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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감청확대가 우리에게 미칠 영향{/}당신이 곧 ‘미네르바’다

By 2010/06/16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장여경

과연, 인터넷 시대의 언론 탄압은 다르다. 과거 ‘검열’이란, 공권력이 사전에 책이나 음반, 영화의 내용을 검사하고 그 발표 여부를 허락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인터넷 시대 공권력의 발휘는 ‘위축’(chilling effect)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매일 수십만, 수백만 건의 내용 등록이 이루어지는 인터넷에 대하여 사전에 검사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적어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도화된 국가에서는 위헌 논란을 비껴갈 수 없다. 그래서 오늘날 정권이 선호하는 것은 위축, 즉 자기 검열이다. 특히 수사기관의 수사는 착수만으로도 인터넷 여론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50대 초반으로 한때 증권사에 다녔으며 해외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남자

▲ 11월 12일자 매일경제 2면

▲ 11월 12일자 매일경제 2면

공권력은 미네르바에게 노골적으로 ‘글을 쓰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단지 법무부 장관이 수사 가능성을 암시하였고 “우리는 너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을 뿐이다. 그러나 사정 당국이 미네르바의 신원을 확인했다는 사실은 단지 “누군지 궁금해서 그랬나 보다”라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것은 감시이며, 처벌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며, 곧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감수해야 할 위험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 사실을 의식한 사람은 아무래도 자기 의견을 발표하는 데 있어 주저할 수밖에 없으며, 자기 검열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자기 검열은 내면의 싸움만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견해를 감시하고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거대 권력의 암묵적인 의사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미네르바가 절필을 선언하며 한 말 역시 “국가가 침묵을 명령했기 때문에 입을 다물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검열이 아니고서 무엇이겠는가?

지난 5월 ‘광우병 괴담’ 수사도 마찬가지였다. 사정 당국이 촛불 시위에 본격적으로 개입했던 당시 광우병 괴담 수사에서 먼저 이루어진 것은 네티즌들 ‘추적’이었다. 5월13일 경찰은 포털사이트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이명박 대통령 비판 글을 올린 ‘안단테’ 등 21명의 아이디를 지정하여 신원 확인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신원 확인은 그후로도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아고라나 네이버 블로그에서 경찰에게 눈에 띄는 글을 올린 네티즌들의 신상 정보는 1시간 안에 그 ID, 가입 날짜, 최근 로그인 날짜, 이름(실명), 주민등록번호, 생년월일, 전화번호 등 상세한 사항이 경찰에 제공되어 왔다. (2008. 10.28. 위클리경향 797호)

지난해 7월부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강제적인 인터넷 실명제가 실시되면서 수사당국이 정확한 신원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 더욱 용이해졌다. (정보인권 활동가의 관점에서 보면 인터넷 실명제는 익명 표현의 자유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수사편의를 위해 국민의 사생활을 제한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다음의 경우, 지난해 7월에야 처음으로 실명제를 실시하였고, 논란의 진원지였던 아고라를 서비스하고 있기 때문에 수사 당국의 다음 이용자에 대한 신원 요구가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최문순 의원 2008.9.24 보도자료) 올 상반기 전체적인 인터넷 신원 조회 비율은 지난해 대비 130%에 달했다.(방송통신위원회 2008.9.29 보도자료) 이 신원 조회들은 실제 범죄 수사를 위해 이루어진 경우도 있겠지만, 최근까지 경찰과 검찰이 수행해온 정치 수사용으로 이루어진 비중도 상당할 것이다. 결국 국가가 국민이 인터넷을 통하여 발표하는 비판적 의견들을 감시해 온 것이다.

신원 확인이 구체적인 수사로 이어지고 그것이 처벌로 이어져서 결과적으로 자기 의견에 대해 구체적인 불이익을 주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렇게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다. 국가는 감시만으로도 국민에게 해도 될 말과 안해야 할 말을 암시한다. 광우병 괴담 수사는 결국 9월19일 법원에 의해 ‘무죄’ 판결이 났지만, 수사 당국이 네티즌의 신원을 확인한 직후 정부가 ‘말없이’ 요구했던 바는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 처음 촛불을 들었던 청소년들이 크게 위축된 것이다. 촛불 시위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도 청소년들의 동맹휴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감시가 가지고 있는 위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저들이다. 그래서 인터넷 실명제를 확대하려는 것이며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하려는 것이다.

채팅과 메신저와 비공개 게시판이 상시 감청된다면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라는 것은 우리 헌법 제18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그런데 국가가 범죄 수사에 필요한 경우 국민의 통신 내용을 감청할 때가 있다. 경찰, 검찰, 국가정보원 등 수사기관이 감청할 때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하여 엄격한 법적 절차를 거치도록 ‘통신비밀보호법’이 제정된 것이 1993년이다.

그런데 10월28일 한나라당이 발의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수사기관이 원할 때 감청할 수 있도록 모든 통신사업자가 감청 설비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하고, 따르지 않을 경우 10억원의 과징금을 반복적으로 부과하도록 하였다. 지난 17대 국회 당시 인권단체들과 국가인권위원회의 반대로 끝내 통과하지 못했던 내용을 고스란히 다시 담은 것이다. 전기통신사업자가 감청에 필요한 설비를 보유한다는 것은 상시적 감청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휴대전화의 경우 통화내용과 문자메시지가 대상이며, 인터넷의 경우 채팅, 메신저, 비공개 게시판이 대상이다. 또 통신사업자는 모든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기록과 전화통화 자료를 보관하다가 수사기관이 요구하면 제공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3천만원의 과태료가 반복적으로 부과된다. 제3자가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커다란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수사를 위해서는 휴대전화나 인터넷도 감청해야 마땅하다고 강변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으로는 안 될 말이다. 워낙에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의 통신비밀보호법은 피내사자 등 감청 대상이 광범위하고, 최장 4개월이라는 긴 기간 동안 감청할 수 있으며, 긴급한 사유가 있을 경우 최장 36시간 동안 법원의 허가 없이 감청할 수 있다는 점이 계속 문제로 지적되어 온 터였다. ‘국가안보를 위한 통신제한조치’의 경우 최장 8개월간 감청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해서 상시 감청이라니?

더구나 이용자 로그기록을 보관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은 시대적 과제인 개인정보보호를 완전 역행하는 짓이다. 로그기록에는 이용자가 인터넷에 접속해 있는 장소를 알 수 있는 IP주소가 포함될 뿐더러 어떤 게시물을 읽었고 어떤 파일을 내려받았는지, 결론적으로 이용자가 주로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담긴다. 이러한 이용자 개인정보는 국가기관이 탐낼 만한 정보일 뿐 아니라 고객관리와 마케팅용으로 매우 가치가 높기 때문에 언제나 유출과 오남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개인정보 유출과 오남용 문제가 세계적 수준으로 심각한 우리 현실에서 통신사업자가 이용자의 통신 기록을 보관하도록 의무화하다니, 이는 대놓고 사용하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국가가 개인정보를 보호할 생각이 있다면 사업자로 하여금 이 정보들을 보관하도록 의무화할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삭제하도록 의무화할 일이다.

평소 아무런 범죄 혐의가 없는 일반 국민의 통신기록을 의무적으로 보관하게 하는 것은 국가의 감시이다. 이는 국민의 통신 비밀을 지킨다는 통신비밀보호법의 제정 취지에 어긋나고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도 거스르는 것이다. 무엇보다 통신의 감시는 국민이 말하는 바에 대한 감시이며, 국민이 활동하는 바에 대한 감시이다. 이것은 단지 지켜보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감시는 곧,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당신이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게시하는 모든 글들이, 모든 대화가 감시될 것이다. 당신이 곧 미네르바이다. 자기 검열을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모든 국민이 자기 검열을 하는 국가가 과연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있을 것인가.

2008-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