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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임시조치의무 위반시 과태료 부과는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 억압

By 2008/08/26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장여경

논평

임시조치의무 위반 시 과태료 부과는

인터넷상 사전 검열적 상황 더욱 심화, 표현의 자유 억압하는 것

세계적 추세에도 역행, 인터넷포털에 대한 차별적 규제

1.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8월 20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의 개정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르면 “명예훼손 등 권리침해에 대한 현행법상 의무사항 위반 시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게재자에 대한 이의신청 기회를 부여하고 7일 안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심의하여 결정”한다고 한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 :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개정안의 이 같은 내용은, 그렇지 않아도 이미 위법성 판단을 스스로 하지 않고 외부의 요청만 있으면 자진하여 삭제 및 임시차단을 행하고 있는 현행의 사전 검열적 상황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방통위의 이번 개정안은 철회되어야 할 것이다.

2. 개정안은 특정 “정보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 “해당 정보의 삭제 등을 요청받으면 지체 없이 삭제 및 임시조치를 해야 한다”는 제44조의 의무를 포털업자가 위반할 경우에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권리침해가 있는 경우에만 삭제 또는 임시차단조치의 의무가 있는 것이고 그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것은 얼핏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타인의 권리침해는 명예훼손, 초상권, 프라이버시권, 상표권, 저작권 등 다양한 법률에 걸쳐 일어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포털업자가 일일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결국 포털사업자는 불필요한 소송 등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삭제요청이 있는 경우 개개의 사안에 대해 일일이 법률적 위반인지 아닌지 따져보지 않고 무조건 삭제하게 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 그런데 개정안에 따르면 포털사업자가 “타인의 권리 침해”가 없다고 판단하여 삭제나 임시조치를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내용의 위법성 여부가 아니라 삭제나 임시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3천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되는 것이다. 포털로서는 과태료를 물지 않기 위해서라도 삭제요청이 있으면 삭제 또는 임시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 게시자로서는 이렇게 함으로써 표현물 내용의 사법적 판단을 받기 전부터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당하는 결과가 된다.

3. 방통위는 임시조치를 남용하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하여 “게재자에게 이의신청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하였다. 방통위 스스로 임시조치의 남용을 염두에 두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의신청이 있는 경우에도 “해당 정보에 대해서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는 7일 이내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조치토록 보완”하도록 하고 있다. 방통심의위가 과연 7일 안에 게재자들의 수많은 이의신청에 대해 모두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는 의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일개 행정기관의 결정에 의해 게시물의 게재 또는 삭제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권력의 정책적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행정기관이 위법이라고 판단하면 실질적으로 거의 모든 포털업자 및 게시자는 방통심의위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정이 잘못된 것이며 게시물이 추후 사법적 판단을 통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밝혀지면 어떻게 되는가? 합법적인 게시물을 스스로 삭제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자기검열 효과이며 이것이야말로 지금까지 시민사회에서 방통심의위의 심의가 위헌적인 사전검열이라고 주장해왔던 이유이다. 타인의 권리가 침해되었는지의 종국적 판단이 개정안의 규정대로 방통심의위라는 일개 행정기관에 주어질 경우 ‘법적인 판단’이 아니라 ‘행정적인 판단’에 의해 헌법상 권리인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결과가 빚어지게 되는 것이다.

4. 또한 이번 방통위의 개정안은 인터넷포털에 특히 부당하다. 이미 현행법상 명예를 훼손하거나 저작권을 침해하는 정보가 게시되어 있고 이를 알면서도 시정하지 않는 경우 명예훼손이나 저작권침해에 대한 방조범으로서의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다. 방통위의 이번 개정안은 이 같은 현행법 상의 규제에 더해 인터넷 포털업자에게만 해당되는 새로운 규제를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신문 등 전통적인 언론사와의 형평성의 문제를 야기한다. 언론사의 경우 신문에 게재된 광고나 기사가 명예훼손을 실제로 범하고 있더라도 그 피해자가 해당 광고에 대한 반론 및 정정을 신문사에 요청하였을 때 신문이 그 요청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별도의 제재수단이나 책임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는 않다. 광고나 기사의 명예훼손이 사법기관에 의해 확인된 경우에만 그 광고나 기사 자체에 대한 책임과 제재가 있을 뿐이다. 다른 매체와 달리 인터넷만을 특별히 “가중” 규제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공언한 ‘규제완화’를 통한 선진화에 역행하는 것이다. 도리어 선진국에서는 인터넷이 쌍방향적인 자유로운 공간으로서 갖게 되는 특별한 의미에 천착하여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를 다른 매체와 달리 처벌 위험으로부터 면책시키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Digital Millenium Copyright Act와 Communication Decency Act의 notice-and-take-down을 조건으로 하는 Safe Harbor조항들이 있다. 이는 ISP가 특정한 절차를 준수하면 ISP가 저작권침해나 음란물 유포의 공범으로 처벌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이다.

5. 이번 인터넷포털에 대한 가중 규제는 방통위의 무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우리나라 현행 저작권법에 미국의 DMCA의 취지를 고려해 만든 법조항이 있다. 그런데 방통위의 개정안은 이 저작권법 조항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저작권법은 “복제·전송의 중단요구가 있는 경우에는 즉시 복제·전송을 중단시키고(take down)” “복제·전송하는 자 및 권리주장자에게 그 사실을 통보(notice)하거나” 복제·전송자가 “정당한 권리에 의한 것임을 소명하여 그 복제·전송의 재개를 요구하는 경우” “재개요구사실 및 재개예정일을 권리주장자에게 지체 없이 통보하고” 복제·전송을 재개 시,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다른 사람에 의한 저작권 그 밖에 법에 따라 보호되는 권리의 침해 및 복제·전송자에게 발생하는 손해”에 대한 “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제103조 2, 3, 5항)고 하고 있다. 즉, 저작권법 상으로는 포털사업자가 관련 절차를 따르면 추후에 게시물이 위법으로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책임이 감경 또는 면제되는 반면, 개정 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게시물을 내리지 않았다가 추후에 게시물이 위법으로 밝혀지면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6. 불법적인 게시물을 피해자의 요청에 따라 삭제 또는 임시차단하지 않았다고 하여 요청거부에 대해 별도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불법여부를 미리 판단할 수 없는 포털업자의 사전검열적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다. 또한 포털업자에게 특별히 법적 책임을 경감하고 면제하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기도 하며 저작권법 103조와 충돌하는 것이기도 하다. 해당게시물의 게시자의 이의 신청을 명문화하였다고 하나 방통심의위의 심의를 통해 위법성 판단을 하겠다는 것 역시 현행의 사전검열적 상황을 더욱 고착시키는 일일 뿐이다. 인터넷이 자유로운 의견제시와 정보유통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 시점에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위축시키는 또 하나의 사전검열적 규제를 더하여 얻을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라는 비난뿐일 것이다. 이번 개정안의 배경이 지난 몇 개월 사이 정권에 비판적인 여론이 인터넷포털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일어났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혹을 사실로 확인시키는 것일 뿐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인터넷포털에 대한 규제는 결국 인터넷상에서의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정보유통에 제약을 가하겠다는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7. 한편 방통위의 정보통신망법 개정계획은 개인정보 누출 시 인터넷포털에게 통지 의무를 부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침해사고 발생시 행정기관이 정보통신망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개인정보유출 사고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통해 포털업자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개인정보들을 집중하여 보관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없이 무조건 법으로 강제하겠다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제한적 본인확인제 역시 외국에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여겨져 명시적으로 위헌 판단을 받은 바 있다. 방통위는 위헌적인 제한적 본인확인제 역시 철폐해야 할 것이다.

2008-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