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저지 지적재산권 분야 대책위원회
한미FTA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한미FTA 협상은 협상 개시부터 비민주적인 절차와 국내 농업기반의 붕괴, 의료/교육/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공공정책을 훼손할 것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거센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양 국 정부는 협상 체결에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지적재산권 분야는 미국의 요구가 일방적으로 관철될 가능성이 큽니다. 저작권, 특허 등 지적재산권은 국내의 문화(산업)과 공공건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됨에도 불구하고, 국내 상황에 대한 고려없이 미국 국회에서 정해진 법이 한국에 강제되는 것입니다. 다국적 문화자본과 제약자본의 이익을 위해 국내 문화산업의 붕괴와 공공적 보건의료정책의 훼손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한미FTA 협상은 중단되어야 합니다. 한미FTA 협상을 막아내기 위한 투쟁에 동참해주시길 절절한 심정을 담아 호소드립니다.
한미 FTA 저지 지적재산권 분야 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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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문4] 협정을 지켜도 분쟁에 휘말리게 하는 제도, “비위반 제소”의 위험성
남희셥 (정보공유연대 IPLeft)
오늘부터 한미 FTA 타결을 위한 고위급 회담이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열린다. 협상 타결에 반대하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커지자 대표적 보수언론인 조중동은 약속이나 한 듯 한미 FTA 체결을 지지하는 사설을 동시에 실었다. 정치인들이 한미 FTA 반대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방만이 살 길이라는 노무현 대통령과 보기 드문 ‘코러스’를 내는 이들 보수언론은 ‘역사적 기회’인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쇄국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의 일정에 따라 온갖 양보를 다 해 주는 협상 타결이 ‘역사적 기회’를 활용하는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미국식 FTA에 들어있는 여러 독소조항들을 개방이라는 ‘축복’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통행료 쯤으로 여기는 보수언론과 정부의 태도야말로 정략적이다. 이런 태도가 가능한 이유는 한미 FTA가 부과할 엄청난 통행료를 이들 보수언론이 내 주거나 협상타결에만 목맨 외교 관료, 경제 관료들이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협상에서 무엇이 논의되는지 제대로 듣지도 못했고, 미국 시장의 개방으로 인한 득을 별로 얻지도 못하는 일반 국민들이 값비싼 통행료 부담을 져야 한다. 한미 FTA가 몰고 올 파국을 책임질 능력도 의지도 없는 자들은 진실을 덮기 위해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 최근에 논란이 불거진 ‘비위반 제소’에 대해서도 정부는 문제를 감추기 위한 홍보를 할 뿐이며, 보수언론들은 이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냥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비위반 제소란 협정을 위반하지 않았어도 협정으로부터 기대했던 이익이 무너졌을 때 분쟁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제도를 말한다. 한 마디로, 약속에 따른 조치를 취했어도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인데, 상식에 반하는 이런 제도가 어떻게 한미 FTA에 들어가 있으며,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무엇일까?
그 동안 비위반 제소에 대한 협상 내용을 전혀 알리지 않던 한국 정부는 시민사회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짤막한 보도자료를 냈다. 비위반 제소란 국제통상법 체제에 이미 확립된 제도이고, 그 동안 비위반을 근거로 한 제소 사례는 얼마 되지도 않으며 WTO가 출범한 이후에는 승소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미 WTO에 들어 있는 제도를 미국과 합의하였기 때문에, 한미 FTA에 이를 도입하더라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으로 한국 정부의 태도를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 정부의 주장에서 맞는 것이라고는 하나 뿐이다. WTO의 분쟁에서 승소 사례가 얼마 없다는 주장이 그것인데, 이를 뺀 나머지 주장은 사실이 아니거나 문제를 축소하려는 얕은 계산에서 나온 것들이다.
먼저, 비위반 제소가 국제통상법 체제에 이미 확립된 제도라는 정부의 주장은 비위반 제소가 국제사회에서 논란의 대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여 한미 FTA에서 쟁점으로 부각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도 인정하듯이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위반 제소가 WTO 규범에서 유예되어 있는 것만 보더라도 비위반 제소는 확립된 제도가 아니다. WTO의 주요 협정 중 하나인 지적재산권 협정에서 비위반 제소의 인정을 유예한지 10년이 넘도록 아직까지 결론을 내지 못한 것은 이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합의가 확립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비위반 제소의 핵심을 이루는 ‘기대 이익’, ‘정부의 조치’, ‘이익의 무효화 또는 손상’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가 모호하고 불명확하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미국식 FTA의 비위반 제소는 WTO의 비위반 제소에 들어 있는 개념들을 더 불명확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러한 모호성과 불명확성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정확한 예측을 하기 매우 어렵다.
둘째, WTO 분쟁에서 비위반 제소로 승소한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를 한미 FTA에 도입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미국식 FTA와 WTO의 차이점을 파악하지 못했거나, 문제를 일부러 감추려는 것에 불과하다.
WTO에 포함되어 있는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는 회원국들 사이의 관세를 일정한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주목적이고 따라서 주로 관세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관세 인하를 통한 기대 이익은 GATT 규범에서는 다루지 않는 경쟁정책이나 보조금 지급과 같은 다른 합법적인 조치를 통해 쉽게 손상될 수 있다. GATT 입안자들은 이러한 손상된 이익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비위반 제소를 고안했던 것이다. 따라서, 비위반 분쟁 해결을 담당했던 패널들은 제소의 원인이 되는 ‘이익’을 ‘관세양허’로부터 기대되는 시장접근과 관련된 이익으로 좁게 해석하였고, 이와 다르게 이익의 개념을 확대한 패널의 결정은 회원국들의 거부로 채택되지 못하였다. 또한, 비위반 제소가 이런 맥락에서 도입되었기 때문에, 분쟁해결 방식은 이익의 손상을 초래한 조치를 철회하는 것이 아니라 손상된 이익의 회복, 즉 배상이다. 그리고, 비위반 제소는 합법적인 조치를 둘러싼 분쟁이기 때문에 제소 국가에게 엄격한 입증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 때문에 WTO의 비위반 분쟁 사례는 그 수도 많지 않고 승소하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미국식 FTA는 이러한 엄격한 입증책임을 요구하지 않으며, 분쟁해결 방식도 손상된 이익의 회복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익의 무효화 또는 손상 그 자체를 제거하는 것으로 확대되기 때문에 비록 합법적인 조치라 하더라도 이를 철회하거나 수정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미국식 FTA는 WTO와 달리 비위반 제소의 절차가 간편하고, 구제수단이 더 강력하며, ‘이익’의 개념도 확대되기 때문에 제소 가능성과 승소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다.
GATT 체제에서 비위반 제소가 도입된 이유가 당시 관세양허 중심의 GATT에서는 규율하지 않았던 각국의 조치로 인해 손상되는 타국의 기대이익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면, 경쟁정책이나 노동, 환경분야까지 규율하는 포괄적인 규범을 둔 미국식 FTA와는 비위반 제소가 본질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무역협정과 달리 시장개방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권리자의 시장독점권 부여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지적재산권 분야에는 비위반 제소를 인정할 논거가 빈약하다. 그래서 지적재산권 분야에는 비위반 제소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 사이의 공통된 견해이다. 만약,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위반 제소를 인정하면, 심각한 공공정책의 훼손을 초래하고 정책주권이 지적재산권자의 시장독점권 아래로 편입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한국 정부는 한미 FTA 협상 도중 의약품의 선별등재제도를 골자로 하는 약제비적정화 방안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 약제비적정화 방안은 건강보험공단이 제약사와 약값 협상을 하여 약값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제약사가 협상 대상이 된 약에 대해 특허권을 가지고 있다면, 미국은 지적재산권 협정으로부터 시장독점가격이라는 이익을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데, 이 시장독점가격을 한국 정부가 약제비적정화 방안을 통해 깎는다면 기대 이익이 무효화되었다거나 침해되었다는 이유로 비위반 제소를 할 수 있다. 이런 비위반 제소가 인정되면, WTO와 달리 미국식 FTA는 비위반 분쟁의 이유가 된 조치를 철회하거나 수정해야 하므로, 한국 정부는 특허된 의약품에 대해서는 약값 협상을 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유명무실한 약제비적정화 방안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
미국식 FTA에 따른 비위반 제소가 더 위험한 또 다른 이유는 미국식 FTA에는 WTO의 지적재산권 협정과 달리 공공정책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WTO 지적재산권 협정은 ‘공중보건과 영양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인정하며, ‘사회·경제·기술 발전에 긴요한 분야에서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와 ‘지적재산권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제한 조치’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식 FTA에는 이러한 공공 영역이나 공공 정책을 고려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국민 건강을 위한 조치나 공익을 증진하려는 조치는 미국식 FTA의 협상 당시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므로, 비위반 제소의 근거가 확대되고 승소할 가능성도 더 높은 것이다.
FTA 협정에서 분쟁해결 규정은 양국 사이에 적용되는 일종의 사법제도와 같다. 그런데 한미 FTA 협상에서 이 사법제도에 해당하는 분쟁해결 분과는 관련 정부부처가 공동 분과장을 맡는 다른 분과와는 달리 외교부가 단독 분과장으로 협상을 담당하고 있다. 비위반 제소는 어떤 조치가 협정과 일치하는지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생각 이상으로 적용 범위가 넓고 그 영향도 막대하다. 그런데도, 8차 협상이 진행될 때까지 외교부는 비위반 제소에 대한 협상 내용을 감추어 왔다. 사법제도에 대한 주무 부처라고 볼 수도 없는 외교부가 협상 타결만을 위한 퍼주기의 하나로 미국이 요구하는 비위반 제소를 수용하기에는 그 위험성이 너무나 크다.
– [호소문3] 지적재산권 강화가 선진화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자!
– [호소문2] 한미 FTA는 우리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습니다.
– [호소문1] 한미FTA는 아픈 이들에게 재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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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