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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 과연 그랬나?… 유해매체물에서 동성애를 삭제함으로써 조금 더 자유로워질 것인가{/}청소년, 인터넷에서 ‘동성애’를 만나다

By 2004/03/08 10월 29th, 2016 No Comments

좌담

김창균

 

 

 

 

 

 

 

 

 

서동진(이하 서):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가운데 포함되어 있던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기준가운데 ‘동성애 조항’은 청소년보호위원회(이하 청보위)가 만들어냈었던 창의적인 아이디어라기 보다는 그간의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는 사례에 불과하다. 공연윤리위원회가 존재했던 시절부터 존속되었던 것이다. 동성애의 경우, 한국사회에서 90년대 중후반 이후로 동성애사회가 만들어지면서 조항의 삭제를 요구해 왔었다. 그와 관련된 조항은 사실상 삭제되어 왔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번 삭제 여부는 별로 특이할 만한 사안은 아니다.

권장희(이하 권): 결과적으로 동성애 조항 자체가 삭제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절차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동성애가 유해매체물로 규정되는 것 자체가 문제되는 것이고, 표현물에 대한 등급은 수위에 대한 문제이지 장르에 대한 문제는 아니다.

서: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기준 가운데 ‘동성애 조항’이 삭제되는 것을 청보위가 호도하고 있다. 이 조항 자체가 삭제되었을 때 분명하게 정의하고 넘어가야 할 대목들을 은근슬쩍 넘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동성애와 같은 조항이 계속 존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성행위로서 동성애를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의 분류는 성의 접촉이나 직접적인 성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 사회와 관련되어져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성의 접촉이나 직접적인 성행위를 가리키는 성행위의 표현의 문제는 동성애와는 분리될 필요가 있다. 둘째는 청보위가 우리사회에서 일반적인 사회적 규범들을 수용함으로써 인정할만한 기관으로 계속 남아 있으려는 책략이 있다. 청보위가 폐지되야 한다. 위원회정국은 사실 국가가 감당해야 할 포괄적 사안을 시민사회로 떠넘겼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해와 관심을 반영하면서 설득력있게 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하지만 방관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에 불과하다. 셋째는 이성애를 삽입성교로 환원할 수 없는 것처럼 동성애가 특정한 성행위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적표현과 관련해서 일반적인 기준을 수립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해야 한다. 청소년유해매체물 문제와 관련한 사안에서 획일적으로 단순화하고 있는 측면이 있는데 동성애는 선험적으로 거부되어져야 하는 무엇으로 전제되어 있다.

권: 3년 전부터 동성애 조항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문제가 됐다. 정보통신위원회(이하 정통위)가 사이트 폐쇄와 관련해서 한 변명이 청보법에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통위의 폐쇄조치와 청보법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청보법에 따르면 19세 이용불가만 표시하면 된다. 구분해서 유통하라는 것이다. 헌법 어디에도 폐쇄하라는 조항은 없다. 결국 정통부의 폐쇄조치는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른 것이다. 자신의 자체 심의 기준이 있는데 청보법에 떠넘기는 것이다. 다만 절차적으로는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받았고 이슈화돼서 삭제하는 쪽으로 갔는데, 논의가 동성애자 인권을 보호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는 옳지만, 청소년보호법(이하 청보법) 폐지운동 과정에서 동성애도 이성간의 성적행위와 똑같다고 하는 것으로 충분한 토론없이 그냥 넘어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성애에 있어서도 성적으로 노골적인 표현이 있으면 청소년유해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처럼 동성애도 노골성이나 표현의 방법에 있어서 다수가 합의하기 어려우면 그것을 수용해야 한다는데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토론이 충분히 되지 않았다. 동성애는 다 옳은 것이고 다 수용할 만한 것이라고 가는 것은 사실상 위험성도 있고 좀 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청보위가 스스로 ‘동성애’조항을 삭제하지 못한 여파다

서: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데, 절차상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 있다. 절차가 타당했다면 가능했겠느냐, 그리고 절차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와 관련되어 일반적인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유용한 장치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권: 기본적으로 청보법 유해매체물 심의규정에 ‘동성애’ 단어가 기술된 것은 입법미비라고 생각한다. 동성애 단어의 삭제 문제는 청보위 내부에서도 문제가 됐었는데, 스스로 개정하지 못하고 이슈를 만들어주었다.

서: 동성에자들 중 설문조사, 여론조사, TV 토크쇼에서 적극적인 의사를 개진할 수 있는 주체들이 얼마나 되겠느냐. 문제는 동성애자들이 한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기존의 동성애를 금지했었던 규범안에서, 이성애자가 허용하는 합의안에서, 동성애의 삶을 살도록 강요받는다는 것이다. 동성애의 어떠한 행위도 외설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동성애자들은 성적 체험을 자각하면서, 내가 누구인가를 깨닫는다. 동성애자와 사회가 맺는 일차적인 관계는 성이다. 왜냐하면 한국사회 안에서 동성애를 성애화시켜 왔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들은 실제로 성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문화적인 성징이든 혹은 문화적인 관례이든, 그것을 체험하고 습득함으로써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느끼고 소속감을 느끼는 것 같다. 동성애자들에게 성이라는 것은 사회를 만들고 자기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삶이 만들어지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성적인 관계 안에서 어떠한 체위를 맡고 있는지는 동성애자들에게는 사회적 역할을 구분하는 중요한 사회적 어휘이다. 그것이음란한 표현으로 규제되어야 한다면 자신들의 삶을 표현할 수 있는 어휘들을 박탈당하는 것이다. 그런점에서 섹슈얼리티가 동성애자들에게 차지하는 의미는 다르다. 포르노 그래피의 의미도 역시 다르다. 이런 문화적인 맥락들을 존중해서 서로 다른 성적 기준을 반영해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이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권: 동성애자들이든지, 다른 약자이든 개개인의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 때문에 인격권이 침해되는 것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열 명의 사회구성원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한 사람이 억압받지 않도록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 한사람을 위해 다른 아홉명이 일방적으로 무시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서동진씨가 말하는 것처럼 동성애자들의 인권만을 위해 기존의 모든 질서를 뒤집는 것을 우리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느냐하면, 그렇지가 않다. 동성애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모든 혜택을 누려야할 특권은 아니다. 동성애자로 겪는 어려움은 그들의 운명이고 자기들이 개척해서 자기의 삶을 살아가야 할 몫이다. 문제는 청소년들이 동성애와 관련된 콘텐츠들에 다가갔을 때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느냐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십대 청소년시기에 성적 정체성과 욕망이 매우 강한데, 성이라는 것이 일생동안 삶을 통해서 억제할 때가 있고, 표현할 때, 누릴 때가 있는데 청소년들이 성을 어떻게 관리해야 되고 어떻게 억제해야 되고 언제 사용해야 하는가를 체득하는 과정으로서 이 시기가 중요하다. 따라서 동성애가 아동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느냐를 우려하는 것이다. 십대 청소년들에게 접근할 때는 세세한 설명이 필요하고, 그 측면에서 그냥 노출시켜서는 안된다. 성에 대해 잘못된 정체성을 가진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풍요롭게 살수 없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이성애적 사랑이라는 환경속의 동성애청소년들

서: 청소년들의 판단능력은 어느 정도인가라고 말을 할 때, 우리는 이미 익숙한 틀이 정해져 있다. 그 정의에 의해서 아이들이 유혹된다, 욕망을 교육해야한다는 식의 틀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교육된 욕망, 유혹된 욕망 이런 말은 사실상 이제 타당하지 않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어떤 동성애자들도 사춘기 시기 동안에 동성청소년들과의 성적인 접촉 속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자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때 정말 자기가 동성애를 자각했다기보다는 사후적으로 자기 삶에 대한 전기적인 이야기를 쓰면서 청소년기를 특화한다. 청소년기가 자기의 성을 체험하기 위한 중요한 시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쪽에서는 동성애가 규제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지만,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그런 억압에서 자기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 툴로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권: 청소년들이 성에 대해 판단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청소년들은 성의 욕구가 미성숙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욕망을 적절하게 제어하고 관리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책임 있는 행동을 하기에는 아직 미성숙하다는 의미다.

서: 1980년대까지 보여져 왔던 성에 대한 태도들보다 지금의 아이들이 어른보다 성적으로 보수적이다. 오히려 편향된 정보들때문에 아이들의 일반적인 성에 대한 태도가 이미 규정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성에 대한 정보들로부터 진공상태에 있을 때 아이들이 더 많은 성적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본다. 이성애자로 규정되면서 겪게되는 청소년들의 좌절에 주목해야 한다. 발렌타인데이에서 빼빼로 데이에 이르끼까지 거의 일년 365일 사랑과 관련된 날에서 살아가고 있다. 예전에 비해 인터넷을 통해 여러 가지 형태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다양한 형태의 성적인 체험과 친밀감을 나눌 수 있는 기회들이 증대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이들이 체험하는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 사귀어야 하고 만나야 되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해답도 주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권: 성을 다양하게 경험한 성인들이 바라보는 것과 아이들이 바라보는 성은 다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 가르쳐야 하고 성을 바르게 사용하는 길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청소년들은 전인격적인 삶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성적으로 환원하려는 성향을 갖기 쉽다. 특히 음란물에 많이 노출될수록 모든 인간관계를 성적 관계로 왜곡되게 이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동성애 컨텐츠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에서 청소년유해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서: 한국사회에서는 성적 판단능력을 말할 때가 아니다. 신문기사에서 십대 때 순결을 지켜야되느냐에 관한 국제설문조사가 있었는데 한국사회가 1위가 나왔다는 것이다. 특히 여자아이들의 경우 거의 80%가까이 나왔다고 한다. 이것을 보면서 청소년들이 굉장히 교활하다고 생각을 했다.

풍요 속에 빈곤, 성문화

서: 청소년들은 혼전순결이라는 것을 윤리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택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선택했을 때 자기 자신을 마케팅할 수 있는 중요한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 하나는 청소년들이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과도한 섹슈얼리티의 공포 때문에 위험과 금지라는 낙인이 붙을수록 아이들에게는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된다. 섹슈얼리티의 과대평가 속에서 검열과 금지가 이루어진다면 섹슈얼리티는 아이들에게 더욱더 매혹적인 스펙터클이 될 것이다. 포르노 그래피를 속죄양화하는 것, 유해매체물을 통해서 성에 대한 유일한 태도와 규범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초라하고 빈약한 성의 세계로 아이들을 몰고 가는 것이다.

권: 청소년들이 금지나 규제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청소년처럼 자유롭게 인터넷을 통해서 아무 것이나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사회는 어디에도 없다. 원론적으로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 선언만 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컴퓨터를 아이들에게 제공하기만 했지 어떠한 성적 콘텐츠를 접하는지 지도가 없다. 부모들이 무책임하고 정부 또한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음란물에 집착하거나 성에 대해 변태적인 행태들을 보이는 것은 단지 음란물에 접촉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로 억압되어 있는 자신의 상태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일 경우가 많다. 건강한 가정에서 정상적으로 자란 아이들보다 깨어진 가정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억압된 아이들이 성적 일탈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청소년들의 성문제는 성표현물의 억압이나 왜곡, 성상품화 문제로만 생각할 수 없고 아이들이 처해 있는 제도적 상황, 입시경쟁과 같은 외부적 환경, 가정환경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해서 분석해야할 것이다.

서: 검열이라는 것이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불완전을 해결하기 위한 감상적이고 상상적인 위안책에 불과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섹슈얼리티가 완벽하게 상업화되어져 있는 한국사회 안에서 아이들이 아이로서가 아니라, 성과 관련된 섹스산업의 소비자로써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섹슈얼리티로 둘러싸고 있는 이런 변화에 대해서 나오고 있는 유일한 대안이 어른들의 언어에서는 검열과 금지밖에 없는 것이다.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섹슈얼리티의 접근으로 청소년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낙후성이 있는데, 고작 아이들이 성에 관해서 어떻게 체험하게 되는 이야기는 우리가 갖고 있는 간단한 생리학적 정보, 피임에 관한 정보나 간헐적인 성적 정보로 환원되어 버린다. 성에 대한 보수성이 위기에 처했지만 성을 둘러싼 급진적인 태도 자체도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성을 둘러싼 공포들을 해결하기 위한 속죄양으로서 청소년이라는 대상을 계속 만들어 내는데, 사실상 청소년들은 없다.

권: 부모들은 아이들이 성인으로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의무감이 있다. 아이들을 걱정하는 대다수 부모들은 현실적인 문제인지, 담론이나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걸러내 달라는 사회적 요구들이 있는데, 청소년들에 대해 보호해 달라는 부모의 요구에 유해매체물을 표시하게 되고 상업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규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서: 청소년과 성에 관련된 사회적인 문화와 문제들이 성의 상업화라고 바라보고 있는데 이 문제의 해결은 가족화라는 성의 담론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인가. 돌아가서 윤리적인 해결책들을 찾자는 것이라면 이런 대안들은 설득력이 없다. 우리사회에서 동성애 자체가 하나의 성행위나 성욕화 돼서 아이들이 접근하지 못하면 여러 가지 소동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성이라는 것을, 어른들이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규범과 단속의 문제로 계속 틀 지우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남아있는 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은 계속될 것이다.

권: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결책이 되려면 부모들의 의식이 그 수준까지 가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서동진씨가 말하는대로 사회적인 담론이나 사회적 투쟁의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서: 나는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다. 20세기 두 번의 혁명을 거치고 난 이후에 성업을 하고 있는 것은 플레이보이에서 시작해서 인터넷 포르노 그래피까지 자본화되고 있는 성의 욕망인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성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자유주의자가 되기는커녕 성의 소비자가 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부모의 위치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혼란은 더욱 극심해 진다고 본다. 부모와 자식간의 이성애적 관계의 존재에서 주어지는 한, 언제 어떠한 형태로 살고 있건 동성애라는 정체성은 외설이라는 것이다. 동성애자가 그 자신 안에서 끊임없이 정체성을 맥락화할 때 이성애자들이 제공하고 있는 문화적 틀 안에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훈육하고 있는 그러한 틀이 성공하는 윤리적 규범으로 잔존하는 한, 성과 관련된 여러 가지 형태의 현대 표현들을 포괄적으로 침해하고 제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권: 성을 상품화하고 청소년들을 성상품의 소비대중으로 몰아가는 시장 메커니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상품화로 왜곡되고 오염된 컨텐츠를 규제하려는 것인데, 실제 싸움의 현장에서는 문화이론가들이 앞장을 서게 된다. 우리는 오염된 물을 먹지 않기 위해 상수원을 관리하고 규제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유해컨텐츠에 대해서도 규제하자는 것이다. 문화적 급진주의가 직접적인 싸움의 대상은 아니다. 실제로 아쉬운 점은 성의 급진주의자들도 성의 상품화 현상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이용할 뿐,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이 대안인가

권: 청소년들이 바람직한 성적 정체성과 가치관을 갖고 자라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는 없다고 본다. 우리 사회가 이미 다양해졌고, 자본의 위력은 사실 생존권 문제와 결부되어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 우위에 있다. 산업논리에 대해 다른 어떤 규범적 주장도 힘을 얻지 못한다. 따라서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 문제에서 책임을 지고 자기의 의식화를 통해서 부모들이 올바로 살면서 모범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서: 내가 말할 수 있는 대안은 미디어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 가능성은 오직 모든 검열과 금지를 폐지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비상업적으로 존재하는 다종다양한 영역 안에서 성에 대한 체험을 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길을 보장해 줘야 한다.

권: 하지만 그런 목적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을 잘 활용하는 집단이 성을 상업화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반작용만 남을 것이다. 원하는 방식으로 선한 결과를 가져오면 좋은데, 사람들을 더 놀라게 하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어떤 대안이 될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서: 한국사회에서 한번이라도 섹슈얼리티에 관해서 새로운 종류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려고 시도해 본적이 있느냐.

권: 어느 나라도 그것은 불가능하지 않느냐?

서: 그런 공간을 만들어 가는 시도는 있어왔다. 가보지 않은 길, 그것이 가능성이다.

 


서동진: 연세대 청년문화연구원, 문화평론가
권장희: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총무

 

 

2004-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