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성명] 인권단체/이라크반전평화팀 공동시국선언

By 2003/10/08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17개 인권단체/이라크평화팀 공동선언

“이라크 민중의 상황을 왜곡하지 말라”
정부조사반박과 이라크 민중지원을 촉구하는
인권단체/이라크반전평화팀 공동시국선언
– 10월 8일 오전 10시 30분 국방부앞에서 진행

“이라크 민중의 상황을 왜곡하지 말라”
– 정부보고서를 비판하는 네 가지 이유 –

정부 합동조사단은 10월 6일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달 24일에서 10월 3일까지 이라크에서 행한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정부 합동조사단의 발표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첫째, 이라크의 경제여건이 개선되고 있으며, 사회-경제기간시설이 복구되고 있는 등 전반적으로 안정추세에 접어들고 있다. (현지정황부분)
둘째, 이라크인들이 철수에 따르는 치안혼란을 우려해 미군과 동맹군의 한시적 주둔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라크인들의 미군 및 동맹군에 대한 태도 부분)
셋째, 모술은 미군에 대한 적대행위와 치안질서 측면에서 안정이 유지되고 있으며, 테러위험또한 감소하고 있는 중이다.(안전성판단부분)
넷째, 정부 합동조사단은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춘 활동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다.

반박 1. 정부 합동조사단은 그 구성과정과 조사활동이 매우 편향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합동조사단은 ‘민관합동’이라는 원칙에 따라 12명의 조사단 가운데 민간출신을 포함시켰으나, 그 수는 단 2명뿐이었으며, 이중 1명은 국방부 산하 국방연구소 소속입니다. 한마디로 ‘민관합동’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조사단원 대부분이 파병찬성론자들이었습니다.
또한 합동조사단의 조사활동은 전반적으로 미군의 가이드와 브리핑에 근거해 진행되었으며, 이라크 민중과의 접촉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합동조사단은 실제 조사기간 6일중에서 3일동안은 이라크 남부 나시리아 시의회와 이태리여단을 방문했으며, 하루는 바그다드의 미군정과 미동맹군사령부, 과도통치위원회등을 방문해 미군으로부터 정황을 보고받았습니다. 파병후보지로 유력한 이라크 북부 모술방문에 소요된 시간은 불과 4시간이었으며, 여기에서도 미 101 공정사단과 제 1공정여단으로부터 브리핑을 받았을 뿐입니다. 합동조사관에 참여한 박건영교수는 보고서의 “내용자체가 동맹군 사령군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충실하다”고 밝힌바 있습니다.

반박 2 : 경제여건이 나아지고 있다는 시각은 이라크 민중의 관점이 아니라 미군과 동맹군의 관점입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이라크 민중의 20%가 만성적인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라크 실업자연맹(Iraqi Union of the Unemployed)은 노동가능 인구의 60%에 해당하는 1천만명이 현재 실업상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황폐화되고 있는 이라크 민중의 경제사정아래에서 범죄와 약탈이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민간단체인 이라크 점령감시센터(Iraq Occupation Watch Center)는 최근 이라크의 상황을 두고 “이라크에서 승리한 자는 초국적 기업뿐이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난 9월 21일 발표된 이라크 경제개혁 조치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발표를 통해 이라크는 석유를 제외한 경제 전 분야를 민영화하며 외국인의 소유권을 100% 인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외국기업의 내국인 대우와 투자에 대한 어떠한 제약도 부과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함께 했습니다. 많은 이라크 사람들은 이라크 사회의 공공성과 관련해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전력시설과 수도공급시설의 복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라크 어린이들의 건강이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공공성으로서 보호되어야 하는 전력시설과 수도공급에도 민영화와 외국인소유권이라는 원칙이 적용된다면, 과연 상황은 어떻게 변하여 갈까요?
이라크의 경제학자 Basil Al-Nakeeb(바질 알 나키브)는 외국인에게 100%의 소유권을 허용해주는 조치가 이라크를 현격한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번 조치로 인해 오랜 동안의 경제제재로 인해 이제 막 걸음을 시작한 이라크의 경제체계가 일거에 질식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또한, 이동통신, 호텔, 공항, 시멘트공장과 같은 이라크인들의 공공자산도 이윤을 우선시하는 외국인 투자가들의 통제아래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결국 경제여건이 나아지고 있다는 관점은 이렇듯 이라크 민중들의 생존권과 인권을 바탕으로 조망된 것이 아닙니다. 나아졌다고 평가되는 이라크의 경제여건이란 이라크를 점령한 미국과 초국적 기업들이 이라크에 투자할 기회가 확대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반박 3 : 이라크 주민을 접촉할 기회조차 없었던 조사단이 ‘미군 및 동맹군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태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강대영 이라크 합동조사단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라크 국민이 미군과 동맹군의 주둔을 반대하면서도 치안확립때까지 주둔을 인정하는 이중성을 견지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합동조사단이 이라크주민을 만나 직접 이야기한 것은 단 5분간입니다. 이라크인들에 대해 들었던 나머지 이야기대부분은 미군의 브리핑에 의한 것이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민간전문가로 조사단에 참가한 박건용 교수의 발언은 이를 뒷받침합니다. 박건용교수는 “이라크에 대한 조사단의 접근이 근본적으로 제한적일 수 밖에 없어 안전위협정도나 이라크인들의 태도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히면서, 모술에서 이라크주민과 단 5분간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전합니다.
여기에 덧붙여 한국군 파병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는 이라크 주민들이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라크 국민통합운동(UNM)의 자슨 무함다드 알-이사위 부의장은 “이라크 국민은 미군을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으로 간주하며 다른 외국군대가 이라크에 들어온다면, 미군을 지원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점령군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유엔 결의하의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한국군이 파병되어도 반대할 것이냐라는 물음에 대해 “이라크 국민은 점령군과 유엔 다국적군을 구분하지 않는다”며 이라크 안정화 군대라는 것은 “그들의 추장이지 우리의 시각이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라크의 안정과 치안회복은 이라크인의 몫이지 외국군대가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박 4 : 유엔 이라크 안전보고서와 미국의 전투보고서는 모술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유엔 안전대책실의 일일보고서를 ‘파병반대국민행동’이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유력한 파병후보지인 모술 지역은 바그다드를 제외하고는 이라크에서 가장 많은 공격행위가 발생하고 있는 최고 위험지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7월말 한 때 바그다드를 제외한 이라크 전역에서 일어난 안전사고(공격행위)의 50%이상이 모술지역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8월에도 일부 기간을 제외하고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며, 이때문에 이 지역의 미군은 여름 내내 군중집회를 막고 반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경계상태를 지속시켰던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특히 여름이 지나 9월에 들어서면서 미-영 연합군에 대한 무장세력의 공격이 급증하고 있으며, 이들의 공격이 더욱 전략적이며 정교한 형태로 바뀌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모술에 있던 유엔 직원들도 에르빌로 재배치되었으며, 모술행 유엔 비행기편도 현재에는 모술이 아닌 에르빌로 기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라크 민중의 상황을 왜곡하지 말라”
인권단체/이라크반전평화팀 공동성명서

편향된 자료와 신빙성 없는 근거를 앞세워 정부가 파병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그리고 그 압권은 지난 6일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된 이라크 현지조사발표였다.

합동조사단은 ‘이라크의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상 어느 천지에, 매일 적게는 한건에서 6건까지, 게다가 로켓탄과 소형무기들이 사용된 반연합군 세력의 공격이 있는 상황을 두고, 누가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합동조사단은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춘 활동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다고 자임했다. 그러나 이라크 주민과의 직접접촉에는 단 5분을 할애하고, 6일내내 미국의 정황브리핑에 의존했던 조사활동을 두고 어떻게 객관성과 공정성을 입에 담을 수 있는가?

합동조사단의 이런 비상식적인 언행은 이미 그 구성단계에서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조사원 12명중 민간출신이 1명뿐이라는 사실은 ‘민관합동’이라는 요건에 이미 위배되는 것이었다. 조사단에 합류했던 민간출신 전문가가 말했듯이, “보고서 내용이 동맹군 사령군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충실하다”는 발언이 오히려 솔직하다.

한편, 정부는 합동조사단의 보고서가 다만 참고자료일 뿐이며 파병결정의 근거는 아니라고 점잖게 말한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정부는 아직까지 객관적인 위치와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상황은 그렇지 않다.

10월 1일 유엔 안보리에 이라크에 관한 수정결의안이 제출되었다. 그러나 ‘주권이양’이라는 핵심적인 문제가 빠진 것에 대해, 많은 상임이사국들이 미국을 거세게 성토했다. 같은 시각 청와대는 ‘이라크 파병 참고자료’를 배포했다. 이 자료에서 정부는 “이라크 결의안에 대한 상임이사국들의 거부권행사가 극복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는 정부의 이 같은 행보를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우리는 정부가 내심 파병을 위한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정부가 ‘국익’이니 ‘안보’니 하는 말로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듯 하지만, 사실은 편향된 자료와 신빙성 없는 근거들을 가지고 파병을 여론몰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진행된 이라크 현지조사는 그 전제부터가 잘못되었다. 이번 이라크 현지조사는 파병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자료수집차원에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정부가 진정으로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헌법을 수호할 의지가 있다면, 정부는 우선적으로 이라크 민중의 자결권에 대한 숙고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것이 이라크 문제에 접근하는 가장 상식적인 길이다. 이라크 민중의 주도하는 이라크 사회의 재건을 위해 파병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한국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순서에 맞는 것이다.

이라크 민중의 자치를 확대하고, 이라크 사회의 재건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군대가 아니다. 우리는 요구한다. 이라크 민중 지원을 위한 실질적 과제를 조사할 수 있는 민간조사단 구성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라. 이라크 점령군의 통제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이라크 주민들의 생활을 직접 대면하는 이라크 현지 재조사에 착수하라. 파병이 아니라 이라크 민중의 자치와 재건을 직접 지원하는 국가차원의 민간지원단을 이라크 현지에 파견하라. 오늘 이라크 민중과 국제사회가 한국에 요구하는 역할을 바로 이것이다.

2003. 10. 8
국제민주연대, 다산인권센터, 동성애자인권연대, 사회진보연대, 새사회연대, 안산노동인권센터, 원불교 인권위원회, 여성해방연대, 이라크 반전평화팀, 인권실천시민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장애인이동권연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평화인권연대, 한국동성애자연합

2003-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