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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기술과 국가권력의 재구성

By 2010/06/09 10월 25th, 2016 No Comments
황규만

1. 들어가며

한참 냉전이 극단을 치닫고 있던 시기 미국은 소련의 핵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인터넷 기술에 주목하였다. 비록 인터넷은 미국의 냉전 전략의 도구로 시작되었지만 엘고어가 정보고속도로의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는 순간 자본의 세계화의 첨병으로서 그 지위가 격상되었다. 오늘날 인터넷을 위시한 정보통신 기술은 자본의 도구뿐만 아니라 우리 노동과 일상에까지 깊이 파고들었으며 정치권력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 때 인터넷은 민족국가의 틀을 넘어선 국제연대와 대중의 직접 참여가 보장되는 대안미디어로서 각광을 받기도 했지만 오늘날의 인터넷은 포털 중심으로 시장중심적인 독점구조가 형성되어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 오히려 미디어로서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는 반면에, 대중들이 민족주의적 욕망이나 성차별적인 성향들을 가감 없이 표출하고 때로는 소수자에 대한 우리 내면의 짐승 같은 폭력을 과감하게 드러냄으로써 담론을 왜곡하는 등으로 인해 인터넷은 공공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비난과 감시의 주요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국가기구는 그 어느 때보다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동안 시민운동진영과 네티즌들의 반발에 발 묶여 있었던 인터넷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법률안을 포털규제라는 명분으로 속속들이 통과시키고 있다. 이렇듯 인터넷을 둘러싼 최근의 공공성 논란은 한편으로는 이제 인터넷이 국가시스템 내부로 편입되는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는 것처럼 보인다.

전체 미디어 역사 속에서 보면 인터넷처럼 자본의 효과적인 도구로 각광 받고, 새로운 공공의 미디어로서 지위가 격상되지만 결국에는 다시 국가시스템으로 구조화되면서 국가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과정은 전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하나의 새로운 미디어가 대중의 자발적인 참여 속에서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될수록, 다시 일국적 자본주의 시스템과 대의제적 공론장 내부로 포섭시키려는 역운동이 발생한다. 초창기에는 국가관료기구들의 무리한 통제전략이 따르게 된다. 보통은 새로운 매체의 상상력이 배제된 채 기존의 법제도 틀 속에 가두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통제전략 속에서 초창기에는 일반 민중들뿐만 아니라 자본들도 일시적으로 저항한다. 하지만 찰나의 동맹 관계는 막을 내리고, 결국 국가는 시장에 대한 통제전략과 민중에 대한 통제전략을 세부적으로 구분하게 된다. 주도권은 국가와 시장의 투쟁으로 넘어가게 되고, 적절한 사회적 합의모델을 도출해낸다. 오마이뉴스로 대변되는 인터넷언론이 탄생하고 제도화되는 과정이나 이용자참여를 근간으로 하던 포털이 어느 순간 미디어의 규제틀로 포섭되는 과정들이 그다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기존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비록 현재의 인터넷이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경도된 것처럼 보이겠지만, 인터넷은 그 출발점부터 민족국가의 틀을 벗어난 것이었다. 또한 과거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이분법적이고 근대적인 시선과도 매우 구별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정보재라는 새로운 형태의 생산관계를 함축하고 있다. 우리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왜 인터넷 담론은 그토록 국가주의에 경도되어 있으며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종속되어 있는지 해명해야 한다.

우리는 먼저 인터넷이 미디어로서 과거 미디어와 같은 점과 차이점을 역사 속에서 바라보고, 인터넷을 둘러싼 미디어, 자본, 국가간 상호 복잡한 운동과정 속에서 국가의 감시와 검열을 다루고자 한다. 그리고 향후 미디어환경의 변화 속에서 국가의 역할과 미디어의 공공성을 둘러싼 운동적 전망을 밝혀보고자 한다.

 

2. 자본의 도구이자 공론장로서의 인터넷

1) 인쇄매체의 발전과 민족국가의 형성

주지하다시피 인터넷이 주목받았던 이유는 자본의 세계화와 관련이 있다. 자본의 세계화는 “세계를 전체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동반한다. 엔소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세계화를 “지역적 사건이 멀리에서 발생한 사건에 의해서 형성되고 멀리에서 발생한 이슈 또한 지역에서 발생한 이벤트에 의해서 형성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들을 연결시켜주는 전세계적인 사회적 관계의 강화”로 정의하였다.

자본의 세계화는 단순히 자본과 상품 그리고 노동력 이동의 전 지구적 확장뿐만이 아니라 전지구적 커뮤니케이션을 구축하는 것을 지향한다. 자본이동의 시공간 단축이라는 절대 절명의 지상과제는 지역적 한계에 제한받지 않는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보통신기술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로서의 지위를 뛰어넘어, 쌍방 소통과 커뮤니티(공동체)를 지향하는 미디어로서의 지위로 격상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인터넷이 이렇듯 자본의 첨병이자 미디어로서의 지위를 획득한 것은 전체 미디어 역사에서 보자면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우리는 초창기 인쇄매체가 자본주의와 민족국가 형성에 기여한 과정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대량상품을 생산하고 전 세계에 상품을 해상으로 운송해야 했던 초창기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자본가들의 가장 큰 관심은 자신이 투자한 상품에 대하여 언제 배가 떠나고 무사히 도착했는가에 대한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였다. 더불어 전 세계에 상품을 유통시켜야 하는 자본가들에게 전 세계에 대한 지식과 경험에 대한 공유와 새로운 상품이나 기술에 대한 신속한 정보전달 역시 중요하게 여겨졌는데 이런 요구를 가능하게 해준 것이 인쇄매체였다. 이런 인쇄매체의 발달은 자연스럽게 원거리에 위치한 길드나 자본가들 사이에 상호 신뢰할 수 있는 자발적인 커뮤니티를 유발시켰다. 당시의 인쇄매체에 대한 가치평가는 해당 매체를 유통하는 공동체의 신뢰도가 가장 중요한 잣대였다. 이런 공동체의 형성은 인쇄매체가 공론장으로 발전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초창기 자본주의에서 인쇄매체는 상인들의 자발적인 필요에 의해 사용되던 것이었으나, 오히려 인쇄매체의 이런 특성을 진정으로 주목한 것은 당시 중앙정부였다. 정부의 시책을 퍼트리거나 제국주의 전쟁에 인적/물적 자원을 전국적으로 동원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인식된 것이다. 초창기 국가가 그리 강력한 규제력을 가지지 못한 것을 생각한다면, 국가가 민족이라는 개념을 성립시키고 점점 강력한 중앙정부로 발전해나간 것은 놀라운 일이다. 물론 우리는 민족국가 형성 과정 일반에 대해 추적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당시 민족국가의 형성에 있어 인쇄매체가 수행한 놀라운 역할에 대해 잠시만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민족국가의 형성에 있어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표준어로 대변되는 언어의 통일과 단일한 사회규범의 확립이었다. 이를 국가의 정책으로 널리 전파하고 확립하는데 인쇄매체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인쇄매체에 실리는 언어를 통일하는 표준어를 제정하고, 모든 매체발행자들에게 강제함으로써 대중들에게 표준어를 통해 원거리 개인들과 소통하도록 유도할 수 있었다. 또한 국가적 관심사―전쟁이나 경제정책 등―를 적극 유포함으로써 대중들로 하여금 지역 공동체적 이해관계를 벗어나도록 하였다.

이런 노력들은 개인이 근대적 주체로 나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인쇄매체를 비롯한 매스미디어의 발전과 근대적 주체의 형성은 미디어를 여론과 담론의 중심 영역으로 격상시켰다. 국가 정책에 적극적으로 의사를 개진하는 시민이라는 정치적 주체를 만들어내었다. 이로서 매스미디어는 민족국가라는 틀 안에서 대의제적 민주주의의 공론장이라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사회적 지위를 획득해 나갔다.

인쇄매체는 자본주의적인 민족국가를 유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반면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이 유럽 전 지역에 걸쳐 대중적으로 발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유통된 지역지들은 사회주의 사상을 유포하고 대규모 파업을 이끌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따라서 국가는 단순히 매스미디어를 통해 대의제적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도구주의적 관점을 뛰어넘어, 체제를 위협하는 정보의 소통과 커뮤니티 형성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한다. 인쇄매체를 발행하는 주체를 허가제나 심의제를 통해 국가의 관리틀 속에 제한하기 시작했으며, 중앙정부에 반하는 글을 유통한 저자와 발행자들을 물리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은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시기에 접어들며 정점에 다다른다.

이로서 오늘날 미디어와 국가와의 전통적인 관계, 대의제적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공론장으로의 역할로서 국가가 진흥을 담당하기도 하지만, 체제유지를 보장받기 위해 국가가 감시와 검열, 그리고 시장규제자로서 역할을 하는 관계가 정립된다.

2) 통신기술의 발전과 미디어에 대한 국가의 영향력 확대

인쇄매체가 초창기 자본의 자율적인 도구와 커뮤니티 역할에서 국가기구와 결합함으로써 공공의 영역으로 자율성을 확대해 왔다면, 통신과 방송은 그와는 조금 다른 역사를 가진다. 20세기 국가는 통신기술이 산업 혁명기의 철도나 고속도로와 같이 자본의 근간망이 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고속도로와 철도가 국가의 적극적인 투자와 군사적 보호 속에서 이루어졌듯이 통신망의 구축 역시 총자본으로서 국가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전화 등의 유선통신망의 경우에는 그 구축비용이 개별자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는 통신망 사업이 투자대비 회수기간이 오래 걸리는 기간산업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산업의 특성 때문에 통신망 건설은 국가가 주도하였다. 그리고 공중파 방송과 같은 무선 통신망은 통신주파수라는, 공공의 자연재라는 특성이 국가에게 주도적 역할을 부여하였다. 배타적인 폭력수단을 독점적으로 소유한 국가는 물이나 공기처럼 통신주파수에 대해 소유권을 행사함으로써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국가마다 방송이나 통신망에 대한 국가개입모델이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국가기구에 의한 직접적 규제나 국가가 개입된 민간자율기구에 의해 통제되는 것은 거의 비슷하다.

이렇듯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미디어에 대해 국가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기술에 대한 국가의 주도성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미디어를 둘러싼 제 사회세력간의 권력투쟁 속에서 발현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우 방송이나 통신의 공공성 논쟁이 시장중심적인 자원의 효율성 관점에서 전개된 반면 유럽은 좀 더 국가 주도적이다. 유럽의 경우에는 사민주의적 전통 속에서, 방송 등의 공공자원을 관리하는 역할이 공공의 담지자로서의 국가의 역할로 설정된 것이다. 반면 서구와 달리 남한처럼 군사정권이 개발을 주도한 경우에는 폭력적인 형태로 구현되었다. 미디어의 공공적 기능보다는 정권 유지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3) 인터넷의 등장

바로 이러한 시기에 인터넷이 새로운 미디어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무선주파수를 이용한 방송미디어가 국가 중심적이었다면 오히려 인터넷은 초창기 인쇄매체처럼 시장과 대중의 자발적인 활용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197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확장되면서 인터넷기술이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정보의 교환과 자본이동의 시공간을 무한대로 축소시키고자 하는 자본의 욕망은 많은 실험과 도전을 거쳐 인터넷이라는 신작로를 발견해낸다. 1970년대 미국의 공과대학에서 히피적 문화 속에서 발전했던 인터넷관련 기술과 연구자들은 1980년 즈음 대부분 민간자본으로 이동한다. 이는 당시 자본들이 인터넷관련 기술들을 본격적으로 산업과 접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정보재에 대한 특허권이 강화되고 이에 반발을 품은 일련의 자유주의자들이 정보공유를 주창하며 자유 소프트웨어운동을 일으킨다. 이런 기술적인 이슈에 불과했던 인터넷 기술이 사회 전면에 등장하게된 것은, 당시 대학생과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한 대중들의 자발적인 활용 때문이었다. 당시 선진적인 활동가들이 인터넷이 대의제 민주주의 안에서 권력화 된 매스미디어와 달리 자유롭고 저항적인 소통의 도구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1986년 프랑스 학생운동가들은 미니텔을 이용하여 신자유주의적 대학 개혁 반대운동을 이끌었고, 1993년에는 미국 산타모니카주의 활동가들이 지역 네트워크 PEN을 이용해 노숙인 편의시설 확충을 요구하는 지역 주민과 노숙인의 주장(SWASHLOCK : Showers, WAShers, and LOCKers)을 시정부에 관철하는데 성공하였다. 멕시코 치아파스 지역 농민혁명군 사빠띠스따가 인터넷에 신자유주의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전세계적인 연대를 호소한 것은 1996년의 일이었으며, 남한에서 노동법개악 날치기 국회통과 저지 총파업 투쟁에서 투쟁소식을 그 누구보다 빠르게 알리며 전 세계적인 연대를 이끌어낸 통신지원단활동은 1997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1999년에는 시애틀 WTO 각료회의 반대 투쟁을 계기로 독립미디어센터(Indymedia Center)가 설립되었으며, 2002년 대우차 정리해고 반대투쟁 시 대우차영상패 등의 현장노동자와 결합된 인터넷 방송을 통해 경찰의 폭력을 인터넷을 통해 널리 폭로하였다. 그리고 2002년 효순이 미선이 미군장갑차에 의한 사망사건 역시 인터넷을 통해 전국적인 촛불시위로 이어졌다. 인터넷은 감시와 검열로부터 보다 자유롭고 범세계적인 연대에 기반한 민중의 직접적인 참여가 보장되고 정보공유를 통해 집단지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탈자본주의적인 매체로 추앙되었다. 대중들의 소통과 연대에 대한 의지는 그 어떤 때보다 활활 불타올라 인터넷에 의한 민주주의가 만개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희망했었다.

반면 국가는 인터넷과 같은 사이버공간을 통제하고 감시하기에 용이하지 않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간파했다. 과거 전통적인 매스미디어들은 비록 지난한 투쟁을 통해 상대적 자율성과 권력을 확대해왔지만 궁극적으로는 법률과 행정기관들에 의해 효율적으로 통제되어 왔다. 이는 신문이나 영화, 그리고 방송 등의 전통적인 미디어가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근대적인 관계에 기초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가는 콘텐츠 생산주체에 대한 인허가권을 가진 폭력의 독점적 소유자로서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으며 또는 개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각각의 생산주체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사이버 공간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구분되지 않는 실질적인 쌍방향관계의 매체이기 때문에 기존의 생산자 중심의 통제전략을 무력화 시킨다. 더군다나 인터넷은 민족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다. 일국적인 수준에서 정부가 불법정보로 규정한다 하더라도 인터넷의 콘텐츠는 어떠한 제재나 심사 없이 실시간으로 국경을 넘나든다. 때문에 전통적으로 민족에 기반한 대부분의 국가는 인터넷에 대하여 대의제적 민주제도에 혼란을 유발하며 심지어 민족국가의 틀마저도 벗어던진 외설스럽고 불순한 매체라는 의구심을 가졌다. 1992년 한국에서는 오늘날 대표적인 인터넷 감시기구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출범하였으며, 1996년 미국은 인터넷을 방송매체와 동일하게 취급하고자 하는 취지의 연방통신품위법(the Communication Decency Act: 일명 CDA)을 제정하였다.

이런 정부의 노력은 초창기 대부분 실패를 경험한다. 1997년 미연방대법원은 연방통신품위법에 대하여 위헌 판결하였으며, 2002년에는 한국에서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불온통신 조항도 위헌판결을 받는다. 이는 물론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려는 시민운동을 비롯한 진보진영의 적극적인 투쟁이 시발점이 된 것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시장의 자율성이 강조되고 국가의 감시역할이 재조정되는 시점에서 자본 일반에서도 반대하는 국가의 구시대적 통제전략이었기 때문이었다.

 

3. 인터넷의 신자유주의적 내면화와 국가감시 시스템 안으로의 재포획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한편으로는 환상을 또 한편으로는 불안을 노정한 것이었지만, 90년대 말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자본주의와 국가시스템에 내면화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는 과거 인쇄매체처럼 매우 총체적이고 복잡한 과정이었다. 첫째로는 미디어로서 새로운 형태의 대의제적 동원시스템으로 변모되는 과정이 있다. 둘째로는 시장의 측면에서 온라인공간이 독과점의 형태로 변질되어가는 과정이 있었다. 셋째로는 자본과 미디어진영과의 타협 속에서 국가의 감시 역할이 다시 복원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시장, 미디어, 국가간의 상호운동―때론 매우 협조적으로, 또 한편으로는 매우 투쟁적으로―을 통하여 인터넷은 민중적이고 혁명적 의미를 탈각시키며 전체적으로 국가시스템에 안착하게 된다.

1) 온라인 신문의 등장과 제도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민중의 참여적 성격에 주목한 많은 독립 미디어활동가들은 인터넷을 대안(Alternative)미디어로 생각해왔다. 그런 성격을 주목한 것은 전통적인 좌파 미디어 활동가들뿐만은 아니었다. 주지하다시피 군부독재시대 언론개혁을 주도했던 개혁언론진형은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으로 대변되는 인터넷언론을 주도한다. 인터넷언론은 시민기자라는 말로 포장해 인터넷의 민중적 참여행위를 공식적인 언론의 영역으로 흡수하였다. 물론 당시에는 조·중·동 문제를 비롯해서 언론의 개혁이 중요한 개혁적 의제였음은 분명하다. 또한 인터넷을 대의제적 질서내의 공론장으로 격상시킨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따라서 대중들의 자발적인 오마이뉴스 등의 인터넷 언론 참여행위를 지금 와서 그 의미를 축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지 2002년 인터넷 언론이 노무현정권을 탄생시키면서 본격적으로 주류미디어로 제도화되는 과정을 거쳤다는 점을 주목하고자 한다.

2005년 개정된 신문법은 비록 많은 논란과 한계가 있었지만 인터넷언론을 법체계 안에서 해석하고 지원과 규제행위를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었다. 이는 한편으로는 일부의 골수 좌파언론들조차 국가의 합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보다 엄격한 언론의 기준을 강요받는 것으로 민중들의 자발적인 참여행위에 대한 규제장치를 마련한 것이기도 하다. 즉 인터넷 언론사는 보도내용에 대해 책임을 가져야 한다. 이는 언론보도에 대한 사회적 책임뿐 아니라 손배소 문제에 좀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기도 하다. 따라서 각 언론사는 민중들의 자발적인 참여행위, 즉 온라인으로 기사를 송고하는 행위에 대해 보다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기사생산 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터넷언론사들은 과거보다 민중들의 자발적인 콘텐츠의 비중을 줄이고 자체 기사 생산 비율을 높이게 되고, 이는 다시 기자의 채용을 늘려야 하고 결국 재정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결국 재정적으로 지난시절 언론사와 마찬가지로 기업이나 국가의 광고에 의존하도록 할 것이다. 결국 인터넷 언론도 대의제적 정치제도 안에서는 여전히 비판적이고 자율적일 수 있지만 경제적 문제들 특히 사회구조의 근본적 문제인 자본주의 일반에 대한 입장에서는 과거로 회귀하게 된다. 한칠레FTA협정이나 한미FTA 협상 당시,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이 정부의 FTA홍보광고를 게재한 사건은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2) 포털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시장의 재편

인터넷 언론이 언론사의 틀 안으로 내면화되어 가는 즈음에 인터넷은 포털시장 중심으로 완전 재편된다.

1994년 한국통신이 코넷 서비스로 인터넷 서비스를 실시한 이후, 한국 인터넷은 포털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1997년 야후 코리아를 시작으로 초기 포털은 검색, 메일, 커뮤니티 전문형 사이트들이었지만 2003년 <미디어 다음>의 등장은 포털에 새로운 성격을 부여하게 된다. 포털의 강력한 접근성과 집중화 현상에 따라 뉴스의 소비패턴도 포털로 집중화되는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과 같은 인터넷언론사가 온라인 저널리즘의 불을 지폈다면, 포털은 인터넷언론사는 물론 다른 지면신문 언론사들까지 모두 불살라먹어 통합적 저널리즘을 완성시켜버렸다. 문제는 한국의 주요 포털의 전체 인터넷 시장의 독과점 현상에 있다. 메이저 3대포털(네이버, 다음, 네이트온)의 점유율이 84%에 이르며, 특히 검색의 경우 90%에 달할 정도로 집중화되어 있다. 이로서 포털은 한국에서 중요한 정치, 사회적 영향을 행사하는 미디어 권력의 지위를 획득하였다.

포털을 중심으로 한 이런 독과점 현상은 네트워크의 자연스런 효과이기도 하며, 자본의 일반적 경향이기도 하다. 이는 조·중·동의 과거 언론의 독과점현상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단지 언론의 형식을 벗어나 좀 더 자본 친화적이며 시장중심적인 미디어 소비형태를 구현했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최근의 포털규제 논쟁은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최근의 포털규제 논쟁이 독과점 규제가 아니라 언론 규제의 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인터넷이 보편적인 공론장으로서의 미디어의 지위를 획득했다는 점을 증명한다. 최근 이루어지고 있는 포털규제 논쟁의 핵심은 포털을 언론으로 보아야 하는 지, 정보전달자로서의 통신사업자로 보아야 하는가이다. 우리는 이러한 논쟁을 이 지면에서 깊숙이 다루어야할 이유는 없다. 단지 이러한 논쟁을 두 가지 관점에서만 평가하고자 한다.

첫째는 포털의 미디어적 기능을 인정한다고 했을 때, 전통적인 공공성의 개념, 즉 전통적인 언론의 공적기능인 대의제 민주주의 틀에서의 역할을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전통적인 여론의 기능이란 국가를 공적영역의 보편적 담지자로 상정하고 이러한 국가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역할로서의 대리기구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러한 미디어의 역할이 비록 격렬한 민중의 투쟁국면에서는 일시적으로 탈주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담론의 영역에서 체제의 질서를 유지하는 주요한 수단이라는 점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포털이 언론이냐 아니냐는 우리에게 근본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정작 문제는 포털이 주류언론의 콘텐츠만을 대량으로 수집하여 재편집함으로써 오히려 주류미디어의 담론을 더욱 확장한다는 점이다. 포털의 본원은 이용자들의 자발적인 콘텐츠 참여행위이다. 포털은 대의제로 왜곡되지 않는 민중들의 직접적이고 참여적인 콘텐츠를 중심으로 새로운 형식의 미디어역할을 할 수도 있었다. 포털에 공론장으로서의 공공성을 요구해야한다면 그것이 언론이어서가 아니라 민중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운영되는 직접민주주의의 장으로서의 공론장이기 때문이어야 한다.

둘째, 이와 같이 포털규제 논쟁이 왜소화된 이유는 포털의 통합적 저널리즘의 폐해에 대해 기존 미디어관련 담론과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오해 탓이다. 현재 포털의 폐해는 단순히 비언론노동자에 의한 기사의 편집과 편성 때문만이 아니다. 진정한 폐해는 포털이 편집하는 미디어의 대부분이 기존의 주류언론이라는 점이다. 포털의 통합적 저널리즘은 오히려 소수자의 목소리, 반자본주의적인 비주류 미디어의 콘텐츠를 완벽히 배제하고 있다. 기껏해야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 정도가 조·중·동 그리고 한·매경 등의 콘텐츠 사이로 삐져나올 뿐이다. 과연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 등의 개혁담론이 우리사회의 소수자의 목소리, 체제에 대한 근본적 비판의 목소리를 모두 포괄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미디어가 민주적인 공론장으로서의 공공의 기능을 수행하려면 그 공간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해야 하며, 소수자의 목소리가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포털은 그렇지 못하다. 사람들은 소수의 목소리나 다른 목소리를 듣기 위해 애써 웹서핑을 하려하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형 포털은 오히려 한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는 밀폐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편리한 소비에 익숙해진 대중들에게 편식메뉴만을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포털의 폐해이다. 이는 언론으로 규제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언론이든 전기통신사업자이든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포털은 단지 시장의 독점적 지위자란 이유만으로도 당연히 공공의 역할―다양성을 보장하고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을 부여받아야 한다.

3) 독과점 포털의 동원체계, 그리고 감시와 검열

포털의 통합적 저널리즘이 사회적 논쟁이 되는 것은 그것이 통신시장과 언론시장 사이의 주도권 싸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논쟁 속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진정한 포털의 독점 폐해를 잊어서는 안 된다. 첫째로는 독과점을 형성한 포털시장이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대한 대규모의 동원시스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과, 둘째는 국가의 감시와 검열을 용이하게 하고 시장의 자율적인 감시와 통제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독과점 지위를 획득한 포털은 이제 민중들의 쌍방향적이고 다양한 담론의 소통도구로서가 아니라 전통적인 매스미디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과거의 공중파 등의 매스미디어가 무한히 반복되는 내용을 일방적인 대중들에게 전파하는 고전적인 방식에 머물러 있었다면 오늘날의 대중동원시스템은 이용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초로 한다.

과거 파시즘운동이나 중국의 문화혁명이 대중동원에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대중들의 현실에 대한 불안과 구속을 ‘해방’이라는 열정으로 대치하고, 그것을 참여니 민주주의니 하는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해준 정치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은 과거 황우석사태나 최근의 심형래의 D-War의 애국주의 마케팅 등의 사례에서 보이는 포털을 통한 자발적이고 대규모적인 국가주의에의 동원이 그다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물론 대중들이 민족주의적인 정서를 포털을 통해 배설하는 것은 다 나름의 정치사회적인 구체적인 맥락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한국에서만의 특수한 사례도 아니며 신자유주의가 극단으로 치닫는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대중동원력이 사실은 포털의 시장에서의 막강한 독점력과 주류상업 미디어에 대한 편식증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점이다.

2006년 말 통과된 인터넷 실명제는 그 대상을 주요 포털로 하고 있지만, 현재 포털이 인터넷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생각한다면 실질적으로는 전 국민 대상으로 전 국민의 대부분의 인터넷활동에 대한 실명제라고 규정해도 무방하다. 즉 국가의 입장에서는 별품을 팔지 않고도 민중들의 자유로운 표현행위를 규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2006년 말 통과된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에는 인터넷사업자의 임시조치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다. 이는 명예훼손과 관련된 분쟁이 인터넷에서 발생할 때 포털사업자에게 면책의 근거를 만들어둔 것이다. 이는 포털사업자에 의한 자발적인 감시와 검열행위를 강제하고 있다.

최근 다음카페에서 이랜드노동조합 카페와 삼성하청노조인 코레노민주노조 추진위원회 카페에 대한 임시조처는 포털의 자발적인 검열행위의 대표적 사례이다. 사업자들 입장에서는 인터넷 전체를 모니터링 할 필요가 없어졌다. 대부분의 온라인 활동이 포털에서 벌어지므로 포털 내에서의 관련 콘텐츠만을 검색하여 포털사업자에게 노동조합 카페나 블로그에 대한 삭제요청을 하면 된다. 포털 사업자는 법에 명시된 대로 거리낌 없이 임시조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노사관계에서 분쟁 해결자의 역할을 국가가 독점적으로 수행해왔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처럼 민간 자본 사이의 자율적인 시장행위를 통해 보다 용이하게 수행되고 있다.

인터넷 시장의 포털을 중심으로 구획하는 감시는 검열기구로서의 국가에게는 용이한 환경을 조성한다. 이는 과거처럼 생산자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를 통하지는 않지만 독과점적인 정보전달자에게 감시와 검열의 역할을 이양함으로써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국가의 감시 역할 모델의 변화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는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민주화를 둘러싼 사회적 투쟁과 한국사회의 정상화와 맞물린 국가성격의 변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된 것이다.

4) 감시기구로서 국가의 역할 재조정

현재 인터넷에서의 주요 감시·검열 기구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이하 정통윤)이다. 정통윤은 전통적인 반공과 음란물에 대한 검열을 기초로 하고 있다. 우리가 궁금한 점은 정보통신산업을 육성하는 정보통신부 산하에 왜 뜬금없이 검열기구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자리 잡았는가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한국사회의 검열의 역사를 간략히 검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해방 이후 남한 사회에서 신문과 방송 그리고 영화 등의 대표적인 매스미디어들은 분단과 군부독재라는 한국적 특수한 상황 속에서 강력한 국가의 감시와 규제 하에 놓여있었다. 군사독재정권 시기에 국가기구는 미디어에 대하여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검열과 무제한적인 탄압을 자행해왔다. 주지하다시피 남한사회에서 국가의 직접적인 폭력의 명분이 되었던 것은 대북반공 이데올로기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48년에 제정되어 아직 폐지되지 않고 있는 국가보안법일 것이다. 1962년 제정된 방송법이나 80년 초반 전두환의 쿠데타에 의한 정권탈취 이후 제정된 언론통폐합과 언론기본법들은 국가기구의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개입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당시의 대부분의 언론사의 경우에는 문공부 등을 통한 보도지침 관행과 신문사의 정간과 폐간 등에 대한 국가의 직접적인 위협으로 군사정부의 직접적인 통제 하에 있었다.

주목할 점은 이 시기를 거쳐 한국사회에서 문화적으로 불온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불온은 반공의 절친한 문화적 동반자였다. 이 시기에 불온도서의 목록이 체계화되고 정부 검열기관의 무수한 변천사에도 불구하고 유구하게 내려오는 행정적인 족보가 형성되었으며 관료들의 전문화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점은 87년 민주화항쟁과 97년 정권교체이후에도 국가의 감시메커니즘이 자생력을 가지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체육관 대통령시대가 마감된 87년 대선 이후, 남한 사회에서 국가행정기구에 의한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검열은 물리적인 폭력이라는 관점에서 점차 완화되어가기 시작했다.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공연법 시행령 개정 등으로 사전검열이 대부분 폐지되었다. 그로 인해 금서, 금지가요, 보도지침 등이 공식적으로는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문민정부 출범과 97년 정권교체기를 거쳐 음반과 영화 쪽에서는 사전심의와 검열이 대부분 완화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청소년보호법의 제정이다. 불온이라는 단어가 구시대의 잔재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는 대신 음란이라는 새로운 금기어가 청소년보호를 명목으로 반공이데올로기와 재결합하게 된다. 음란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은 청소년들이 봐서는 안 좋을 것 같은 콘텐츠로 확대 해석되었고, 이는 전통적인 불온 개념과 전혀 다르지 않다. 청소년보호법은 법원이나 사회 보수층 그리고 군사독재기간에 검열을 담당해왔던 관료층에게 중요한 명분과 수단을 제공해주었다. 더불어 이 시기는 사법부와 연계된 행정기관의 검열메커니즘이 정권 여부와 무관하게 완벽한 전문성과 자생력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인터넷 초창기였던 90년대는 군부세력에서 민간정부로의 권력 이양기였다. 전통적인 검열기구와 법제도가 하나씩 해체되어가는 과정에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과거의 국가의 직접적인 검열메커니즘으로는 소화하기 힘든 것이었으며 검열을 감당하는 관료조직에게는 새로운 시대와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주어진 것처럼 보였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검열을 담당하던 기존의 관료조직의 개편과 정보통신산업의 진흥이라는 정부주도 전략 속에서 탄생한 신흥 관료조직의 만남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정통윤은 초창기 정통부 위상 자체도 불안한 조건에서 기술적 제도적 미약함 때문에 상당부분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을 등에 없고 정보통신 산업의 확장 속에서 정통윤은 그 어느 조직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매우 성공적으로 자기존립기반을 재영역화해냈다.

과거와 달리 국가의 검열기구는 정권의 보위 자체를 목표로 활동하지는 않는다. 과거에 담당하던 문화 영역과 경제 영역의 검열과 감시 행위는 시장의 자율에 맡기고 대북문제와 청소년보호를 명분으로 하는 검열행위에 주력한다. 이는 체제유지와 사회적금기유지라는 국가 고유기능이기도 하다. 2006년 말 통과된 전기통신망법개정안, 통신비밀보호법 개정논란 그리고 최근 시민사회단체 홈페이지에 게시된 북한관련 게시물을 삭제하라는 정통부장관의 명령 등은 이런 맥락 속에 놓여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국가의 감시와 검열행위를 다시 복원하는 것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점은 시장의 자율적인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국가기구가 담당했을 정책적 기능들을 대거 민간에게 이양시키고 있다. 더 정확하게는 인터넷 관련 정책에 대한 국가의 통제권은 애초에 없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정보재나 인터넷 관련 표준은 그 자체로 탈국가적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는 ICANN(인터넷주소 관리기구)이 담당하는 IP주소나 도메인정책 등 과거에는 국가가 했을법한 주요한 정책결정들을 자율적인 민간기구에서 결정해버린다. 이런 자율적인 민간기구에서는 전통적인 시민권의 개념도 없으며, 오로지 소비자라는 개념만이 중요하다. 반면 신자유주의의 주요한 이윤착취 수단인 특허권과 저작권은 비록 그 성격상 탈국가적이긴 하지만 보다 강력한 물리적 통제를 필요로 한다. WTO나 FTA 등의 국가협정은 바로 이렇게 탈국가적인 자본의 착취수단을 각 국가별로 이행하도록 강제하는 수단이다. 이는 전통적인 국가의 검열행위에 추가된 새로운 과제이다. 국가는 한편으로는 정책결정 수단을 민간자율기구에 이양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강력한 탈국가적인 영역에 대한 지역적 규제자 역할을 부여받는 것이다.

 

4. 방통융합과 새로운 과제

최근 IP-TV 도입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IP-TV로 대변되는 방통융합 논쟁은 기존의 방송과 통신기술의 융합서비스 시대가 도래 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기술적 전망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방통융합은 방송서비스와 통신서비스의 기술적인 차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자본의 전략적 카피에 불과하긴 하다. 하지만 방통융합기술들은 향후 몇 년 후의 미래시점에 몇 가지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제기할 것이다.

첫째, 미디어를 둘러싼 공론장에 대한 새로운 재편이 이루어질 것이다. 방통융합 기술들은 미디어 소비 시장에 통합된 미디어 서비스 제공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미디어 소비시장은 보다 자극적이고 비선형적인 소비시장이 될 것이다. 언론, 방송, 통신 산업의 재구획화가 이루어지고 자본시장의 논리에 의해 강제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결과적으로는 앞에서도 지적한 바 있는 포털식의 통합적인 저널리즘이 더욱 확장될 것이다.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방통융합기구통합법이 이슈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쟁을 보면 주로 기존의 방송위원회중심의 언론진영과 KT등의 통신자본이 주도하는 정보통신부의 밥그릇 싸움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미디어시장을 기존의 미디어자본이 주도할 것이냐, 아니면 거대 통신사들이 주도할 것이냐의 싸움이 될 것이다.

이런 싸움은 무엇보다 과연 미디어의 공공성의 정체가 무엇이냐란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논쟁을 만들어낼 것이다. 전통적으로 통신시장에서의 공공성은 유효경쟁이나 보편적 접근성 등의 시장의 효율성 논쟁이었다. 하지만 방송시장에서의 공공성은 지난한 역사 속에서 일정정도 사회적 공익과 다양성의 배려 등 대의제적 민주질서를 함축하고 있었다. 이런 복잡한 함수관계는 향후 진흥과 규제를 담당하는 국가기구의 성격을 규정하는 싸움이기도 하다.

둘째는, 방통융합기술이 감시와 통제가 보다 일상화된 사회로 진입하는 불우한 신호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향후 통합적인 방통융합서비스의 경우에는 과거 인터넷 프로토콜보다 훨씬 가독성이 높은 기술들로 표준화될 가능성이 많다. 초창기 인터넷은 분산시스템에 기반한 통신이라는 점에만 방점을 찍어 각각의 패킷에 대한 가독성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하지만 통합망에서는 산업적으로는 통신망의 과금문제와 정부의 감청욕구의 이해가 일치하여 보다 가독성 높은 프로토콜로 표준화될 것이다. 실례로, 최근 KT의 와이브로 서비스가 채택한 유무선 통합시스템인 IP 멀티미디어서브시스템(IP Multimedia Subsystem – IMS)은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기술 중에 하나이다. 미국 연방정부와 주공식 IT솔류션 납품업체인 Carahsoft사는 이런 IMS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감청장비이자 보안장비인 Narus 시스템을 이미 정부기관들에 납품하고 있다. 휴대폰이 감청가능하다는 것도 지난 안기부X파일 사건으로 이미 널리 알져진 사실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한발 더 나아가 최근 개정 논의 중인 통신비밀보호법을 통해 휴대폰에 대한 감청을 합법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이렇듯 방통융합 기술은 과거 인터넷 프로토콜보다 보다 가독성이 높은 감청 기술을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기술적 조건 속에서 무선 통신에 기반한 방송과 통신의 융합국면에서 국가는 방송을 매개로, 과거 방송이 새로운 매스미디어 강자로 등장할 때만큼이나 주도적 역할을 행사하려 할 것이다. 결국 인터넷이 새로운 미디어로 각광받던 시절에 상대적으로 참여적이고 자유로워 보였던 미디어 환경이 이제 다시 국가의 통제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국가가 개입한다고 해서 무조건 배척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편승하여 시장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것만큼 무책임하고 속편한 소리는 없을 것이다. 국가는 정권을 보위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총자본가의 역할에 충실하기는 하지만 일정 부분에서는 공공성을 매개로 한 계급투쟁의 공간이기도 하다.

 

5. 맺으며

과거 정보통신 활동가들은 인터넷에 대한 무제한적인 자유를 주장하고, 일정정도 상대적인 자유로움을 만끽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술했듯이 한편으로는 인터넷이라는 미디어가 국가시스템 내부로 편입되고 있는 과정 속에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최근 방통융합이라고 불리는 새로이 도래할 미디어환경 속에서 이제 정보통신운동활동가들은 새로운 과제를 요구받고 있다. 과거처럼 단순히 검열과 감시를 반대하며, 제발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라는 주장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보인다.

포털중심으로 구조화된 인터넷에서 소수의 독립활동가들이 배제된 지는 오래이다. 많은 진보적인 학자들은 포털 등의 미디어를 통한 대중들의 자발적인 국가주의의 동원,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에 너도나도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인터넷이 과거보다 빅브라더에 의한 대중동원을 더욱 쉽게 만들었다고 투덜대고 있다. 마치 그러한 몰지각한 대중들을 비난하는 것이 자신들의 순교자적인 삶인 듯 너도나도 거들먹거리고 있다. 투정은 말 그대로 투정일 뿐이다.

이제 인터넷 등의 정보통신기술에 기반한 미디어는 국가와 시장 그리고 미디어라는 복잡한 함수관계 속에서 공공담론의 영역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방통융합을 계기로 보다 국가중심적인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하나의 미디어가 민간주도에서 국가주도로 재편되는 것은 전체 미디어 역사에서 보면 그다지 새로운 일도 아니며, 반복되는 변주에 불과하기도 하다.

우리가 주목하는 점은 점차 인터넷 등을 기반으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활동에 주력해왔던 좌파 미디어 활동가들에게 새로운 투쟁의 공간이 열리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주류 공공성 담론 안에서의 싸움이 여전히 자본주의적이고 민족국가 시스템 안에서 매우 제한적이라는 한계는 명확하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의 싸움이 궁극적으로는 신자유주의를 저지하고 민중의 직접적인 참여와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지향하는 운동과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지점이라는 점도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강제하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 속에서 민중적인 공공성이 무엇인지 재해석하고 자본과 국가와 새로운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포털 및 향후 방통융합 미디어에 대한 공공적 역할을 강제하고 이를 활용해서 대안적인 사회에 대한 담론을 대중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하며, 강화되어가는 국가의 검열과 감시로부터 민중의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한 싸움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2008-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