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전자신분증

[기자회견] 개인정보 생중계하는 전자여권 리콜하라!

By 2008/09/30 10월 25th, 2016 No Comments
김승욱

<기자회견문>

개인정보 생중계하는 전자여권 리콜하라!

개인정보 유출과 인권침해 문제는 애써 외면하며, 미국 비자면제프로그램(VWP) 가입만을 위해 서둘러 도입된 전자여권이 결국 발급을 시작한지 한 달 만에, 개인정보 유출문제를 드러내었다. 세계 최고의 보안, 최첨단의 보안이라는 외교통상부의 설명과는 다르게, 우리는 인터넷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골라 구입한 RFID 리더기와 역시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간단한 프로그램으로 전자여권의 전자칩에 저장되어 있는 개인정보들을 평범한 개인컴퓨터의 모니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름, 사진, 주민등록번호, 여권번호, 만료일 등 중요한 개인정보들이 비접촉식으로 유출되었다.

전자여권이 개인정보를 생중계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전자여권의 전자칩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처럼 특정 주파수를 끊임없이 발생시키고 있다. 우리는 그 주파수를 통해 개인정보를 읽어올 수 있었다. 국경 밖에서 전혀 필요치 않다고 그토록 문제 제기되었던 주민등록번호는 결국 여권에 포함되어 생중계되고 있다. 2010년부터는 지문도 함께 생중계될 예정이다. 이제 한국의 개인정보 유출문제는 한국 내에서 통제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그래서 통제가 불가능할 문제가 되어버렸다. 외교통상부는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우리는 단순히 기술적 결함의 문제만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전자여권을 둘러싼 많은 문제들이 이미 공청회나 언론보도를 통해 외교통상부와 국회에 직/간접적으로 전달되고, 정책결정권자들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개인정보보호나 인권에 대한 무관심과 정치적 관계/성과들에 대한 눈치 보기 때문에 강행되었다는 것이 오히려 문제이다. 덕분에 한국국민들은 개인정보가 부지불식간에 유출되는 전자여권을 들고 이미 여행을 하고 있으며, 여기 저기에 제출하고 있다. 우선 그 동안 발급한 전자여권부터 모두 리콜하라!

지문날인 제도 철회하라!

또, 우리는 2010년부터 수록된다는 지문 때문에 또 한 번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지문이 유출되는 것도 문제지만, 지문이 수록된 여권을 들고 여행을 하는 한국의 여행자들만이 수시로 그리고 특별히 지문날인검사를 받게 된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세상에 “우리 여행자들 여권에 지문찍어서 보내니, 특별히 따로 줄 세워서 지문날인검사 좀 해주세요!”라고 호소하는 정부가 어디에 있나. 전자여권을 도입한 미국, 일본은 지문을 아예 담고 있지 않고, 유럽 통합신분증의 목적으로 내년부터 지문을 담게 되는 유럽연합(EU)은 유럽연합 회원국들만 지문을 읽어보도록 법제도를 마련하고 있으며, 사실상 유럽연합 내부에서 출입국심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지문날인검사는 시행되지 않는다. 외교통상부는 늘 “유럽이 하니까 우리도 해야 된다”고 설명했지만, 유럽이 왜 하는지, 어떤 메커니즘인지는 한 번도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외교통상부는 국회 논의과정에서 보안에 특별한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고 시행하기 위해서 지문날인을 2년 유예한다고 설명했던 만큼, 내뱉은 말을 지키기 바란다. 보안에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었다. 지문날인 제도 철회하라!

비자면제 굴욕협상의 문제!

전자여권은 미국 비자면제 프로그램 가입을 위해서 도입되었는데, 미국 비자면제프로그램의 내용을 뜯어보면 과연 여기 가입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단순히 현재의 비자제도 중 일부를 전자여행허가제(ESTA)라는 새로운 심사제도로 대체할 뿐인데, 이것이 어떻게 비자면제 프로그램인가? 같은 프로그램에 대해서 유럽 국가들은 “이것이 새로운 비자제도가 아닌가 판단해야겠다”고 반발하고 있는 반면에 한국 정부만 나서서 “비자면제 감사합니다”하면서 굽신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미국 법에 정해져 있는 이행조건들을 그대로 합의서라고 도장을 찍고 돌아왔다.

한국 정부는 비자면제로 연간 1,000억 원의 비용절감 효과가 발생한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미국 정부는 비자면제로 한국으로부터의 관광수입이 연간 3조억원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과연 누가 유리한 입장에서 진행하여야할 협상이고, 외교인가? 그런데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그나마 새로 도입되는 비자제도도 여행자정보 공유협정 등을 통해 오히려 심사제도가 강화되고 있다. 여행자정보 공유협정은 한국 내에서 어떤 공공기관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법기록에 대한 조회권한을 미 정보기관에게 부여하고 있다. 세상 그 어느 비자제도 보다도 강력하고 엄격한 비자“면제”프로그램이다. 국내의 어떤 정부부처에도 그런 조회권한이 없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미국 정보기관에게 주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개인정보 생중계하는 전자여권 모두 리콜하라!
– 주민등록번호 삭제하라!
– 지문날인 제도 철회하라!
– 미국과의 비자면제 프로그램과 그에 따른 여행자정보 공유협정의 상세한 내용을 공개하라!

2008년 9월 30일 인권단체 연석회의

2008-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