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네트워커표현의자유

전산망에 대한 법으로 시작해 개인정보 보호, 인터넷 내용규제까지 즉흥처방{/}정보통신망법, 끝나지 않는 변신

By 2003/11/28 10월 29th, 2016 No Comments

표지이야기

장여경·고영근

"또다시 왜곡된 모습으로 변신하려는 것입니다." 2000년 9월 5일 종로 YMCA 강당에서는 몇주 전 정부가 발표한 법안에 대한 시민공청회가 열리고 있었다. 인터넷내용등급제를 반대하는 29개 시민사회단체들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날 시민공청회에서 비판의 도마에 오른 것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 이 법은 원래 1985년 ‘정보화사회기반조성법’이라는 이름으로 "정보화사회의 기반조성과 고도화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기 위해 제안되었다. 그러나 부처별 협의를 거치면서 네트워크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법으로 축소되어 1987년에 발효할 때는 이름도 ‘전산망보급확장및이용촉진에관한법률'(전산망법)로 바뀌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정보화가 확산되자 ‘정보화촉진기본법’이 제정되어 전산망법이 원래 다루려고 했던 내용 대부분을 다루게 되었다. 따라서 전산망법은 이때 정보화촉진기본법에 흡수되었어야 마땅했지만 1999년 오히려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내용을 추가하면서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로 새롭게 변신하였다. 개인정보 보호는 인터넷에서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해외처럼 별도의 법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시민사회?학계의 주장은 반영되지 않았다.
그러다 정부가 2000년 개정안에서 인터넷내용등급제 등 인터넷 내용 규제 권한을 강화하려고 시도하면서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때 시민사회단체들은 강화해야 할 개인정보 보호는 오히려 완화되었다고 지적했다. 기업 양도양수나 인수합병시 당사자 동의없이 고객의 개인정보를 통합할 수 있게 하여 개인정보의 자산적 가치를 높인 것이다. 하지만 국회는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정보통신부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름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정보통신망법)으로 확정되었다. 정보통신망법은 그 이름만큼 내용도 자주 바뀌었다. 1986년 전산망법으로부터 시작해 2003년 현재 무려 13번이나 개정되었으니 일년 남짓 마다 한번씩 개정된 셈이다. 1999년에는 무려 3번이나 개정되었다. 이 법이 법 본래 취지에서 한참 어긋났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잦은 개정은 인터넷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처방을 한다는 명분 때문이었지만 어느 정도 부처 이기주의의 산물이다. 처방 내용이 대개 정보통신부 산하에 기구를 신설하거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법의 변천사는 한국사회가 인터넷 문제에 대해 장기적인 정책을 수립하기 보다 즉흥적인 땜질 처방에 의존해 왔음을 보여준다. 스팸 메일 규제를 위한 2002년 개정 때는 사전동의 방식인 ‘옵트인’ 방식으로 규제를 강화하라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의견을 끝내 반영하지 않았고 스팸 메일은 아직도 줄어들 줄을 모른다.
이 법은 지금 또다른 개정을 기다리고 있다. 인터넷 대란에 대응하기 위해 ‘인터넷침해사고대응지원센터’라는 기구를 정보통신부 산하에 설치한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함께하는시민행동 김영홍씨는 이 개정안이 정보통신부의 규제를 강화하고 네트워크의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한다. 이은우 변호사는 "국가의 주요 정보통신망에 대한 보호는 기존의정보통신기반보호법에 의해서도 충분하다"고 지적한다.

2003-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