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밀

[논평] 정부와 국회는 지금까지 외면했던 통신자료 제도 개선에 나서야

By 2021/12/20 No Comments

정부와 국회는 지금까지 외면했던 통신자료 제도 개선에 나서야

통신자료 제공 논란이 뜨겁다. 한두 해 문제가 되어 온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찰 논란이 끊이지 않는 데에는 제도 개선을 외면해온 정부와 정치권에 그 책임이 있음이 분명하다. 통신자료 제도 문제에 오랫동안 대응해온 정보인권 단체로서 우리는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회가 통신자료 제도 개선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올해 상반기에 공개된 2020년 전체 통신자료 제공 건수는 5,484,917 건에 달한다. 국민 10명당 1명씩 제공된 셈이며 1천2백만 건 제공으로 정점을 찍었던 2014년 이후로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통신자료 제공 건수가 연간 5백만 건 이상을 기록해 왔다. 전국민이 휴대전화를 상시적으로 소지하고 거의 모든 일상생활을 휴대전화를 통해 꾸려가는 시대에 통신비밀의 보호 문제는 전인격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가입자 정보에 해당하는 통신자료와 같은 메타데이터는 통신내용에 비하여 오랫동안 보호받지 못해 왔다. 그 결과 정보수사기관이 정당한 범죄수사를 넘어 언론인, 정치적 반대자들을 사찰하고 탄압하는 데 통신자료가 오남용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국제사회는 일찌기 이 문제를 주목하고 제도 개선에 노력하고 있다. 최근 유럽사법재판소와 유럽인권재판소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 기본권에 통신 메타데이터 제공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 보호를 강화하는 입장을 수립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통신자료 제공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수사기관이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요청하기만 하면  법원의 허가 없이도 통신자료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허가사업자인 통신사의 경우 수사기관의 요청에 아무런 저항없이 가입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신원 정보를 제공해왔다. 전화를 건 사람 뿐 아니라 전화를 받은 사람들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신원 정보를 통해 정보수사기관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밀접성 등을 파악할 수 있고, 추가적인 정보와 결합하여 여러 정보를 유추해낼 수 있다. 특히 취재원의 신원을 보호할 필요가 있는 언론인에게 있어 통신자료 제공 제도는 큰 위협이 되며, 궁극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내부 고발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수백만 건에 달하는 통신자료가 제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사자들은 통신사에 직접 문의하기 전까지 자신의 개인정보가 수사기관에 제공되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당사자에 대한 통지절차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통신자료 제공 제도는 비단 공수처만의 특권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등 다양한 정보수사기관이 이 제도를 남용해 왔다.

우리 국가인권위원회도 2014년 영장주의 위배, 제도 남용, 통지절차 부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게 통신자료를 비롯한 통신비밀보호법의 개선을 권고하였던 바 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추천 김영혜, 양승태 대법원장 지명 한위수 및 김영애 위원은 개선에 반대하였으나, 다수 의견은 통신자료를 현행 통신사실확인자료와 함께 통신비밀보호법으로 정의하고 법원의 허가 요건을 강화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당시 미래부는 ‘불수용’ 의견을 공표하였다.

이명박 정부 이후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통신자료 제공 논란이 계속되면서 시민사회는 법원과 헌법재판소에 공익소송을 제기하며 계속하여 제도 개선을 촉구하여 왔으나,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이를 줄곧 외면하여 왔다. 특히 2016년 대규모 통신자료 제공 실태가 확인된 후 시민사회는 물론 정치권, 언론에서도 통신자료 제도의 개선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커졌고, 국회는 소속당을 불문하고 통신자료와 관련된 전기통신사업법과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십여건을 발의하며 통신자료 제도 개선 필요성에 주목하였다.

안타깝게도 당시 시민사회의 다양한 공익소송은 대부분 패소하여 막대한 패소 비용까지 떠안은 상황이다. 다만 헌법재판소에 언론인과 정치인을 포함한 5백명의 시민이 청구인으로 참여한 2016년 헌법소원언론인을 청구인으로 한 2020년 헌법소원이 현재까지 계류중이다. 헌법재판소가 2018년 실시간 위치추적 사건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2012헌마191 등)에서 “실시간 위치정보 추적자료는 정보주체의 현재 위치와 이동상황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비록 내용적 정보가 아니지만 충분한 보호가 필요한 민감한 정보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시하여 메타데이터의 보호 필요성에 공감하였다는 사실이 그나마 기대를 품게 한다.

국민의 정보인권은 현실 정치적인 유불리의 판단 대상이 될 수 없다. 모든 정권과 국회는 통신자료 제도 개선을 외면하고 현 사태에 이르기까지 제도 남용을 방치하였다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특히 국회는 지금이라도 그간 발의된 통신자료 제도 개선 입법안을 적극 검토하고 즉각적인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2021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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