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자유행정심의

혁명은 이제 인터넷에서 나오지 않는다

By 2012/02/29 10월 25th, 2016 No Comments

2월 23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일반 시민이 인터넷에 게재한 글을 정부가 어느 정도까지 규제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현재 한국의 인터넷 규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는 행정 기관이 맡고 있다. 이 기관은 자신들이 ‘불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뿐아니라 ‘유해’하다고 생각하는 게시물에 대하여 삭제하고, 차단하고, 이용권을 박탈해 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노동절 집회에서 경찰 간부가 비무장 시민에게 장봉을 휘두르는 장면은 사생활 침해이니 삭제. 서울시장이나 경기도지사의 공적 언행에 대한 비판은 명예훼손이니 삭제. ‘멜라민 식품’에 대한 정보는 해당 기업에 대한 명예훼손이니 삭제. 대통령 이니셜을 빗댄 트위터 계정 2MB18nomA은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니 접속 차단.

그중 이번에 소송에 이른 사건은 두 가지였다. 2008년 봄 조중동 광고지면 불매운동이 널리 일었다. 촛불시위에 대하여 배후세력을 의심하는 시장지배적 신문사에 대하여 분노한 시민들은 이들 신문의 광고 기업들에게 항의 전화와 게시물을 퍼부었다. 그런데 그해 7월 방통심의위는 불매운동 게시물이 기업들의 영업을 방해했으니 불법이라며 삭제하였다. 2009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국내산 시멘트의 유해성을 지적한 환경운동가의 게시물이 논란을 빚자 방통심의위는 이 게시물이 한국양회공업협회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았다. 반대 여론이 일자 일부 심의위원들은 게시물에 거론된 금붕어 실험을 재연하여 진실을 가리자고 우기기도 하였다. 일부 심의위원들이 오로지 국내 시멘트 산업의 경쟁력을 걱정하며 벌인 해프닝이었다. 법률은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을 위하여 방통심의위가 이런 처분을 하도록 보장하고 있다.

인터넷 행정 심의에 대해 반대해 온 이들은 ‘불법’은 사법 기관이 판단하면 되고, ‘유해’는 행정 기관이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이래저래 행정 기관은 인터넷 표현물을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도, 유엔에서도 한국 정부에 이 제도의 폐지를 권고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을 내려버린 것이다.

헌재의 합헌 결정은 행정 기관이 인터넷을 마음대로 규제해도 된다는 선언이나 다름 없다. 이는 자신이 십년 전에 내린 결정보다도 후퇴한 것이었다. 1999년 당시 한일어업협정·집시법 개악·의료보험 통합·옷로비 사건·조폐공사 파업유도 등으로 수세에 몰린 김대중 정부가 북풍공작으로 서해교전을 이용한다고 주장하는 짧은 글이 게시되었다. 정부는 이 글을 올린 이용자의 이용 권한을 1개월간 박탈하였다. 2002년 헌재는 이 처분의 근거가 된 ‘불온 통신’ 규정에 대하여 위헌 결정을 내렸다. 오늘날 가장 거대하고, 주요한 표현매체의 하나인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하여 질서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 헌재는 달랐다. 십년 새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인터넷은 더욱 시끄러워지고 때로는 대규모 집회시위의 발원지이자 소식통이 되어 왔다. 신문방송에 나지 않아도 인터넷만 있으면 혁명도 불러오는 시대가 되었다고들 했다. 높으신 나리들과 달리 일반 시민에게 인터넷은 ‘유일한’ 표현 매체로서 그 가치와 위력을 발휘한다. 반면 정부가 인터넷을 통제해야 한다는 우려는 최근 구체적인 근거를 갖게 되었다. ‘불건전’하면 정부가 마음껏 인터넷을 가위질해도 된다는 결정을 내린 재판관들은, 인터넷의 무엇을 두려워했던 것일까.

*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 사노위 29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2-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