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자료실

[프라이버시/칼럼] CCTV

By 2003/08/20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CCTV

* <민주사회와 변론>에 기고한 글입니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국장)

최근 CCTV로 인한 인권침해 논란이 한창이다. 강남 경찰서와 강남구청이 곳곳에 CCTV를 설치하더니 이명박 서울시장은 아예 서울시 전체에 CCTV를 깔겠다고 나섰다.
CCTV 문제에는 여러 가지 법률적 쟁점들이 있지만, 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고민스럽다. CCTV가 침해하는 인권의 성격에 관한 문제다.

CCTV에 대응하는 활동을 하면서 나는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CCTV로 인한 피해는 어떤 게 있나요?" 질문한 사람은 CCTV로 인해 병을 얻었다던가 해고를 당했다던가 하는 답변을 기대한다. CCTV 뿐 아니라 개인정보와 관련한 최근 사안에 대해서도 나는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 물론 CCTV로 인한 피해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에 나는 이들이 만족할 만한 답변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CCTV와 개인정보가 문제되는 이유는 그로 인해 사후에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 아니다. CCTV로 인한 피해에서 인권침해를 찾고자 하는 질문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으면 인권 침해가 아니라는 전제를 담고 있다. 더 나아가 CCTV가 피해를 방지한다면 오히려 CCTV를 설치하지 않는 것이 인권 침해라는 역설도 낳을 수도 있다.

이런 질문의 함정에서 벗어나 CCTV가 침해하는 인권을 설명하기 시작하면 나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는 매우 생소한 개념을 설명해야 하는 입장이 된다. 프라이버시권 말이다.

198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프라이버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이후 프라이버시권이란 자기 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하고 전달하는 행위에 대한 정보 주체의 결정권으로 정리되었다. 그래서 ‘감시’란 일반적으로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고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집적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분명 감시 무법지대이다. 어디에 카메라를 설치하건 테이프나 파일을 어디에 얼마동안 보관하건 누구에게 넘기건 그저 카메라 주인 맘이다. 공공장소에, 특히 수사 목적으로 CCTV를 설치할 때는 까다로운 요건을 갖추도록 제한한 다른 나라의 경우와 너무 차이가 난다. 따라서 찍히는 사람의 자기정보통제권을 보장하는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프라이버시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딜렘마가 있다. 만일 CCTV에 의해 감시당하는 것을 기꺼이 선택한다면? 그렇다면 CCTV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강남구 주민들의 80%가 CCTV 도입을 찬성했다고 한다. 이들은 CCTV에 촬영되는 대가로 자기 재산에 대한 안전을 보장받길 원한다. 자기 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경제적인 보상을 받는 것이다.

여기서 감시는 선택적인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감시는 순수한 개인적 선택의 영역에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감시에 대한 수용 여부는 사실 권력에 대한 태도에서 유래한다. 똑같은 카메라 감시의 문제인데도 강남 CCTV에 대한 반응이 얼마 전까지 문제되었던 카메라폰에 대한 대응과 매우 다르게 전개된 것도 이 때문이다.
카메라폰을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은 폭발적이었고 카메라폰에 대한 규제 입법 논의는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경찰이나 지방자치단체의 CCTV에는 같은 논리가 적용되지 않았다. 다른 개인이 나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은 용납하지 못하지만 경찰이나 지방자치단체의 권력에는 순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시에 대해 동의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권력관계에 의해 제한된다. 고용관계에 매여 있는 노동자는 CCTV를 ‘선택’할 수 없다. 단지 강요받을 뿐이다.
감시의 효과 또한 권력 관계로 나타난다. 우리보다 먼저 CCTV 논쟁을 겪었던 영국의 경우 ‘범죄 이전’ 효과에 대한 논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분명 CCTV는 특정 지역에서의 범죄율은 저하시켰지만 전체적인 범죄율은 변화가 없었으며 결국 범죄를 다른 지역으로 이전시켰을 뿐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범죄 이전 효과는 결국 ‘청정 구역’과 ‘우범 지역’을 철저하게 나누는 결과를 가져 왔다고 한다. 이는 곧 신보수주의 영국 사회에서 사회 계층의 분리와 양극화 현상의 한 지표이기도 하다.
결국 감시의 궁극적인 효과는 사회적 분리와 배제, 그리고 차별이다. 비록 지금은 추진이 중지되었지만 천호동에 설치될 뻔한 CCTV가 가져왔을 효과는 성매매 여성들의 영원한 사회적 격리이다. 호주 정부가 1980년대 전자주민카드를 추진했을 때 그들이 내세웠던 명분도 ‘불법 이민’에 대한 철저한 적발과 소탕이었다.

하지만 감시를 거부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정보사회 프라이버시의 문제는 내가 감시망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는 역설에서 발생한다. 미국은 얼마전 유학생·교환방문자 정보시스템(SEVIS)에 등록되지 않은 사람은 입국을 불허한다고 발표했다. SEVIS에 등록되어 있는 사람은 향후 준테러범으로 미국 정부에 의해서 감시받겠지만 등록되지 않으면 아예 미국에 입국할 수 없다. 데이타베이스에 들어가면 감시받고 데이타베이스에 들어가지 않으면 차별받는 것이다. CCTV도 마찬가지의 문제이다. CCTV에 촬영되기를 거부할 수도 있겠지만 CCTV에 촬영되지 않고서는 강남이나 서울시를 활보할 수 없다. 강남이나 서울시에서 일할 수 없다. 하지만 CCTV에 촬영되면 그 순간 내가 있었던 위치, 나와 함께 있던 사람, 내가 했던 행동, 간혹 내가 대화한 내용까지 모두 기록된다. 그리고 나는 나의 결백을, 이 기록으로 인해 입증받는다. 프라이버시 학자들이 경고한 바로 그대로, 나는 오로지 감시당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나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내게 CCTV의 문제는 무척 무겁고도 어려운 주제이다. 감시의 문제는 단지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인 권력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며 더 나아가 이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와 진보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감시 문제에 대한 대응의 단초는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사회구조적 문제인지를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시가 많아질수록 얼마나 많은 사회적 배제와 차별이 생겨날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더불어 프라이버시권 또한 더이상 23년전 OECD가 천명한 자기정보에 대한 개인적인 결정권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감시를 거부할 수 있는 사회적 권리가 꼭 필요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2003-08-19