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번호

주민등록번호로 낚이셨습니까

By 2013/06/24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주민등록번호로 낚이셨습니까

 

 

네이트에서 3천5백만 명의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사무실로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가족이 납치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내용의 상담이었다. 다행히도 이 분은 상대방이 사기꾼임을 간파하여 요구하는 돈을 입금하는 상황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고 한다. 문제는 거센 항의를 받은 사기꾼이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적반하장 격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밤길 조심하라며 이름, 주소, 가족관계를 줄줄이 읊었다고 했다. 피해자는 자신이 평생 이런 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냐고 하소연이었다.

 

2007년에서 2008년 사이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2년 7월까지 이런 식으로 보이스 피싱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가 3만 3,080건 발생했고 피해액은 3,531억 원에 달한다. 그 규모는 해마다 증가 추세라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한해에만 보이스 피싱으로 인한 사기피해가 1만 3,000건에 1,000억 원을 넘는다. 2009년에는 보이스 피싱으로 등록금을 사기당한 대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주목할 점은 2007년에서 2008년 사이에 보이스 피싱 피해 규모가 3배 가까이 급증했다는 사실이다.

2007년과 2008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유력한 원인설은 인터넷 실명제의 의무화이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에 의해 2007년 7월부터 일일 평균 이용자수가 10만 명 이상의 사이트에 대하여 ‘제한적 본인확인제’라는 이름의 인터넷 실명제가 의무화되었다. 이때부터 ‘다음’ 등 국내 이용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하여 본인확인을 하지 않을 경우 3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되었다. 정부가 의무화하지 않아도 소비자를 분류하고 타켓팅하는 데 주민등록번호 만큼 시장에서 쓸모 많은 번호도 없다. 곧 국내 인터넷 사이트들 대부분이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처럼 대규모 유출 사고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2008년 옥션에서 1,800만 건, 2011년 네이트에서 3,500만 건. 잘 알려진 유출 사고 외에도 공공기관, 방송사, 게임회사, 이동통신회사, 카드회사, 정당 등에서 크고 작은 유출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서로 종류가 다른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들이 모두 ‘주민등록번호’라는 고유 번호를 기준으로 구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최초로 보고되는 피싱 사기의 사례가 미국 이베이 사이트라고 알려져 있는 등 피싱 사기는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유독 이 범죄가 심각한 것은 주민등록번호 때문이다.

당신이 서로 규모와 종류가 다른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입수했다 하더라도 어떤 데이터베이스의 ‘김철수’가 또 다른 데이터베이스의 ‘김철수’와 같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통상 그 어떤 데이터베이스는 딱 그만큼의 효용만을 갖게 되고, 외국에서 일어나는 보이스 피싱의 경우에도 그 정도 선에서 피해가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 보이스 피싱에 동원되는 개인정보의 규모가 크고 피해 대상도 많은 까닭은, 주민등록번호 덕분에 나쁜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매우 상세한 개인정보를 여기저기서 끌어 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야금야금 유출된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들은 그 규모가 크건 작건 간에 제각기 주민등록번호를 포함하고 있어서 ‘1960년 5월 8일생 김철수’와 ‘1980년 2월 14일생 김철수’를 구분할 수 있고, 법률로 강제된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로서 신뢰성도 매우 높다. 이런 데이터베이스는 많으면 많을수록 효용성이 커진다. 그래서 그동안 전 세계의 날고 기는 해커들이 대한민국 인터넷에 몰려와 온갖 정보를 빼내갔다. 어느 사이트에서는 이름만 입수하고, 다른 사이트에서는 계좌번호만 입수하고, 또다른 사이트에서는 전화번호를 입수한 후, 주민등록번호를 기준으로 이 데이터베이스들을 통합했다. 그래서 “김철수 씨시죠? 주민등록번호는 19600508-******* 맞습니까? 주소는 **시 **구 **동 **아파트 **동 **호가 맞으시구요? 여기는 우체국입니다. 아드님 명의의 계좌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는 전화 사기가 가능한 것이다.

 

쓸모가 많아 쓸모가 없어진

 

이렇게 주민등록번호는 나쁜 쪽으로 참 쓸모가 많다. 다른 나라 인터넷에서는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지 않으니 타인의 개인정보를 손에 쥐고 있어도 쓸 곳이 제한적이다. 반면 여기저기서 본인을 확인하겠다며 신원정보를 요구하는 한국의 인터넷에서는 타인의 개인정보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다. 대면해서 신분증과 얼굴을 확인하기에 너무 바쁜 대한민국에서는 인터넷에서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그 번호의 당사자로 인정해주기 때문에 서비스의 처리 속도가 무척 빠르고 편리하다. 그만큼 주민등록번호만 있으면 타인을 가장하기도 빠르고 편리하다. 최근에는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 때문에 민사상으로, 심지어 형사상으로 소환되는 피해자 소식도 들려온다. 이제 와서 주민등록번호만이 아니라 휴대전화번호, 공인인증서로 2단계, 3단계 인증을 도입한다는 해도, 이 정보 역시 기본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토대로 구축되어 있다. 불과 몇 년 새 전 국민의 수를 훨씬 초과하는 주민등록번호와, 여기 연동된 온갖 개인정보들이 인터넷에 유출되어 버렸으니 완벽한 본인확인이란 미망의 꿈이 되어 버렸다. 유출 피해자들이 평생 반복적인 피해를 당할 수 없다며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정부도, 법원도 이 요청을 기각했다. 피해자들은 마지막으로 헌법소원에 기대하고 있다. 하느님 맙소사, 이 멍청한 정책이 누구 머릿속에서 나왔을까?

인터넷 실명제가 법제화된 것은 2004년 공직선거법서부터였다. 노무현 대통령을 인터넷이 당선시켰다며 전 세계가 주목할 때, 참여정부는 세계 어느 나라도 시행하고 있지 않은 인터넷 실명제의 도입을 공론화했다. 태어날 때부터 국민에게 부여하여 사망할 때까지 변치 않는 국민식별번호가 있는 나라이기에 가능한 발상이었다. 그리고 결국 제17대 총선을 앞두고 국회가 공직선거법에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였다. 주민등록번호의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는 묻혔다. 선거 과정에서 흑색선전 등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다는 명분이 있었으나, 이는 거짓말이었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수백 개의 아이디를 동원하여 인터넷 여론을 조작한 국가정보원 직원들에게 인터넷 실명제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실명제가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 것은 소수자들에 대해서였다. 2007년 12월 차별금지법 논란이 한창일 때, 게시판에 의견을 달면 자신의 이름, 나아가 성정체성이나 국적이 알려질까 봐 망설이던 사람들이 있었다. 입시 정책을 비판하는 게시판을 운영하면, 만19세 미만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선거법 때문에 청소년 글쓴이들이 불이익을 받을까봐 고민하던 청소년 인권 활동가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실명제는 계속 확대되어 왔다. 2007년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포털 사이트에 대한 상시적인 실명제가 도입되었을 때는 악플을 방지한다는 명분이 부상하였다. 인터넷으로 명예를 훼손당한 ‘개똥녀’ 사건을, 여성 연예인들의 자살을, 실명제로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인터넷 문화는 변치 않았다. 우리네 사는 모습처럼 인터넷도 딱 그렇게 소란스럽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결국 2012년 헌법재판소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본인확인제 이후에 명예훼손, 모욕, 비방의 정보의 게시가 표현의 자유의 사전 제한을 정당화할 정도로 의미 있게 감소하였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고 인정하였다.

 

주민등록번호에 대한 미련

 

헌법재판소가 위헌을 결정하면서 정보통신망법에 규정된 실명제는 지난해 8월 23일부로 그 시행이 중단되었다. 그래도 실명제는 계속되고 있다. 공직선거법은 여전히 시행중이며 최근에는 청소년들을 보호한다며 게임 관련 법률에서 본인확인제를 시행 중이다. 당신이 청소년인지 아닌지 알아야 하니 결국 전 국민의 주민등록번호를 게임회사에, 신용정보회사에, 이동통신회사에 입력하라는 것이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할 것 없이 국회에서 스마트폰의 음란물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실명제, 혹은 본인확인제를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들을 계속 발의하고 있기도 하다.

알 만한 사람들이 실명제에 대해 미련을 거두지 못하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첫째, 실명제가 때때로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 보았듯이 2004년 인터넷 실명제가 법제화된 후로 근 십년이 흐르는 동안, 실명제가 의도된 입법 목적 달성은 물론 ‘본인 확인’ 기능을 제대로 수행했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실패했다는 반증이 많다. 게임 셧다운제의 예를 보자. 밤 12시가 되면 주민등록번호로 청소년임이 확인된 이용자들에게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영업하는 인터넷 게임을 모두 차단하는 셧다운제가 2011년 11월부터 실시되고 있다. 그런데 이 제도 실시 이후로, 청소년의 심야시간 게임 이용이 유의미하게 줄어들었다는 통계보다, 청소년들의 부모로 추정되는 중년 여성들의 주민등록번호 사용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통계가 주목을 끌고 있다. 실명제가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실명을 보증하지 못하고 본인확인제가 지금 이용하는 사람이 그 주민등록번호의 주인 본인이 맞는지 확인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제도가 도입된 진짜 이유는 앞에 내세운 정책 효과 이면에 존재할 것이다. 효과가 없더라도, 그나마 이것이라도 해야 하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정부 부처가 ‘그나마 이것이라도’ 하자는 식으로 정책을 실시할 때는 내적으로 그 대상에 대한 통제권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적어도 놓고 있지 않다는 것을 외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청소년 보호를 이유로 본인확인제를 확대하는 최근의 추세는 후자인 경우가 뚜렷하다.

인터넷 본인확인제에 의지하는 주요 집단은 이 땅의 부모들이다. 1993년 월드와이드웹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이고 20년이 흘렀으나 이 매체는 아직도 어떤 이들에게 낯선 세계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의사결정력이 큰 기득권 세력들이 인터넷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거둘 줄을 모른다. 그중에서도 청소년인 자녀들이, 불안정한 노동 시장에서 장차 우월한 경쟁력을 갖추기를 바라 마지않는 부모들은,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첫 번째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 입시에 방해되는 매체 환경에 대해 무척 적대적이다. 특히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보다 익숙치 않아 통제하기 어려운 매체에 대해서 더욱 그렇다. 지금은 게임이나 인터넷이 문제이고, 과거에는 만화와 TV가 문제였다. 다만 자신이 직접 통제하기에는 부모 세대 역시 먹고 살기에 바쁘고, 통제에 필요한 기술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은 자발적으로 자녀의 매체 접근에 대한 결정권을 국가에 의탁한다. 이를 위해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까보여야 하는 침해 상황도 기꺼이 감수할 생각이 있다. 청소년 보호라는 이름으로. 

정책 입안자들과 집행자들은 이런 부모 세대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보다 그들의 표심에 영합하는 정책에 주로 관심을 두어 왔다. 정부 여당 뿐 아니라 야당인 민주당도 그 실제 정책 효과를 따져보지 않고 청소년 보호를 이유로 한 매체 규제 법안을 앞 다투어 발의해 왔다. 본인확인제와 같은 국가적인 매체 규제가 청소년 보호에 미치는 효과가 구체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지만 남들에게 내세우기는 십상이다. 매체 규제는 불안정한 노동 시장과 입시 지옥을 해결하는 것에 비해 가시적이고 비용이 적게 드는 정책이다. 사회가 경쟁으로 치달을수록, 살아남아야 하는 절박감이 커질수록, 입시에 매달리는 청소년과 입시를 방해하는 매체 환경에 대한 규제 여론이 높아질 것이다. 정부 부처에서는 이를 명분으로 해당 매체에 대한 규제 권한을 가질 수 있으니 명분도 실리도 모두 챙길 수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게임 중독 규제를 둘러싸고 여성가족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교육과학기술부가 한 숟가락씩 얹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실명제나 게임 규제가 유지되는 배경에는 정책적 고려보다 정치적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최초의 실명제가 공직선거법에 도입되었을 때에도 그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 면밀히 따지기 보다는 인터넷에 대해 무어라도 통제를 해야겠다는 정치권의 조급증이 작용했을 것이다.

 

혜택은 경찰에게

 

정책적 효과가 전혀 없는 인터넷 실명제가 질긴 목숨을 이어갈 수 있었던 또 다른 정치적 논리는 국가의 편의에 있었다. 개인정보 유출이 계속되고 인터넷이 여전한 악플로 몸살을 앓아도 이 제도가 유지된 것은, 경찰과 국가정보원이 이 제도의 폐지를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경찰은 인터넷 실명제 도입 이후 영장 없이 네티즌들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알아내는 편리함에 푹 빠져 있었다. 인터넷 이용자수에 큰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경찰 등 수사기관에 제공되는 인터넷 이용자들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 통신자료는 2006년 71,024건(문서 기준)에서 본인확인제가 도입된 2007년 93,691건으로 서서히 증가하다가 촛불 시위가 있었던 2008년에 119,280건으로, 미네르바 구속을 비롯해 공안 탄압이 인터넷을 휩쓸었던 2009년에는 143,179건으로 훌쩍 증가해 왔다. 국무총리실이, 인터넷 실명제가 아니고서, 초법적으로 사찰하고 있던 ‘쥐코’ 영상의 블로그 주인이 김종익씨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결국 인터넷 실명제의 주요 목적은 악플 방지가 아니라 네티즌 추적에 있었던 것이며, 이 제도의 주 수혜자는 악플로 고통받는 피해자가 아니라 경찰이었던 것이다. 헌재도 “본인확인제는 … 모든 게시판 이용자의 본인확인정보를 수집하여 장기간 보관하도록 함으로써 개인정보가 유출될 위험에 놓이게 하고 다른 목적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하며, 수사편의 등에 치우쳐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와 같이 취급”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실명제로 수집한 개인정보의 수사기관 제공과 그것으로 인한 인권 침해 문제는 인터넷 실명제의 도입 초기서부터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실명제를 둘러싼 대중적 논쟁 과정에서 이 정책을 추진한 이들은 ‘악플러와의 십자군 전쟁’이라는 선한 외피를 쓰고 논쟁을 탈정치화시켜 버렸다. 혹은 “떳떳하면 드러내라”는 이데올로기가 너무 강했거나. 

 

무죄 추정에서 유죄 추정으로

 

정보인권에서 “떳떳하면 드러내라”는 말은 가장 골치아픈 상대다. 감시기록 장치의 확산으로 근대 헌법의 원칙 가운데 ‘무죄추정의 원칙’은 드라마틱하게 위상이 변화했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르면, 형사 피고인의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되는 것이 마땅하다. 누군가의 유죄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유죄를 주장하는 쪽에서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일상생활은 모든 것이 목격되고 모든 것이 기록되며 모든 것이 이미 증거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떤 의미가 남아 있는가. 손쉽게 입수할 수 있는 수많은 증거들이 편재하는 세상에서는 피고인이 오히려 자신의 무죄를 증거로서 입증해야 한다. 무죄를 입증하는 증거가 없을 경우 유죄일 수 있으며, 어떤 증거의 수집을 거부하거나 증거 능력을 부인한다면 그는 그 사실만으로도 유죄로 추정되어야 마땅한 사람이 된다.

범죄가 발생하면 경찰은 부근의 모든 CCTV를 수색한다. 대상자를 특정하는 수고도 필요하지 않다. 녹화된 모든 사람은 이미 잠재적인 용의자이기 때문이다. 데이터베이스는 디지털 수사의 정점이다. 근처를 둘러보라. 편의점이 있는가? 편의점의 계산기에는 고객들의 계산 내역이 보관되어 있다. 지하철 역이 있는가? 개찰구를 털면 승객들의 승하차 기록을 입수할 수 있다. 집회 참가자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싶은가? 인근에서 신호를 잡는 휴대전화 기지국 몇 군데를 털면 된다.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여지는 사람이 있으면, 인터넷 회선을 통째로 감청할 수 있다. 패킷감청(Deep Packet Inspection) 기술로 인터넷 회선을 감청하면 어떤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생활을 하는지 한 눈에 보인다. 그 사람이 관심을 두고 있는 세상사, 그 사람의 고민, 그 사람이 친교를 맺고 있는 사람들,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 그 사람의 쇼핑, 그 사람의 은행 거래, 이 모든 것을 원 클릭으로 알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심지어 영장 없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마음 먹고 저인망식으로 훑으면 모든 사람의 모든 행동을, 때로는 생각을 터는 것을 가능한 시대이다.

수사는 종종 전 국민 모르게 전 국민을 상대로 이루어진다. 성폭행 용의자가 160cm 이하 O형인가? 대한민국의 모든 남성이 피해갈 수 없는 병무청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보자. 병에서 지문이 발견되었는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만17세에 날인하는 열손가락 지문이 모두 보관되어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돌려보자. 전자주민증이 도입되면 담배를 사기 위해, 맥주 한 캔을 사기 위해, 진료를 받기 위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신분증을 긁은 모든 흔적이 검색 대상이 될 것이다.

만인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시대. 그 만큼 권력도 세상 앞에 투명해질 것인가? 물론 모든 사람들이 휴대전화 속에 내장하고 다니는 영상기록장치 덕분에 과거에는 불가능하던 고발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수학여행을 떠나려고 대기 중인 전교생 앞에서 지각생을 폭행하면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된 폰캠 화면이 실시간으로 유투브에 올라가 전세계 앞에 중계된다. 기록은 확실히 자신의 알리바이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술의 욕망은 끝이 없다. 모든 사람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자 한다. 최근에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범죄를 예측하고 감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과거에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는 자는 가장 예측하기 쉬운 범죄자이다. 그는 ‘우범자’이며 그의 모든 것은 영원히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사회 복귀 따위는 옛말이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평생 지역사회에서 철저히 감시 받아야 하며 그의 DNA는 장래에 발생할지 모르는 어떤 범죄의 증거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 DNA는 친족들이 공유하는 정보이니 우범자 가족도 국가 관리의 대상에서 피해갈 수 없다. DNA 데이터베이스는 본래 성범죄자의 재범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도입되었지만, 기왕에 큰 비용을 들여 도입하는데 성범죄만 대상으로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절도나 저지르고 다니는 싹수 노란 청소년부터, 국가에 저항한다고 농성을 하는 노동자와 철거민도 모두 그 대상에 편입시켰다. 이 예측 기술은 최근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들을 모아 시민들에 대해 의미 있는 프로파일링을 구축하는 데까지 발달하고 있다. 빅데이터 시대에 각광 받는 데이터 마이닝 기술을 사용하면 테러범일 확률 90%, 간첩일 확률 65%의 이용자도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

 

주민등록번호로부터 너무 멀리 온 것 같은가? 국가가 이 번호 제도를 유지하고 운영하는 핵심 취지는 전 국민에게 번호를 부여하여 출생부터 사망 시까지 국가가 관리하겠다는 독재정권의 발상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정권 십년이라는 세월 속에서도 주민등록제도에 대한 재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엘리트 관료들은 주민등록번호를 토대로 관료제의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기에 바빴다.

1996년 최초의 야당 집권 과정에서 전자주민증을 둘러싼 논란이 잠시 일었으나 그것은 권위주의적 국가신분체계 그 자체에 대한 성찰은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가 1998년 백지화시켰던 전자주민증은 조폐공사-삼성전자 컨소시엄으로 참여정부에서 살아났고, 2010년 이명박 정부가 발의한 주민등록법 개정안은 2011년 민주당의 주도 하에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아마 박근혜 정부에서도 전자주민증이 또다시 등장할 것이다. 3천 5백 만 개의 IC카드, 그것도 카드 내구 연한에 따라 5년에 한번 씩 재발급되어야 하는 전자주민증 시장은 장기 불황의 시대에 공공 부문이 시장에 안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영역이다.

번호가 편리하고 카드가 수익을 낳는다는 실용주의 속에, 나의 개인정보가 어떻게 수집되고 어떻게 이용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정보 인권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번호와 카드로 모든 국민의 모든 일상이 기록되고 수사 편의를 위해 제공되는 상황이 과잉하다는 주장은 “떳떳하면 드러내라”는 논리에 밀리고 있다. 

입시 경쟁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인증하는 상황을 자초하는 학부형 시민은, 마찬가지로 범죄자를 몰아내기 위해 CCTV로 스스로를 인증하는 지역 시민이기도 하다. 형편과 마음이 맞는 사람들하고만 살기 위해 스스로 기록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시민들 사이에서 사회 연대를 꿈꾸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주민등록번호의 문제점은 보이스 피싱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 번호의 문제는 유출과, 그로 인한 신체적이고 재산적인 피해를 훨씬 넘어선다. 우리는 잃어버린 주민등록번호보다 더 소중한 어떤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다.

 

 *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 이 글은 황해문화 2013년 여름호(통권79호)에 게재되었습니다.

2013-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