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논평] 미디어 산업에서 대기업 기준을 철폐해도 되는 것인가?

By 2008/12/03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오병일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개정안 발의에 대한 논평1]

미디어 산업에서 대기업 기준을 철폐해도 되는 것인가?
– 차라리 상위 10대 재벌에게 미디어 산업을 몽땅 가져가라고 해라!

재벌 대기업에 은행을 주겠다는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지상파 방송까지 가져가 바칠 모양이다.

한나라당이 오늘 발표한 방송법 개정안을 보고 있자니,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법 시행령을 바꿔 미디어 소유 대기업 기준 상한선을 상호출자제한제 기준 자산 규모 3조원에서 10조원으로 대폭 높이는 것을 둘러싸고 극심한 진통을 겪은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이 과정에서 자산 규모라는 단 한 가지 기준만으로 미디어 소유를 결정하는 현행 제도는 크게 보완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았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아예 이 기준조차도 없애겠다고 나섰다. 자산 규모 10조원 이상의 대기업도 지상파 방송의 주식이나 지분을 20%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 PP(Program Provider; 방송채널사용사업자)에 대해서는 49%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하겠단다. 설명이 가관이다. 현재, 지상파/종합편성PP/보도전문PP에 대한 대기업 소유는 금지돼 있단다. 한나라당 눈에는 자산 규모 10조원 이하는 기껏해야 중소기업이나 구멍가게로밖에 안 보이는 모양이다.

아무리 뻔뻔스러워도 이건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 한나라당은 ‘자산 규모 기준을 50조원, 100조원으로라도 높여서라도 미디어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최근 발언을 매우 신속하게 현실화시키는 작업에 나섰다. 상위 재벌 10곳의 현금 보유액이 40조원이 넘는다고 하는데, 이 돈으로 지상파와 종합편성/보도전문PP를 소유하라고 추파를 던진 것이다. 신문법 개정안을 통해 거대 신문들이 이들 재벌 대기업과 손을 잡고 진출하도록 활짝 길을 열었음은 물론이다. 이로 인한 폐해는 안중에도 없다.

뻔뻔스러움은 이것만이 아니다. 한나라당의 주요 정책 결정자들은 그동안 이종매체 간 교차소유 및 겸영의 대상에서 지상파는 제외하겠다는 식으로 언론에 여러 차례 밝혀 왔다. 그러나 이는 빈말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종합편성채널이나 보도전문채널만으로는 재벌 대기업과 거대 신문들의 입맛을 돋우지 못하자, 지상파까지 헌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분명히 밝혀둔다. 2006년 6월29일 헌법재판소는 지상파/종합편성/보도전문PP의 교차소유 및 겸영은 여론 독과점 우려를 불식시킬 정도로 미디어 환경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만 입법자의 정책적 판단으로 허용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도대체 어떤 획기적 변화가 있다는 것인가? 여전히 거대 신문들은 한국사회의 오피니언 리더층의 여론을 좌우한다. 청와대를 비롯한 현 정권 전체가 거대 신문들의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현 정권은 새로운 공론장으로 떠오르던 인터넷에 대해 전면적인 억압을 하고 있다. 획기적인 게 있다면, 미디어 환경이 급속히 여론 통제 환경으로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종합편성/보도전문 PP에 대해 외국자본의 직접투자를 20%까지 허용한 것도 큰 문제다. 국내 여론 형성에 외국자본이 깊숙이 영향을 주는 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국내 법인을 통한 외국자본의 간접투자가 전면적으로 가능한 현행 제도의 허점을 메우려는 노력은 아예 기울이지도 않았다. 현재 외국인이 국내 법인의 주식이나 지분을 50% 미만만 소유하면 이 법인은 최대 30%(한나라당 방송법 개정안대로 하면 49%)까지 소유할 수 있어, 사실상 외국인 간접투자에 대한 아무런 규제도 없는 실정이다.

한나라당은 경쟁력 강화와 경영 안정성 차원에서 지상파방송과 종합편성/보도전문 PP의 1인 소유지분 상한선도 현행 30%에서 49%로 높이는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콘텐츠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해서라면, 기존 30% 기준을 유지하면서도, 방송통신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우선주나 무의결권주 형태로 자본을 조달하는 것도 가능하다. 1인 지분 상한선 인상은 득보다 실이 더 크다. 무엇보다, 방송사 내부에서 지금도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는 최대주주는 견제받지 않는 황제 권력이 될 것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기존 지상파 방송의 대주주들은 가뜩이나 재원도 모자란 판에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주식을 사들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경영권 분쟁을 겪게 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1인 지분 상한성을 높이면서 한나라당은 자가당착에 빠지고 말았다. 여타의 소유규제와 관련해서는 지상파와 종합편성/보도전문 PP를 ‘악착같이’ 구별하더니(이를테면 신문이나 외국자본의 소유 상한선), 1인 지분 상한선은 아무런 차이도 두지 않은 것이다. 왜 이것만 차등화시키면 안 되는지 알 길이 없다. 적어도, 지상파방송과 종합편성 PP에 대해서는 동일한 소유규제를 적용하는 게 타당하다. 지상파에 대한 외국자본의 소유를 금지한다면, 종합편성 PP에 대한 외국자본의 소유도 금지하는 게 일관된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이 방송법을 제대로 읽어봤는지 의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방송법의 재허가 기간과 전파법의 무선국 면허기간을 동일하게 한다는 내용이 그렇다. 방송법에 규정된 재허가 기간은 지상파 방송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종합유선방송과 중계유선방송이 적용 대상이다. 지상파의 재허가 기간은 전파법에 따른 무선국 개설허가 유효기간을 말한다. 따라서 지상파의 재허가 기간을 연장하려면, 전파법만 개정하면 될 일이다. 굳이 방송법을 손댈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방송법의 재허가 기간 범위를 최대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하는 것은 유료방송사업자의 재허가 기간을 연장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 것이다. 아울러, 유료방송사업자의 재허기 기간과 무료 보편적 방송사업자인 지상파 방송의 무선국 개설허가 유효기간 범위를 굳이 최대 7년으로 동일하게 할 이유도 없다.

신문발전위원회와 한국언론재단을 통합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이란 독임제 기구를 만들겠다는 발상 역시 ‘개악’일 뿐이다. 독임제 기구가 신문 지원을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래서 신문발전위원회라는 형태로 만든 것이다. 그럼에도 거대 신문들은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온갖 비난과 비판을 퍼부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딴 소리를 하지 않는 한, 독임제 기구에 의한 신문 지원은 위원회보다 훨씬 더 많은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다. 지원 기구는 현행의 위원회 제도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나라당이 내놓은 방송법과 신문법 개정안은 미디어 생태계를 파괴하고, 재벌 대기업과 거대 신문의 여론 장악을 부추기는 내용 일색이다. 거기에 아무리 미디어 산업과 경쟁력 발전이라는 명분을 내건다 해도, 이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는 못한다. 우리는 이미 마련해 놓고 있는 우리의 법안을 바탕으로 총력 대응에 나설 것이다.

2008년 12월 3일
언론사유화저지 및 미디어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

2008-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