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웹진 액트온

익명의 권리를 허하라

By 2010/06/11 10월 25th, 2016 No Comments
바리

또다시 인터넷 실명제가 화두이다. 물론 인터넷 실명제는 2004년 도입된 직후부터 내내 논란의 대상이었다. 관련 법률조항이 발효하자마자 헌법소원이 제기되었고, 선거시기면 인터넷 언론사들의 실명제 거부가 이어졌다. 첫 헌법소원은 법률조항이 개정되었다는 이유로 각하되었지만,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인터넷 실명제 시스템 설치를 거부한 참세상이 과태료 재판에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였고 한 네티즌은 인터넷 실명제가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또다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 실명제가 소위 ‘악플’, 즉 명예훼손과 같은 인권 침해에 대해 예방 효과를 가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여론이 존재해 왔고, P2P 등 디지털 음원 공유 사이트에도 인터넷 실명제를 적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논란의 재시동을 당긴 것은 촛불집회였다. 2008년 5월 촛불집회가 시작되자 인터넷이 소위 ‘광우병 괴담’ 의혹에 휘둘린다는 보수 언론의 지적이 일었고 때맞춰 인터넷 실명제를 확대하려는 정부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7월 22일 정부는 제한적 본인확인제, 즉 인터넷 실명제를 현행 37개 사이트에서 대폭 늘려 210개 사이트에 의무화하겠다는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다만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친절함(?)을 덧붙였다.

누구를 위한 실명제인가

그러나 주민등록번호가 아니라 하더라도 아이핀, 휴대전화번호 등을 통해 실명 정보가 수집된다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실명제 대상인 210개 사이트는 일일 방문자수 10만 명 이상의 사이트를 추산한 것인데, 이 정도 규모면 대다수 국민이 이용하는 사이트를 거진 아우른다. 가장 큰 의문점은 이것이다. 어째서 인터넷에서는 실명을 사용해야만 하는가? 술집이나 버스나 지하철 등 일상생활 곳곳의 대중 공간에서는 이름표를 달지 않고도 지낼 수 있는데 왜 유독 인터넷에서는? 모든 국민이 악플러일 가능성 때문에? 과연 그런가? 네티즌들의 게시물을 삭제할지 말지 여부를 결정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공적인 의사결정 과정은 익명으로, 비공개로 진행하면서 네티즌들은 왜 늘 발가벗을 것을 요구당하는가. 누구를 위해서?

악플러를 막아야 한다고 치자. 그러나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는데 당신이 악플을 올릴지 모르니 민증을 까라고 요구하는 것은 국가의 폭력이며 사전 검열이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악플이 발생하였으면 발생한 ‘후’에 현행법률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하면 될 일이다. 실명이 아니어서 사법 처리가 어렵다는 말은 엄살이다. 그런 이유대로라면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다른 나라들은 모두 인터넷 범죄에 속수무책일 것이다.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되었는데도 정부 속이 시원할 만큼 악플이 줄지 않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청소년들이 거친 어휘를 쓴다고 해서 신원을 추적하고 경찰서를 들락거리게 한다고 악플이 줄지 않을 거라는 말이다. 이것은 형사적으로 일벌백계할 일이 아니라 우리 인터넷 토론 문화의 문제이고 그런 차원에서의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런 주장은 크게 주목받지 않았다.

인터넷 실명제 논쟁은 표현의 자유 대 표현의 책임론으로 대비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쟁 구도 설정은 흔히 익명 표현이 실명 표현보다 책임감이 없고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규정한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익명도 권리다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에는 ‘익명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표현의 자유가 완전히 구현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자유로운 의사표현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경우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의견을 개진하고자 하는 자는 실명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문제는 국가가 강제력을 동원하여 ‘실명으로만’ 의사를 표현하도록 하거나 혹은 본인임이 확인된 사람에 대해서만 의사표현의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은 안 된다는 것이다. 국가가 강제력을 동원하여 ‘실명으로만’ 의사를 표현하도록 하거나 혹은 본인임이 확인된 사람에 대해서만 의사표현의 기회를 부여하는 경우에는, 그 ‘위축효과(chilling effect)’로 인하여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익명표현의 자유는 특히 정치적 표현과 관련될 때는 상당한 정도로 보장된다. 왜냐하면 정치적 표현의 특성이라든지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특정 정부나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은 익명의 형태로 행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또한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익명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인 권리는 아니어서 일정한 공익을 위해서 제한할 수 있지만, 이러한 제한은 기존의 민형사수단에 의해서도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다.

또 익명의 자유는 특히 사회적 소수자에게 중요한 인권이다. 익명 표현은 자신의 표현으로 말미암은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소신껏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준다. 때문에 민주사회에서 비판의 자유는 익명표현의 자유가 인정되어야만 비로소 완전해질 수 있다. 특히 내부고발은 익명표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루어지기 어렵다. 이름을 밝히기 어려운 내부자에 의한 고발은 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청산하는 데 기여했고, 익명의 제보는 역사의 실체적 진실에 대한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 미국의 독립, 나아가 프랑스 혁명 등 근대혁명을 태동케 한 역사적인 글인 토마스 페인의 ‘상식(Commons)’은 ‘한 영국인’이라는 필명으로 발표되었으며, 그 외에 역사를 바꾼 수많은 글들이 익명표현물들이었다. 따라서 익명표현물은 규제되어야 할 비겁한 글쓰기가 아니라, 옹호되어야 할 민주주의의 전통이다.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 익명성의 보장은 다수 위주의 사회질서 내에서 소수의 가장 강력하고 유용한 도구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이며, 따라서 익명성으로 인한 폐해를 시정하기 위한 법제도 속에도 이러한 익명성의 헌법적 의미와 역할은 반드시 제고되어 투영되어야만 한다.

소수자에게 절실한 익명성

우리는 최근 인터넷 실명제가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볼 수 있는 사례를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지난 2007년 대통령 선거운동기간 중에 벌어졌던 사건을 들어보자. 12월에 ‘차별금지법’ 논란이 발생하였는데 이 시기는 공직선거법상 모든 인터넷언론 게시판에 실명제가 의무실시되는 기간이었다. 차별금지법은 정치나 선거와 직접 관련이 없는데도 관련 기사 게시판에 실명으로만 댓글을 달 수 있었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성소수자를 비롯한 장애, 이주노동자, 청소년, 비혼자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강력한 문제의식을 갖고 차별금지법 반대운동을 벌였으나, 정작 이 문제를 다룬 인터넷 언론의 기사에 댓글을 달거나 토론을 할 수는 없었다. 실명을 확인받고 댓글을 달거나 토론을 할 경우 자신이 성소수자이거나 이주노동자라는 사실이 알려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2008년 국회의원 선거운동기간 중에는 ‘J고’에서 일어난 인권침해 사건이 논란이 되었다. 이 사건은 익명인이 학내 문제점을 동영상으로 고발한 사건으로, 인터넷 언론 다수에서 기사로 다루었다. 만약 실명을 써야만 했다면 이런 고발이 어려웠을 것이다. 불이익을 받을 것이 자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의 J고 학생이나 J고와 유사한 사례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이 사건에 대한 포털의 게시물이나 기사에 댓글을 달 수 없었다. 선거운동기간 중이라 모든 인터넷 언론 기사에 인터넷 실명제가 실시되고 있었고, 논란이 벌어진 포털 등 주요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상시적인 인터넷 실명제가 실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이들에게 실명을 밝혀야만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큰 국가적 폭력인가!

다른 나라는 어떠한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인터넷 실명제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익명의 권리를 인정하는 국가도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와 거리가 먼 실명제

1992년 캐나다의 통신 프라이버시 원칙에서는 통신서비스에 있어서 보호되어야 할 프라이버시 원칙으로, 원하지 않는 개입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혼자 있을 권리, 감시되지 않을 권리, 자신과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보를 통제할 권리, 익명으로 남아 있을 권리를 못박았다. 1997년 미국과학발전협회(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는 인터넷에서 익명성이 사용자의 권리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며 그 근거가 되는 4가지 원칙을 제시하였다. 그 중의 하나는 익명적 커뮤니케이션이 도덕적으로 중립적이라는 원칙이다. 익명성이 부정적 결과를 양산하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해로운 것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해악적인 익명성을 규제하는 것은 정당한 익명성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협회는 익명적 커뮤니케이션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 제12조와 제19조에 근거한 인권으로서, “온라인상의 익명적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어떠한 금지도 자유로운 의견표출을 침해하며, 개인의 사생활과 안전을 침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실명제의 문제를 표현의 자유의 문제로 보고 있다. 헌법 제정 전부터 익명이나 가명에 의한 팜플렛은 정치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이념을 주도해 왔고 지금까지도 각종 언론보도에서 그 정보원을 고위층이나 X 등 익명화된 형식으로 표기하는 관행이 존재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익명성이 표현의 자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 않다고 하면서, 익명의 팜플렛이나 전단, 브로슈어 또는 책자 등은 인류의 진보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판시한 바 있는 것이다. 대체로 미국의 법원은 익명은 한번 상실되면 다시 회복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표현자의 익명성을 훼손하기에 앞서, 불법행위의 주장이 어떤 무게를 싣고 있는지 여부를 미리 결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인터넷과 관련해서는 1996년 미국의 조지아주가 인터넷에서 익명표현을 금하는 법률을 제정했다가 연방지방법원의 위헌판결을 받은 후 폐기한 바 있고, 2001년 7월 뉴저지주 항소법원이 명예훼손 소송에서 익명의 인터넷 표현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한 바 있다.

유럽에서도 익명적 커뮤니케이션은 표현의 자유의 한 측면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유럽 의회 ‘정보보호분과’의 “인터넷 프라이버시: 온라인 정보보호에 대한 유럽의 통합적 접근”(Privacy on the internet: An integrated EU approach to online data protection, 5063/00/EN/FINAL) 보고서에 따르면, “특히 공공 영역에서의 인터넷 익명성과 관련해서 ‘가상 정체성’(익명성)은 개인 정보의 보호와 그 오용에 대한 법률적 규제 사이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대안적인 해결책이다”고 밝히고 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비용 지불의 목적을 제외하고 익명성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익명성이 개인정보보호법에서 요구하고 있는 개인정보의 보호의 매우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벨기에, 프랑스, 독일, 영국에서 익명성이나 가명의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당신들을 위한 인터넷 실명제

한마디로 국제적으로 익명성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프라이버시 때문이다. 실명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이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실명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밖에 없고, 이는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개인정보 보호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최소 수집의 원칙’이다. 꼭 필요하지 않은 개인정보는 수집하지 않는 것이 유출될 일도 없도록 만든다.

2008년 4월 옥션과 하나로텔레콤 등 주요 인터넷 서비스 회사에서 대규모로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로 인한 명의도용이나 불이익, 사생활과 안전 상의 위협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그런데 이런 개인정보 유출사태에는 인터넷 실명제 의무화로 업계의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정당화한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계속해서 인터넷 실명제를 확대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210개 사이트가 왜 모두 실명 개인정보를 수집해야 하는가? 누구를 위하여?

최근 인터넷 실명제가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인터넷 실명제의 도입 이후에도 악플이 크게 줄지 않았다며 정책 무용론을 제기하고 있건만, 정부 입장에서는 인터넷 실명제로 꼭 뿌리뽑아야 할 ‘악플’이 있단다. 이명박 대통령을 ‘2MB’라고 표현한 국민의 표현이 악플이라는 것이다. 정부와 국민의 ‘악플’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 실명제는 정부 입맛대로 도입되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의 이면에는 수사 편의를 확대하겠다는 꿍꿍이가 자리잡고 있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제54조에서는 이용자의 실명 정보를 정권과 경찰이 원할때 언제든 확인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이는 이용자의 통신내역을 요구할때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한 현행 통신비밀보호법과도 균형이 맞지 않을 뿐더러, 이런 감시와 추적이 인터넷 여론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에서 크게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평소 이용자의 실명 개인정보를 수집해 두었다가 그 정보를 수사기관이 마구 사용하도록 하는 정책이 ‘정보 보호’라는 명분으로 추진된다는 점이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OECD 장관회의에서 “인터넷은 독”이라고 단언하는가 하면, 국회 개원연설에서는 “정보전염병”을 운운하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인터넷을 “부정적 여론의 진원지”로 보고 있는 발언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인터넷은 마땅한 자기 표현 매체를 가지기 어려운 일반 국민들에게 유일하고도 강력한 표현 매체이다. 따라서 인터넷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은 국민 여론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 대목에서 최근 인터넷의 힘을 빌어 확산되었다고 하는 촛불집회와 대통령의 악연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인터넷을 틀어쥐면 국민 여론이 잠잠해질 것이라는 것은 오산이다. 사람이 움직이기 때문에 인터넷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걸 깨닫지 못한다면 남은 4년 임기가 내내 순탄치 않을 것이다. 당신만을 위한, 당신들의 인터넷 실명제를 즉각 폐지하라!

2008-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