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성명] 새로운 신분등록제, 개인정보 보호원칙에 충실해야

By 2005/01/14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성명] 새로운 신분등록제, 개인정보 보호원칙에 충실해야
– 개인정보 보호원칙에 벗어난 대법원의 ‘혼합형 1인1적 편제방안’을 비판한다.

지난 1월 10일 대법원은 호주제 폐지에 대비한 새로운 신분등록 편제방안으로서 ‘혼합형 1인1적 편제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그간 제시되었던 ‘가족별 편제방안’, ‘개인별 편제방안’, ‘목적별 편제방안’을 혼합한 것이다. 대법원은 ‘신분정보의 철저한 보호’, ‘다양한 가족형태의 보호’를 기본원칙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안은 스스로가 밝힌 기본원칙에도 크게 못 미치는 안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실망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대법원안은 신분등록원부를 가족사항이 포함된 1인1적부 형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가족정보는 개인의 신분사항에 필수적인 사항이 아니다. 개인의 가족정보는 개인의 정보임과 동시에 가족구성원의 정보이며 민감한 개인정보로서 공개될 경우 사회적인 차별의 위험이 대단히 크다. 따라서 개인의 가족정보는 필요한 경우 증명할 수 있는 방안이 있으면 될 뿐 애초부터 개인의 신분등록부에 기록될 필요가 없다. 대법원안은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의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신분등록부가 현실과는 괴리된 이성애적 핵가족만을 정상가족을 규정하고, 정상가족의 정보를 기재하는 난을 ‘미리’마련함으로써 차별의 소지를 만드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둘째, 대법원은 가족의 기본정보만을 기록해서 프라이버시 침해를 최소화했다고 말하면서도, 개인의 신분등록부에 개인은 물론 가족의 주민등록번호까지 담고 있다. 대법원은 주민등록번호의 위험성을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의 모든 것을 추적할 수 있는 실마리다. 주민등록번호를 직접적으로 노출하면서도 프라이버시 보호를 논하는 것은 모순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대법원은 목적별 공부의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 대법원은 ‘호적정보가 전산화되어 있는 장점을 살려, 목적별 공부를 실제 만들지 않고도 “DB 구축과 응용프로그램의 개발”을 통해 제한된 정보만을 출력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신분등록제도의 문제가 언제부터 ‘응용프로그램 개발’의 문제였단 말인가? 단지 ‘응용프로그램 개발’의 문제였다면, 호주제를 폐지하지 않고도 호주가 없는 것처럼 문서양식을 출력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넷째, 대법원은 목적별 공부식 ‘증명’을 도입하고 전부증명은 본인과 국가기관만 발급 가능하도록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재도 많은 공공기관과 민간회사에서는 개인에게 호적등본을 요구하고 개인은 어쩔 수 없이
응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인’을 통해서 ‘전부’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발급 대상을 제한하고 일부분만을 출력하는 미봉책이 과연 어떤 실효성이 있을 것인가?

다섯째, 대법원은 국가기관으로 하여금 개인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제한없는 열람을 허용하는 것은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에 해당한다. 국가기관이라 하더라도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 및 조건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목적별신분등록제실현연대’가 제시한 바 있는 ‘목적별 공부안’은 개인의 가족정보를 노출시키지 않고도,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지 않고도, 개인의 신분과 가족 관계를 훌륭하게 공시할 수 있다. 대법원은 현재 호적 사무를 관장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대법원이 목적별 공부안의 이러한 큰 장점을 수용하고 연구해서 더 좋은 안을 내놓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후퇴한 안을 내놓았다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결론적으로 대법원안은 기존의 안들을 절충해서 각계의 비판을 무마하고자 하는 동시에, 최근 법무부와 마찰을 빚고 있는 호적 사무를 자신의 소관으로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궁여지책에 불과하다.

한편 현재 국회에는 민주노동당이 발의한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이 발의된 상황이며, 열린우리당의 안이 조만간 발의될 예정이다.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은 개인정보의 수집과 이용 등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의 제정과 함께 도입되는 신분등록제도가 이토록 개인정보 보호원칙을 무시한다면,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의 취지가 무색해질뿐더러 앞으로도 이름만으로 남을 위험성이 있다. 새로운 신분등록제도는 주민등록제도와 함께
국가의 개인정보 수집에 가장 기본이 되는 제도이므로 개인정보보호기본법에서 정하고 있는 원칙을 준수하여 서로 충돌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신분등록제도는 국민 개개인의 신분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국가 제도의 기본적인 토대로서 그 중요성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일제가 남긴 호주제의 극악한 폐해를 수정하는데 100년에 가까운 시간을 소비한 바 있다. 따라서 호주제 폐지 이후 현행 호적제도를 대체할 새로운 신분등록제도는 다소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국민의 인권적 가치를 최대한 보호할 수 있는 것이 되야 할 것이다.

2005년 1월 14일
노동네트워크협의회 / 다산인권센터 / 정보인권활동가모임 / 지문날인반대연대 / 진보네트워크센터 / 천주교인권위원회 / 평화인권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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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 지음(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02-701-7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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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