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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반대] 새 청소년유해매체물 기준에 대한 논평

By 2004/04/30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 인터넷 국가검열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http://www.nocensor.org

■ 청소년유해매체물 기준에서 동성애 조항이 삭제된 것에 환영
■ 그러나 사회역사물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판단할 수 있는 자의적 소지가 잔존하는 데 아쉬움
■ 또한 정보통신부가 기계를 이용해 청소년유해 여부에 대한 판단을 ‘자동화’하겠다는 것에 반대

[논평]

청소년유해매체물 기준에서 동성애 조항이 삭제된 것에 환영
– 그러나 자의적이고 기계적인 청소년유해매체물 판단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것이다

오늘 발효하는 청소년보호법시행령상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기준에서 동성애 조항이 삭제되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이 조항이 삭제된 것에 대해 우리는 환영을 표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온갖 차별과 편견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싸워온 성소수자들과 성소수자인권단체들의 투쟁의 성과이다.

동성애 컨텐츠를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하도록 한 것은 명백한 차별이었다.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된 동성애 사이트는 현행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제42조와 그 시행령에 의해 인터넷내용등급제가 적용된다. 인터넷내용등급제가 적용되는 사이트는 의무적으로 차단소프트웨어가 인식할 수 있는 표시를 해야 하고 그 결과 공공장소에 설치되어 있는 차단소프트웨어에 의해 차단당한다.

동성애·인권사회단체들은 이 조항이 생겨난 이후로 줄곧 반대해 왔지만 이 조항을 삭제하는 데는 수년이 걸렸다.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성적 지향을 고려하지 않고 편의적으로 국민의 표현물을 심의해온 국가기관의 오만과 편견 때문이었다. 특히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동성애 사이트들에 대해 ‘불온’과 ‘청소년유해매체물’이라는 딱지를 번갈아 붙여 왔다. 지난 2001년에는 UN에서도 인정한 해외 동성애인권단체 홈페이지를 ‘해외 불건전 사이트’에 포함시키기도 하였다.

이번 일을 계기로, 청소년보호위원회와 인터넷상의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를 맡고 있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지정이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어야 함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록 동성애 조항은 삭제되었지만 사회역사적 판단 조항이 잔존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기준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국가와 사회 존립의 기본체제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것’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 ‘국가와 사회 존립의 기본체제를 훼손할 우려’라는 것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어서 그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의 가치관, 윤리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관계있는 국가 규제가 명확성의 원칙과 과잉금지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나아가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국가의 일방적인 지정 제도도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판단을 국가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믿는다. 표현물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명확한 불법성에 대하여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교육적이고 윤리적인 판단은 공동체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에서 무엇이 차단되어야 하는지를 국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검열과 다를바 없다.

그러나 정보통신부 장관의 권한을 대행하고 있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지금까지 엄밀한 법적 기준이 아닌 포괄적인 심의규정을 근거로 국민의 표현물의 유해성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해 왔다. 이는 국가에 의한 검열과 다를 바 없다. 게다가 28일 정보통신부에서 밝힌대로 향후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판단을 사람이 아닌 기계가 맡게 될 경우 중대한 기본권 침해를 일어날 것이다. 표현물에 대한 평가에 있어 중요한 건 개별 단어가 아니라 맥락인데, 기계는 이런 고려를 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홈페이지 차단이라는 실질적 기본권 제한을 불러오는 법적 판단을 기계가 맡다니 안될 말이다.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자의적이고 기계적인 판단과 인터넷등급제와 같은 차단이 확산되면 인터넷으로 겨우 숨통을 틔우기 시작한 민중들의 진솔하고 직접적인 목소리는 가로막힐 것이다. 청소년유해매체물이라는 딱지가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끝>

2004년 4월 30일

※ 인터넷 국가검열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광주 NCC 인권위원회, 광주인권운동센터, 국제결혼 한국여성인권 운동본부,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 노동자의힘, 다산인권센터, 다함께, 도서관운동연구회, 동성애자인권연대, 문화연대, 민주노동당,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부산정보연대PIN, 불교 인권위원회, 사이버 녹색연합, 사회당, 새사회연대, 서울대 이공대 신문사, 성남청년정보센터,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시민행동21, 영화인회의, 우리만화연대,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 인권실천시민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장애인의 꿈너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빈민연합,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 전북대정보통신큰눈, 전북민주언론운동연합, 전북민중연대회의, 전북여성단체연합, 정보통신연대 INP,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평화와참여로가는인천연대, 평화인권연대, 학생행동연대, 한국기독교네트워크,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동성애자연합,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 (가나다순, 총52개단체)

2004-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