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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 인터넷 실명제의 논의 (황상민, 2008)

By 2008/09/18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장여경

인터넷 실명제의 논의:
사이버 공간의 정체와 익명성에 대한 잘못된 가정(assumption)에 기초한 인과 추론의 오류

※ 제2회 미래과학기술 방송통신포럼 <인터넷 규제 정책방향 모색을 위한 토론회 – “인터넷 의사표현의 자유와 책임을 논한다”> 발제문, 2008.9.11, 미래과학기술·방송통신 포럼, 이용경 의원실 주관

<역설적 인터넷 공리 – 황상민 作>
1) 악어새는 악어 모양을 한 새가 아니다.
2)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3) 보이지 않는다고 세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4) 인터넷의 익명성이란 붕어빵 속의 붕어와 같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 교수, )

<발제 요약>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현실의 자기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도 한다. 대신에 사이버의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현실의 모습과 사이버의 모습이 다르다고 해서 사이버의 모습이 없다고 하는 것은 ‘현실의 모습’을 사이버에 보여야 한다는 단순 사고의 표현이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생각과 천동설은 눈에 보이는 일차적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가정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가정으로 생각하지 않고 진리라고 판단했을 때, 인간은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인터넷의 주된 특성을 ‘익명성’이라고 한 생각은 ‘천동설’이나 ‘지구가 평평하다는 생각’과 동일한 운명을 가질 것이다. 잘못된 가정에 근거한 현상의 이해는 잘못된 결론을 유발한다. 인터넷에서 익명성을 없애버린다고 현실 공간과 유사해지지 않는다. 인터넷 바다를 위한 항해는 새로운 세계관과 인터넷 속의 인간 행동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인터넷에 실명제를 도입하자는 말이 있다. 사이버 공간이 악의에 찬 비방과 근거없는 욕설의 경연장이 되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이 공간에서 사람들이 거의 제정신이 아닌 행동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익명성’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의사소통이나 교류방식에 있어 사이버 공간이 현실공간과 다르게 보이는 주요한 특성으로 ‘익명성’이라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이것이 어느새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탈적 행동을 유발하는 주된 원인으로 판단된 것 같다. 어떤 근거로? 이것에 대해 한번 논의해 보자는 것이 이 발제의 목표이다.

사이버 공간을 살기 좋은 그리고 행복한 생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가능한 이 공간을 현실과 유사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에 의한 피해와 이것에 대한 방지책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윤리’를 정립하자는 분들이 특히 많이 제시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을 가능한 좋은 하나의 현실로 만들어 보자고 하는데 무어라고 딴지 거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아무래도 현상의 본질과 인과관계를 파악하는데 오류가 있다는 사실은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사이버 공간에서 일탈 행동이 일어나는 주된 원인이 ‘익명성’이라고 주장을 받아들이려면, 마치 ‘왜, 붕어빵에 붕어가 없냐’고 항의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제정신이라고 믿는다면, 이런 사람들이 권력을 쥐고 있다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공감할 수 없고 타당하지 않다는 일이 독재시대가 아님에도 일어난다는 묘한 압력을 국민들이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핵심은 인터넷 실명제가 아니라 우리가 사이버 공간의 일탈 행위를 어떻게잘 이해하고, 또 이것을 줄이거나 통제, 관리, 완화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다. 실명제가 유일한 방안이라고 할 때, ‘경제만 잘 되면’ 아니 ‘무엇만 되면’ 다른 모든 것은 “깽판쳐도 된다(?)”는 단순 무지의 사고에서 우리가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이다. 실명제의 문제가 아니라 사이버 공간이 어떻게 현실을 침범하기 시작했으며, 또 사이버 공간에서 왜 사람들이 현실세계와 다른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는 지를 알아야 한다.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과 일탈 행동

사이버 공간에서 사람들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는다. 사실 모습이 아니라 현실 공간의 그 사람의 이름이겠지만,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익명성’이다. 일단 누구인지 알 수 없으니까. 그리고, 이 생각과 함께 하는 주장이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을 때, 즉 ‘익명성’이 있다면 범죄 행위를 쉽게 하게 된다는 생각이다. 이것들은 모두 사이버 일탈의 주범으로 익명성을 지적하는 근거이다. 그러면, 인간행동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는 이 생각을어떻게 받아들일까? 여기에서는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성’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간행동과 심리적 경험의 측면에서 살펴보면서, 과연 우리가 ‘익명성이 일탈행동의 원인 또는 촉매제’로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탐색하고자 한다.

어떤 이유로 인터넷 아니 사이버 공간의 기본적인 특성을 익명성이라고 생각하게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 사람들은 이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타인과의 교류나 의사소통과정에서 직접적인 대면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주목을 한 것 같다. 이와 동시에, 이 가상의 공간에서는 사람들이 현실과 동일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거나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단순한 구분을 하자면,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익명성’이라고 할 수 있다면, ‘사이버 공간=익명의 공간’이라는 공식은 나름데로 타당한 것 같다. 그러나, 이 공식에도 오류가 있다. 문제는 사이버 공간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려고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니,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 하기 보다는 자신을 드러내려고 한다. 단지, 현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인간 행동과 심리에 대한 분명한 사실이자 현상이다. 단지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이 현실의 자기 모습을 표현하는 방식과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이라는 가정은 이 공간 속의 사람 행동에 대한 많은 추론을 하게 만들었다. 대표적인 추론이 사이버 공간에서 교류하는 사람들이 비방과 욕설과 같은 반사회적이고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게되는 것은 바로 익명성때문이라고 가정한다. 여기에서는 이들 가정이 타당한 지 아닌지를 검토한 다음에 우리가 인터넷 실명제 또는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간행동을 어떻게 잘 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가의 문제까지 생각해 보자. 사이버 공간 속의 인간행동에 대한 대표적인 가정 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다.

익명성 가정: 사이버 공간에서 욕설, 비방, 폭력이 난무하는 것은 익명성(자신의 현실공간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 때문이다.

가정의 오류: 만일 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현실 공간에서 사람들은 욕설, 비방, 폭력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익명성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기에 최소한 사이버 공간과 뚜렷하게 구분될 정도로 낮은 수준의 폭력성이나 반사회적 행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익명성과 욕설, 비방, 폭력과의 관계는 뚜렷하지 않다. 익명적인 조건에서 사람들을 특정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 특히 타인에 대한 욕설이나 비방, 폭력 등과 같은 사회적 행동은 그 행동이 유발되는 특정 상황의 조건에 좌우된다. 이 조건은 익명성과 같은 일반적인 조건이기보다는 그 상황이 어떤 행동을 하게만들고 이들 행동이 어떤 과정을 통해 유발되는가의 문제이다.

가정의 반박: 현실 공간에서 벌어지는 반사회적 행동이나 욕설 비방 폭력은 거의 사이버 수준이거나 이것보다 더 많다. 심지어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를 좋아하는 일부 정치인들은 자기 이름을 걸고 욕설, 비방, 폭력을 행사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익명성이 반사회적이거나 범죄적인 행동을 한다고 가정할 수 없다.

심리학적 해석: 자신의 이름이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익명성이 사람으로 하여금 특정 행동을 하게 만들지 않는다. 단지, 익명적 조건(상황)은 익명적이지 않은 상황과 비교하여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들 가능성은 있다. 왜냐하면, 익명적 조건과 비익명적 조건은 서로 다른 상황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각기 다른 상황에서 각기 다른 행동을 한다. 그러나, 그 행동의 원인은 그 행동을 하는 사람의 고정적인 성향(disposition)때문이거나 특정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상황에서 사람들이 특정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하나의 요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폭력이나 반사회적 행동이 발생하는 것은 그 사람의 역할이나 사회적 관계 등과 같은 조건 변수들이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심리학자 짐바르도(Zimbardo)가 스텐포드 대학에서 행한 ‘죄수와 간수’의 실험을 고려해 보자.

짐바르도는 스탠포드 대학 심리학과 지하실에 유사감옥을 만들었다. 이 ‘감옥’에 정상적이고 성숙하고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지능이 우수한 한 집단의 청년들을 들어가 생활하게 하였다. 동전 던지기로 그들의 절반은 죄수가 되고 나머지 반은 교도관이 되어 6일 간 그 속에서 살았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짐바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가 본 것은 너무 무서운 일들이었으므로, 단지 6일 만에 이 유사감옥을 폐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험의 과정에서 실험자나 피험자 모두에게 이 피험자들의 ’역할‘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그 한계가 불분명해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피험자들은 진정한 ’죄수‘와 ’교도관‘이 되고 말았으며, 역핡 수행(role-playing)과 자아(self)를 더 이상 구분할 수가 없게 되었다. 행동, 사고 그리고 감정의 모든 측면에서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 일주일도 채 안된 감옥 생활이 일생 동안 배운 것을 (잠정적이나마) 지워버렸고, 인간의 가치는 정지되었으며, 자아개념은 도전받았고 그리고 인간 본성의 가장 추악하고 비열한 병적인 측면이 나타났던 것이다. ’죄수‘인 학생들은 자기가 살기 위해 그리고 교도관에 대한 끊어오르는 증오심을 이기지 못해 도주만 생각하는 비굴하고 비인간적인 로봇이 된 반면, ’교도관‘인 학생들은 ’죄수‘학생들을 마치 저질의 동물처럼 다루면서 잔인한 짓을 즐기고 있는 듯이 행동하는것을 보고 실험자들은 공포에 질렸던 것이다. (Zimbardo, P. (1971, October 25). The psychological power and pathology of imprisonment (p.3). Statement prepared for the U.S. House of Representatives Committee on the Judiciary; Subcommittee No. 3: Hearings on Prison Reform, SanFrancisco, CA.).

짐바르도 교수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 상황’에 대한 생생한 예이다. 자연적인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어떤 집중적인 압력을 받으면 ‘비정상적’인 범주에 가까운 행동을 한다. 이 경우 사람이란 일반 대중을 의미한다.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정신병에 걸린 것으로 분류하는 것은 이들 행동을 이해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행동들이 일어나는 상황이나 행동이 유발되는 과정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사이버 공간에서 일탈 행동이 일어나는 상황이나 일탈행동이 유발되는 과정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 단지, 일탈적 행동을 경험한 사람들의 일반적 특성과 이들의 일화적인 경험에 대한 연구들이 보고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탈 행위가 익명성에 의해 일어난다는 주장은 마치 미친 짓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마귀가 씌었기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익명성은 일탈행동이 유발되는 상황을 특징지우는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 되기는 하겠지만, 이 요인이 일탈행동을 유발하는 상황 그 자체는 아니다. 물론, 일탈 행동이 유발되는 과정에서 익명성이 어떤 구체적인 작용을 하는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

결론: 사이버 공간에서 사람들은 익명성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 새로운 자기 정체성을 만들고 유지한다. 때로는 이런 사이버 정체성을 유지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이 사이버 정체성을 통해 불법적이고 반 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마치 현실공간에서 자신의 모습과 이름이 있지만 여전히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과 동일하다. 이런 현상을 고려할 때,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반사회적인 행동을 익명성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행동에 대한 잘못된 가정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정체성은 ‘아이디’나 ‘아바타’ 등의 여러 모습이 있다. 이런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아닌지는 얼마나 자신의 아이디를 자주 바꾸는지, 또는 아바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사람들은 심리적인 익명성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만들고 그 모습에 따른 행동을 한다. 현실과 동일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과 현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만일 이런이유 때문에 사이버 공간에서 사람들이 현실과 동일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이것을 법제화하려고 한다면, 마치 현실 공간에서 도서관에서 하는 행동과 술집에서 하는 행동이 같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현실 공간에서의 자신의 정체성은 드러나지 않겠지만, 사이버 공간에서 또 다른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논의: 사이버 공간의 반사회적 행동이 발생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틀

사람들은 불쾌한 행동을 한 사람에게 ‘미친’ ‘가학적인’ 등등의 레테르를 붙임으로써, ‘우리 선량한 사람’ 집단으로부터 불쾌한 행동을 한 사람들을 구분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그 사람을 구분하면, 우리 선량한 사람과는 관계가 없는 그 사람의 행동은 일차적으로 나의 관심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런 식의 사고 방식이 갖는 위험성은, 불쾌한 행동을 일으킬 상황적인 압력에 우리 자신도 굴하기 쉽다는 사실을 도외시하는 경향을 낳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는 사회문제 해결에 단순 논리로 대처하도록 만든다. 이런 경향을 고려하여 인터넷의 익명성에 대한 우리의 논의를 살펴보자.

인터넷 상에서 불쾌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인터넷이 현실과 다른 ‘익명성’을 가지고 있기때문이다‘는 레테르를 붙여보자. 이런 경우, 현실과 사이버 공간을 우리는 구분시키게 되며, 이 문제는 사이버 공간의 특수한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게된다. 그리고, 이것은 사이버 공간이 더 이상 사이버로 존재하지 않고 현실과 유사하게 되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있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리라는 논리를 만들게 한다. 따라서, 사이버 공간을 나타내는 익명성을 가능한 없애버리고 익명성에 대비되는 ‘실명제’를 시행한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단순 논리를 적용하게 된다. 사이버 공간의 질서 유지, 또는 사이버 통신 품위 유지법 등의 일련의 현실공간적 개입 노력은 바로 이런 논리의 구체적인 실천이기도 하다.

인간행동의 모습에 관한 기본적인 가정의 오류를 생각해 본다면, 인터넷 실명제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제기한 ‘과연 실명제가 반사회적인 행동을 줄일 것인가?‘ 질문은 아주 적절하다. 실재로 단순히 인터넷 실명제가 인터넷 공간에서의 반사회적인 행동을 줄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행동을 억제하게는 만들겠지만, 점차 인터넷이 더 많이 사용되게 되면 사람들은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모습 또는 자신의 이름이라는 것을 더 이상 의식하지 않은체로 행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사이버 공간이라는 일반적인 상황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직도 사이버 공간이 각기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드는 사회적 압력을 다르게 행사하는 곳이라는 인식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 일반적 현실공간과 대비되는 사이버 공간이라고 보기만 한다. 그러나, 일반적 현실공간으로 사람들이 경험하지 않듯이 (현실 공간은 특정 행동이 나타나거나 특정행동을 하게 만드는 각기 다른 상황으로 경험된다), 사이버 공간도 일반적인 공간이 아니라 각기 다른 행동을 하는 다양한 상황으로 나타난다. 사이버 공간의 인간행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은 바로 현실 공간과 마찬가지로 각기 다른 상황에서 특정 행동을 하게되는 또는 특정 행동을 유발하는 요인들과 과정들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일반 현실 공간과 마찬가지로 사이버 공간 속의 다양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인간 행동 특성을 우리는 면밀하게 연구해야 한다. 더 이상 천동설에 근거한 지구의 움직임을 예측하거나 막연한 기대나 미신으로만 인터넷 대양을 항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향후 방향: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사이버 공간이 건전한 생활, 놀이의 공간이 아니라 현실의 가장 어두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궁창과 같은 상태가 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앞으로 인터넷에서 등장하게 될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인간행동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또 사회적 상황의 영향을 받아 특정 행동을 하게된다면,우리는 어떤 사회적 상황에서 어떤 인간관계를 사람들이 경험하는가에 대한 탐색이 필요할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문제들에 대한 많은 연구결과들이 현실 공간에서 이미 이루어져있다. 앞으로는 현실공간과 같지 않은 사이버 공간에서 각기 다른 사회적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특정 행동이 유발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탐색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자료를 근거로 하여, 사이버 공간의 윤리나 사이버 공간에서의 일탈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나 해결책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단편적인 처방이나 제안으로 우리는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인간과 관련된 특정 행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반사회적 행동은 인터넷의 특성도 있지만 인간의 심리와 행동특성에 근거하고 있다. 인간의 경우 항상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면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동물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그리고 자신의 욕구에 따라 움직이며, 이것을 가능한 타인과의 조화 속에서 서로 간의 생존을 유지하려고 한다. 즉, ‘착하게 바르게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할 때, 착하거나 바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착하게 바르게 산다면 자신과 타인이 서로 살아가는 것이 즐겁고 또 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인간은 이런 행동 준칙을 황금률처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인간이 각자 처한 상황에서 아주 다른 인간인 것처럼 변화되는 상황을 볼 때 더욱 잘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말로 이런 이중적이거나 다중적인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데, 실재로 인간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아주 다른 사람인 것처럼 쉽게 행동한다. 현실공간에서 일어나는 인간 행동과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인간행동의 차이와 유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상황에 따라 돌변하는 인간의 행동과 심리특성에 대해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다. 명목적이고 진리와 같은 규칙을 적용하는 것도 인간의 행동의 일관성을 유지하거나 세상을 안정적으로 보기 위해서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전체주의적 사고나 집단주의적 억압으로 쉽게 전환되기 쉽다.

사이버 공간의 자유, 또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인간 행동의 규제 등과 같은 이야기는 각자의 입장에서 타당성과 필요성이 있겠지만, 인간 행동에 대한 정확하고 유연한 이해나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어떤 조치를 주장하거나 어떤 입장을 강조하는 것은 단순 논리의 적용에 불과하다. 아니면, 자신의 관점이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한다고 주장하거나 또는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믿는 잘못을 범하게 될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마치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많은 인간행동의 문제나 우려들이 이런 방법으로 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행동에 대한 정확한 이해없이, 그리고 자신이 주장하는 관점이 가지고 있는 기본 가정에 대한 분명한 통찰없이 일방적인 주장만 하게되는 상황은 아주 심각하게 우려할 만하다. 이것은 사이버나 현실 가릴 것 없이 전체주의적이고 맹목적인 사고의 횡포이자 미신에 기반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가 인터넷을 보는 입장은 이 상황에서 그리 벗어나 있지 않다.

2008-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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