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네트워커인터넷거버넌스활동

블로그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 커뮤니티 블로그

By 2004/01/02 10월 29th, 2016 No Comments

인터넷트렌드

최호찬

‘국내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블로그(Blog)가 유행입니다’ 까지만 읽고도 또 그 얘기냐 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어쩌면 이미 목차만 보고도 포기하는 심정이 드신 분들도. 이제 인터넷 문화를 얘기할 때 블로그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블로그’가 생소하신 분께서는 http://www.google.co.kr의 검색창에 ‘블로그란 무엇인가’로 검색 후,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링크들을 따라 가보시기 바랍니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국내 포탈은 물론이고 온라인서점, 파일저장, 온라인카드 서비스 등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서비스에 모이길 원하는 업체들이 블로그 서비스를 시작했고 상당수가 준비중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블로그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비전을 바탕으로 서비스를 만든 것일까요? 저로서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서비스의 품질을 통해 추측해 볼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서비스 업체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블로그가 국내에 인간 중심의 문화로 (업체 중심이 아닌) 정착될 수 있는지의 여부라고 생각합니다. 블로그 문화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그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있고, 그래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블로그, 인간중심의 문화로 정착할 수 있을까?

블로그 열풍을 몰고 오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블로그 = 1인 미디어’라는 공식은 밥상에 올라온 지 얼마 안돼, 금방 쉰밥이 되어버렸습니다. 각종 미디어에서 지펴대는 과열된 관심은 사람들이 그 개념을 미처 소화할 여유도 주지 않고, 블로그는 굉장히 ‘새로운 것’, ‘쿨한 것’, ‘앞으로는 누구나 하는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만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블로그의 본성이나 태생과는 전혀 반대에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대량(mass)’이라는 개념을 품고 있을 수밖에 없는 미디어가 ‘극소(micro, nano)’에 뿌리를 두고 있는 블로그의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역설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블로그 = 1인 미디어’로 규정짓는 것은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으려는, 새로운 발전을 억압할 수 있는 잘못된 시도이자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블로그의 정의나 개념에 말려들다가는 지적한 잘못을 스스로 반복하게 될 것 같아 일단 통과하고 다른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현재 국내에는 대략 40개 안팎의 블로그 서비스가 있음에도 거의 대부분이 블로그의 본격적인 응용보다는 기본적인 ‘글 쓰고 사진 올리기’ 기능에 머물러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해외의 경우에는 좀 더 다양한 응용 서비스들을 볼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커뮤니티 블로그’이고, 해당 서비스들로는 Slash(www.slashdot.org), MetaFilter (www.metafilter.com), kuro5hin.org(www.kuro5hin.org) 등이 있습니다.

사용자들이 직접 편집하는 커뮤니티 블로그

이 커뮤니티 블로그의 핵심은 서비스 전체의 ‘콘텐츠 작성과 편집을 사용자들이 직접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개념과 방법론이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블로그의 유행이 웹을 점령하기 훨씬 이전부터 웹의 본령인 링크와 공유, 참여의 능력을 극대화하려는 서비스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도들이 블로그라는 최적의 형식을 만나면서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내의 경우 <오마이뉴스>가 이와 유사한 형태의, 시민기자로 대표되는 ‘풀뿌리언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만 기사의 채택과 지면배치 등의 편집권은 <오마이뉴스>의 편집진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마이뉴스의 편집진’이라는 특정한 필터를 거친 기사만이 노출될 수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커뮤니티 블로그는 이러한 편집권 자체도 사용자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kuro5hin.org의 경우에는 회원가입만 하면 이런 과정에 참여할 수가 있는데, 다른 사용자들이 올린 글에 대해 ‘메인 페이지에 올려라! (+1)’, ‘섹션 페이지에만 올려라. (+1)’, ‘관심 없다. (0)’, ‘내다 버려라! (-1)’ 중에 선택해서 투표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점수의 총합에 따라 채택되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게 됩니다.

한국적 블로그는?

사용자 참여 시스템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채택된 기사에서는 코멘트를 통해 사용자간에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는데, 그곳에 남겨지는 개별 코멘트(답글)들 역시 평가할 수 있습니다. Slashdot의 경우 ‘카르마(karma)’라는 코멘트와 관련된 독특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코멘트를 쓴 사람에게 포인트를 주거나 깎아서 그에 따라 Terrible(소름끼치는), Bad(나쁜), Neutral(중립적인), Positive(호의적인), Good(좋은), Excellent(훌륭한)와 같이 표시되는, 사용자의 신뢰도가 쌓입니다.
유사하게는, 아마존(www.amazon.com)의 서평 코멘트에도 평가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국내 서비스들도 ‘답글’ 기능은 이제 필수처럼 채택하고 있지만 소위 ‘악플’이라 불리는 인신공격과 욕설이 난무하는 답글을 방지하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만약 사용자가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서비스를 원한다면 이런 방법을 도입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블로그의 응용 및 확장 서비스는 블로그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봅니다.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블로그의 개념과 정의는 다른 방향의 접근방법, 즉 이런 서비스들의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밝혀내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것을 통해 진실로진실로 ‘한국에 맞는 블로그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점점 흥미로워지는 블로그 판입니다.

2003-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