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협약의약품특허입장

[보도자료] 릴레이 칼럼 제4탄 : 의약품 자료독점권

By 2007/10/19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오병일

플러스+플러스, 환자에겐 최악의 길

제약산업 강화와 유럽단일시장완성을 위한 산물

한EU FTA 협상에 대한 유럽연합의 입장은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이 얻어낸 것보다 불리한 결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한미 FTA 협상에서 특허-허가 연계, 특허심사과정과 판매허가과정에서 지연된 기간만큼 독점기간을 연장시키는 등 의약품 독점을 강화시키기 위한 조항이 대부분 완성되었기 때문에 유럽연합은 미국보다 더 강력한 공식을 가지고 있는 자료독점권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유럽연합은 지속적으로 우리나라에 원자료(original data)에 대한 독점권이 충분하지 않다고 불평해왔다.

유럽연합은 오랜 시간동안 의약품 단일시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왔는데, 이를 위해 각 회원국마다 다른 의약품 판매허가제도를 단일화시키고자 했다. 1995년에 이르러 유럽의약청(EMEA)을 설립하여 단일허가절차(Centralised Procedure)를 마련하고, 1998년부터 각국의 의약품 허가의 상호인정절차(MRA)제도를 도입하였다. 하지만 미국과 경쟁적으로 전세계의약품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유럽의 연구기반 제약회사들이 미국으로 본거지를 옮기는 상황과 보건의료비용을 줄이기 위해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의존도가 늘어나는 상황 때문에 2001년 7월에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유럽약사법의 포괄적인 개정을 제안하였다. 이를 위해 유럽약사법에 대한 의무적 재검토가 2001년 7월부터 2004년 3월까지 진행되었는데, 이는 “G10 Medicines Group(혹은 의약품조항과 혁신에 대한 고위급 그룹 High Level Group on Innovation and Provision of Medicines)”의 권고를 구체화하는 일이었다.

재검토의 주요대상은 자료독점기간, 판매허가절차, 의약품 감시(pharmaco-vigilance) 등이었다. 이들 중에서 가장 논쟁적이고 대립적인 이슈는 자료독점기간의 확대와 제네릭 의약품의 정의였다. 제네릭 의약품의 판매허가 취득시기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G10 Medicines Group은 제약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권고를 담은 최종보고서를 발표하였고 이에 대한 반응으로 유럽위원회는 2003년 7월 1일에 의약품 통합시장 활성화, 제약산업의 경쟁력 강화, 연구기반 강화 등을 목표로 하는 제안서를 제출하였다.
이 제안서는 유럽약사법 개정안의 골자가 되었는데, 유럽위원회는 제안서에서 자료독점기간을 10년이 되도록 새 법에 반영해야 할 것이라며 오리지널 제약업계의 입장을 대변하였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 6년의 자료독점기간을 유지하고 있던 신흥 회원국들은 그들 국가의 보건의료예산에 지나친 부담을 지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폴란드 옵저버는 연간 4억 유로만큼의 비용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독일의 사회주의자 Dorette Corbey가 신흥 회원국들에서 공중보건 위기가 닥쳤을 경우 자료독점기간을 6년까지 감소시킬 수 있도록 지침의 개정을 제시하였으나, 2003년 11월 27일 유럽의회 공중보건위원회(Public Health Committee of the European Parliament)에서 거부되었다. 그리하여 자료독점기간을 최대 11년으로 확대한 새 약사법이 2005년 11월부터 효력을 가지게 되었다.

1990년대에 단일허가절차와 상호인정절차를 만들어 유럽 의약품 단일시장을 만들기 위한 기본틀을 만들었다면 2000년대에는 국가별로 상이한 신약의 자료독점기간을 확대, 통일하고,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허가취득을 좀 더 용이하게 하여 단일시장의 완성을 꽤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미국보다 강한 공식 만들기

제네릭 의약품은 오리지널 의약품과 대별되어 사용되기도 하고, 특허 의약품과 대별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전자는 의약품판매허가와 관련이 있는데, 오리지널 의약품의 ‘활성성분(active ingredient)’과 동일한 화합물을 포함하여 오리지널 의약품과 같은 효과를 가지는 의약품을 의미하고, 후자는 특허 받은 의약품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발명으로 보이는 의약품을 통상 일컫는 말이다.

의약품의 판매허가제도와 특허제도는 분명 다른 것이나 제네릭 의약품이 두 제도에 모두 연관되어 사용되는 이유는 이 두 제도가 의약품의 독점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의약품 판매허가제도와 특허제도에서 통용되는 제네릭 의약품은 두 제도가 보장하는 독점에 의해 더 이상 보호받지 않고 첫 번째 제약회사(오리지널 의약품 제조회사 혹은 특허 의약품 제조회사)외의 다른 회사에 의해 복제, 생산될 수 있는 의약품을 의미한다. 그러나 판매허가기준과 특허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두 제도에서 기인하는 제네릭 의약품의 대상과 범위는 다를 수 있다. 의약품 판매허가제도에서는 오리지널 의약품의 판매허가를 받기위해 제출하는 안전성, 유효성 등에 관한 임상자료를 다른 회사들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여 제네릭 의약품의 판매시기를 늦춤으로써 오리지널 의약품의 독점을 보장하고 있다. 이것이 자료독점권이다.

EU에서의 자료독점은 1987년에 몇몇 나라에서 불충분한 제품특허(insufficient product patent)를 보상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TRIPS협정이 WTO회원국들에게 20년간의 특허보호기간을 비롯하여 특허권 보호의 최소기준을 강제함으로써 특허제도의 전 세계적인 통일화가 이뤄졌다. 그리하여 유럽 각국은 20년 동안 특허권을 보호하고 있으나, 자료독점기간과 관련해서는 그리스, 폴란드,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 신흥 유럽회원국은 6년,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10년을 보장하고 있었다. 신흥회원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일허가절차를 통해 판매허가된 의약품에 대해 8+2+1 공식을 따르는 자료독점기간을 정하고, 의약품(medicines), 제네릭 의약품(generic medicinal products), 생물학적 제품(biological products), 경계가 불분명한 제품(borderline products)에 대한 정의를 내림으로써 자료독점권의 확대, 통일을 이루었다. 그리고 단일허가절차의 대상으로 에이즈, 암, 신경손상 질병, 당뇨를 치료목적으로 하는 의약품을 추가하였고, 이 대상목록은 규칙이 발효된 지 4년 후에 다른 질병으로 확대되도록 했다.

8+2+1이라는 공식은 8년의 자료 독점, 2년의 마케팅 독점, 그리고 추가적 1년은 새로운 적응증에 대한 자료 독점기간을 뜻한다. 8년이 경과한 후 2년 동안 자료공개를 허용하고 카피품목을 생산하고 그 시판허가절차를 밟을 수는 있지만, 카피품목을 판매하지는 못하도록 제한하였다. 만약 8년의 자료독점 기간 내에 새로운 치료적응증(new therapeutic indications)이 허가되면 자료독점기간은 1년 더 확대될 수 있다. 또 처방에서 비처방(over the counter)으로 변경하는 경우 1년의 자료독점권이 보장된다. 즉 마케팅독점기간은 최대 11년. 8+2+1의 기간이 끝나야 제네릭 의약품을 시판할 수 있게 되는데, 오리지널의약품과 활성성분(active substances)과 형태(form)가 같고 생물학적으로 동등함을 입증하면 안전성, 유효성 등 임상시험자료를 추가로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생물학적 동등성을 입증하는 결과만 제출하면 오리지널 의약품과 동일하다고 취급할 수 있는 화합물 즉 제네릭 의약품의 범위에 신규화합물의 다른 염, 에스테르, 에테르, 이성질체, 이성질체의 혼합물, 착물, 유도체를 포함시켰다. 이렇듯 오리지널 제약사에게는 자료독점기간을 11년으로 확대시켜주는 대신, 제네릭 의약품의 정의를 분명히 함으로써 오리지널 제약사와 제네릭 제약사간의 분쟁의 소지를 없앴다. 유럽연합은 최대 5년의 자료독점권을 가진 미국보다 더 강력한 공식을 갖게 되었다고 평가하였다.

우리나라는 식약청 고시 ‘의약품 등의 안전성․유효성 심사에 관한 규정’과 약사법시행규칙 제30조에 따라 신약, 이미 허가된 의약품과 유효성분 및 투여경로가 다른 전문의약품에 대해서는 6년간, 다른 효능을 추가한 전문의약품에 대해서는 4년간의 신약재심사기간동안 안전성‧유효성에 대한 재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는데, 재심사대상으로 지정된 의약품과 동일한 품목의 의약품을 허가받고자 할 때에는 최초 허가 시 제출된 자료가 아닌 것으로서 이와 동등범위 이상의 자료를 제출하게 함으로써 자료독점권을 보장하고 있다.
즉 신약재심사기간동안 신약재심사대상의약품과 동일한 품목의 의약품을 허가받고자한다면, 원자료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여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 유효성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게 함으로써 시판을 막는 것이다. 유럽연합과의 차이는 자료제출면제대상과 자료독점기간이다. 유럽연합이 안전성‧유효성 자료제출 면제대상이 더 넓은 반면 자료독점으로 인한 마케팅독점기간이 최소 4년, 최대 5년 더 길다.

세계 최악의 의약품 독점제도

자료독점권은 신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재검토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특허권과 더불어 독점연장의 수단일 뿐이다. 오리지널 의약품이 기존 의약품에 비해 치료 효과적 측면에서 신약에 대한 안전성, 유효성을 재검토하는 것과 원자료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또한 신약재심사기간동안 신약은 판매되고 있는 상황에서 안전성과 유효성 검토를 명목으로 생물학적으로 동등함을 입증할 수 있는 제네릭 의약품의 판매를 막을 명분이 없다.

한편 자료독점권과 특허권은 각각 허가제도와 특허제도에서 기인하지만 그 기준은 서로 연계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한미 FTA 협상 결과나 미국의 상황에서는 특허권의 기준인 신규성, 진보성, 산업가능성의 문턱이 점점 낮아지고, 특허와 허가가 연계되면서 신약이라고 해서 반드시 기존의약품보다 더 효과적이고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의약품독점을 연장시키기 위한 각축장에서 배제되는 것은 환자의 건강권이다. 세계 의약품 시장 매출 순위 1위 제품인 고지혈증치료제 ‘리피토(Lipitor)’가 2004년 매출액만 108억 달러(약 11조)를 기록했고, 화이자사 전체 매출(525억 달러)의 1/5을 차지했다. 리피토의 독점기간이 하루만 늘어도 301억 원이다. 따라서 오리지널 제약사는 독점기간을 하루라도 연장하기위해 제네릭 의약품 출시를 막고자 혈안이 되어있다. 오리지널 회사의 추가이윤은 고스란히 환자의 주머니에서 나가고, 돈이 없는 환자는 연장된 독점기간만큼 치료를 지연시킬 수밖에 없다.

연구개발기간이나 임상시험기간이 길거나 판매허가절차에 소요된 기간이 길어서 시판 후 남은 특허기간이 짧은 경우, 어떤 종류의 특허권도 갖지 않은 의약품의 경우에도 자료독점기간에 의해 시장독점을 연장시킬 수 있다. 또한 자료독점기간동안 의약품특허에 대한 강제실시를 막는 효과가 있다. 2003년 한국 식약청의 조사에 따르면, 신약에 대한 특허권이 만료되었으나 신약재심사제도(PMS)로 보호되는 품목은 물질 특허 26건(한국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항파킨스치료제 ‘리큅정’ 등), 방법 특허 81건(한국릴리의 당뇨병 치료제인 ‘액토스정’, 항암제 ‘젬자’, 한국노바티스의 ‘트리렘탈필림코팅정’ 등)으로 모두 100건이 넘는다. 유럽의 자료독점권으로 인한 판매독점기간이 최대 11년이므로 이런 경우의 수가 훨씬 많아질 것이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항암제인 Taxol은 특허권이 없었지만 자료독점으로 인해 시장독점을 보장받았다. 한미FTA 의약품협상결과에 더해 8+2+1방식의 자료독점권을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의약품독점을 보장하게 될 것이다.

2007년 10월 19일
한미FTA 저지 지적재산권 대책위원회

2007-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