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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데이터베이스와 감시

By 2013/10/13 10월 25th, 2016 No Comments

DNA 데이터베이스와 감시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활동가)

 

기술은 감시의 가장 중요한 행위자이다. ‘감시’가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감시에 사용되는 기술이야말로 특정한 인간 행동을 유발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물론 감시 기술이 늘 설계자의 의도대로 구현되는 것은 아니고, 보통은 그 역량이 과대평가되어 있지만, 감시에서 기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감시 기술의 영향

 

쌍용자동차 노동자 서석문씨는 2009년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점거 파업에 참가하였다가 집단·흉기 등 퇴거불응에 대한 죄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010년 7월, 11종의 범죄를 저지른 구속피의자와 수형인의 DNA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여 관리하고 이용하도록 한 「디엔에이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서석문씨는 2011년 3월 DNA가 채취되었다. 그의 DNA로부터 감식된 신원확인정보는 국가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되었다. DNA 채취 후 그는 변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에도 타액을 남기지 않기 위해 수저를 꼭 닦았다. 담배꽁초는 주머니에 넣어뒀다가 집에서 한 번에 버렸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이다. 서석문씨는 “복직을 한다고 해도, [국가 데이터베이스에] DNA 정보는 평생 남아있다”는 사실을 의식해 왔다고 하며, “언제든지 사건 현장에서 DNA가 발견되면, 용의자로 몰려 검찰청에 출두할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에 시달려 왔다. 국가 앞에 시민 서석문의 생각과 행동이 위축되는 것이다. 이 법의 제정 취지 자체가 법 적용 대상자들의 심리에 영향을 미쳐 재범이라는 행동을 방지하는 데 있다 보니, 법에 따라 작동하는 DNA 감식과 데이터베이스 검색 기술이 그에게 이런 영향을 미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과연 그가 파업 중에 회사와 국가 폭력에 저항한 행위가 ‘다시 저질러져서는 안 되는’ 범죄인지, 시민의 일상생활에 국가가 이런 방식으로 개입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지는 않는지 우리는 물어야 한다.

 

감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여러 목소리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프라이버시권 침해에 대한 비판이다. 프라이버시권은 처음부터 감시 기술과의 긴장 속에서 탄생했다. 1890년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최초의 논문으로 알려진 글에서 워렌과 브랜다이즈는, 무분별한 언론미디어 뿐 아니라 이미지와 소리의 저장 및 재현 기술이 사적인 영역을 침해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영상정보처리기술은 정적이고 동적인 순간을 저장할 뿐 아니라 일정한 공간을 지속적으로 촬영하는 CCTV에 이르도록 발달해 왔고, 이 정보를 저장하고 송수신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역시 대중매체와 더불어 확산되어 왔다. 사생활 침해 논란도 기술의 발달과 함께 계속 불거져 왔고, 침해 영역은 초상이나 물리적인 영역에서 혼자 있을 권리로부터 통신의 비밀,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 결정권으로 커져 갔다. 인터넷 시대에 이르러서 감시 기술은 생각할 자유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의 인터넷 검색어를 알면 그 사람의 머릿속까지 훑을 수 있다.

 

DNA 데이터베이스의 도입

 

계속되는 논란 속에서도 최근 감시 기술은 사회 문제에 대한 유력한 해법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에서 범죄자의 DNA 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 보관하였다가 수사에 이용하자는 발상은 1990년대 중반부터 경찰과 검찰이 각각 제기하여 왔지만, 인권침해 논란과 검경간의 관할권 다툼으로 실제 입법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2002년 강남구에서 처음 도입된 방범용 CCTV 또한 서서히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도 인권침해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 혜진·예슬 사건 등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흉포한 범죄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이 사건이 총선 등에서 정치 쟁점이 되면서 정부는 아동·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엄벌주의를 천명하였다. “사법체계로 아동 성범죄를 예방하겠다는 발상 대신 아이들이 위기에 내몰리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사회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더 열중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기관별로 성범죄 방지대책을 쏟아내면서 CCTV 등 감시 기술의 공적 확산 또한 강화되었다. 특히 2008년 발생한 조두순 아동 성폭행 사건과 2009년 초 발생한 강호순 여성 연쇄살인사건을 직접적인 계기로 정부는 「디엔에이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을 신속하게 입법예고하였고 이 법은 7개월 만에 국회를 통과하였다.

 

DNA법은 “최근 발생하는 흉악범죄는 갈수록 흉포화·지능화·연쇄범죄화되어 가고 있으므로 이러한 흉악범죄부터 국민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하여 선진 각국에서 흉악범죄에 대한 성공적인 대책으로 정착된 DNA신원확인 데이터베이스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명분으로 입법되었다. 그러나 DNA 데이터베이스를 도입한 국가들에서 실제로 이 기술이 범죄를 방지하는 데 효과를 발휘하였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재범의 위험성이 높은 강력범죄를 저지른 자만 채취 대상으로” 한다는 정부 발표와 달리 실제로는 11종에 달하는 광범위한 죄를 대상으로 하면서 용산 참사 사건의 농성 철거민과 점거 파업을 벌인 쌍용 노동자를 대상으로 DNA 채취가 이루어졌다.

 

2011년 6월 용산 철거민과 쌍용 노동자 들이 DNA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헌법재판소는 2013년 7월 11일 이 법의 위헌 여부에 대한 공개변론을 개최하였고, 2014년 8월 28일 결국 5대 4로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재판의 주요 쟁점은 영장주의 위반 및 적법절차 원칙에 대한 것이었으나, 이 제도가 과잉한 기본권 제한이 아닌지에 대한 논쟁 과정에서 과학기술적인 쟁점이 크게 불거졌다.

 

DNA법과 과학기술 논쟁

 

먼저 이번 사건에서 상대방인 경찰과 법무부는 ‘DNA 신원확인정보’가 ‘유전정보’와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DNA 신원확인정보는 오로지 숫자와 부호의 나열에 불과한 개인식별정보일 뿐 신원의 일치성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정보 외에 유전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DNA 신원확인정보가 비코드화 영역인 인트론 부분에 속하는데, 이 영역은 개인을 식별하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부분 외에는 정크(junk) 영역으로서 민감하다고 볼 수 있는 유전적 특질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주장에 따라 입법된 DNA법 또한 “디엔에이감식이란 개인 식별을 목적으로 디엔에이 중 유전정보가 포함되어 있지 아니한 특정 염기서열 부분을 검사·분석하여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를 취득하는 것을 말한다”(제2조 제3항)고 규정되어 이른바 ‘유전정보’와 ‘DNA 신원확인정보’를 확연히 구분하고 있다. 공개변론 재판정에서는 법률 정의상으로 DNA 신원확인정보가 민감한 유전정보를 포함할 수 없다는 재판관들의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헌법소원 청구인 측 변호인들은 “검·경의 거짓 주장”이라고 격분하였다. DNA 신원확인정보도 DNA 염기서열 정보인 이상 유전정보라는 것이다. 검·경이 DNA 신원확인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채취, 감식하는 소위 정크 DNA에도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수많은 부위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고, DNA 신원확인정보 그 자체만으로도 남녀, 가족관계, 다운증후군 여부와 같은 정보를 직접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STR 유전자에서의 대립유전자 분표 및 이들의 빈도는 민족 또는 집단마다 다르다는 점도 인정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 논쟁은 다분히 2002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 유래한 것이다. 당시 독일은 우리보다 먼저 DNA 데이터베이스의 위헌성을 심사하였는데, DNA가 지문처럼 신원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정보일 뿐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판단은 DNA 채취로 인한 기본권 침해가 지문보다 크지 않다는 결론으로 이어졌고, 이번 재판에서 검경 역시 같은 주장을 하였다. 변호인 측은 독일의 결정 시점으로부터 과학이 계속 발달해 왔다며 반박했다. 2003년 인간유전체 사업(human genome project) 종료 후에는 학계에서 정크 DNA를 과거와 같이 쓰레기 또는 쓸모 없는 DNA라는 의미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원확인에 사용되는 DNA 부위와 질병 등 다른 정보의 분석에 이용되는 DNA 부위가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분석 위치만 다르기 때문에 분석과정에서 식별정보 이외의 다양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DNA 정보가 오용 또는 남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무엇보다 DNA 정보는 한 개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특성을 가진다. 이로 인하여 DNA 데이터베이스를 도입한 국가들에서는 용의자가 아니라 부모나 형제자매의 DNA를 수사 실무에서 이용하는 ‘가족 검색’(familial searching)이 확산되어 왔고, 이는 인종 차별이나 연좌제(Guilt by Association)와 다름이 없다는 비판 또한 커져 왔다.

 

검경은 한국에서 가족 검색은 아직까지 불법이라며, DNA 데이터베이스를 운용하는 데 있어 오남용이 없도록 완벽한 법적, 기술적인 대책이 마련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감시 사회에서 민주주의란

 

국가적으로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운영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기술이 사용된다. 한 가지는 DNA 감식 기술이다. 법에 따르면 DNA 감식 기술은 채취된 디엔에이 시료에서 개인 식별을 목적으로 신원확인정보를 취득하는 데 사용된다. 이렇게 취득된 신원확인정보들은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데이터베이스’에 체계적으로 수록되어 추후 접근이나 검색이 용이한 형태로 저장된다. 이때 데이터베이스는 대상자로부터 DNA시료를 채취하고 검증하는 것을 넘어,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대상자의 DNA 정보를 검색하여 수사에 활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서석문씨처럼 DNA를 채취당한 이들을 위축시키는 것은 DNA 신원확인정보의 과학적인 식별성이나 감식 기술이라기 보다, 평생 삭제되지 않는 데이터베이스일 것이다.

 

DNA 데이터베이스를 국가 차원에서 구축하고 운영하는 제도의 근저에는 범죄의 원인을 사회적·환경적 요인이 아닌 개인적 또는 유전적 차이로 파악하려는 발상이 있다. 이 발상의 한 극단에는 범죄의 문제를 인종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DNA법 도입을 위한 정부 공청회에서 정부 측 전문가는 “만약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의 유전자형이 미리 갖추어져 있다면, 해당 범죄가 이러한 사람들과 연관되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어 범죄 해결에 도움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이 주장은 “반사회적인 부모는 일반적인 부모들에 비해 반사회적인 자식들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며, 가족 검색을 수사 실무에 활용할 것을 촉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용의자의 신원확인을 통해 재범을 방지한다는 제정 취지 이면에, 사실은 국가가 전 국민을 포괄하는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고, 더 나아가 DNA로 국민 중에 범죄자형과 아닌 자를 구분하려고 시도한다면 이는 우리 사회 민주주의에 중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인권 침해 논란이 계속되는 DNA 데이터베이스에 대해 과학자 사회에서 다양한 의견 개진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다. 좁은 인적 네트워크와 프로젝트 이해 관계로 점철된 관련 학계가 논쟁에 개입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인지도 모른다. 앞서 살펴 보았듯이 이 문제는 범죄자 한 사람의 DNA 문제를 넘어 잠재적인 범죄자이거나 그 가족이라 할 우리 사회 전체 시민의 문제이다. DNA 데이터베이스와 같은 감시 기술에 대한 해결책을 시민참여에서 찾을 수 있을까?

 

기술은 감시의 가장 중요한 행위자이지만, DNA 데이터베이스가 한국 사회에 작용하게끔 도입을 결정한 것은 우리 사회였다. 일차적으로는 수사기관들의 요구와 다양한 입법화 활동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지만, 이 제도의 가장 큰 지지자는 시민 사회이다.

 

과학기술의 민주적 사용에 대한 전제는 시민들이 과학기술에 대한 전문가적 신화를 극복하고 그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간 DNA 논쟁은 전문가 신화에 도전하고 시민배심원과 합의회의 등 시민참여의 여러 사례들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DNA 데이터베이스, 특히 국가 DNA 데이터베이스의 문제는 다를 듯 하다.

 

한 사회에 범죄가 횡행할 때 빈부격차 해소와 같은 장기적인 사회 구조 변화는 비용이 많이 들고 막연한 해결책이다. 반면, CCTV, DNA와 같은 기술적 해결책은 무엇보다 가시적이기 때문에 유권자에게 호소하기에 좋고,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하다. 무엇보다 오늘날 경찰력의 강화와 ‘뉴빅브라더’형 감시 국가는 시민들의 요청에 의해 도래해 왔다. 시민들은 더 이상 사회국가가 아닌 국가와 연합하여 ‘쓰레기 인간’, 즉 소비력이 없고 시민들의 일상 생활을 위협하는 난민, 이주민, 그리고 범죄자들을 감시하고 시민 사회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다.

 

범죄자는 시민인가? 수형 생활을 모두 마치고 사회 복귀를 기다리는 수형인들에게 뒤늦게 제정된 이 법이 DNA 채취를 강제하는 것이 ‘신뢰보호의 원칙 위반’이라는 주장에 대해 검경은, 이들이 나중에 범죄를 범하여 용의자가 되었거나, 당해 범죄현장에서 이들의 DNA가 발견되었을 경우만 문제가 될 뿐이라고 일축한다. 수형자들의 신뢰에 대한 보호 가치보다 이 법의 공익적 가치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구인 측 참고인은 수형인 역시 국가 형별권에 대해 시민으로서의 신뢰가 보호되어야 한다고 항변하였다. 이 문제를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참여 문제에 대입하면 결국 “누가 시민의 자격을 갖는가”가 핵심적인 문제가 된다. 이 제도의 당사자로서 범죄자의 발언권을 인정할 수 있는가? 시민들은 자신이 범죄자, 혹은 그 가족이라는 전제로 이 제도를 평가하지 않는다. 감시 기술은 떳떳치 않은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될 뿐, 내게는 이익과 재산을 보호하는 고마운 기술이라는 완고한 구분이 시민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 시민들은 감시당해 싼, 쓰레기 인간들과 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지점이 감시 문제의 대부분이 봉착하는 어려움이다.

 

감시 문제가 과학기술 민주화와 만나면 묘한 진동이 발생한다. 감시 기술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의사결정에 시민이 참여해야 한다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이상의 고민이 필요하다. 이 기술에 의해 배제되는 이들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 평가가 필요한 것이다. 헌재 결정 이후 검찰은 전국적으로 노동자와 활동가들에 대한 DNA 채취에 나섰고, 앞으로도 ‘농성죄’를 저지른 노동자들과 활동가에 대한 채취 요구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와 철거민에 대한 DNA 채취와 국가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합헌이라니, 이제 국가는 성범죄자 유전자 뿐 아니라 ‘반사회적’ 성향의 유전자도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DNA 채취 대상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시민성’ 사이에 선을 그어 버리는 발상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헌재의 결정은 좀처럼 뒤집혀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98호 (2013. 7/8)에 게재된 글을 수정하였습니다.

2013-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