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자유행정심의

일베와 표현의 자유

By 2013/11/19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일베와 표현의 자유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최근 우리 사회는 일베로 대표되는 혐오 발언(hate speech)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가장 문제적인 인터넷 커뮤니티로 떠오른 일베(일간베스트)는 5.18 희생자들을 ‘홍어’로, 여성을 ‘김치년’으로 비하하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할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사람들을 싸잡아 ‘종북’이라고 공격한다. 악성댓글을 다는 키보드 워리어, 이른바 악플러의 대표주자격이라 아니할 수 없다. 특히 10대와 20대와 같은 젊은 세대 속에서 일베적 표현과 문화가 확산되어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이들이 자라면 우리 사회에 광주 시민, 여성, 진보를 혐오하고 공격하는 문화가 횡행하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일베를 폐쇄하거나 형사처벌로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에 반대한다.
 
그것은 첫째,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이제 여성 비하적 표현과 종북이라는 용어를 일베 뿐 아니라 여러 사이트에서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모든 글을 싸그리 다 삭제하고 보이는 족족 사이트를 폐쇄할 것인가? 혐오에 또다른 혐오로, 폭력에 또다른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옳지 않을 뿐더러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베는 우리 사회 병증을 드러내는 하나의 현상일 뿐 결코 시발점이 아니다. 악플러 한 명이나 특정 사이트를 때려잡는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데서부터 우리의 고민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떻게 우리 사회에 이런 사람들이 생겨났는지 원인을 파악하고 이들이 악플을 그만두게 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정책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다. 
 
둘째, 이 문제의 가장 유력한 해법은 인권 존중 문화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베를 내버려 두는 것은 사실 그들의 ‘표현의 자유’ 때문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혐오하는 발언을 옹호하는 개념은 아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의 정확한 뜻은 ‘국가에 의해 처벌받을 두려움 없이 말할 자유’이다. 반면 같은 시민들 사이에서 무엇이건 말할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1). 만약 한 사회에서 모든 시민들이 자기 자유만 주장한다면, 누군가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2).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가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형사처벌로 대응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지만 전통적인 근대 인권 원칙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제3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당장 속이 시원한 처벌보다 더 사려 깊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것이다. 왜 우리의 학교는 다른 사람을 손쉽게 비난하는 법부터 가르치는가? 공부를 못하면 비난받아 싸다는 발상은, 곧 행동거지가 당당하지 못한 아이는 왕따당해도 싸다는 발상으로 이어질 수 있고, 나와 다른 지역이나 성별, 생각을 쉽게 비난할 수 있는 문화로도 이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긴 세월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을 인간으로 인정하고 혐오를 혐오하는 시민이 많을 때만, 우리 사회가 혐오와 악플을 이겨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표현의 자유의 진정한 의미에 부합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1) ‘표현의 자유’의 정확한 의미는 ‘맘대로 말할 자유’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인권에서 이야기 되어 온 ‘표현의 자유’라는 말에서 ‘자유’(freedom)란 ‘국가로부터의 자유’(free from)를 뜻한다. 그러나 이 ‘자유’라는 말은 ‘무엇이건 말할 자유’(free to), 즉 영어로는 리버티(liberty)와 조금 차이를 갖는다. http://eyler.freeservers.com/JeffPers/jefpco26.htm 참조.
 
2) 우리 헌법 역시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제21조 제1항)고 선언했지만 곧 이어 이 권리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같은조 제4항)고 덧붙이고 있다.
 
코스모폴리탄 2013년 1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3-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