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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법 둘러싼 인권침해 논란... 11일 DNA법 헌재 공개변론 열려{/}“어딜 가든 감시당하는 기분”… 이게 다 DNA 때문이다

By 2013/07/17 2월 27th, 2020 No Comments
시행 4년 차를 맞은 DNA법(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의 명암은 확연히 엇갈렸다. 국가기관에서 관리하는 DNA 데이터베이스의 규모가 커질수록, 더 많은 수의 범죄를 해결할 수 있고, 방지할 수 있다는 게 DNA법 찬성론자들의 논리다. 그리고 잇따라 발생하는 강간·살인 등 강력 사건은 DNA법을 존속시켜야 한다는 여론을 뒷받침했다. 반면, 인권단체에서 제기했던 우려의 목소리는 수사기관의 ‘과학수사의 성과’라는 주장 아래 묻혔다.

수사기관으로부터 DNA 채취를 당한 대상자들 중 일부는 일상 생활에서 ‘빅브라더'(감시자)의 존재를 체감하고 있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인 서석문씨는 DNA 채취 이후 “올가미가 채워진 것 같다”며 “사람이 없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서 살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생물의 생명 현상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DNA의 특성상 혈액·타액·모발·구강점막 채취를 통해 수사기관에서 채취 대상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DNA 채취, 평생 감시당하는 느낌 지울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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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1년 6월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서석문씨가 DNA채취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금속노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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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관이 내 DNA 정보를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강박관념이 생겼다. DNA채취 당한 이후 전 자유의 몸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한 평생 감시 속에서 살아야 하지 않나.”

쌍 용차 해고노동자 서석문씨의 말이다. 서씨는 쌍용자동차 파업 과정에서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2011년 4월께 수원지방검찰청 평택지청에서 DNA를 채취당했다. 당시 서씨는 구강채취에 대한 거부감만 있었을 뿐, DNA 채취 이후 겪게 될 일을 생각하지 못 했다. 그는 DNA 채취 이후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렸다. 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에도 타액을 남기지 않기 위해 수저를 꼭 닦았다. 담배꽁초는 길에다 버리지 않고, 주머니에 넣어뒀다가 집에서 한번에 버렸다.

서 씨가 이러한 행동을 한 이유는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는 “복직을 한다고 해도, DNA 정보는 평생 남아있다”며 “현장 가서 일을 해도 언제든지 사건 현장에서 DNA가 발견되면, 용의자로 몰려 검찰청에 출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각 호’에 해당하는 경우
1. 데이터베이스에 새로운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를 수록하는 경우
2.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범죄수사 또는 변사자 신원확인을 위하여 요청하는 경우
3. 법원(군사법원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이 형사재판에서 사실조회를 하는 경우
4. 데이터베이스 상호간의 대조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11조

DNA법 11조는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담당자는 다음 각 호(오른쪽 박스 참고)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를 검색하거나 그 결과를 회보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단 DNA신원확인정보가 수집되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돼 장래에 발생할 형사사건이나 미제사건의 수사에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DNA 증거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 때문에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자신이 범죄자가 아니라는 점을 경찰 앞에서 해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며 “(DNA가 채취된 대상자는) 범인이 아님에도 현장에서 DNA가 발견될 경우 범인으로 몰릴까봐 걱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용산참사 당시 구속된 김창수씨는 수형인 신분으로 DNA를 채취당했다. 그는 “DNA를 국가기관에서 갖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일상생활에서 제약을 받는다”며 “범죄를 안 저지르고 조심히 살면 되지 않겠냐고 할 수 있겠지만, (형기를 마친 후에도) 보호관찰을 받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그것 자체가 인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DNA 정보는 법원의 무죄·면소·공소 기각 판결 결정이 확정되거나,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가 아니면 삭제가 불가능하다.

DNA법 기술이 만든 신 연좌제, ‘가족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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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DNA는 가계당 한 개씩만 가지고 있어도 전 국민의 정보를 담을 수 있다”며 “처음 채취한 사람이 사망해도 DNA는 계속 남아 그 가족을 검색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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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슬리퍼’ 연쇄살인사건은 DNA 정보를 이용한 가족검색(Family Search) 기법을 활용해 범인을 검거(2010년)한 사례다. 미제 살인사건으로 묻힐 뻔한 사건 해결의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사람은 바로 피의자의 아들이었다. 불법무기소지죄로 체포된 아들의 DNA가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되고 아들의 DNA와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익명의 DNA가 부분적으로 일치해 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인 아버지를 25년 만에 검거할 수 있었다.

DNA법과 관련한 대표적인 인권침해 중 하나는 바로 ‘가족 검색’ 문제다. 가족 검색 기법은 친족 간 DNA의 유사성을 활용한 수사 기법이다. 부모와 자식의 유전자는 적어도 하나의 대립유전자가 일치한다. DNA의 특성상 가족구성원 한 명의 DNA 정보를 갖고 있으면, 가족 전체의 DNA 정보를 추론할 수 있는 셈이다. 이 기법을 활용해 그림 슬리퍼 사건과 같이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족과 혈연관계 등 인구사회학적 정보에 대한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에 학계와 인권단체에서도 우려를 내놓고 있다.

미 의회가 발간한 ‘형사행정학의 DNA 테스트’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 검색 기법을 적용하면, 미국 인구 중 17%의 흑인은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찾을 수 있다”면서도 “반면 백인은 4%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이 보고서에는 “유색 인종과 저소득층 등 소수자 계층이 가족 검색 기법의 수사로 인해 용의선 상에 오를 확률이 높다”고 적혀있다.

또 이 보고서에는 “FBI에서 가족 검색 기법을 사용할 때 사건 해결이 어려운 강력 폭력 사건과 성범죄에 한해서 사용할 것을 권장했다”는 내용이 있다.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DNA 정보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DNA 정보의 신원 확인 외에 친족간 수사로 확대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DNA법이 신속한 범인 검거와 재범 방지의 목적으로 도입됐다고 하더라도, 외국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범인 검거의 목적 달성을 위해 다양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2011 년 서울대 등이 대검찰청 DNA 수사 담당관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유전자감식센터와 공동저술한 ‘가족관계를 이용한 DNA 데이터베이스 검색’ 논문에 따르면 “[가족검색]을 어떻게 추진하고 법제화하는 것이 적절한지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서술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가족검색을 수사기법으로 활용하기 위해 논의가 진행됐음을 의심할 수 있을 만한 대목이다.

이 에 대해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지문과 DNA가 가장 다른 점은 DNA가 가족 정보를 포함한다는 점”이라며 “지문은 한 개당 국민 한 사람의 정보만을 담고 있지만, DNA는 가계당 한 개씩만 가지고 있어도 전 국민의 정보를 담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처음 채취한 사람이 사망해도 DNA는 계속 남아 그 가족을 검색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며 “일종의 연좌제인 셈이다, 따라서 국가가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용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꼬집었다.

수사기관의 DNA 수집은 ‘감시 국가’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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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1년 6월 16일, 쌍용자동차 서석문씨가 헌법소원을 접수하고 있는 모습
ⓒ 참세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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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법의 위험성을 주장하는 학계는 DNA법을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이 원인이 돼 다른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는 미끄러지는 경사길 이론과 같다’고 주장해왔다. 미국 뉴욕주의 경우 시작 단계 당시 DNA 입력 대상 범죄가 21개였지만, 불과 몇 년만에 107개로 대폭 확대됐다. 우리나라 역시 DNA법은 성범죄자 재범을 방지한다는 취지로 제정됐지만, 실제로는 그 대상이 방화죄·살인죄·약취유인죄 등 11개에 달한다.

용산참사 당시 구속된 김창수씨는 “생존권을 위해 싸울 수 밖에 없는 사람들한테까지 DNA채취를 하는 것은 도덕적인 흠집을 내기 위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서석문씨는 “자식들한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안하다”며 “살기 위해서 발버둥친 것 밖에 없는데, (DNA 채취를 당해) 자식들한테까지 제2의 피해가 갈 수 있다는 것을 머리 속에 염두하고 살아야 한다, 그게 얼마나 무섭나?”라고 반문했다.

” 국가의 DNA정보 수집은 감시권력의 확장과 위험통제정책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이호중 교수는 “위험한 인물과 집단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감시가 계속 강화되면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퇴시키는 위험한 길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7월 11일 헌법재판소에서 서석문·김창수씨의 ‘디엔에이감식시료 채취행위위헌확인’에 대한 공개 변론이 있을 예정이다. 헌재가 공개변론을 연다는 것은 해당 사건의 위헌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날 공개변론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참세상’에도 실렸습니다.

* 오마이뉴스와 참세상에 2013.7.10 기고한 글입니다

2013-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