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웹진 액트온표현의자유

70년대 독재-21세기 인터넷, 위험한 만남

By 2010/06/16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오병일

사이버 공간의 법이론으로 유명한 로렌스 레식은 그의 저서 <코드>에서, 베트남인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미국인들보다 ‘규제’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 훨씬 덜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베트남이 통제의 규범은 더 강할지언정, 통제의 하부구조-즉, 실질적으로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물리적인 구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를 바라보며, 박정희·전두환 독재 정권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니 오히려 박정희 시절보다 더 하다고 느낀다. 이는 그만큼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져서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들에 대한 정부의 실질적인 통제력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 2008년 6월6일자 한겨레 
1면

▲ 2008년 6월6일자 한겨레 1면

사이버 공간에 대한 통제 구조는 이미 노무현 정부가 그 기반을 닦아 놓았다. 본인확인을 강요하는 인터넷 실명제, 인터넷상 표현에 대한 정부의 심의와 삭제 명령, 포털 사업자를 통한 임시조치 등 이명박 정부가 촛불을 탄압하기 위해 활용하고 있는 기본적 통제 장치는 노무현 정부가 마련해준 것이다.

이 명박 정부의 인터넷 통제는 강력한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하부구조에 70~80년대 전체주의 이데올로기가 결합하여 탄생한 괴물이다. 막걸리 먹다가 대통령에 대해 한소리 했다고 아무도 모르게 끌려가던 그 시절…그래도 모든 국민들의 의사소통을 감시하는 것은 쉽지 않았으리라. 지금은 오히려 모든 소통의 증거자료가 통신망에 고스라니 남아 있고, 강제적 인터넷 실명제를 통해 신원 확인까지 되어 있으니 권력에 불만있는 이들을 족치기 얼마나 쉬운가!

이명박 정부, 정말로 국민들의 일상적인 ‘언어생활’을 통제하고자 나섰다. 지난 5월28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다음 카페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에 올라온 게시글을 심의해 ‘언어 순화와 과장된 표현의 자제 권고’를 하였다. MB를 ‘머리용량 2MB’, ‘간사한 사람’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인격을 폄하하는 것이라는 이유다. ‘언어순화’라니…. 인터넷 표현에 대한 심의를 담당하고 있는 방통심의위가 출범하자마자 내린 첫 권고다.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이제 권고로는 부족한 것인가? ‘바른말 고운말’을 쓰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하겠다고 한다. 바로 ‘사이버 모욕죄’다. 영화 <데몰리션 맨>에서 미래로 간 실베스터 스탤론이 욕을 하자 즉석에서 벌금이 부과되는 장면이 나온다. 이제 이러한 상황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역대 정권이 그러하긴 했지만, 이명박 정권도 즐겨 쓰는 말 중의 하나가 ‘법질서 확립’이다. 어떠한 질서를 형성하는 것은 모든 공동체가 추구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특정한 지배집단의 질서, 자신들의 도덕관념을 타인에게 강요하려할 때 전체주의가 도래한다. 정부가 ‘불온’하다고 판단하는 네트워크상 표현에 대해 자의적으로 검열할 수 있도록 한 전기통신사업법 53조에 대해, 지난 2002년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오늘날 가장 거대하고, 주요한 표현매체의 하나로 자리를 굳힌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하여 질서 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고 한 언급은 오늘날의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실 베스터 스탤론이 욕을 하자마자 즉석에서 벌금이 부과되는 시스템, 실질적으로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는 이명박 정권 들어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강제적 인터넷 실명제가 전체 인터넷으로 확대되려고 하고 있다. 현재 일일접속자 30만명 이상의 사이트에 적용되는 강제적 인터넷 실명제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10만명 이상의 사이트 178개로 조만간 확대될 것이다. 나아가 법무부는 일일접속자 1만명 이상의 사이트를 대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를 법이 아니라 시행령에 위임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용자들의 추적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통해 인터넷 로그기록 보관 의무화가 추진되고 있다. 이는 개인정보 ‘수집 목적의 달성을 위한 최소한의 정보’만을 ‘당사자의 동의’하에 수집해야 한다는 국제적인 개인정보 수집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오로지 ‘범죄 수사’라는 목적을 위해 사이버 공간의 개인의 기록을 일정기간 동안 보관해야 한다니! 졸지에 모든 국민들은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된다. 이러한 논리는 오프라인으로 확장될 수 있다. CCTV를 통해서든, (핸드폰) 위치기록을 통해서든, 유전자 DB를 통해서든, 범죄수사를 위해 사이버공간의 민감한 사생활까지 기록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거리의 CCTV를 안방에도 설치하여 경찰들이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거부하겠는가.

화상, 위치, 유전자를 포함한 개인정보를 기록하고, 추적하고, 원격에서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술 시스템의 발전은 강력한 통제의 하부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통제의 하부구조가 야기하는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이를 민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상부구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보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지 난 11월12일, 인권사회단체들은 사이버모욕죄 신설, 인터넷실명제 확대, 인터넷감청 등을 3대 사이버통제법으로 규정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총력투쟁을 선포했다. 나아가 기존의 통제적 하부구조를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기반으로 바꾸기 위한 ‘사이버인권법’을 제안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강제적 인터넷 실명제와 정부의 검열 폐지를 내용으로 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필요이상으로 인터넷 로그기록을 남기지 못하도록 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등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인터넷에 대한 법의 규율은 최소한의 것일 뿐이다. 인터넷의 규칙은 초기부터 당사자의 토론과 합의를 통해 만들어져왔다. 지금까지도 인터넷을 이루는 수많은 공동체가 자율적인 규율과 개선을 통해 인터넷의 규칙을 만들어왔다. 인터넷의 자체 정화 능력이란 시간이 가면 사람들이 착해질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그랬듯 인터넷 공동체가 자치의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사이버 공간은 격렬한 투쟁의 현장이 되고 있다. 인터넷 세상의 규칙을 그들이 정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스스로 정할 것인가.

 

2008-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