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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 표시(Geographical Indications)

By 2010/06/10 10월 25th, 2016 No Comments
홍지은

1. 지리적 표시

지리적 표시(Geographical Indications)란, 상품의 특정 품질, 명성 또는 그 밖의 특성이 본질적으로 지리적 원산지에서 비롯되는 경우, 그 지역 또는 지방을 원산지로 하는 상품임을 명시하는 표시이다. 이를테면, 이산화탄소를 함유한 발포성 와인(sparkling wine)을 통칭하는 단어로 곧잘 쓰이는 ‘샴페인(Champagne)’은 프랑스의 샹파뉴(Champagne) 지역에서 생산되는 백포도주에만 붙일 수 있는 지리적 표시이다. 지리적 표시는 출처표시기능, 품질보증기능 및 영업상 이익과 관련한 경제적 기능을 갖는 점에서 상표와 유사하다. 하지만, 영업출처가 아닌 지리적 출처를 표시하는 점에서 상표와 큰 차이가 있다. 즉, 상표는 상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정 사업주체’를 식별시켜주는 표장인데 반해, 지리적 표시는 상품을 생산하는 사업주체들이 위치하는 ‘특정 지역’을 확인시켜주는 표장이다. 때문에 지리적 표시는 상표처럼 한 개인이 다른 경쟁자들의 사용을 배재하면서 절대적‧배타적 사용권을 갖지 않는다.

EU가 체결한 모든 양자 협정에는 지리적 표시 관련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미국과의 FTA와 명확히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미국이 지리적 표시를 강조하지 않는 이유는 보호받을 지리적 표시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5년 기준 세계 최대 농산물 생산국인 EU는 현재 등록된 지리적 표시만 약 4,800건에 이른다. 이 중 4200개는 포도주와 증류주의 지리적 표시이다. 프랑스에는 594개(포도주와 주류, 466개)의 제품이, 이탈리아에서는 420개의 제품(포도주와 주류, 300개)이 지리적 표시로 보호받고 있다. 국제 협상에서 EU가 요구하는 지리적 표시의 보호는 상표 보호와는 차원이 다르다. 원래 상표권은 그 상표와 동일·유사한 표장의 사용을 금지할 권리인데, 여기서 동일‧유사한지 아닌지는 일반 소비자가 상품의 출처에 관해 오인‧혼동을 일으키는지, 아닌지로 판단한다. 즉, 상표권 보호의 핵심 기준은 소비자의 혼동 여부다. 하지만, EU가 강조하는 와인과 증류주의 지리적 표시 보호는 소비자의 혼동 여부를 묻지 않는 절대적인 보호이다.

2. 지리적 표시 보호에 관한 국제적 논의

(1) 무역관련지적재산권(TRIPS) 협정

1995년 1월 1일 세계무역기구(WTO) 출범과 함께 지리적 표시는 TRIPS 협정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TRIPS 협정문에는 하나의 절(Section 3)을 따로 마련하여 지리적 표시에 관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TRIPS 협정에서 지리적 표시에 대한 보호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일반적인 지리적 표시에 대한 것으로(제22조), ‘공중의 오인(mislead)’을 야기할 수 있는 경우와 파리협약 제10조의 2의 의미상 부정경쟁행위가 되는 방법으로 지리적 표시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금지청구권과 상표등록의 거절‧무효화가 기본적인 보호수단이 된다. 다른 하나는 이보다 더 높은 차원의 보호로 포도주와 증류주에 대해서만 적용된다.(제23조) 포도주와 증류주에 대해서는 ‘공중의 오인’이라는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도 지리적 표시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적 수단의 제공 및 상표등록의 거절‧무효화 조치가 가능하다. 단, 원산지 국가에서 보호되지 않거나 보호가 중단된 지리적 표시는 보호 의무가 없다.

포도주와 증류주에 대한 강력한 보호가 TRIPS 협정에 포함된 것은 EU가 TRIPS 협상에 미친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EU가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시한 분야는 농업분야였다. EC위원회는 농업분야의 합의를 강경하게 반대하는 프랑스를 비롯한 남부 유럽 국가들을 설득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TRIPS 교섭의 지리적 표시 분야에서 미국 등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낼 필요가 있었다. 즉, TRIPS 협정의 지리적 표시 조항은 농업분야 협상에서 프랑스 등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 미국이 타협한 결과인 것이다.

(2) 도하개발의제(DDA) 지적재산권 협상

TRIPS 협정 제23조 제4항은 포도주에 대한 지리적 표시의 통보와 등록을 위한 다자체제 수립 문제를 TRIPS 이사회에서 추후에 결론을 내도록 규정하였다. 이와 더불어 제24조 제1항에서는 포도주와 증류주에 대해 적용되는 추가 보호를 다른 지리적 표시로 확대하는 문제도 추후 협상을 하도록 예정하였다. 지리적 표시와 관련하여 DDA에서 논의되는 의제는 이 2가지이다.

① 다자시스템 마련

지리적 표시, 특히 포도주와 증류주와 관련하여 EU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구대륙과 신대륙의 대립에서 핵심적인 쟁점은 ‘포도주 및 증류주의 통지 및 등록을 위한 다자시스템’ 마련에 대한 것이다. EU는 다자시스템의 성격을 구속적인 효력이 있는 것으로 하자는 ‘의무보호안(IP/C/W/107/REV.1)’을 내세우지만, 미국, 호주, 중남미 국가 등은 등록된 지리적 표시를 단순한 데이터베이스 수준의 비구속적인 것으로 해야 한다는 ‘자율보호안(TN/IP/W/5)’을 주장한다. 이러한 논쟁은 TRIPS 협정 제23조 제4항의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to facilitate)”의 해석론에서 비롯되었다. 미국, 호주, 중남미 국가들은 TRIPS 협정 제23조 제4항이 지리적 표시의 보호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다자시스템의 마련을 규정한 것이므로, 각 회원국은 국내법원에서 특정 지리적 표시에 관하여 분쟁이 발생한 경우 다자시스템에 등록된 지리적 표시를 ‘참고’하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EU의 주장처럼 다자시스템에 구속력을 인정하면, TRIPS 협정에는 없는 새로운 의무를 회원국에게 부과하는 것이므로, 지리적 표시의 보호를 ‘용이하게’ 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지리적 표시의 보호 정도 자체를 TRIPS 협정에 규정된 것보다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는데, 이는 TRIPS 협정에 전혀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구속적 다자시스템이 채택될 경우 오래 전부터 지리적 표시의 등록 제도를 시행하여 온 몇몇 유럽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회원국이 다자시스템의 이행을 위한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여야 하기 때문에 EU의 구속적 다자시스템 주장은 실효성이 없다고 말한다. 반면 EU의 입장에 따르면 비구속적 다자시스템은 실효성의 결여로 인하여 지리적 표시의 보호를 ‘용이하게’ 하지 못한다. EU안에 따르면 WTO 사무국에 통보된 지리적 표시에 대해 18개월 이내에 이의제기가 없으면 등록이 되고 이렇게 등록된 지리적 표시에 대해 모든 체약국은 TRIPS 협정 제24조에서 규정하는 예외사유 등을 이유로 보호를 거부할 수 없다. 다자시스템 마련 논의는 2001년 11월 도하 각료회의 선언문(Ministerial Declaration. WT/MIN(01)/DEC/1.)에 협상 의제로 채택되었지만, 2005년 12월 홍콩에서 열린 제6차 WTO 각료회의에 이르기까지 회원국 간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② 추가 보호 확대

TRIPS 협정 제24조 제1항은 포도주와 증류주에 대해 적용되는 추가 보호를 다른 지리적 표시로 확대하는 문제를 추후 협상을 하도록 예정하였다. 지리적 표시 보호의 확대 문제에서는 대립 관계를 보였던 인도와 EU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EU는 포도주와 증류주에 대한 추가 보호가 요구르트나 치즈 등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인도 등 일부 개도국은 바스마티 쌀(Basmati rice), 다질링 홍차(Darjeeling tea), 블루마운틴 커피(Blue Mountain coffee)에 대해서도 포도주나 증류주와 동일한 수준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 국가는 상표권 또는 특허권이 상품의 종류에 따라 보호를 달리하지 않음을 근거로 지리적 표시의 추가 보호 대상이 포도주 및 증류주에 한정하는 것을 반대한다. 반면, 보호 확대를 반대하는 미국과 호주 등은 TRIPS 협정의 포도주와 증류주에 관한 추가 보호가 지리적 표시의 일반 원칙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TRIPS 협정에 이미 들어있는 정도로도 다른 지리적 표시의 보호가 충분히 가능하고 추가 보호를 확대할 경우 수반되는 비용 증가를 반대 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EU는 지난 2005년 3월 미국, 호주와의 분쟁과 관련한 WTO 패널 판정으로 지리적 표시를 광범위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게 되었다. WTO 패널은 2005년 3월 15일 출판한 보고서에서 농산물에 관한 EU의 지리적 표시 보호 체계가 WTO 규정에 합치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호주는 포도주와 증류주를 제외한 농산물 및 식품에 추가적 보호를 적용하는 것은 규정에 어긋난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WTO는 미국과 호주가 제기한 항소를 기각하면서, 이러한 명칭을 보호하는 유럽의 시스템이 본질적으로 WTO 규정에 어긋나는 점이 없고, TRIPS 협정에도 합치한다고 밝혔다. WTO 패널 결정 이후 EU는 2006년 3월 ‘농산물 및 식품을 위한 지리적‧원산지 표시 보호에 관한 이사회 규정 510/2006’을 채택하였다. 이사회 규정 510/2006은 고기, 유제품과 어육, 과일과 채소, 맥주, 식물추출음료, 파스타, 빵, 가루반죽 식품, 케이크, 비스킷, 과자 등 대부분이 농산품이 지리적 표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3. EU의 지리적 표시 보호 제도

(1) 농산물 및 식품을 위한 지리적‧원산지
표시 보호에 관한 이사회 규정 510/2006

(Council Regulation (EC) No 510/2006 of 20 March 2006 on the protection of geographical indications and designations of origin for agricultural products and foodstuffs)
유럽에서는 이미 100년 전부터 개별 국가별로 지리적 표시를 보호해왔다. 1992년 EU가 출범하면서 그 해 7월 14일 EU 이사회는 포도주와 증류주를 제외한 모든 농산품을 포괄하는 ‘농산물 및 식품의 지리적‧원산지 표시 보호에 대한 이사회 규정 2081/92’을 공포했다. 이후 EU 전체 회원국에서 생산되는 농산품은 EU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에 지리적 표시로 등록됨으로써 법적 보호를 받게 되었다. 포도주와 증류주에 관한 지리적 표시는 별도의 규정에 의해 보호된다. 포도주의 지리적 표시는 이사회 규정 2392/89(EEC Council Regulation No. 2392/89)에서, 증류주에 대한 지리적 표시는 이사회 규정 1576/89(EEC Council Regulation No. 1576/89)로 오인‧혼동을 유발하는 지리적 표시 및 상표에 대한 금지규정을 두고 있다.

이사회 규정 2081/92는 2005년 3월 WTO 패널 판정을 일부 반영하여, 2006년 3월 ‘이사회 규정 510/2006’으로 대체되었다. 주요 개정 사항으로 EU에 소속되지 않은 국가들에 대해서도 EU의 지리적 표시 등록 절차를 직접 적용한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개정안에서는 EU 집행위원회가 아닌 회원국 정부가 직접 등록 신청된 지리적 표시에 대한 검토 및 최종 판정을 내릴 수 있게 됨으로써 인증 과정과 기간을 단축시켰다.

(2) 보호대상 : 원산지명칭보호(PDO)와 지리적표시보호(PGI)

TRIPS 협정의 지리적 표시가 ‘상품(goods)’에 대하여 인정되는 반면, 이사회 규정 510/2006은 지리적 표시를 ‘농산물과 그 가공식품(agricultural products and foodstuffs)’에 한정한다. 제1조 제1항에서 규정된 적용 대상 품목은 1957년 3월 25일 로마에서 조인된 유럽경제공동체(EEC)조약 부속서Ⅰ에 열거된 ‘인간소비목적용 농산물(agricultural products intended for human consumption)’과, 이사회 규정 510/2006의 부속서Ⅰ에 열거된 식료품과 부속서Ⅱ에 열거된 농산물이다. 1992년에 채택된 이사회 규정 2081/92의 부속서Ⅰ에서는 맥주(beer), 천연탄산수와 용천수(natural mineral waters and spring waters), 식물성 추출 음료수(beverages made from plant extracts), 밀가루 조제품(bread, pastry, cakes, confectionery, biscuits and other baker’s ware), 천염 검과 수지(natural gums and resins) 등이 열거되었으나 2006년에 채택된 규정에서는 천연탄산수와 용천수가 제외되고 겨자 페이스트(mustard paste)와 파스타(pasta)가 추가되었다. 부속서Ⅱ 역시, 기존에는 건초(hay)와 방향유(essential oils)만 있었으나 2006년에 개정되면서 코르크(cork), 연지충(cochineal), 꽃과 관상식물(flowers and ornamental plants), 양모(wool), 버들가지(wicker), 아마섬유(scutched flax) 등이 추가되었다.

이사회 규정 510/2006의 제2조 제1항에서는 지리적 표시 보호를 원산지명칭보호(Protected Designations of Origin : PDO)와 지리적표시보호(Protected Geographical Indications : PGI)로 구분하고 있다.

PDO는 특정 상품과 그 이름이 기인한 지역의 관계가 긴밀한 경우에 적용된다. 즉, 상품의 원료의 생산으로부터 가공에 이르는 전 과정이 해당 지역 내에서 이루어진 상품에 해당한다. PGI는 PDO에 비해 상대적으로 완화된 기준을 적용한다. 상품의 생산이나 가공 중 어느 한 단계만 해당 지역 내에서 이뤄지면 지리적 PGI의 대상이 된다. 또한 상품의 특징이 본질적으로 또는 전적으로 원산지와 관계있을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가공된 농산물 및 식료품의 경우, 상품의 품질이나 다른 특성이 특정한 지역에서 비롯됨을 쉽게 증명하기 어렵다. 동일한 생산방식으로 같은 품질의 상품을 다른 지역에서 생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상품의 명성(reputation)이 지리적 출처에서 기인한다면 규정에 따라 지리적 표시로서 보호받을 수 있다.

(3) 보호 범위와 등록 요건

① 보호 범위

PDO와 PGI의 보호수준은 동일하며, 인증을 받은 생산자나 요건을 충족한 생산자들은 배타적으로 그 명칭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발생한다. 등록된 지리적 표시의 보호 범위는 상당히 넓은 편이며, 제13조 제1항에서 구체적으로 금지 행위를 열거하고 있다.

  • 등록하지 않은 상품에 대해 지리적 표시 인증을 받은 명칭의 직‧간접적 사용 행위
  • 인증을 받은 이름의 오용, 모방 혹은 연상을 시키는 행위를 금지하고, 해당 상품과 동등하거나 관계가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풍(style)’, ‘유형(type)’, ‘방식(method)’, ‘~산(as prodused in)’, ‘모조품(imitation)’ 등의 표현도 사용이 제한된다. 이는 해당 상품의 원산지를 표시하거나 인증을 받은 원 상품의 명칭을 표기하더라도 금지된다.
  • 상품의 내‧외부 포장, 광고물이나 관련 서류, 용기의 포장 등에 원산지, 자연 환경, 상품의 품질 등에 대해 잘못되거나 혼란을 줄 수 있는 정보를 기입하면 진짜라고 믿을 수 있으므로 금지된다.
  • 지리적 표시가 그 안에 일반명칭이라고 여겨지는 농산물 또는 식료품의 명칭을 포함하는 경우, 적절한 농산물 또는 식료품에 대하여 일반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보호대상의 예외가 된다.

② 등록 요건

제5조 제1항에 따르면 등록자격은 단지 ‘단체(group)’만이 갖는다. 여기서 ‘단체’란 법적인 형태나 구성에 상관없이 동일한 농산물이나 식료품을 취급하는 생산자 또는 가공업자의 연합(association)을 의미한다. 다른 이해관계인도 그 단체에 참여할 수 있으며,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는 자연인 또는 법인도 단체로서 취급받을 수 있다. 회원국이나 EU 집행위원회에서 결격 사항이 있다고 판단되면 등록 신청을 각하할 수 있으며, 이해관계인들에 의해 이의 제기가 있고 합당한 근거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등록을 취소할 수 있다. 이의 제기 요건은 제7조 제3항에서 크게 3가지 경우로 한정한다.

  • 해당 상품이 요구조건(제2조, 제3조 제2,3,4항)을 충족하지 못했음을 증명할 경우
  • 등록 신청된 명칭이 일반 명칭(generic)이어서 등록 자격이 없음을 증명할 경우
  • 해당 명칭을 등록할 경우 동일한 이름이나 상표를 사용하는 상품 전체‧일부 또는 출판일로부터 5년 이전부터 합법적으로 시장에 출하되어 오던 상품에 위협을 가할 수 있음을 증명할 경우

(4) 상표와의 관계

이사회 규정 510/2006은 상표와 지리적 표시 사이에 마찰이 있을 경우 3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 지리적 표시 등록 신청이 이뤄진 상품과 동일한 유형의 상품에 대해 상표를 등록하고자 할 경우 지리적 표시에 우선권이 부여된다.(제14조 제1항)
  • 예외적으로 두 가지 경우에 한해서 지리적 표시와 상표의 공존을 인정한다. 지리적 표시의 실시 이전에 ‘선의로(in good faith)’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상표를 신청‧등록하거나 저널에 개제되었을 경우와 상표를 무효화하거나 취소시킬 근거가 없는 경우이다.(제14조 제2항)
  • 일반적으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상표를 등록했더라도 지리적 표시의 등록을 금지하지 않으나, 제3조 제4항에 정의된 한 가지 상황에서는 지리적 표시의 등록을 금지한다. 즉, 상표의 명성과 사용 기간으로 인해 지리적 표시의 등록이 소비자들에게 혼돈을 일으킬 수 있는 경우이다. 이를 제외한 모든 경우에는 상표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지리적 표시의 등록이 가능하다.

4. 국내의 지리적 표시 보호 제도

지리적 표시를 비롯한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다자간 규범으로 편입시킨 TRIPS 협정은 선진국 약 30개국에 대해서는 1996년 1월부터, 개발도상국에 대해서는 2000년 1월부터 적용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는 2000년 개발도상국에 대한 과도기간이 종결되고 TRIPS 협정에 대한 일반적 이행이 의무화되었다. 그러나 1996년 말에 타결된 한국과 EU의 쌍무협정에서 양자 간에는 1998년 7월 1일부터 협정을 조기이행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지리적 표시는 1999년 7월 1일부터 시행하게 된 농수산물품질관리법에서 최초로 제도화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지리적 표시는 특허청이 관할하는 상표법과 농림부와 해양수산부가 관할하는 농/수산물품질관리법에 의한 이원적 보호 체계를 갖추고 있다. 상표법은 단체표장으로서 지리적 표시를 보호하며, 그 대상은 서비스를 제외한 모든 ‘상품(goods)’이다. 농/수산물품질관리법은 지리적 표시 보호에 관한 일종의 특별법으로서 농/수산물 및 그 가공품을 대상으로 한다. 이 외에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불공정무역행위조사 및 산업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 표시‧광고 공정화에 관한 법률, 주세법 및 조세범처벌법 등 다수의 법령에 산재하여 규정돼 있다. 무역위원회, 국세청 등이 지리적 표시와 관련한 업무를 각각 수행하고 있다.

(1) 농산물품질관리법

우리나라에서 지리적 표시 등록제도는 TRIPS 협정 이행을 위해 1999년 1월 21일 법률 제5667호로 농수산물품질관리법이 제정되면서 최초로 제도화되었다. 이 법은 2001년 1월 29일 이후로 농산물품질관리법과 수산물품질관리법으로 분리 운영되고 있다. 농산물품질관리법 제2조 제5항에 따르면, ‘지리적 표시’를 농산물 및 그 가공품(수산물을 주원료 또는 주재료로 한 가공품은 제외)의 명성‧품질 기타 특징이 본질적으로 특정지역의 지리적 특성에 기인하는 경우 당해 농산물 및 그 가공품이 특정지역에서 생산된 특산물임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수산물품질관리법까지 고려한다면, 국내의 지리적 표시 등록제도의 보호범위는 지리적 표시를 ‘농산물과 그 가공식품(agricultural products and foodstuffs)’에 한정한 EU의 이사회 규정 510/2006보다 더 광범위하다. 2002년 1월 25일 ‘보성 녹차’를 시작으로, 2007년 3월까지 등록된 지리적 표시는 총 38개이다. 농축산물로는 고창복분자주, 이천쌀, 횡성한우고기, 고려홍삼, 한산모시, 정선황기 등 총 17개, 임산물로는 양양송이, 장흥표고버섯, 청양구기자 등 11개가 등록되었다.

동법 시행령 제15조에서는 지리적 표시의 등록기준을 열거하고 있다. 당해 품목의 우수성이 국내 또는 국외에서 널리 알려져 있거나, 그 명성‧품질 그 밖의 특성이 본질적으로 특정지역의 생산 환경적 요인 또는 인적 요인에 의한 품목, 또는 지리적 표시 대상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이거나 이를 주원료로 하여 당해 지역에서 가공된 품목 등이어야 한다. 품목의 생산과 가공 중에 한 쪽만 해당 지역 내에서 이루어지면 요건이 충족되는 점은 EU의 지리적표시보호(PGI)와 유사한 개념이다.

그러나 제1조에서 규정된 입법 목적이 ‘농산물의 적정한 품질관리를 통하여 농산물의 상품성을 높이고 공정한 거래를 유도함으로써 농업인의 소득증대와 소비자보호에 이바지함’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국가의 사전 심의를 거쳐 고시되는 품목만이 지리적 표시로 등록 가능하다는 점에서 농산물품질관리법에서 규율하는 지리적 표시는 ‘지리적 명칭 보호’가 아닌 ‘농산물의 품질 관리’를 위해 기능하고 있다.

(2) 상표법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제도가 도입되기 전에 상표법상의 지리적 표시와 관련된 규정들은 지리적 표시가 상표로서 등록되는 것을 배제하는 수준의 소극적인 보호 규정이었다. 상품의 산지, 품질, 생산‧가공‧사용 방법 등은 소위 기술적 표장에 속하므로 상표 등록이 배제되며, 상품의 품질을 오인하게 하거나, 수요자를 기만할 우려가 있는 상표도 등록을 할 수 없다. 포도주와 증류주에 대한 추가적 보호 조항이 있지만, 이 역시 TRIPS 협정 제23조 제1항이 지리적 표시의 ‘사용(use)’을 금지하는 것과 달리 ‘상표의 등록(registration of a trademark)’을 거절한다. 단체표장으로 등록된 지리적 표시는 다른 상표와 마찬가지로 등록된 날로부터 10년의 존속기간을 두며 갱신이 가능하다.

① 상표 등록 배제 : 제6조 제1항 제3호, 제4호 및 제7조 제1항 제11호

상표법 제6조 제1항 제3호는 ‘상품의 산지, 품질, 원재료, 효능, 용도, 수량, 형상, 가격, 생산방법, 가공방법, 사용방법 또는 시기를 보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표시한 표장만으로 된 상표’에 대해서는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정한다. 또한, 제6조 제1항 제4호는 ‘현저한 지리적 명칭·그 약어 또는 지도만으로 된 상표’에 대해서도 등록을 불허한다. 상품의 산지나 지리적 명칭 등은 식별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 ‘기술적 표장’에 해당하므로, 이를 특정인에게 독점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적 표장이라 하더라도 상당기간 식별력을 취득한 경우에는 예외로서 상표등록을 받을 수 있다.(제6조 제2항) 또한, 특정 상품의 지리적 표시인 경우 단체표장으로서 상표 등록이 가능하다.(제6조 제3항)

제7조 제1항 제11호는 상품의 품질을 오인하게 하거나 수요자를 기만할 염려가 있는 상표를 부등록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허위의 원산지 표시에도 적용이 가능하며, 판례는 상품의 품질뿐만 아니라, 상품의 출처에 대한 오인을 초래하거나 기만할 염려가 있는 경우도 포함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산(産)’과 같이 품질을 오인케 할 우려 없이 적정하게 표시되어 있는 경우에는 상표 등록이 거절되지 않으며, 단순히 부기적으로 상품의 산지, 판매지를 표시하는 문자는 보정에 의해 삭제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② 포도주 및 증류주의 추가 보호 : 제7조 제1항 제14호

TRIPS 협정 제23조 제2항 규정에 따라 상표법은 제7조 제1항 제14호에 포도주와 증류주에 대한 추가 보호 규정을 두고 있다. 동호에 의하면 ‘WTO 회원국내의 포도주 및 증류주의 산지에 관한 지리적 표시로서 구성되거나 동 표시를 포함하는 상표로서 포도주‧증류주 또는 이와 유사한 상품에 사용하고자 하는 상표’는 등록이 거절되며, 무효심판사유가 된다. 또한, TRIPS 협정 제23조 규정에 따라 소비자의 오인‧혼동을 요건으로 하지 않으며, 산지를 해당 지역의 문자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번역 및 음역으로 표기한 상표도 등록이 거절된다. ‘~종류’, ‘~유형’, ‘~양식’, ‘~풍’ 등과 같은 표현이 수반된 경우도 마찬가지다.

③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 : 제6조 제3항

‘단체표장’이란, 상품을 생산·제조·가공·증명 또는 판매하는 업자나 서비스업을 영위하는 자가 공동으로 설립한 법인이 직접 사용하거나, 그 감독 하에 있는 소속단체원이 자기 영업에 관한 상품 또는 서비스업에 사용하게 하기 위한 표장을 말한다.(상표법 제2조 제1항 제3호)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은 지리적 표시를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을 생산·제조 또는 가공하는 업자만으로 구성된 법인이 직접 사용하거나, 그 감독 하에 있는 소속단체원이 자기 영업에 관한 상품에 사용하게 하기 위한 단체표장이다.(상표법 제2조 제1항 제3호의4)

DDA에서 불거진 지리적 표시 보호 대상 품목 확대 및 다자등록시스템의 설치운영에 관한 논의에 조응하며, 국내의 지리적 표시가 외국에서도 보호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 2005년 상표법에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제도를 도입했다. 상표법의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제도는 농/수산물품질관리법에서 규정하는 지리적 표시 등록제와는 별도의 제도이다. 농/수산물품질관리법의 지리적 표시 등록이 상품의 ‘품질’ 인증과 보호를 위한 것인 반면, 상표법의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은 ‘명칭’을 지적재산권으로서 보호하는 제도이다. 2007년 3월 특허청 발표에 의하면, 출원된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은 진도홍주, 고흥유자, 장흥표고버섯, 양양송이 등 총 26건이다.

상표법에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지리적 표시만으로 구성된 표장은 산지 및 현저한 지리적 명칭 등에 해당하여 등록을 받을 수 없었다.(제6조 제1항 제3호, 제4호) 그러나 상표법 제6조 제3항을 신설하면서 특정 상품에 대한 지리적 표시의 상표등록을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이 선출원된 경우에는 그 등록된 단체표장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표는 등록받을 수 없게 되었다.(제7조 제1항 제7호의2, 제8호의2) 등록되지 않았으나, 수요자 간에 현저하게 인식되어 있는 지리적 표시와 동일‧유사한 상표 역시 수요자와 정당한 사용자 보호를 위해 등록이 거절된다.(제7조 제1항 제9호의2, 제12호의2) 동음이의어의 지리적 표시는 모두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으로 등록할 수 있다.

5. 한EU FTA와 지리적 표시

EU가 체결한 모든 양자 협정에는 TRIPS 협정 제23조 수준의 포도주와 증류주에 관한 지리적 표시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호주, 캐나다, 미국과 체결한 포도주 및 증류주에 관한 협정에서 EU는 유럽의 지리적 표시가 상대국에서 일반 명칭으로 사용되는 것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남아공, 칠레와의 FTA 협정에서도 포도주 및 증류주의 지리적 표시 보호에 합의하였으며, 멕시코와의 FTA에서는 지리적 표시제에 관한 별도 조항을 마련하여 EU의 역내에서 사용되는 고유 상표명을 보호토록 명시하였다. 다자주의(multilateralism)를 중시하는 EU가 이처럼 지역무역협정(RTA)을 통해 지리적 표시를 강조하는 이유는 DDA에서 다자등록시스템 마련이나, 지리적 표시의 추가 보호 대상 확대 문제와 관련하여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에 체결되는 대부분의 FTA가 TRIPS가 요구하는 수준보다 높거나 넓은 범위의 지적재산권제도를 추구하는 TRIPS 플러스 방식을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EU는 FTA를 통해 지리적 표시와 관련한 자신들의 요구를 공격적으로 각국에 관철시키고자 한다.

2006년 10월에 발표된 ‘Global Europe : Competing in the World’에서 EU는 새로운, 즉 과거와 달리 공격적인 FTA 계획을 천명하였으며, 그 대상국으로 한국, ASEAN, 인도를 꼽았다. 때문에 한EU FTA 협상에서 논의될 지리적 표시는 EU가 지금까지 체결한 양자 협정 중 가장 강도 높은 보호 수준을 담고 있을 것이다.

(1) 지리적 표시의 추가 보호 대상 품목 확대

TRIPS 협정 상 포도주와 증류주에만 적용되는 ‘공중의 오인’을 요건으로 하지 않는 절대적 보호를 일반 농산품에 확대하는 것은 지리적 표시의 다자등록시스템 마련과 함께 EU의 핵심적인 정책 목표이다. EU는 2005년 미국, 호주와의 분쟁과 관련한 WTO 패널의 판정과 2006년에 개정된 이사회 규정을 통해 이에 대한 법적인 근거를 갖게 되었다. 때문에 한EU FTA는 그 첫 실험대가 될 것이다. EU가 추가 보호 대상 품목 확대를 주장하는 근거는 특허권이 상품의 종류에 따라 보호에 차별을 두지 않듯이, 지리적 표시 역시 포도주와 증류주에 한정하지 않고, 다른 상품에도 동일한 보호 수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리적 표시는 창작을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특허권이나 저작권과 함께 묶어 지적재산권으로 논의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면이 많다. 지리적 표시를 보호한다는 것은 허위 표시와 같은 불공정한 상행위를 방지하려는 목적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1999년에 농/수산물품질관리법을 통해 국내에 지리적 표시제가 도입되었지만 지금까지 등록된 지리적 표시는 38개에 그치는 등 그 실적이 미미한 상황이다. 이에 반해, EU는 이미 100년 전부터 지리적 표시를 각국 별로 보호해왔으며, 등록된 지리적 표시만 5,000 여개에 이른다. 특히 포도주와 증류주의 경우 프랑스에서 수출되는 와인의 85%, EU가 수출하는 증류주의 80%가 지리적 표시를 사용한다. 전체 농업 규모 면에서도 EU는 2005년 기준으로 세계 전체 농산물 수출액 8,518억 달러 가운데 약 10%인 841억 달러를 수출하여 농산물 수출에 있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하였다. 여기에는 EU가 농산물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급하는 막대한 수출보조금이 한 몫을 하고 있다. 때문에 오인‧혼동을 야기하는 행위로부터 수요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를 공감하더라도 EU가 요구하는 지리적 표시의 보호 강화는 EU,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남유럽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강하게 얽혀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즉, EU에서 생산되는 주류를 비롯한 농산물과 식료품의 시장 확대 의도에 ‘상거래 질서 유지’라는 사회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2) EU의 지리적 표시 제품의 시장 접근 보장

TRIPS 협정 제24조 제6항은 상품과 서비스의 보통명칭(common name)이나, 포도의 품종에 관한 통상 명칭(customary name)으로 쓰이는 것이 지리적 표시와 동일한 경우에, 이러한 지리적 표시에 대하여 관련 규정(제22조~제24조)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한다. 보통명칭에 대한 예외규정은 TRIPS 협정 제3절에서 EU가 가장 강하게 반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가치 있는 명칭을 독점하기 위해 EU는 역내 국가에서도 이미 보통 명사가 된 지리적 표시(샴페인, 샤블리, 코냑 등)를, 그 지역 외에서 생산된 제품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때문에 호주, 캐나다, 미국과 체결한 양자 협정에서 보듯이 EU는 유럽에서 등록된 포도주와 증류주의 지리적 표시의 보호를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이 경우 샴페인, 코냑처럼 국내에서 이미 보통 명사처럼 사용되는 지리적 표시에 대한 사용에 제한이 생긴다. 그러나 샴페인처럼 지리적 표시가 특정 지역이 아니라 동일한 유형의 모든 제품을 나타낸다고 인식될 정도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경우, 지리적 표시 보호를 명분으로 명칭을 독점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EU의 요구에 따라 이미 널리 사용되는 일반 명칭의 경우도 소급해서 지리적 표시로서 보호한다면, 지금까지 형성되어온 법률관계의 변동을 초래하여 불측의 손해를 보는 집단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또한, 후발업자의 경우 이미 출현한 상품들과의 비교를 통해 자기 상품을 선전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지리적 표시를 이유로 ‘~풍(style)’, ‘~유형(type)’ 등과 같은 용례까지 금지한다면, 후발업자의 영업활동을 심각히 제한하며, 동시에 지리적 표시의 사용자들의 시장 독점을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소비자 후생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지리적 표시제의 본래 목적인 공정 경쟁과도 거리가 먼 과도한 보호이다.

EU가 체결한 양자 협정은 상표와 지리적 표시의 충돌 문제도 다루고 있다. 지리적 표시와 상표의 분쟁 가능성은 상표법상의 단체표장으로 지리적 표시를 보호하는 우리나라와 상표보다 지리적 표시를 우선으로 보호하고 있는 EU 간에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지난 5월에 있었던 1차 협상에서 EU는 역내에서 지리적 표시를 상표와는 별개로 운영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우리나라의 지리적 표시제도와 상표제도의 관계에 대해 물어왔다. 그러나 전 세계 160개국의 지리적 표시 보호 현황을 다룬 문건인 ‘Geographical indications and TRIPs : 10 Years Later…A roadmap for EU GI holders to gain protection in other WTO Members’에서 EU는 이미 “한국의 법률이 외국의 지리적 표시 등록 절차에 대해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6. 맺음말

지리적 표시는 제품의 명세를 통해 생산과정이나 품질에 대한 최소한의 것을 확인해 주기 때문에,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정보에 입각한 효율적인 선택을 유도하는 가늠자로서 제한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하지만, 생산자들 입장에서 지리적 표시는 제품의 홍보 역할을 톡톡히 함으로써 판매를 촉진시키고, 더 높은 가격에 상품을 팔리게 한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토스카노유(Toscano oil)는 1998년에 지리적 표시로 등록된 이후 20% 정도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 그리고 EU의 소비자들 중 40%는 원산지가 보증되는 상품에 10% 정도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파블로프 조건반사(Pavlovian response)식의 소비를 부추기는 ‘판촉가치’가 과연 공익으로 인정되어 법적인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는가? 지리적 표시를 보호하는 것은 지리적 원산지가 제품의 고유한 품질, 특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전 세계의 어느 곳에서라도 원산지 제품과 똑같은 품질과 특성을 가진 것을 생산해 낼 수 있다. 이를 두고 “지리적 표시를 미국식 세계화(american globalism)가 소비하여 보통 명칭으로 보편화 한다.”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EU를 비롯해서 전 세계적으로 지리적 표시로 보호받는 상품들은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유럽에서조차 지리적 표시는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지리적 원산지에서 비롯된 배타적인 품질이나 특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EU가 말하는 지리적 표시는 지리적 환경이 제품의 특징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품질과 특성이 과연 그 제품만이 가진 고유한 것, 즉 ‘배타적(exclusive)’인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남는다. 또한, EU의 주장은, 인간의 손에서 나온 ‘제품(製品)’이란 본디 ‘떼루아르(terrior)’보다는 유동적인 기술과 제조 방법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는 누구나 아는 사실을 은폐한다. 결국 EU가 의도하는 것은 명칭의 독점과 이를 바탕으로 한 세계 시장 독점일 뿐이다.

 

2008-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