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입장

[논평] 정부는 위헌적인 인터넷 실명제 도입시도를 중단해야 한다.

By 2005/06/20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논평] 정부는 위헌적인 인터넷 실명제 도입시도를 중단해야 한다.

최근 인터넷의 익명성과 관련된 대다수 언론의 보도는 대단히 잘못된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에서 발생한 소위 ‘연예인X파일’, ‘트위스트김’, ‘개똥녀’ 사건 등이 익명성 때문에 발생한 것처럼 보도하면서 실명제 도입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이 실제로 익명성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는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 ‘연예인X파일’ 사건의 경우 한 회사가 연예인들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무분별하게 수집한 것으로 인해서 발생한 사건이다. 이 때문에 연예인들은 명예훼손 등 많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트위스트김’ 사건의 경우도 개인의 별칭을 도용한 인터넷 포르노사업자의 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이지, 익명성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사건이다. ‘개똥녀’의 경우는 인터넷에서의 익명성 보다는 오히려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의 선정적이고 가쉽위주의 기사배치, 그리고 이로 인한 왜곡된 여론몰이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또한 사생활비밀의 자유 등을 고려하지 않고, 개인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이나 민간한 개인정보들을 올림으로써 해당 개인에게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의 문제를 일으킨 것이 더욱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이런 사건들이 실명제를 도입한다고 해결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이버 폭력의 가장 큰 원인을 익명성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거 PC통신의 시절에도 개인에 대한 비방과 명예훼손, 욕설 등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더군다나 그때는 실명확인을 하지 않으면 접속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 현재도, 실명확인을 하는 사이트들이 많지만, 그 사이트에서도 여전히 사이버폭력의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실명확인으로는 사이버폭력이라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월 15일 정보통신부 진대제 장관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사이버폭력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인터넷실명제’를 언급하면서 적극적인 도입의 의지를 밝혔다. 이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03년에도 정부는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려다 국민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자진 철회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명제를 도입해서 개인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하려는 것은 기본적으로 모든 국민을 예비범법자로 간주하고 인터넷에서의 일상행위들 하나하나를 감시하기 위한 발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부는 인터넷 실명제 도입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하며,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사이버 범죄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미 수없이 지적되어왔듯이 인터넷 실명제는 헌법이 보장하고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침해하는 위헌적인 제도이다. 작년 국가인권위원회도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서, “모든 국민을 허위정보 및 타인에 대한 비방을 유포하는 자라는 사전적인 예단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명백한 사전검열에 해당하며 익명성에서 기인하는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와 여론형성의 권리를 제한하며, 세계인권선언 제19조와 헌법 제21조의 표현의 자유에 반”한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 또한 인터넷이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촉진적인 매체’라고 규정하고, “오늘날 가장 거대하고, 주요한 표현매체의 하나로 자리를 굳힌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하여 질서 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해서는 안된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범죄예방’이라는 이름하에 전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이름표를 달려고 하는 시도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설사 실명제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각각의 웹사이트 또는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운영원칙과 필요에 의해서 도입되어야 하는 것이다. 국가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시행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다. 또한 인터넷에서 사이버폭력을 근절할 수 있는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사이버 명예훼손이나 폭력에 대해서는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사후대응이 가능하다. 자율규제모델과 같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의 대응 방안도 이미 많이 제시되고 있다. 오히려 자율적인 해결책들을 권장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도 사이버 사회의 발전에도 더욱 적합한 방식이다. 정부는 자진철회 했었던 인터넷 실명제를 다시 고집할 것이 아니라, 인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인터넷의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2005년 6월 20일

진보네트워크센터

2005-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