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입장

[기자회견] 인터넷 실명제가 대안인가?

By 2005/07/08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정부․여당의 인터넷 실명제 추진에 대한 인권․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

일시: 2005. 7.7(목) 오전 10시
장소: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

<기자회견 참석자 및 순서>

○사회 – 오병일(진보네트워크 사무국장)
○인사말 – 홍성태(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인터넷 실명제의 문제점
-민경배(함께하는시민행동 정보인권위원장)
○사이버 폭력의 방지대책 – 선용진(문화연대 공동사무처장)
○기자회견문 낭독 – 이종회(진보네트워크 대표)

다산인권센터, 문화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언론위원회,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언론개혁기독교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정보공유연대IPLeft, 지문날인반대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평화마을 피스넷, 평화인권연대,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 함께하는시민행동(이상 15개 단체)

————-

<기자회견문>
인터넷 실명제가 대안인가?
정부․여당의 인터넷 실명제 추진에 대한 인권․시민․사회단체의 입장

최근 ‘인터넷 실명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국무총리가 인터넷 실명제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정보통신부가 인터넷 실명제를 포함한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한데 이어, 5일에는 열린우리당도 실명제 도입에 힘을 싣고 나섰다. 포털 사이트 여론조사에서 실명제 찬성 응답이 높게 나오면서, 실명제에 대한 여론몰이는 한창 강화되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의 배경에는 사이버 상에서의 인권 침해가 극에 달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인터넷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한 개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난은 심각한 인권 침해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이버 인권 침해의 원인을 인터넷의 익명성에서 찾으며, 또 다른 중요한 인권인 프라이버시 권과 표현의 자유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 실명제 –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인터넷 실명제는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인터넷에 글을 쓸 때 글 쓴 사람이 누구인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인터넷 사이트에 실명 등록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거대 포털 사이트들은 회원이 1000만명이 넘으니, 포털 사이트들은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의 주민등록번호와 실명을 고스란히 데이터베이스로 갖추게 되는 셈이다. 더구나 이제는 실명등록을 한 사람만 글을 쓸 수 있도록 한다면, 그 사람이 쓴 글까지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이다. 정말 끔찍한 일이다. 전국민의 개인정보는 인터넷 사이트 곳곳에 넘쳐나게 될 것이다. 3000만명의 주민등록번호, 실명, 특정 사이트의 아이디 유출. 이런 일도 흔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의 사이트 활동기록은 순식간에 만천하에 공개될 것이다. 이제 앞으로는 연예인 OOO가 실제로 쓴 댓글 모음, 연예인 OOO의 쇼핑 기록이 해킹되어 고가에 팔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물론 개인정보 침해는 연예인 뿐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대상이 될 것이다.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철저하게 관리하도록 정부가 잘 감독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모든 인터넷 사이트의 보안 수준을 믿을 수도 없고, 내부 유출자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기업들은 해킹 사실을 잘 알리려고 하지 않는다. 얼마전 비자카드에서 수천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보도된 적이 있다. 아무리 보안을 철저히 해도, 개인정보 유출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외국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민감한 주민등록번호나 실명을 수집하고, 그것을 쉽게 알려주는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사이트들은 주민등록번호와 이름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마구잡이로 수집하고 있어서, 현재 이미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 상태로 방치할 경우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개인정보 유출사건들이 줄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점은 정부에서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시민단체의 계속적인 문제제기에 정보통신부는 인터넷에서 주민등록번호 사용을 금지시키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발표까지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인터넷 실명제가 논의되며, 인터넷의 개인정보 보호 논의는 자취를 감춰 버렸다. 문제는 인터넷의 익명성에 있지 않다]

사이버 폭력, 익명성의 문제인가?
최근 논란이 되었던 ‘한 여성에 대한 사이버 폭력 사건’의 경우에도 인터넷의 익명성이 그 원인이라고 보기 힘들다. 사건의 당사자가 사이버 폭력에 노출이 된 것은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자신의 얼굴을 포함한 사진 등 개인정보가 인터넷 상에 올려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적되어야 할 문제는 인터넷 기업들의 이윤추구를 위한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이 문제의 근원이다. 여기에 네티즌들의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인식의 부재가 한 몫을 하고 있다. 최근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조사에서 드러났듯이, 미니 홈피 등을 통한 개인정보의 노출은 특정 개인과 그 지인들이 사이버 폭력에 노출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싸이월드는 기업의 이윤추구 목적에 희생되어 실명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를 통해 자신의 개인 정보 및 인맥 등은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 지금 문제는 인터넷의 익명성이 아니라, 개인정보의 과다한 수집과 노출에 있다. 그리고 프라이버시 보호와 타인의 인권에 대한 네티즌들의 부족한 감수성이다. 소위 ‘연예인 X파일’ 사건이나 ‘연예인 사생활 침해’ 사례도 인터넷의 익명성과는 무관하다. 전자의 경우 개인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수집하고 관리를 소홀히 한 업체에게 1차적인 잘못이 있으며, 광범하게 유포된 것도 포털 사이트의 선정성과 네티즌들의 프라이버시 인식 부재에 기인한 것이다. 후자의 경우도 특정 개인의 별칭을 도용한 인터넷 포르노사업자의 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일 뿐이다. 포털 사이트 역시 사이버 폭력에 기여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소위 ‘연예인 X파일’ 사건이나 ‘OOO 사건’에서 보다시피, 피해 당사자의 인권보다는 기사의 선정성을 높이는데 앞장섰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사진을 별다른 고려 없이 게재하거나 이용자의 검색을 유도함으로써 피해를 확산시켰다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인터넷 익명성에 대한 오해
기실 우리나라의 인터넷은 익명적이지 않다. 인터넷 사이트들이 주민등록번호나 실명을 마구잡이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사이버 폭력의 주된 공간이 되고 있는 대부분의 포털 사이트들도 가입할 때 실명 확인을 하고 있다. 또한 일부 사이트를 제외하고는 덧글을 쓸 때에도 로그인을 하도록 하고 있다. 비록 글쓴이의 실명이 직접 드러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명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설사 실명 인증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IP 주소를 통해 이용자에 대한 추적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서버에서 로그 기록에 IP 주소를 남기고 있다. 따라서 PC 방 등을 통해 임시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IP 주소 및 이용 시각 등을 통해 사후적인 추적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따라서, 현재 인터넷이 익명적이라는 것은 오해이다. 사이버 공간은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이 기록될 수 있기 때문에 오프 공간보다 더욱 감시가 용이할 수 있다.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익명성의 부족이 문제이다.

주민등록번호와 실명 수집, 인터넷의 무분별한 개인정보 수집이 문제이다
이와 같이 인터넷의 익명성이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은 엉뚱하게도 인터넷 실명제라는 처방을 들고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인터넷에서 무분별한 개인정보 수집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그런데 어떤 방식으로든 인터넷 실명제를 시행하게 되면 인터넷에서의 무분별한 개인정보 수집을 규제하기는 커녕 조장하게 된다. 게다가, 이로 인하여 표현의 자유마저도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최근 정보통신부가 마련한 통신비밀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인터넷 로그기록을 의무적으로 보존하도록 되어 있는바, 이렇게 된다면 인터넷 공간은 그야말로 전국민의 행동이 감시되는 공간으로 변모할 것이다. 인터넷 실명제는 프라이버시권 침해의 우려가 있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명 확인을 위해서는 대조할 수 있는 실명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실명 대조를 위해 이용되고 있는 정보통신산업협회나 한국신용평가정보 등의 데이터베이스는 국민들의 신용·금용 정보 등을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수집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개인정보 침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한, 현재 실명 확인을 위해 입력하고 있는 주민등록번호에 대해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의 유출 사고가 빈번할 뿐 아니라, 주민등록번호의 지나친 남용에 의해 실명 확인의 실효성조차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갑작스런 제기는 주민등록번호의 이용을 규제해야 한다는 대세를 거스르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이버 폭력, 대안은 무엇인가?
많은 언론들이 현재 인터넷 공간이 마치 통제할 수 없는 공간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사이버 폭력이나 명예훼손 등에 대해서는 이미 현행법으로 규제가 충분히 가능하다. 또한, 포털 사이트 등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필요도 있다. 사이트 내에서의 인권 침해나 명예 훼손 등에 대해 피해자의 신고를 접수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조치들은 사회적 약자 및 피해자를 보호하면서 네티즌의 표현의 자유를 자의적으로 침해하지 않도록 섬세한 가이드라인 하에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사이버 폭력의 근저에는 인권에 대한 감수성의 부재, 여성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무시, 국가주의에 기반한 폭력성 등이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권과 관련한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이 한차원 높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인터넷의 익명성이 원인이 아닐뿐더러, 강제적인 인터넷 실명제가 대안이 될 수 없음은 명확하다.

2005. 7. 7
정부가 강제하는 인터넷 실명제 추진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 일동

2005-07-06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