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검열반대] 청소년유해매체물과 인터넷 등급제

By 2004/02/25 10월 25th, 2016 No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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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국가검열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http://www.nocensor.org

[논평] 청소년유해매체물과 인터넷 등급제

동성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편견은 동성애 표현물에 대해 수많은 낙인을 찍어 왔다. 이제 그중 하나가 사라질 것인지 주목받고 있다.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기준 가운데 동성애를 삭제하는 내용의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한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이미 지난해 4월 현행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기준에서 동성애를 차별적으로 명시한 것이 헌법 제10조(행복추구권) 제11조(평등권) 제21조(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한 행위라며 삭제를 권고한 바 있다. 이러한 삭제 권고와 시행령 개정안이 나오기까지 동성애 인권단체와 활동가들이 애를 써왔다.

특히 인터넷에서 동성애 컨텐츠가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된다는 사실의 의미는 단지 추상적인 규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된 동성애 사이트는 현행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제42조와 그 시행령에 의해서 인터넷내용등급제가 적용된다. 인터넷내용등급제가 적용되는 사이트는 의무적으로 차단소프트웨어가 인식할 수 있는 표시를 해야 하고 그 결과 공공장소에 설치되어 있는 차단소프트웨어에 의해 차단당하게 된다.

이로 인하여 인터넷에서 성 정체성 문제로 갈등하는 많은 청소년들이 동성애 사이트에 접근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동성애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받거나 적절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채 고립되어 가고 있다. 청소년보호법이 사회적 소수자인 동성애자 청소년을 더욱 소외된 처지에 처하게 만든 것이다. 실제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동성애 사이트를 때로는 청소년유해매체물로, 때로는 불온 사이트로 차단하거나 폐쇄해 왔다. 지난 2001년에는 동성애 사이트는 아니지만 자퇴 청소년 커뮤니티도 폐쇄하여 물의를 빚었다. 누구를 위한 청소년 보호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공동체가 합의 하에 어떤 사이트에 대해서는 차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의사결정은 순전히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 범위는 해당 공동체에 국한되어야 한다. 여기서 국가는 무엇이 청소년유해매체물인지 결정할 자격이 없다. 표현물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명확한 불법성에 대하여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교육적이고 윤리적인 판단은 공동체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무엇이 차단되어야 하는지를 국가가 결정하는 것은 검열과 다를바 없다.

그런데 지난 1월 29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김효종 재판관)에서는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하여 차단하는 인터넷 등급제가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하여 많은 이들을 실망시켰다. 헌법재판소는 "현재로서는 달리 다른 방식으로" 청소년유해매체물을 청소년으로부터 격리할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에 인터넷 등급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인터넷 등급제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간과한 점이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차단소프트웨어라는 기술이 합리적이고 의도한 만큼의 정확한 결과만을 낳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에 의한 차단은 언제나 의도한 것보다 광범위한 차단을 낳는다. 이러한 기술적 효과가 바로 ‘코드에 의한 검열’이라고 불리며 최근 표현의 자유를 염원해 온 많은 이들의 우려를 사고 있는 문제이다. 이를테면 헌법재판소는 차단소프트웨어에 대한 통제권이 컴퓨터에 설치된 차단소프트웨어의 설치/제거라는 형태로 성인에게 완전하게 주어진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우리 생활에서 차단소프트웨어에 대한 통제권은 해당 컴퓨터 이용자보다는 PC방 운영자나 전산실 담당자와 같은 시스템 관리자, 인터넷 회선업자, 백본사업자에게 주어져 있다. 이와 같은 마구잡이 차단으로,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되지 않은 동성애 인권단체 사이트까지 차단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일단 차단된 후에는 이용자 입장에서 해당 사이트가 존재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에 충분히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다. 이것이 검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결국 사회적 편견이 기술에 의해 확산될 때 그 결과는 가공할 만한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낳지 않으려면 명백하게 인권을 침해하고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것으로 판명난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심의기준은 즉각 삭제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인터넷 등급제 역시 폐지되어야 한다. 기술적 검열이 확산되면서 인터넷으로 겨우 숨통을 틔우기 시작한 일반 민중들의 진솔한 표현, 소외받는 이들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가로막을 것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구시대의 유산인 국가보안법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대한민국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인터넷에서 국가의 검열을 거부하는 우리의 신념이 옳다고 믿고 있으며 앞으로도 인터넷 등급제의 폐지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끝>

※ 인터넷 국가검열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광주 NCC 인권위원회, 광주인권운동센터, 국제결혼 한국여성인권 운동본부,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 노동자의힘, 다산인권센터, 다함께, 도서관운동연구회, 동성애자인권연대, 문화연대, 민주노동당,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부산정보연대PIN, 불교 인권위원회, 사이버 녹색연합, 사회당, 새사회연대, 서울대 이공대 신문사, 성남청년정보센터,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시민행동21, 영화인회의, 우리만화연대,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 인권실천시민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장애인의 꿈너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빈민연합,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 전북대정보통신큰눈, 전북민주언론운동연합, 전북민중연대회의, 전북여성단체연합, 정보통신연대 INP,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평화와참여로가는인천연대, 평화인권연대, 학생행동연대, 한국기독교네트워크,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동성애자연합,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 (가나다순, 총52개단체)

2004-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