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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주민번호 유통기한 다가온다… 큰 혼란 올 수도

By 2014/02/27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신훈민
snunecro@gmail.com
진보네트워크센터

주민번호 유통기한 다가온다… 큰 혼란 올 수도
[개인정보보호, 이대론 안 된다③] 주민등록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

지난 1월 말 카드3사 개인정보유출 사건이 터진 뒤 주민등록번호가 가진 위험성이 시민단체와 언론 등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지난 12일엔 진보네트워크센터와 경실련,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 시민단체들과 민병두 민주당 의원 등이 참여한 주민등록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이번에 제출된 개정안이 현행 주민등록번호 체계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본다. 종국적으로 이 법안은 유출된 현행 주민등록번호 체계의 폐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한국의 현행 주민등록번호는 일생동안 변하지 않으며 모든 개인정보를 연결하는 ‘열쇠’로 기능한다. 번호 그 자체에 생년월일과 성별, 출생지 등의 개인정보를 담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개인정보보호법 제2조(정의)의 제1호에서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정보라 한다. 주민등록번호는 ‘국가의 정보’가 아니라 ‘나의 정보’다. 사실 개인정보가 유출되었을 땐, 마음만 먹으면 다른 개인정보(심지어 이름까지도)는 모두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주민등록번호는 유출되더라도 변경이 불가능하다. 설사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인해 2, 3차 피해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현행 주민등록법 하에서는 바꿀 수 없다.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허용하는 몇 가지 예외 사유가 있으나 유출은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되어 전 세계에서 떠돌고 2, 3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면, 이를 과연 ‘나의 정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완벽한 보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주민등록번호에 거의 모든 개인정보가 연결되어 있다. 역으로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만능열쇠(master key)’다. 극단적으로 집중화되었고 효율적이다. 그러나 보안에는 매우 취약하다. 이러한 통합적인 개인 식별 번호가 존재하는 한 내외부의 유출시도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이미 극단적인 효율성을 추구해야 할 단계를 넘어섰다. 효율로 인한 이익과 유출로 인한 손해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완벽한 보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늘 유출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정보를 분산하고 사용 목적을 제한하고 정보유출 시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개인이 자유롭게 변경하도록 하는 것이 보안의 기본이다.

‘민증을 까면’ 우리는 생년월일, 성별, 그리고 출생지라는 상대방의 기본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나이, 성별, 출생지에 따른 차별이 주민등록번호에만 근거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기본정보를 항상 확인할 수 있다는 전제는 그 차별을 강화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한다. 특히 지역차별이 심한 한국 사회에서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언제든지 확인이 가능한 출생지 정보는 언제든지 인사상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주민등록번호 상에서 개인의 기본정보를 삭제하는 것은 좀 더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작은 발걸음이 될 것이다.

정부는 주민등록번호 대체 수단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그것이 개인정보유출과 같은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특히 아이핀과 같은 대체수단은 유출된 주민등록번호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주민등록번호와 큰 차이가 없다. 게다가 전 국민을 분노하게 했던, 1억 건에 달하는 이번 개인정보유출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코리아크레딧뷰로(KCB)가 아이핀 발급기관이다.

아이핀 등을 대체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몇몇 특정 기업에 주민등록번호 외에 대체수단 정보, 본인인증내역 등 더 많은 정보를 몰아주는 것에 불과하다. 정보유출로 인한 혼란 속에서도 고양이에게 다시 생선을 맡기겠다는 정부의 안일한 발상은 무척 충격적이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 숫자는 이미 포화상태

주민등록번호가 너무 많이 그리고 자주 유출되어 ‘전 세계인의 공공재’라는 비웃음거리가 되었지만, 정부는 유출된 주민등록번호가 국가 기간망이기 때문에 폐지할 수 없다고 한다. 작은 사건만 발생해도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운운하는 정부가 유출된 주민등록정보로 국가 기간망을 운영하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유출된 주민등록번호를 변경, 폐지하고 공공기관 내에서도 목적별로 별도의 번호를 사용하는 것이 정부가 늘 강조하는 국가안보에 적합하게 ‘국가 기간망’을 운영하는 방법이다.

주민등록번호 중 뒷자리 첫 숫자는 이미 포화상태다. 1~2는 1900년대 남녀, 3~4는 2000년대 남녀, 5~6은 외국인 1900년대 남녀, 7~8은 외국인 2000년대 남녀, 9~0은 1800년대 남녀로 되어 있다. 이미 사망한 사람의 번호를 재할당 하더라도 기존 번호와의 중복 문제가 생겨서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한다. 최근 금융권은 유출된 주민등록번호의 경우, 짧게는 30~50년 밖에 못 사용하니 수백억 원에서 천억 원에 달하는 주민등록번호 암호화 비용을 지불하기 힘들다는 입장도 내놓기도 했다.

위와 같은 현행 주민등록번호의 구조적인 문제는 유출된 주민등록번호를 기반으로 한 대체수단 도입 등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대체수단 도입은 땜질식 처방일 뿐이고 오히려 사회적 비용만을 초래할 것이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고는 하나, 주민등록번호 체계 변경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이러한 부분까지 고려해야 한다. 근본적인 개편이 사회적 비용과 혼란을 줄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국회에서 주민등록법 개정안이 논의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주민등록번호가 국민통제의 목적으로 도입되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유만으로 국회가 작금의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법을 만들고, 개정하고, 폐지하는 곳은 국회다. 현재 도로명주소로 국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고 정부는 공격을 당하고 있다. 도로명주소법을 만든 건 국회다. 국회는 책임감을 가지고 주민등록번호 체계의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열망이 법 개정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신훈민(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변호사) 

* 오마이뉴스 2014.02.25 자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60093

2014-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