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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네트워크센터 설립 과정

By 2010/05/17 10월 29th, 2016 No Comments

1998년 2월, PC통신 참세상을 운영해오던 바른정보 김형준 씨가 진보네트워크센터 건설을 제안하며, ‘참세상’의 모든 장비와 서비스를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이에 4월부터 통신연대를 중심으로 진보네트워크센터 건설을 위한 협의모임을 구성하였다. 98년 5월 6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학술단체협의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지식인연대, 통신연대, PC통신 참세상, 정보연대 SING 등이 참여한 가운데 제1차 준비모임이 개최되었으며, 이때 명칭을 <(가칭)진보네트워크센터>로 하고 임시대표로 김진균 교수를 추천하였다.

진보네트워크센터가 그 취지대로 구성되기 위해서는 그 구성 방식과 절차 또한 매우 중요하였다. 진보네트워크는 당시 네트워크의 확산과 더불어 사회운동 진영을 ‘서비스 대상’으로 강하게 포섭해오는 상업통신망과 차별성을 가져야 했으며, 사회운동의 소통과 연대 네트워크가 되기 위해서는 가능한 광범위한 사회운동 진영의 참가와 합의가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준비모임은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보건의료대표자회의,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인권운동사랑방, 건치중앙위원회, 학술단체협의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방송개혁국민회의,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시민의신문, 민주언론운동협의회, 한국정보통신센터, 새문명아카데미, 매비우스, 지역 정보통신단체(광주 BIT-SIG, 전주 INP, 부산정보연대 PIN) 등 여러 사회단체들을 방문하여 설득하고 활동가들의 토론을 조직하였다.

그 결과 1998년 7월 1일, <진보네트워크센터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총 115명의 노동, 시민사회단체 인사가 추진위원으로 참여하였고, 준비모임의 임시대표를 맡고 있던 김진균 교수가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강내희, 강동진, 구중서, 김도형, 김명준, 김제남, 김형준, 노진귀, 박석운, 백찬홍, 서준식, 유덕상, 이용근, 이종회, 이철순, 장도리, 정원오, 진관스님 등을 집행위원으로 선출하였다.

2008년 7월 1일 진보네트워크센터 추진위원회 발족식

 

 

 

 

 

 

 

추진위원회 발족식에 앞서 <진보진영의 미디어 전략과 진보네트워크센터>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으며, 강내희 교수(중앙대 영문학, 민교협 정책위원장)의 사회로, 강명구 교수(서울대 언론정보학)가 발제를 맡았으며, 이근영(한겨레신문사 뉴미디어센터 부장), 최영묵(방송개발원 선임연구원), 이용근(노동네트워크 추진협의회(준) 사무국장), 김형준(참세상 BBS 설립자) 씨가 토론자로 참여하였다.

<진보진영의 미디어 전략과 진보네트워크센터> 토론회

 

 

 

 

 

 

 

추진위원회 발족 이후, 같은 해 11월 14일 정식발족 당시까지 추진위원회는 진보네트워크센터 설립을 위한 준비 및 홍보 작업을 진행하였다. 우선 참세상 BBS 서비스의 운영 및 개발을 바른정보로부터, 그리고 웹호스팅 등 인터넷 서비스를 정보연대 SING으로부터 이월받아 8월 20일부터 시범서비스를 시작하였다. 8월 9일에는 PC통신 참세상의 사무실이었던 양재동에서, 갈월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하였다.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취지에 걸맞는 일련의 정책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1998년 7월 15일에는 한겨레신문사, 서울기독청년회와 공동으로 <아래아 한글 문제의 해결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였고, 7월 22일에는 <지역네트워크 운동의 과제와 현황> 토론회를, 10월 31일에는 <학생운동의 현황과 과제, 미디어전략>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또한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정식 발족이 있었던 주인 11월 9일~15일에는 제2회 노동미디어 행사인 <대안미디어와 현장네트워크의 길찾기> 행사가 개최되었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사회운동에 창의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실험도 계속되었다. 1998년 9월 12일, <서울국제민중회의 총결산과 실업자 대행진>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였으며, 같은 해 11월 8일에는 <98 민중대회> 인터넷 방송을 실험하였다. 당시만해도 인터넷에서 멀티미디어 활용이 보편적으로 이용되지 않고 있었다.

한편,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설립 당시 재정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태였다. 고정된 수입이 참세상 BBS 이용료 약 100여만원 밖에 되지 않았다. 상업통신망에 대항하는 독립네트워크의 안정화를 위해서는 시민사회단체 및 개인들의 참여와 지원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다. 그래서 추진위원회 발족과 함께 1구좌 3만원을 약정하는 ‘1만 발기인’ 모집운동을 시작하였다. 이는 재정적인 측면과 함께, 진보네트워크의 의의를 알리고 진보네트워크의 이용자로서 개개인들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와 함께 장비 및 회선 기증운동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11월 14일 진보네트워크센터 설립 당시, 총 130명이 추진위원으로, 379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하였으며, 7명의 개인과 단체가 회선기증을 해주었다. 비록 애초 목표했던 바에 비하면 작은 숫자이긴 하지만, 추진위원, 발기인, 회선기증자의 지원은 진보네트워크센터가 초창기 안정화를 이룰 수 있었던 소중한 기반이 되었다.

추진위원회는 진보네트워크센터 공식 출범을 앞두고, 진보네트워크의 ‘네트워크 명칭’에 대한 공모사업을 진행하였다. SK 커뮤니케이션스라는 회사가 운영하는 네트워크 서비스 명칭이 ‘싸이월드(Cyworld)’인 것처럼, 단체로서의 진보네트워크센터가 운영하는 네트워크 명칭을 공모한 것이다. 1998년 9월 15일~10월 29일까지 공모를 하였고, 그 결과 진보네트워크 ‘참세상’, 진보넷, 진보네트워크 ‘광장’ 등 3개의 후보작이 선정되었다. 이후 11월 4일까지 참세상 BBS 내 게시판을 통해서 이용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였다. 참세상이 21명, 진보넷이 4명, 광장이 1명으로 ‘참세상’을 지지하는 의견이 가장 많았고, 이는 11월 14일 창립총회에서 승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