네트워크의 트래픽에 접근권을 요구하며 이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금지하겠다고 협박한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법을 준수하며 수행되는, 정당한 법 집행 혹은 정보(기관의) 활동을 위한 전자 통신 감시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대량 감시 프로그램이 “국제법 표준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감시에 대한 보다 강력한 안전장치가 어느 정도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2014년 9월에 발표된 또 다른 보고서는 테러 대응 목적의 디지털 대량 감시가 프라이버시권에 갖는 함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벤 에머슨 유엔 반테러·인권보장 특별보고관은 9월 23일 유엔 총회에 이 보고서를 제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가는 대량 감시 프로그램이 온라인 프라이버시권을 완전히 제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똑바로 직시할 필요가 있다.”

보고서에서 에머슨은 국가가 특정한 개인 혹은 단체의 인터넷 활동의 개요를 쉽게 감시할 수 있고, 그들에 대한 사전 협의 없이도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이러한 종류의 감시가 “통신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을 권리에 대한 체계적인 제한에 이르렀으며, 따라서 이를 정당화할 납득할 만한 설명이 요구된다”고 환기했다. 이 보고서는 “상세한 설명없이 단지 대량 감시기술이 테러 활동의 제약과 기소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것의 사용에 대한 적절한 인권법 상의 정당성을 제공하지 못한다”라고 결론을 지었다.

2013년에 유엔 총회는 디지털 시대의 프라이버시권 결의안(68/167)을 채택했다. 인권최고대표가 준비한 최종 보고서는 2015년 유엔 총회에 제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국가가 국제 인권법을 존중하면서 자신들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 권고사항을 제시하고, 원칙, 표준, 좋은 관행을 명확히 함으로써 감시에 대한 국제적 관행을 개발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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