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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논평] 전자건강카드 추진에 부쳐

By 2003/09/19 10월 25th, 2016 No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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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 전자 국가신분증은 국민의 정보인권을 위협한다
■ – 전자건강카드 추진에 부쳐

지난 16일 개최된 제7회 전자정부 포럼에서 KAIST 스마트카드컨소시엄은 전자건강카드 도입을 주장했다. KAIST 지식기반전자정부연구센터 등 전자정부 관련 연구소와 삼성SDS·LG CNS 등 IT·금융업계가 함께 발족시킨 스마트카드컨소시엄은 지난 6월 발족하면서 이미 전자주민카드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자주민카드 첫단계로 전자건강카드의 도입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전자주민카드가 지난 1998년 국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중단된지 5년 만의 일이다.

전자건강카드 자체만 하더라도 이미 지난 2001년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로 한차례 도입이 중단된 바 있다. 그 당시 시민사회단체들이 전자건강카드를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전자건강카드가 사실상 국가신분증이 되면서 전자주민카드가 부활할 것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리고 IC카드의 특성상 카드의 기능은 나중에 다양하게 확장할 수 있는데 특히 신용카드 등 상업적 기능과 연계되면서 국민의 소중한 개인정보가 민·관 간에 거래되고 그에 따른 유출의 위험도 커질 것이라는 우려 또한 제기되었다. 결국 국민이 자기 개인정보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축소될 것이라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전자건강카드의 도입이 중단된 까닭은 그 주요 목적 중 하나였던 허위/부당/과장청구를 전자카드가 방지할 수 있을지 의문시되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허위/부당/과장청구는 병원이 확보한 개인정보를 이용하거나 담합을 통한 가짜환자 만들기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기술로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 과다한 투자비용의 부담은 결국 의료비를 실질적으로 인상시켜 그 부담이 국민에게 돌아갈 상황이었다. 한편 보험재정 투명화라는 명분으로 도입된 고도의 실시간 전산시스템은 결국 카드를 지참하지 않거나 보험료를 연체한 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공공의료서비스의 근본 취지를 위협할 수 있다는 문제점까지 지적되었다. 결국 보험재정을 투명화하기 위해서는 득보다 실이 큰 기술적인 방법보다 제도적 처방이 먼저 모색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스마트카드의 기술은 발달했지만 2001년 전자건강카드에 대해 지적되었던 위의 모든 문제점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스마트카드컨소시엄의 발표내용에서 과거와 다른 점이라면 발달한 기술만큼 기술주의적인 장담도 늘었다는 것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전자건강카드를 도입해야 하는 가장 중대한 이유 중 하나는 스마트카드산업을 먹여 살리고 해외에 진출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실제로 스마트카드업계는 "그때 전자주민카드가 중단되지 않았으면 스마트카드 시장은 커졌을 것"이라며 매우 불만스러워한다.

그러나 이들에겐 시민사회단체와 국민이 지켜낸 것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가 보다. 전자주민카드와 전자건강카드를 반대한 국민적 열망이 단지 기술적인 무지와 경제적인 무능이었던가. 1998년과 2001년에 드높았던 것은 자기 정보에 대한 통제의 권리, 곧 정보 인권에 대한 열망이었다. 우리는 국민의 정보인권 문제가 시장의 이익과 나란히 등치되어 비교되는 상황이 매우 경악스럽다. 정보인권은 시장의 담보가 아니다. 민주사회라면 어떤 시장의 논리도 인권을 앞지를 수는 없다.

무엇보다 스마트카드가 위험한 이유는 그 확장성 때문이다. 스마트컨소시엄은 ‘수록정보를 최소화하여 인권침해 소지를 줄이겠다’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을 장담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정말로 수록정보가 적다면 건강카드가 반드시 스마트카드여야 할 까닭이 없다. 스마트카드컨소시엄이 출발하면서 밝혔다시피 결국 궁극적인 목적은 전자건강카드가 아니라 전자여권, 전자운전면허증, 그리고 전자주민카드로의 확장이다. 하나의 카드로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은, 역으로, 하나의 카드가 자신에 대한 모든 개인정보 데이타베이스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소 편리할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위험하다.

가장 큰 문제는 기존의 국가신분증 제도, 즉 주민등록증에 있다. 현재 미국 등 일부 국가들이 전자적인 형태로 국가신분증을 도입하려고 시도하면서 시민사회의 저항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스마트카드를 도입하려는 어떤 나라도 우리와 같은 강제적인 주민등록증 제도를 갖고 있지 않다. 한국은 박정희 군사독재정부가 도입한 강제적이고 통합적인 주민등록증 때문에 그 자체로 이미 국민의 자기정보통제권이 중대하게 위협받아 왔다. 더구나 주민등록번호를 기준점으로 수많은 민관의 개인정보 데이타베이스가 마구잡이로 통합·연동되면서 국민의 정보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개선 요구가 계속되어 왔고 여러가지 진정과 소송이 진행중이다. 강제적이고 반인권적인 주민등록증과 주민등록번호가 존재하는 채로 전자적인 형태의 국가신분증까지 도입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사생활의 종말을 의미할 뿐이다. <끝>

2003-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