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액트온전자신분증프라이버시

바코드 시대

By 2010/06/11 10월 25th, 2016 No Comments
김승욱

지구별을 여행하는 여행자들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서로를 불신하며 검사하고, 낙오시킨다. 검사와 결정은 국경이라는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선 위에서 이루어진다. 허가하는 권력과 허가받는 개인이 존재한다. 이러한 검사는 돈벌이를 위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자기들끼리 그어놓은 선을 자기네들이 발급한 증명서로 통과시켜주는, 그야말로 ‘쌩’돈벌이. 지금은 돈벌이와 함께 차별ㆍ배제ㆍ낙인이 자리잡고 있다.

Image:Taser2.jpg

작년에는 캐나다에 어머니를 만나러 온 한 폴란드 남자가 공항에 10시간동안 억류되어 있다가, 항의 끝에 출동한 경찰이 쏜 테이저건을 맞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자는 영어를 할 줄 몰랐고, 왜 억류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뉴질랜드에서는 체중이 많이 나가는 여성이 입국을 거부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녀는 공공건강시스템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다. 최근에는 G8 정상회담 반대활동을 하러 일본으로 향하던 한국 활동가들이 입국을 거부당하고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출입국심사대 앞에서, 우리는 검사대상이다.

검사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국가의 취향이다. 가장 강력한 출입국검사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경우, 미국으로 들어올 수 없는 세계시민들의 블랙리스트를 가지고 있는데, 이 글이 쓰여지고 있는 지금, 미국의 리스트에는 1,023,841명이 저장되어 있다. 이들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정답: 미국 취향대로! 이들은 백인이기보다 유색인이다. 크리스쳔이기보다 무슬림이며, 비감염인이기보다 감염인이다. 비장애인이기보다 장애인이며, 자본가이기보다 노동자이다. 시스템이 미약한 한국도 마찬가지다. 자본가들은 공항의 스페셜 라운지를 이용해 출입국을 하는 동안에, 이주민들은 추격과 도주, 감금과 폭력 끝에, 강제추방이 되는 식으로 국경을 넘는다.

우리는 출입국심사대 앞에서 몇가지 질문들에 대답해야 한다. 나의 행색과 피부색은 이미 노출되었다. 소지품이 무엇인지도 검사받는다. 미국에서는 노트북과 USB에 들어있는 파일의 내용까지 검사하기 시작했다. 정치적인 문건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출입국심사대의 직원은 나로부터 얻은 정보들과, 다른 경로를 통해 입수한 나의 정보들을 종합하여, 테러리스트를 구성해내거나 여권을 돌려줄 것이다. 여권사진을 찍을 때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웃지 않는다. 자유가 허가된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쉴 뿐.

편리한 시스템인가? 단연코 아니오다. 무엇보다 국가의 입장에서 그렇다. 이것은 불편하고 불충분한 시스템이다. 출입국심사대 직원의 주관적인 판단이 작용할 여지가 너무 많으며, 그것을 보충해주는 블랙리스트는 세계적으로 구성되지도 공유되지도 못하고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도입된다: 전자여권이라는 바코드. 그리고 그 바코드를 읽고 자동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믿기에는) 객관적으로 판단해주는 시스템. 그리고 그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여행자정보 공유 등이.

전자여권은 칩에 신체를 내장하는 증명서, 식별을 위한 바코드이다. 그리고 시스템은 전자여권의 쌍이다. 시스템은 신체를 전자화하고, 객관적이라고 믿어지는 검사를 진행한다. 여행자 정보공유는 시스템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철저하게 재구성해보는 것은,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미래의 행동을 예측해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자료]이다.

시스템의 한쪽 끝에 신체를 올려놓고, 한쪽 끝에는 전자여권을 올려 놓으면 결과가 나온다. 전자여권과 전자화한 신체 사이에 간극이 있지는 않은지, 그 신체가 지금까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그 삶에 비추어서 미래의 어떤 특정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는지 종합적으로 판단된다. 그리고는 빨간불 혹은 녹색불. 결과적으로 우리는, 0 또는 1로 환원된다. 전자여권이 편리하다는 홍보는 거짓이 아니다. 다만, 그것은 폭력의 편리이고, 차별의 자동화이다. 국가기계다.

한국에서는 8월 25일부터 전자여권이 발급된다. 혹시나 전자여권을 발급받는다 하더라도 패닉에 빠지지 말자! 권력이란, 국가[만]의 작품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편재한 권력 자체의 작동─재생산 메커니즘과 삶을 규정하는 일상─시스템 내부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에 의해서 생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전복시킬 가능성, 저항의 가능성도 권력의 가장 밑바닥, 최초 생성의 순간인 개인들, 우리 안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침묵하지도 말자! ‘여행자의 편리’로 번역된 국가의 편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혹은 방조하는 것은 권력을 생성하고, 다른 곳에서 (혹은 나에게) 가해질 폭력에 가담하는 것이 아닐까?

독일단체들은 전자여권을 망가뜨리기 위한 창의적인 방법으로, 전자여권을 전자레인지에 돌릴 것을 권유하고 있다. 영국단체들은 그것보다 해머로 두드리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안내메일을 보내왔다. 우리는 두 가지 방법 모두를 긍정하며, 8월 25일부터 시작될 저항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차별과 폭력을 교란하고, 국가를 조롱하기 위하여 짱구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광주인권연대 웹진에 실렸던 글입니다.

2008-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