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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복제자는 인터넷에서 추방하라?

By 2010/06/11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오병일

가진자의 욕심과 규제자의 욕망은 끝이 없는 듯 하다. 지난 2006년 일명 ‘우상호 법안’이라 불리는, P2P나 웹하드 등의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에게 필터링 등 기술적 조치를 의무화하는 저작권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을 때, 그리고 (아직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이나 접근통제적 기술적 보호조치 보호 등 권리자 보호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한미FTA 이행을 위한 저작권법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왔을 때, 저작권 강화가 갈만큼 갔구나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부족한 모양이다. 저작권을 침해한(아니,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지목된) 이용자, 게시판, 사이트를 아예 인터넷에서 제거하겠다는 법률안이 준비되고 있다. 2008년 7월 16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입법예고한 저작권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이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불법복제물을 삭제하거나 전송자에 대해 경고를 명령할 수 있다.
  • 경고를 받았던 이용자가 다시 불법복제물 전송을 하면 이용자 계정의 해지를 명령할 수 있다. 이때 이용자의 다른 계정 역시 포함한다.
  • 불법복제물 삭제명령을 3회 이상 받은 게시판에 대해서는 게시판 폐지를 명령할 수 있다.
  • 필터링 등 기술적 조치를 취하지 않아 3회 과태료 처분을 받거나, 불법복제물 삭제, 이용자 계정 해지, 게시판 폐지 등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3회 이상 과태료 처분을 받은 사이트는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접속 차단, 즉 사이트 차단을 명령할 수 있다.

 

사법권을 갈망하는 행정부

좀 규제가 과하지 않나 싶으신 분들도, 그래도 불법복제를 했으니까…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에 가장 큰 함정이 있다. 누가 ‘불법’ 여부를 판단하는가? 한국저작권위원회다. 그런데 한국저작권위원회가 사법기관인가? 이용자 계정을 해지하고, 게시판을 폐지하고, 사이트를 폐쇄하는 어마어마한 결정, 사실상 한 이용자의 사이버 정체성을 박탈하고, 게시판을 통한 커뮤니티의 소통을 단절시키며, 인터넷 사업자의 사업을 중단시킬 수 있는 결정을 ‘사법적인 판단도 없이’ 일개 행정기관이 수행하는 것이 합당한가?

혹자는 불법복제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뭐가 힘든가하고 의문을 제시할 수 있겠다. 어떤 이용자가 <해리포터> 영화 파일을 올려놓았다면 명백하게 불법복제 아니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러한 저작물만 불법복제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독립 다큐멘터리 파일을 공유했다고 해도, 해당 저작자가 허락하지 않았다면 불법복제다. 그렇다면, 타인의 저작물을 권리자의 허락없이 공유하는 모든 것이 규제되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된 저작물도 있을 것이고, 권리자가 자기 저작물의 공유를 개의치 않는, 혹은 오히려 원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권리자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저작물의 공유는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일이며 오히려 권장해야할 일이다. 이것이 타인의 소유물을 내가 점유하면 타인이 쓰지 못하게되는 여타 유체물과 저작물의 차이점이다. 혹은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과 이용하는 사람 사이에 분쟁이 생길 수도 있다. 이와 같이 권리침해 여부가 애매한 경우가 많은데, 일개 행정기관인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심의만으로 이용의 권리를 박탈당해도 되는 것일까?

여타 인터넷 표현의 내용규제 문제도 마찬가지다. 현재 인터넷 내용 심의를 담당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명백한 하드코어 포르노’에 대해서만 삭제 권고를 내리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을 썼다고 시정 권고를 내리고, 조중동 불매운동 게시물에 대해 삭제 권고를 내리기도 했다. 이에 찬성하는 의견이 있을지언정, 어쨌거나 다수가 수긍할 수 없는 결정들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미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잃었다. 이는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정치적 행보에 원인이 있기도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결정을 사법기관이 아니라 행정기관이 행사하고 있다는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물론 사법부라고 해서 항상 공정하고 중립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고 이 때문에 사법개혁이 거론되고 있기도 하지만.) 현행 저작권위원회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권리자 편향적인 저작권위원회의 행보를 보았을 때 저작권위원회가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신뢰할 수 없을 뿐더러, 엄격한 사법적 판단이 필요한 결정을 일개 행정기관에 맡기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선무당이 사람잡네

그래, 일반 불법복제는 일어났다고 치자. 그렇다고 모든 제재조치가 합리화될 수 있는 것일까? 불법주차를 했다고 이후에 특정 구역에 차가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거나, 면허를 취소하지는 않는다. 어떤 이용자가 설사 불법복제를 했다한들, 그것이 사이버 공간에서 추방할만큼 중대한 범죄인지 의문이다.

또한, 칼은 너무나 무시무시한데 누구를 잡겠다는 것인지 애매모호해서 자칫 생사람 잡지 않을까 우려된다. 예를 들어, 영화 동호회가 있다. 수천수만명의 회원들 중에는 불법복제 영화파일을 올려놓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가입해서 누구나 게시물을 올릴 수 있는 열린 동호회에서 불법복제물이 어느 순간 올라오는 것을 차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삭제명령을 3회 이상 받았다고 게시판을 폐지하겠다? 영화 동호회를 통해 즐거운 소통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가라는 말인가?

사이트 차단 역시 마찬가지다. 법안에는 ‘해당 서비스의 형태, 전송되는 복제물 등의 양이나 성격 등에 비추어 해당 서비스가 저작권 등의 이용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사이트 차단 명령을 내린다고 되어 있으나, ‘저작권 등의 이용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경우가 어떤 경우인지는 여전히 애매하다. 만일 이 조항이 처음부터 존재했다면, 아마도 소리바다 서비스는 일찌기 사이트 차단 명령을 받지 않았을까? MP3 음악 파일 불법복제의 온상으로서 수년 동안 음반사들의 소송 대상이 되어 왔으니 말이다. ‘아프리카’는 어떤가? 아프리카 사이트가 일찌기 폐쇄되었다면, 올해 각광받은 이용자들의 자발적인 인터넷 생중계는 볼 수 없었을지 모른다. 현재 불법복제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웹하드 서비스의 경우에도, 이용자들의 공동 창작 기반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일까? 구매한 CD 음반의 MP3 파일을 만들어주거나, 집 밖에서도 CD에 수록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는 어떤가?

만일 어떠한 게시판이나 사이트에서 불법복제 게시물이 유통되고 있다면 불법복제물의 차단에만 초점을 맞춰야지, 게시판이나 사이트 자체를 폐쇄한다면 정당한 이용자들의 온라인 소통을 가로막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새로운 서비스 모델의 도입을 저해하게 될 위험성이 높다.

 

정부는 권리자들의 하수인인가

그럼, 권리자들은 손놓고 있으라는 얘기인가? 아니다. 이미 권리자들은 권리 보호를 위한 많은 수단을 가지고 있다. 권리자가 복제, 전송의 중단을 요구하면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즉시 복제, 전송을 중단하도록 현행 저작권법이 이미 보장하고 있다. 불법복제물을 올린 이용자에 대해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이를 무기로 권리자를 대리하는 법무법인이 불법복제를 한 사람들에 대해 수십만원씩 합의금을 요구하는 사업이 변호사업계의 블루오션이 되고 있고, 이 때문에 애꿎은 청소년이 자살하여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지 않은가!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 대해서도 수많은 민형사 소송을 통해 소리바다의 비즈니스 모델을 결국 바꿔놓지 않았는가. P2P, 웹하드 업체를 ‘특수한 유형의 온라인서비스제공자’라는 희안한 개념으로 규정하고 필터링 등 기술적 조치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전 세계에 유례없는 법안도 국회가 만들어주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여전히 우는 소리다. ‘Notice & Take down 방식(즉, 권리자가 복제, 전송의 중단을 요구하면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즉시 복제, 전송을 중단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를 방지하는데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너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사적, 배타적 이익을 보장받기 위해 권리 침해에 대한 감시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 어떠한 저작물을 권리자의 요청도 없이 자의적으로 불법복제물로 간주하여 삭제 또는 전송 중단하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정보 유통의 권리를 제약해도 된다고 하는 것은 극히 이기적이고 과도한 주장이다.

일부 권리자 단체에서는 민형사상 소송 등 법적 해결책이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적 분쟁에는 당신네들의 주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법원이 권리자 단체의 요구를 신속하게 해결해주는 해결사인가? 법적 소송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공정성’이다. 저작권 침해 여부는 판단이 애매한 경우도 많고, 해당 서비스의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 사업자가 저작권 침해 방지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 등에 대한 고도의 법리적 판단이 필요하다. 또한 재판 과정에서는 권리자의 주장 뿐만이 아니라, 이용자나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주장도 균형있게 고려되어야 한다. 만일 행정부가 이러한 판단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한다면, 도대체 법원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미 온라인, 오프라인의 불법복제 단속을 위해 공무원에게 사법경찰권까지 부여하며 열심히 뛰고 있다. 권리와 이용의 균형이라는 저작권법의 기본 원리는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일 뿐, 현실의 정부는 권리자들의 하수인이 되어 그들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고 있다. 공공의 자원인 공권력이 사적 이익의 보장을 위해 쓰이고 있는 것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정부이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2008-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